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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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65)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검역은 제2의 국방" 철통수비 나선 153명의 검역전사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는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동물의 전염병 감염 여부를 보호·관찰을 통해 가려내고 있다. 권오규 검역관(수의사)이 계류장에서 보호하고 있는 말의 전염병 정밀검사를 위해 혈액을 채취하고 있다. 올 상반기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썰물처럼 밀려 들어오던 유커(중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겼다. 공포 탓이었다. 두려움의 근원은 이름조차 생소했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중동 낙타로부터 전염된다고 알려진 메르스는 대한민국의 동력을 앗아갔다. 사람들은 메르스가 거칠게 할퀴고 간 이후에야 '동물이나 식물로부터 전염될 수 있는 질병이 총칼을 든 군인보다 무섭다'란 사실을 뼈에 새겼다. 하지만 해외에서 들어오는 각종 동·식물의 병해충, 전염병과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달 24일 인천국제공항 정부합동청사에서 만난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배호열 본부장은 입술에 무게를 실어 말했다. "검역은 제2의 국방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천공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153명의 검역전사들을 만났다.#1. 7월 24일 오전 9시20분, 인천국제공항 정부합동청사 1층에 위치한 수입식물 정밀실험실. 60평 남짓의 공간에서 흰 가운을 입은 12명의 검역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점유한 공간은 협소하지만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수입식물의 위해성에 대한 실험분석이 필요한 경우 대부분 이 곳을 거쳐가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수입식물에 묻어올 수 있는 병해충을 판별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제주에선 천연기념물 374호로 지정된 비자나무 군락지인 비자림지역에 소나무 재선충이 창궐해 '비상'이 걸렸다. 시험분석과 정영철 과장은 "전국에 수입식물 정밀실험실은 총 4곳으로 인천은 그 중 1곳에 불과하지만 업무 비중은 전체의 64%에 달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력이다. 감당하고 있는 업무의 양은 전체의 64%에 달하는데 비해 인력은 총 12명으로 전국 정밀실험실 인력의 25%에 그치기 때문이다. 검역관들이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것도 당연하다. 백지현 검역관(박사)은 "정밀실험실은 업무 특수성 때문에 특수현미경을 장시간 들여다봐야 한다"며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을 쉬지 못하고 하다보니 두통약을 비타민처럼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2. 오전 9시40분, 농림축산식품부 특수검역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조류인플루엔자(AI).신종인플루엔자A(H1N1).중증혈소판감소증후군(SFTS).에볼라 출혈열 그리고 메르스까지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의 공통점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되는 '인수(人獸)공통감염병(zoonosis)'이라는 것이다. 백신 개발이 어렵고, 국가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시기 간격이 짧아지고 있어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동물의 99%가량의 검역을 맡고 있는 인천의 특수검역과는 전염병을 막는 첫 펜스다. 메르스에서도 봤듯이, 인수공통감염병은 대부분 일정기간의 잠복기가 있다. 국내로 들여오는 동물을 한동안 보호·관찰하면서 혹시나 이 동물이 전염병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그래서다. 달리 말하면, 이곳의 검역관들은 대한민국에서 메르스 같은 전염병에 가장 먼저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서영선 검역관(수의사)은 "말은 전염병 정밀검사를 위해 혈액 등 시료를 채취할 때 생식기에서 샘플을 채취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2년 전 한 검역관이 말발굽에 다리를 차여 장기간 신경마비로 고생하기도 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휴대품검역과는 해외에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여행객들이 여행가방에 숨겨 들여오는 반입금지 물품을 찾아내고 있다. #3. 오후 1시,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휴대품검역과. 인천국제공항 휴대품검역과는 24시간 풀가동된다. 62명의 검역관들이 하루 24시간을 터미널 1층(도착) A부터 F구역까지 6곳에서 여행객들의 가방 속에 숨겨진 과일이나 육포 등 반입금지 물품을 찾아내고 있다. 3교대 근무로 하루 24시간 일했다면, 이틀 동안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 박정서 검역관(수의사)은 "여기엔 '퐁당퐁당'이란 말이 있어요. 하루 24시간 일하고 그 이튿날 다시 근무를 하는 근로조건을 빗댄 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여행객을 대면해서 상대하는 일인 만큼 민원의 강도도 무척 세다. 식물검역을 담당하고 있는 문광옥 검역관은 "여행객의 개인 수하물을 열어서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민원인과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밤낮이 바뀌는 생활 탓에 육체적인 피로감도 무척 심하지만 그보다 힘든 점이 바로 악성민원"이라고 토로했다.검역본부는 처음 적발 시 1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지만, 두 번째 적발될 경우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축산물과 식물에 각각 50만원, 30만원씩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3차 적발될 경우엔 100만원, 90만원씩이다.#4. 오후 3시30분, 화물검역과 특급탁송 화물. 검역본부에서 가장 일손이 부족한 곳은 바로 화물검역과의 특급탁송 화물을 검역하는 곳이다. '해외직구'가 급증한 탓이다. 실제 지난 2010년 2132건에 불과했던 특송화물 검역실적은 지난해 28만334건으로 불과 5년 만에 14배 가까이 늘었다.김경수 검역관은 "특급탁송 화물을 통한 식물 검역실적의 경우 2013년 1만5000건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40만5000건으로 늘었고, 올해들어 6월까지만 33만6000건을 기록하고 있다"며 "전담인력은 2명 뿐으로 1명이 하루에 1345건을 적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검역본부에 구멍이 있다고 한다면, 특송화물 쪽"이라고 토로했다. 한 명이 하루에 검역할 수 있는 최대량은 식물의 경우 약 48건이다. 식물검역 전담인력이 2명이기 때문에 40만5000건(2014년 기준)을 모두 처리하려면 11.5년(4218일)이 걸린다. 하루 최대 처리량이 40건인 축산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기준(28만건)으로 반입 축산물을 모두 검역하는 데 4.79년(1750일)이 걸린다. 이 탓에 특송화물의 경우 휴대품과는 달리 선별적인 검역을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설명이다. 인력 증원 만이 구멍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5. 오후 5시. 화물검역과 국제우편팀. 검역본부 국제우편팀은 항공기가 실어오는 우편물을 그대로 컨베이어 벨트에 옮겨놓고 검역을 실시한다. 하루동안 처리하는 우편물은 약 11만건에 달한다. 5곳에 설치된 세관의 엑스레이(X-ray)와 검역탐지견 2마리가 검역대상 우편물을 걸러낸다. 24시간 근무는 필수다. 금지물품 은닉방법도 갈수록 진화한다. 이복섭 사무관은 "두꺼운 책이나 잡지 속을 파낸 후 시가 2억원 상당의 토마토 종자를 숨기거나, 애완곤충을 과자봉지나 장난감 속에 숨겨 반입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또 우편물을 먼저 뜯어봐야하는 탓에 민원인들이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이 사무관은 "우리가 먼저 우편물을 뜯어보기 때문에 민원인 중에선 '우편물 안에 돈을 넣어두었는데 사라졌다'며 항의를 하는 분도 더러 있다"며 "하지만 AI 같은 국가 재난형 질병과 식물병해충 유입을 막아내고 있다는 자부심 만큼은 남다르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김용훈 기자

  (64) 행정자치부 지방규제혁신과 공무원들

(64) 행정자치부 지방규제혁신과 공무원들

톱니바퀴처럼 얽힌 규제 하나씩 풀릴때마다 엄청난 나비효과 제보 받고 지방 달려갔는데 사소한 민원일때 허탈하죠 해변 철책선 하나 철거하기 위해 국방부 설득만 6개월 마라톤 협상은 기본 지방규제혁신과는? 규제개혁 진두지휘하는 사령탑 현재 등록규제 9913건 없애 규제발굴은 물론 해결방법 등 규제개혁 밑그림 그리는 사람들 규제개혁 '나비효과' 지방규제라고 얕잡아 보면 오산 규제 하나 없앨때마다 나비효과 작년 울산 중수도 규제 완화는 전국 141곳 기업에 동일한 효과 모든 행정력의 집합 규제 하나 없애는 데 보통 석달 국방부 관련 규제는 암벽 같아 협상테이블 만드는 것도 쉽잖아.. 지방 출장 많아 '떠돌이생활' 최근 전북 남원에서 열린 지방규제개혁토론회에서 행정자치부 지방규제혁신과 김광휘 과장(맨 오른쪽)이 산악열차 설립 타당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난 23일 찾은 강원 고성군. 화진포 해수욕장을 비롯해 아름다운 해변이 즐비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군 철책선이 해안가를 점령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고성군 지역은 변변한 인프라 시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올 초 겨울에 폭설로 무너져내린 시외버스터미널을 보수도 하지 않은 채 임시 가건물을 지어 사용할 정도로 지역경제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여기에 군 철책선이 버티고 있는 이상 지역경제 활성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음달부터 군 철책선 일부 구간이 단계적으로 철거돼 새로운 희망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군 철책선은 삼척부터 고성까지 6개 시·군 해안선 426㎞에 걸쳐 길게 뻗어 있었다. 이 중 26개소 14.7㎞ 구간이 다음달부터 내년까지 단계적으로 철거된다. 지방규제개혁 대상에 포함돼 부분적으로 철거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고성군청 관계자는 "이 철책이 철거되면 화진포해수욕장은 물론, 화진포호수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회복시키고 관광산업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지방규제개혁이 탄력을 받고 있다. 정부는 지방규제개혁 작업을 진행하면서 지금까지 총 9913건의 등록 규제를 감축했다. 행정자치부 지방규제혁신과는 이 모든 규제개혁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이다. 지난 10일 전북 남원에서 열린 지방규제개혁 대토론회장에서 만난 행정자치부 김광휘 지방규제혁신과장은 "지방규제개혁 작업은 종합행정의 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지방규제개혁을 이끄는 주무부서의 총책임자다. 총 10명으로 구성된 '지방규제개혁과'는 지난해부터 국정핵심과제 중 하나인 지방규제개혁을 위해 전국을 돌며 규제 발굴 사례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까지 모든 지방규제개혁의 밑그림을 그린다. ■팀원들이 경쟁력…고도의 행정력 수반 토론회가 열리기 전날 규제혁신과 박용식 팀장과 강석탁 계장 등 관련 팀원들은 현장에 먼저 도착해 행사 준비와 토론회 안건에 대한 막바지 점검 작업을 벌였다. 이들의 규제개혁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사실 지방규제혁신과 전체는 부처 내에서 지방규제개혁을 이끄는 전사들로 불린다. 박 팀장은 규제개혁의 베테랑으로 규제총괄 기능을 담당하며 '현장에 강한 사나이'라는 닉네임을 가졌다. 강 계장은 규제사례 발굴을 위해 전국을 마다하지 않고 다닌다. 1회 출장 시 3박4일 또는 4박5일은 예사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부원들은 규제개혁의 필수요건인 기획력, 분석력, 현장감, 교섭력, 홍보 등 전방위 행정에 능해야 한다. 1~2개 능력이 부족해도 부서 전체의 업무에 차질이 빚어진다. 출장으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보통 하루짜리 출장이 길게는 일주일까지 걸리는 일도 예사다. 여기까지는 업무속성상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출장의 궁극적 목적인 규제발굴 사례가 있느냐다. 지자체들로부터 규제개혁 사례를 접수하고 막상 현장에 가더라도 서류와 현장은 늘 다르기 마련이다. "규제 대상인 줄 알고 해당 현장에 갔다가 사소한 민원규제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가장 허탈합니다. 그때는 눈앞이 막막하죠. 현장에 내려온 이상 규제발굴 사례를 직접 찾아야 합니다." 강 계장은 3~4명의 팀원과 한 팀을 이뤄 그때부터 해당 지역의 규제발굴 사례를 뒤진다. 규제개혁 사례를 찾는 일이 가장 고된 일이라며 그는 애써 웃으며 말한다 ■'매의 눈'으로 현장을 보다 규제발굴 작업은 어찌 보면 모래사장에서 진주를 캐내는 작업과 유사하다. 지역의 관계자들을 만나 고충도 듣고 직접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 문제점을 파악해 규제발굴 사례를 만드는 것은 그만큼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매의 눈'과 '장인정신'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지도 모를 규제개혁 대상이 레이더망에 포착되기는 힘들다. 1차 발굴에서 나온 규제개혁 사례들은 다시 2차 현장조사를 거쳐 본격적인 규제개혁 옥석 가리기 작업이 시작된다. 민원규제인지 규제개혁 대상에 적합한지를 따지는 후속작업은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다. 김 과장은 여기서 나온 최종 개혁 사례를 '나비효과'라고 부른다. 규제개혁 1건의 파급력이 예상보다 크기 때문이다. 전국의 유사한 사례에 미칠 영향을 감안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가령 지난해 경남 울산 지역의 중수도 규제 완화는 전국 141개 유사 기업에 동일한 규제완화 효과를 불러왔다. 규제 1건을 풀 때 그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규제에 얽힌 온갖 법령을 뜯어보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따져야 하는 고달픈 작업이 그들을 짓누르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규제를 푸는 대안과 방법의 도출이다. 여기까지 마련돼야 정식으로 지방규제개혁 대상 목록에 오르고 본격적인 해결 방법을 위한 협조체제가 가동된다. 그는 "규제개혁 착수부터 해결까지 보통 3개월 정도 걸립니다 또 여기서 발굴된 규제건은 해당 부처에 통보해 타부처 법령해석과 유권해석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토론회 안건이 만들어지고 타부처와 협의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온갖 타부처 법령이 하나의 규제에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이를 일일이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강원도 지역의 숙원사업인 군 철책선 철거 작업이 대표적인 규제발굴 사례로 평가받는 것도 그래서다. 전북 남원 지리산 정영치 정상에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앞줄 왼쪽 두번째)이 전북 남원시 공무원들로부터 산악관광 열차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다. ■행정력의 총화…'설득과 조정'의 마술 국방부, 해당 군부대와 이 문제를 협상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암벽과 마주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국방과 외교는 당초 규제개혁 대상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접촉도 안했던 국방부와 해당 군부대 관계자들을 수차례 접촉한 후 협상의 테이블을 만들 수 있었고 6개월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부분 철거라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정종섭 장관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국무회의 등 접촉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협조요청을 하는 등 부처 전체의 전방위적 협조체제가 난관을 뚫은 보이지 않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팀장은 "성공한 지방규제개혁 사례 1건을 만드는 데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협조가 없이는 성사되지 않습니다. 1건의 사례라고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1건의 사례가 전국의 유사한 규제 수백개를 해소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점에서 건수가 중요하지는 않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10일 토론회가 열리기 전북 남원지역의 규제 사례인 지리산 '정영치' 산악관광열차 사업 추진 현장을 찾았다. 꼬불꼬불한 지리산길을 계속 오르고 보니 정영치 정상부근 저 너머에 희미하게 천왕봉이 보였다. 자연보존구역인 이 지역에 어떻게 산악열차를 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이건 규제개혁 대상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그런데 남원시 측의 얘기는 기존 도로 위에 철도를 까는 작업이어서 자연환경 훼손 등의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그 문제는 이날 오후에 열린 토론회에서도 쟁점으로 부상했다. 낙후된 전남지역의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이라는 절박함과 자연보호를 놓고 열띤 설전이 오갔다. 키를 쥐고 있는 환경부의 완고함도 여전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자부 및 지자체 공무원들의 끈질긴 설득작업도 이어지는 등 인상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규제개혁에 종합행정력이 왜 필요한지가 현장에서 뚝뚝 묻어났다. 부처 간 의견 차이와 상이한 해석, 지역의 입장, 경제적 효과 등 규제개혁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에 총체적인 행정조정의 문제는 늘 대두된다. 지방규제개혁 작업이 '경제의 골든타임'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런 이유다. 앞으로 지방규제개혁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mail protected]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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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 그들이 제 가족입니다"

SH공사 주거복지상담사 반은영 주거복지상담사(왼쪽)가 지난 13일 SH공사 임대주택 서울 신내 12단지에 위치한 방명순 할머니 댁을 직접 방문해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이날 반 과장은 팔을 다쳐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목욕서비스 제공을 약속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도시근로자는 월평균246만원을 벌고 월평균 180만원을 지출한다. 남은 돈을 모아 서울의 평균가격 아파트(4억9999만원)를 사려면 64년11개월이 걸린다. 아파트 평균가격이 서울보다 낮은 경기도로 넘어가도 34년9개월이 걸린다. 평범한 도시근로자도 서울에서 내집을 마련하기 힘든데 노인, 청소년가장,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게는 내집 마련은커녕 마땅한 전셋집이나 월셋집도 알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이들을 위해 SH공사는 서울 전역에 2만가구가 넘는 영구임대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임대료는 25~49㎡ 크기를 기준으로 평균 보증금 200만원, 월세 4만7000원 정도다. SH공사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SH공사는 이들의 자립을 도와주기 위해 다양한 주거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입주민들의 사소한 고민까지 들어주는 맞춤형 상담을 실시해 자립·자활의지를 북돋아주는 한편 일자리 연계 서비스 등으로 취약계층이 실질적인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밖에 주거복지서비스는 기본적인 건강관리에서부터 세대 내 밑반찬을 지원하는 소소한 것까지 포함한다.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서비스다. ■세대 내 일어나는 모든 일 총괄 지난 13일 기자가 점심 때쯤 만난 SH공사 동대문권역주거복지센터 반은영 주거복지과장은 오전부터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고 오는 길이었다. 오전 동안 전날 들어온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적인 서류절차를 처리하는 한편, 거주 세대들을 일일이 직접 방문하고 왔기 때문이다. 특히 노년층이 홀로 거주하는 세대는 복지관, 경로식당 등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오전부터 일찍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 헛걸음하는 경우도 많다. 반 과장은 동대문에 위치한 신내 12단지 1000세대를 혼자 관리하고 있다. 단순한 관리를 넘어 세대를 일일이 방문해 안부 확인도 하고 건강 상태는 어떤지, 거주에 불편함은 없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심지어 반찬 제공부터 세대 하자 및 보수 관리까지 모두 반 과장의 손을 거치게 된다. 반 과장은 "세대 내 도배 시공 및 단일벽지 시공은 SH공사가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유관기관의 도움을 받게 된다"며 "입주자들의 상담업무 외에 협력사를 찾기 위한 행정적인 업무도 주거복지상담사들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반 과장은 장판도배 시공 및 안전바 설치 사업은 사회적기업인 하우징 케어와, 누수 및 측벽세대 단열벽지 시공은 한경홀딩스, 취약계층의 밑반찬 및 부식 지원은 영안장로교회와 연계해 진행했다. 오후에 반 과장과 함께 신내 12단지 관리사무소에 들어서자 여러 민원을 가진 입주민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1시가 되자 상담을 약속한 50대 여성 입주자가 관리소로 반 과장을 찾아왔다. 여성은 딸과 함께 살고 있는데 자신은 허리를 심하게 다쳐 일할 수 없는 상태이고 딸 역시 정신·육체적인 문제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두 사람 모두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기초수급자에서 제외시킨 상태다. 반 과장은 여성이 허리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알아보고 기초수급 문제도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 반 과장은 "세대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우리는 해당 세대가 근로할 수 없는 상황인 점을 알지만 정부 기준에서는 수급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영구임대주택단지에는 기준상 기초수급자가 될 수 없지만 실질적으로 기초수급자인 사람이 많다. 이들이 기초수급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주거복지상담사의 역할 중 하나다. 반 과장은 실제 남편과 별거한 지 오래돼 전혀 가족관계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한 여성이 기초수급자로 선정되도록 도와줬다. 반 과장은 "부부로 살다가 아내가 장애가 생기자 남편이 집을 나가버렸다"며 "실제로는 장애를 가진 아내 혼자 살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남편이 있다며 기초수급자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아내는 기초수급자로 인정받기 위해 남편과 이혼을 원했지만 남편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이에 반 과장은 아내를 직접 법원에 데리고 가 이혼서류 작성을 도왔다. 법원에서 직접 출석 명령을 내리자 남편과 연락이 닿아, 아내는 이혼을 하고 기초수급자로 인정받게 됐다. 반 과장은 "실제로 같이 살지 않는데도 법률상 부부라는 이유로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상담이 끝나고 오후 2시가 되자 반 과장 자리의 전화벨이 울린다. 오후에 세대 방문이 예정된 방명순 할머니(69·가명)가 왜 반 과장이 오지 않느냐며 전화한 것이다. 반 과장은 상담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방 할머니가 있는 102동으로 이동했다. 방 할머니는 반 과장이 도착하자 반갑게 맞이했다. 반 과장은 우선 방 할머니의 다친 팔부터 체크하며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또 방 할머니가 몸이 불편한 만큼 씻기 힘든 것을 감안해 별도로 목욕서비스를 예약해두겠다고 말했다. 방 할머니는 자신의 건강상태부터 단지 내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반 과장에게 털어놓으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세대 방문을 마친 반 과장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어르신들께서는 상담사가 직접 방문해 사소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크게 고마워하신다"고 말했다. 방 할머니처럼 주거복지상담사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입주민만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대 간 불만사항을 처리하는 것도 반 과장 몫인데 이 과정이 쉽지 않은 것이다. 반 과장은 "한 세대에서 시끄럽게 짖는 큰 개를 복도에 풀어놓는다는 민원이 접수돼 그 집을 방문했더니 알코올 중독자인 집주인이 개를 죽이겠다고 난동을 부리면서 상담사들을 쫓아냈다. 놀라서 입주민을 진정시키고 1층으로 내려갔더니 집주인이 위에서 쓰레기더미를 뿌리더라"며 "당시에는 참 직업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SH공사 임대주택 서울 면목 14단지는 서울복지재단의 임대주택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돼 카페를 개설하게됐다. 입주민들이 직접 바리스타가 돼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입주민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카페를 홍보하고 있다. ■입주민 완전한 자립 목표로 노력 가끔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주거복지상담사의 노력으로 입주민이 건강을 되찾거나 일자리를 얻게 된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반 과장은 올해 허리골다공증, 허리측만증세로 고생하는 한 입주민에게 성북중앙병원과 연계해 수술을 받게 도와줬다. 반 과장은 "그 입주민은 차상위계층으로 오랫동안 허리통증을 호소했으나 남편이 10년 전 사망하고 남매는 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어서 경제적으로 수술을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며 "수술이 결정되자 내 손을 잡고 너무 기뻐했다"고 보람을 느낀 일화를 공개했다. 반 과장이 지난해 면목단지를 담당할 시절에는 입주민들의 카페 개설을 돕기도 했다. 서울복지재단의 임대주택 활성화 공모사업에 면목단지 입주민 마을기업협동조합이 선정돼 카페를 개설하게 된 것이다. 입주민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야 카페를 운영할 수 있으므로 동주민자치센터 등에서 십시일반 도와 자격증 취득에 도움을 줬다. 반 과장은 "당시 면목4동에 거주하시던 분 중 바리스타가 있었다"며 "이분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입주민들을 가르쳐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도왔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카페는 면목단지 상가 내에서 영업 중이다. SH공사가 실시하는 '희망돌보미'사업도 입주민 일자리 창출의 일환이다. 희망돌보미란 입주민이 직접 임대아파트단지 내 독거노인 및 장애인 세대에 집안일 및 말벗 등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도입된 프로그램이다. 일상생활을 하기에 무리가 없는 입주민이 독거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세대를 찾아가 청소도 해주고 말상대도 해주면서 '공생'한다. 희망돌보미는 한달 15일 하루 4시간 정도 근무하며 월 급여 35만여원을 받는다. 이 돈으로 직접 임대아파트 임대료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밖에 주거복지상담사들은 입주민들을 대상으로 '주춧돌 통장'이나 '희망플러스 통장'에 가입하도록 홍보한다. 주춧돌 통장은 임대주택 입주자가 적금 만기를 채우면 은행이자만큼 더 주는 이자 가산 지원프로그램이다. 서울 희망플러스 통장은 기초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매월 근로소득으로 저축하는 금액에 동일한 금액 또는 2분의 1을 적립 지원하는 통장이다. 이런 제도가 있더라도 정보에 취약한 임대주택 입주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반 과장은 "정부에서 새로운 지원제도가 실시되면 이를 일일이 각 세대에 알려주는 것도 주거복지상담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주택건설 넘어 주거복지로 SH공사는 올해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 주거복지 전문기관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직접 현장에서 매일 입주민들과 마주치는 주거복지상담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주거복지상담사들을 늘려 더욱 세밀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SH공사 주거복지본부 공동체활성화팀 정명원 과장은 "현장에서 뛰는 주거복지상담사들의 건의사항과 의견을 본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 과장은 "주거복지상담사가 늘어나 한 사람당 담당해야 하는 세대수가 적어지면 더욱 고도화된 주거복지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email protected] 박나원 기자 서울의 민달팽이를 위하여.. 서울에서 평범한 근로자가 내집마련을 하려면 64년이 걸린답니다. 노인·청소년 가장·장애인은 월세 방한칸 얻기도 힘든게 현실입니다. 그들을 위해 SH공사는 서울에 2만여가구의 영구임대주택단지를 만들었습니다. 보증금 200만원, 월세 4만7천원이면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주거복지상담사입니다 나는 이들의 자립을 돕는 일을 합니다. 맞춤형 상담을 통해 자립의지를 북돋워주고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합니다. 건강관리부터 밑반찬 지원까지 그야말로 전방위적 서비스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입주민들의 완전한 자립입니다. 복지의 틈바구니에서… 정부 기준상 기초수급자가 아니지만, 막상 만나면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또 홀로 사는 할머니들은 상담사의 방문 자체를 기다립니다. 말벗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합니다.

  (62) 명동 한복판의 빨간천사

(62) 명동 한복판의 빨간천사 "우리는 거리의 외교관"

서울시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통역안내원들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남대문, 홍대, 북촌…. 서울 유명 관광지 10곳에서 관광통역안내원 84명, 자원봉사자 265명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303만명의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줬다. 한여름 폭염에도, 한겨울 한파에도 그들은 거리에 있다. 그러다보니 1시간 근무하면 1시간은 휴식이다. 가장 힘든 건 '한국인들의 딴죽' 시시각각 변하는 명동인지라 안내원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화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반말을 하거나, 심할 때는 욕을 하면서 지팡이로 때리기도 한다. 민간외교관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기운이 쭉 빠진다. 해결사가 된 통역원들 예전에는 길만 물어보던 외국인들이 이제는 "바가지를 쓴 것 같은데 해결해 달라"거나 "은행 업무를 도와달라"는등의 도움을 요청한다. 때론 쓰러진 외국인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한다. 고국으로 돌아간 관광객들과 친구로 남는 경우도 있다. 명동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명동 명동역 인근에서 외국인 관광객에서 관광지 명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서울에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0일, 서울 명동 중심가인 명동예술극장 앞 거리에 빨간 모자와 빨간색 옷을 입은 남녀 2명이 명동을 지나는 관광객들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스마트폰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한 중국 관광객이 다가와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 식당 위치를 물어봤다. 빨간 옷을 입은 남성은 익숙한 듯 가방에서 중국어로 된 명동 지도를 꺼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국 관광객의 질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식당 위치에 이어 명동의 쇼핑장소와 환전, 인근 관광지 등 한국 여행을 하며 궁금했던 사항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폭염주의보까지 내려진 무더운 날씨에 짜증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빨간 옷을 입은 남녀 모두 전혀 그런 내색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 이들의 대화가 마무리됐고 중국인 관광객은 밝은 얼굴로 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최근 명동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이 모이는 서울 명소에 가면 이 같은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빨간 모자에 빨간색 옷을 입고 행인들에게 "안녕하십니까. 서울시 관광안내입니다"라며 친근히 인사를 건네는 이들은 서울시관광협회가 운영하는 '움직이는 관광안내소'의 통역안내원이다. 해외에서는 이들의 친절함에다 빨간 옷과 모자 때문에 '레드엔젤'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는 서울의 총 10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장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명동과 함께 남대문, 신촌, 이태원, 동대문, 북촌, 홍대, 삼청동, 신사동, 광장시장 등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이면 어김없이 이들을 볼 수 있다. 총 활동 인원은 관광통역안내원이 84명, 자원봉사자가 265명에 이른다. ■찾아가는 서비스의 시작 기존 관광안내소라면 거리 한가운데 부스를 차려놓거나 건물 1층에 공간을 마련, 찾아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관광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상식이다. 상식을 깨고 서울시의 관광안내소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9년 1월 30일 명동에서부터다. 당시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관광에서 가장 불편했던 점으로 꼽은 것은 언어와 부족한 안내서비스였다.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는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복잡한 명동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어버려 당황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외국 관광객에게 필요한 것은 관광안내소였지만 워낙 숫자가 부족하다보니 관광객이 안내소를 찾다가 다시 길을 잃어버릴 판이었다. 이 같은 외국인 관광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는 시작 첫해부터 호평을 받았고 7년째 운영되고 있다. 사실 관광안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안락한 실내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가게 되면 당장 몸이 힘들어진다. 어떤 날은 비가 오고 어떤 날은 폭염, 겨울이 되면 추운 날씨와 폭설 상황을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서 생각하면 관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게 된다. 가령 실내에 앉아서 일할 경우 단순하게 지도를 놓고 설명하는 수준의 관광안내 서비스에 그친다면 거리로 나가서 직접 관광객을 만나면 이들과 동행하면서 불편을 겪었던 문제를 말끔하게 해소해 줄 수 있다. 이날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중국인 관광객 안내에 나섰던 이윤오 관광통역안내원은 "실외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태풍이나 집중호우, 무더위 등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게 사실이지만 힘들어서 출근하기 싫은 적은 없다"며 "관광객을 만나고 도와드리는 매 순간이 즐겁다. 특히 시간이 지나서까지 기억해주고 고마움을 표시해주는 이들을 만나면 보람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쉴 여유도 없는 업무량 통역안내원과 자원봉사자들은 2인 1조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1시간 근무에 1시간 휴식하게 돼 있다. 다만 여름과 겨울 혹서.혹한기에는 30분 근무에 1시간 휴식한다. 언뜻 보면 아무리 실외에서 힘들게 일한다 하더라도 휴식시간이 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이 안내원은 "사실상 1시간 휴식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한 대기시간인 동시에 원활한 안내를 위해 다양한 관광정보를 공부하는 시간"이라며 "가령 중국어 전공자와 영어 전공자가 2인 1조로 근무하는 가운데 일본 관광객이 안내를 요청하게 되는 상황이 있다. 이럴 때는 휴식조에 포함된 일본어 전공 관광통역안내원에게 전화를 걸어 안내를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근무 장소가 실내에서 실외로 옮겨오면서 업무가 더욱 다양해졌다. 실내에 위치한 관광안내소는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면 길 안내를 하는 수준에 그친다. 반면 실외로 바뀌면서 길안내 외에도 안전하고 편리한 관광을 위한 '해결사'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의 질문도 "유모차를 끌고 남산 서울타워를 가야 하는데 버스가 좋을까, 케이블카가 나을까"라고 묻거나 "'런닝맨'에 나왔던 그 모자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바가지를 쓴 것 같은데 해결해 달라" "급하게 은행 업무를 할 수 있게 도와 달라" 등 때로는 난감하기까지 한 질문이 날아오기도 한다. 때로는 외국인 관광객이 쓰러졌을 때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응급의료인력 역할까지 하기도 한다. 시간적인 것과 함께 상대하는 응대하는 관광객 수 역시 많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전을 기준으로 명동의 움직이는 관광안내소에서 3000~4000명에 이르는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했다. 지난 한 해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 10개소에서 안내한 관광객 수가 303만명에 이른다. 아쉽게도 지난 2009년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개소 이후 가파르게 늘어나던 안내실적은 최근 메르스 사태로 주춤하고 있다. 명동 지역 통계를 보면 메르스 이전에는 팀당 하루 평균 600명을 안내했지만 최근엔 팀당 100~200명으로 감소했다. 박소정 관광통역안내원은 "메르스 사태로 관광객이 많이 줄었고 아직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줄었다. 메르스 사태 이전에는 안내의 절반이 중국인이었는데 이제는 그 정도로 많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명동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소속 관광통역안내원은 휴식 시간에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관광정보를 숙지한다. 지난 10일 관광통역안내원이 사무실에 마련된 화이트보드에 숙지해야 하는 명동 관광정보를 적고 있다. ■힘들지만 자부심을 느끼다 통역안내원들은 2년의 계약기간에 움직이는 관광안내소에서 활동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통역안내원은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나더라도 연장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더운 날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추운 날에는 날카로운 바람을 맞으며 일하지만 이들이 활동에 열정을 보이는 것은 뚜렷한 목표의식과 자부심 때문으로 보였다. 서울시관광협회가 움직이는 관광안내소를 만든 목표는 오는 2020년까지 2000만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한 아시아 제1위의 관광선진국 진입이었다. 이 같은 목표의식으로 통역안내원들은 스스로 단순한 관광안내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한국을 찾은 관광객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도록 돕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안내원은 "안내를 도와드렸을 뿐인데 관광을 마친 후 돌아가서 e메일 등을 통해 감사하다는 편지를 주거나 한 번 더 방문해 저 때문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관광객들과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다"며 "움직이는 관광안내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최근 일본에서는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벤치마킹해 갔다"고 전했다. 이처럼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고 있는 통역안내원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내국인이라는 점이다. 이날도 종종 내국인들이 통역안내원들의 활동에 딴죽을 거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박 안내원은 "서비스업이다 보니 감수해야 하지만 내국인들이 반말하고 하대하는 경우가 있다. 심할 때는 욕을 하거나 지팡이 같은 것으로 때리는 일도 있다"며 "명동 관광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점이 있어 잘 모르거나 확인이 필요한 분야도 있는 게 사실인데 이럴 경우 화부터 내지 말고 조금 기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예병정 기자

  (61)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사

(61) 농촌진흥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연구사

"우리 땅에서 키운 망고·리치·오크라, 곧 식탁에 오를겁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임찬규 박사(왼쪽)가 양다운 인턴연구원과 함께 망고의 유리당(단맛을 결정하는 물질)을 분석하고 있다. 【 제주=윤경현 기자】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과일의 재배적지가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고 있다. 한때 제주의 특산품이었던 감귤은 남해안 일대는 물론 충북으로 지배지역을 확대했다. 또 과거에는 사과하면 대구를 떠올렸으나 지금은 '춘천사과' '정선사과'가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됐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오는 2050년 경북지역에서는 사과 재배가 어려울 전망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현재 재배하고 있는 작물은 수확량 감소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쉽다. 반대로 열대·아열대 과일과 채소 등 새로운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기후변화에 따른 미래의 먹거리를 고민하는 곳이다. 해외에서 유전자원을 들여와 우리나라 환경에 맞도록 재배조건을 개발하는 일을 한다. 지난달 24일 가뭄 끝에 찾아온 장맛비를 즐겁게 맞으며 제주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를 찾았다. ■온난화 대비 망고 등 열대과일 재배 연구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수없이 많은 비닐하우스였다. 언뜻 세어봐도 동그란 모양이 수백개는 족히 되는 듯했다. 대학에서 동양난을 연구하다 6년 전부터 열대과일을 연구 중인 임찬규 박사(39)는 "몇 개가 연결된 대형 하우스도 있어 총 50여동 정도 된다"고 소개했다. 임 박사가 기르고 있는 아열대 과수는 모두 18종에 달한다. 이 가운데 망고와 용과, 올리브, 리치, 패션프루트 등 6개는 국내 도입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수입산과의 차별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임 박사는 "국산 망고의 경우 완숙된 상태로 수확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수입산에 비해 맛과 향이 훨씬 뛰어나 높은 가격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제주에서는 60여농가가 망고를 재배하고 있는데 ㎏당 가격이 4만원 안팎으로 수입산보다 5배가량 비싸다. 수입돼 들어오는 열대과일은 검역절차를 거치는 탓에 싱싱한 생과에 비해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 박사는 "리치의 경우 냉동으로 들여오고, 망고는 45∼60도에서 약 15분간 '온탕찜질'을 거쳐 수입된다"며 "그래서 생과처럼 보이지만 향이 없어지고, 식감도 물렁물렁해진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망고는 지난해 1만599t이 수입돼 전년(6154t) 대비 70% 이상 증가했다. 임 박사가 직접 재배한 망고와 리치를 내놓으며 시식을 권했다. 잘 익은 사과를 닮은 애플망고에 눈길이 쏠렸다. 기대 이상이었다. 단연 지금까지 먹어본 최고의 맛이었다. 리치 역시 냉동으로 먹을 때와는 말 그대로 '차원'이 달랐다. '지나치게 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임 박사는 "감귤의 경우 당도가 12브릭스(brix)를 넘으면 최상품으로 치는데 열대과일은 보통 16브릭스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리치의 경우 당도가 16∼18브릭스로 동남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 임 박사는 "시설재배를 통해 재배조건을 통제할 수 있어 더 맛있게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착과량이 5분의 1에 불과해 수확량이 떨어지는 것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추위에 움츠러들고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고품질을 유지하면서 수확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 연구소가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이 겨울철 온도조절인데 신경을 많이 쓰고, 손이 많이 갈수록 좋은 열매를 맺더라"면서 "시설에서 키우다보니 매개곤충이 없어 인공적으로 수정시켜야 하는 점도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수입 묘목이 자라고 있는 격리재배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우스 출입문에 커다란 자물쇠가 달린 것이 여느 하우스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수입 묘목은 '병해충을 옮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뿌리의 흙을 모두 털어내고서 들여온다"며 "그리고 이곳에서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동안 검역당국의 엄격한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고 했다.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해충을 막기 위해 하얀 그물망이 둘러져 있고, 그 속에는 지난 3월 말에 들여온 망고 묘목 120개가 화분에 심어져 있었다. "잎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라는 임 박사의 말을 듣고 찬찬히 세어보니 잎이 달린 것은 15개가 전부였다. 임 박사는 "망고 묘목 수입가격이 1개당 8만∼10만원인데 검역과 격리재배를 거치면서 80%는 죽는다"며 "석 달 새 1000만원 가까이 까먹은 셈"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격리재배가 끝난 뒤에도 5년을 더 키워야 제대로 망고를 수확할 수 있단다. 그야말로 기다림과의 싸움이다. 임 박사는 "망고는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가 중요한데 한 번은 하우스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못한 적이 있었다"며 "이듬해 생육이 잘 안 돼 1년을 허비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다른 하우스에서는 저수형 망고 개발이 한창이었다. 원산지에서는 5m까지 자라지만 시설(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만큼 낮게 유지하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지가 치고 올라오면 가로 방향으로 유도한다. 1m50㎝에서 꽃을 피우고, 1m70㎝에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임 박사는 "수확할 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필요도 없다"면서 "처음에는 수확량이 적지만 시간이 흐르면 비슷해진다"고 설명했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의 김천환 박사(왼쪽)와 임찬규 박사가 재배연구 중인 망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하우스엔 아티초크 등 생소한 채소 가득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과일뿐만 아니라 채소도 연구하고 있다. 아스파라거스와 울금(강황) 등 귀에 익은 이름과 함께 아티초크, 여주(쓴오이), 오크라, 차요테, 인디언시금치 등 낯선 채소들까지 무려 40종에 이른다.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하우스를 한 번씩 둘러보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채소 연구를 맡고 있는 김천환 박사(48)은 "채소나 과일 모두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하지만 채소는 빨리 자라는 대신 작물이 많고, 과일은 하나를 키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아스파라거스가 가득한 하우스에 들어섰다. 김 박사가 "먹어보라"며 하나를 뜯어서 건네줬다. 씹을 수록 단맛이 느껴지는 게 평소 음식점에서 맛보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김 박사는 "아스파라거스의 경우 추운 지방에서도 재배가 가능하지만 열대에서 키우면 수확량이 3배로 늘어난다"며 "다만 진딧물, 총채벌레 등 병해충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시설에서 재배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채소 연구에서 병해충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통제가 그만큼 힘들다는 얘기다. 김 박사는 "한 작물의 병해충을 박멸하고 나면 다른 작물에 있던 게 옮겨 온다"며 "모두 다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같은 땅에 한 가지 작물을 계속 심을 경우 잘 자라지 않는다"면서 "돌려심기를 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고 부연했다. 김 박사는 채소의 경우 3년이면 적응과정에 대해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라 조리법을 함께 개발해야 하는 것이 숙제다. 그래서 채소 연구에는 가급적 조리학과 교수 등을 공동연구자로 이름을 올린다. 김 박사는 "고추처럼 생긴 오크라의 경우 외국에서는 주로 구워서 먹는다"면서 "우리는 국이나 찌개를 좋아하는데 그렇게 조리해서는 오크라의 참맛을 느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채소의 경우 한 번 조리에 실패할 경우 주부들이 다시 안 쓰는 경향이 있어 아열대채소들이 일반화되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 박사는 좋은 채소를 대중에 알리고 싶은 의욕이 너무 앞서 실패의 쓴맛을 본 적이 있다. "지난 2009년 고급 요리에 쓰이는 아티초크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희귀성이 높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비싸요. 호텔에서도 쓰겠다고 했고, 유통업체도 좋다고 했어요, 적정한 농가를 찾아 연결시켜 줬습니다. 약 1만㎡의 밭에서 잘 키웠어요. 그런데 호텔의 구매부서에서 제동을 걸고 나왔습니다. 수입산을 사다 쓰기로 결정했다는 거예요. 생산량의 10%만 팔고 유통업체는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결국 나머지는 갈아엎었죠. 다행히 도전의식이 강한 농가여서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다른 하우스의 4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하우스가 눈에 띄었다. 온도차에 따른 작물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만든 '온도구배하우스'다. 온풍기와 환풍기를 이용해 같은 하우스 안에서도 바깥 온도와 0∼5도의 차이가 나도록 조절한다. 김치 관련 채소와 감귤이 연구대상이다. 첫 번째 하우스에는 배추가 두 줄로 자라고 있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배추의 크기는 작았다가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무와 고추는 심은 지가 오래지 않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마지막 하우스에 심어놓은 한라봉은 크기 차이가 확실히 드러났다. 가운데에 있는 것이 단연 크고 튼실해 보였다. 임 박사는 "지구온난화의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모두가 미래의 우리 농업을 위한 것"이라며 "유전자원의 보호·보존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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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태풍 막을 순 없지만, 경로 알면 피해 줄일 순 있어"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예보관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 모여앉은 이들, 365일 24시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예보관들이 아침브리핑을 통해 태풍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 서귀포(제주)=윤경현 기자】 지난 2002년 8월 말 태풍 '루사'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말레이시아어로 '사슴'이라는 뜻을 가진 이 태풍은 이름과 달리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될 만큼 큰 상처를 남기고 사라졌다. 사망·실종자가 250명에 육박했고 재산 피해는 5조5000억원에 달했다. 강원도 강릉에는 1904년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은 하루 870㎜의 폭우를 쏟아내기도 했다. 이듬해 9월에 찾아온 가을태풍 '매미'의 위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에는 '바람'을 몰고왔다. 경남 사천(950h㎩)에서는 기상관측 이래 가장 낮은 중심기압을 나타냈고, 제주에서는 초속 60m의 순간최대풍속을 기록했다. 특히 '매미'는 부산항에서 80m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을 무너뜨렸다. 또 2.5m의 해일과 17m의 집채만 한 파도가 경남 남해안 곳곳을 덮쳐 수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냈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는 이처럼 대형 태풍이 잇따라 우리나라를 강타하면서 그 필요성이 제기됐고, '매미'가 지나간 후 5년 만인 2008년에 문을 열었다. 태풍이 찾아오는 계절을 앞두고 지난달 25일 제주 서귀포의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국가태풍센터를 찾았다.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강남영 예보팀장(왼쪽)이 오임용 예보관과 함께 태풍 발생 및 경로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태풍의 진로를 예측하라 때마침 제주에는 장맛비가 내렸다. 국가태풍센터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록도로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안개마저 자욱해 한라산 백록담이 어느 쪽인지, 바다가 어느 쪽인지 방향조차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국가태풍센터의 하루는 오전 7시50분 서울과의 화상회의로 시작됐다. 어제 예보를 평가하고, 오늘 예보를 분석하는 시간이었다. 오전 8시부터는 브리핑 형태로 야간근무자와 주간근무자 간의 인수인계가 진행됐다. 말이 인수인계지 40여분에 걸쳐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태풍이 주로 발생하는 필리핀 인근 해상의 해수면 온도, 기류 변화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윤원태 국가태풍센터장(57)은 "태풍을 막을 수는 없어도 경로를 맞히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라며 "이틀, 사흘 앞을 내다보는 진로예보의 정확도는 2011년부터 줄곧 일본을 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8시간 진로예보오차는 우리나라가 172㎞, 일본이 176㎞였고, 72시간의 경우 각각 239㎞, 251㎞로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국가태풍센터는 1년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태풍이 없는 봄이나 겨울에도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분석시스템을 비롯해 통계, 훈련 등 각종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설립 이후 7년째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남영 태풍예보팀장(43)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처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이 다르니 외국의 시스템을 가져다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그나마 민간에서 만들었다면 사올 수라도 있겠지만 국가기관에서 만든 것이어서 함부로 다른 나라에 주지도 않는다"고 강조했다. 태풍이 없는 날의 국가태풍센터는 적막 그 자체였다. 6월 21일 베트남 다낭 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8호 태풍 '구지라'는 같은 달 25일 아침 열대저압부로 약화되면서 생명을 다했다. 강 팀장은 "고고한 백조가 물밑에서는 열심히 쉼없이 발을 놀리는 것과 같다"면서 "겉으로는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더욱 정확한 예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예보관을 의사에 비유했다. 의사가 엑스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을 통해 환자의 병세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예보관들도 기본적으로 해수면 온도, 대기 흐름 등 각종 차트를 보면서 태풍의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다. 강 팀장은 "수십가지의 정보(자료)를 분석하는 것이 예보관이 할 일"이라며 "자료는 충분한데 어떤 자료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통제실 책상에 놓인 컴퓨터에서 900m, 1.5㎞, 3㎞, 5.5㎞, 12㎞ 등 고도에 따른 대기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열흘 후 예측까지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십장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날의 주간근무자인 오임용 예보관(50)은 "앞으로 변화할 것까지 감안하고 봐야 하기 때문에 기억력이 나쁘면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웃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인근의 자료만 봤으나 지금은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자료를 모두 본다. 엘니뇨 현상 등으로 전체를 봐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국가태풍센터는 열대 중·동태평양 지역을 엘니뇨 감시구역으로 지정해 해수온도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6월 14∼20일 열대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평균 27.6도로 예년보다 2.1도나 높았다. 태풍 발생 시그널(신호)은 보통 7일 전에 나타난다. 강 팀장은 "지금도 2주 후쯤 태풍이 하나 올라올 가능성이 있어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라고 했다. "태풍은 불이 나는 것과 비슷해요. 해수온도가 높으면 재료가 충분히 마련된 것으로 봅니다. 여기에 적도파동(적도지방에 발달하는 대기혼란)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죠. 뜨거운 지역의 에너지를 수렴해서 위로 분출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태풍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대기상층의 발산'은 부채질과 같습니다. 발산하는 힘이 클수록 오래가는 대형 태풍이 된다는 겁니다." 얼마나 강하고 큰 태풍인가에 따라 가는 길이 달라진다. 강 팀장은 "보트는 표면의 물 흐름에 따라 움직이지만 큰 배를 움직이게 하는 물길은 다르지 않으냐"며 "태풍도 마찬가지로 지향류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태풍이 발생하면 예보관들은 '태풍이 어디로 갈 것이냐'가 아니라 '태풍의 경로를 좌우하는 변수가 무엇이냐'에 초점을 두고 고심을 거듭한다고 했다. 강 팀장은 "태풍도 '싹수'라는 것이 있다"면서 "태풍이 어떤 환경에서 생성됐는가를 알면 진로나 강도를 예측하기가 한층 수월해진다"고 부연했다. 오 예보관은 "7∼8월에 생기는 태풍은 어디서 발생하든 상관없이 일단 머리가 우리나라로 향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며 "일단 태풍이 발생하면 소멸하기까지 약 2주 동안은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강 팀장은 "1개가 사라지기도 전에 또 다른 태풍이 발생하기가 일쑤"라며 "발생 가능한 것까지 포함하면 한꺼번에 3개를 주시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8∼9월 태풍 '볼라벤'(15호·8월 28일)과 '덴빈'(14호·8월 30일), '산바'(16호·9월17일)가 우리나라에 연이어 상륙해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를 뿌린 바 있다. ■재난에 대비할 시간을 늘려라 예보관들의 역할은 단순히 예보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나 국민이 재난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지난 1984년 기상청은 1일 예보만 가능했다. 다음 날 태풍이 어디로 갈 것인지 예측하는 것이 전부였다는 얘기다. 이후 2001년 2일, 2003년 3일에 이어 2011년부터는 5일 예보를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태풍에 대비할 시간을 버는 셈이다. 태풍의 경로를 알려주는 다양한 모델들이 있지만 자연현상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 예보관이 컴퓨터를 뒤져 2013년 6월에 발생한 '리피'와 10월에 발생한 '프란시스코'의 자료를 보여줬다. 모델별로 태풍의 진행방향은 천차만별이었다. 대만 인근 해상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일부는 중국으로, 몇몇은 제주로, 나머지는 일본 규슈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여기서 예보관들의 경험과 실력이 발휘된다. 강 팀장은 "참고로 하는 예측모델이 10여개나 있지만 모델을 따라다니지는 않는다"며 "모델은 특정 요소가 부각되면 그에 휘둘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태풍은 갈수록 예보관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2005년 이후 10년 동안 발생부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5일이 채 되지 않은 태풍이 무려 17개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6개는 태풍에 대비할 시간이 이틀 밖에 없었다. 기껏 갈고 닦은 예측능력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태풍센터는 올해 5월부터 24시간 이내에 태풍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있는 열대저압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태풍보다 더 예보관들의 힘을 '쏙' 빼놓는 것은 '근거 없는 정보'와의 경쟁이다. 오 예보관은 "신뢰성 제로(0)의 자료가 진실인 양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고, 어쩌다 한 번이라도 맞으면 국가태풍센터 전체가 욕을 먹는다"며 "이런 잘못된 정보는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물론 해당 태풍이 소멸될 때까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강 팀장 역시 "아직 태풍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임에도 특정 자료가 부풀려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한다"며 "태풍을 분석해야 할 시간에 해명을 준비해야 하니 국가적으로도 그만큼 손실"이라고 거들었다. 태풍은 해마다 2∼3개가 우리나라를 찾는다. 지난해에도 우리나라의 영토와 영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영향태풍'이 4개나 됐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육지에 영향이 없으면 태풍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강 팀장은 "우리의 영해는 우리 생각보다 넓다"면서 "남해 먼바다에도 배를 타고 나가서 조업하는 국민이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올해 여름에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은 11∼14개. 평년(11.2개)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2∼3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 팀장은 "괌 부근 북서태평양 열대해상의 바닷물 온도가 평상시에 비해 1도가량 높다"며 "올해는 평년보다 강한 태풍이 불어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태풍 얼마나 자주 오나? 한해 2~3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한번에 3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소멸되는 경우도 있다. 올해도 2~3개의 태풍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태풍센터는 어떤 곳? 태풍 '매미' 지나간 후 5년 만인 2008년, 제주도에 설립됐다. 태풍관측 인프라가 전혀 없는 맨바닥에서 시작해 7년째 관측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예보관은 물밑서 헤엄치는 백조? 태풍이 발생하지 않으면 아무 일 안하는 것 같지만 정확한 예측을 위해 해수면 온도, 기류변화 등 수십가지 정보을 실시간 분석하고 있다. 가장 힘 빠지는 순간은? 인터넷에 떠도는 '근거 없는 정보'들이 어쩌다 태풍경로를 맞히기라고 하면 센터 전체가 욕을 먹는다. 이런 잘못된 정보들은 국민을 혼란스럽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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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맛집 검색도, 내비게이션 길안내도 '국가기본도'가 기본입니다"

국토지리정보원 '21세기 김정호' 대한민국 국토를 그리는 사람들 국토지리정보원 김현근·박미숙·김승용·김주환·이태경·곽영서 주무관(왼쪽부터)이 국가기본도 제작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 수원=윤경현 기자】 "국가기본도는 지도의 뿌리입니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정확한 국토지도를 갖는 게 기본이죠. 국가기본도가 없으면 네이버에서 맛집을 검색하는 것도, 티맵(T map)을 이용해 10년 만에 고향 친척집을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할 겁니다." 국가기본도는 국토 전역에 걸쳐 통일된 축척과 정확도로 제작된 지형도를 말한다. 모든 종류의 지도를 만들 때 기본이 된다. 우리나라는 5000분의 1 축척으로 국가기본도를 만든다. 공공기관은 물론 인터넷 포털업체나 내비게이션 제작업체 등이 각자의 서비스 및 상품에 맞는 용도로 이를 활용한다. 국가기본도는 공공 및 민간 부문의 활용으로 연간 112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순현재가치는 5991억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은 10만㎢다. 5000분의 1 지도를 만들려면 무려 1만7456도엽(장)으로 나눠야 한다. 여기에 건물과 도로, 철도 등 총 678가지, 약 1억개의 지형지물을 표시한다. 지난 2012년 기준으로 도로가 58만㎞, 하천이 43만㎞, 건물이 1550만개 정도다. 2만5000분의 1 지도(866장)나 5만분의 1 지도(229장)에 비해 수십배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기기본도를 만드는 국토지리정보원에서도 지도 제작에 투입되는 인원은 30명 안팎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업을 전문업체들에 맡기고, 지리원은 결과물을 검수하는 형태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달 30일 오전 경기 수원에 있는 국토지리정보원은 평소와 달리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가기본도 제작 용역을 맡은 민간업체들이 그동안의 성과를 검사받는 날이라고 했다. ■국토 담으려면 항공사진 20만장 필요 국가기본도 제작의 첫 단계는 항공 촬영이다. 경비행기에 20억원짜리 카메라를 싣고 다니면서 국토를 샅샅이 담아낸다. 항공 촬영은 연중 계속된다. 하지만 날씨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가 오는 날은 물론이고 바람이 세게 부는 날도 촬영이 힘들다. 비행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아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경기 수원 지역의 국가기본도 제작을 맡고 있는 신한항업 최홍기 조사탐사팀장(이사)은 "건물 등의 그림자가 생기게 되면 판독이 어렵기 때문에 보통 해가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오전 10시∼오후 2시에 사진을 찍는다"며 "맑은 날이라야 하루에 찍는 사진은 기껏 500∼600장 정도"라고 설명했다. 류 주무관이 "항공 촬영의 적기는 요즘 같은 봄과 가을"이라며 "낙엽이 많이 쌓여 있거나 수풀이 우거져서도 안 되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그나마 마음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구역은 우리 국토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공군훈련구역 등을 이유로 촬영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최 이사는 "군부대를 비롯한 보안시설은 지도에 표시할 수가 없다"면서 "군에서 항공사진에 대한 보안검열을 거쳐 지도 상에 나타나지 않도록 위장처리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 파주나 문산 등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는 사진촬영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해상도가 떨어지는 위성사진을 활용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발품을 더 팔아야 정확한 지도를 만들 수 있다. 고도 1000m에서 25㎝ 크기의 물건을 식별할 수 있는 해상도로 촬영하며 1장당 5㎢를 담는다. 무엇보다 입체적(3D)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진행방향으로 60%, 인접코스 간에는 30%를 겹치게 찍어야 한다. 김주환 주무관은 "국토 전체를 담으려면 대략 20만장의 사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촬영한 항공사진을 토대로 '도화(圖畵)'를 진행한다. 도화기를 이용, 항공사진 상 지형지물의 외곽선을 추출해내는 작업이다. 3D 영화를 볼 때처럼 특수안경을 끼고 모니터를 바라보면 건물이나 산이 입체적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도화작업이 컴퓨터로 진행돼 그나마 편해졌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항공사진 위에 반투명한 종이를 대고 연필로 그렸단다. 류 주무관은 "연필심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으면 오차가 생기는 탓에 연필심 굵기를 점검하는 현미경이 따로 있었을 정도"라면서 "연필 하나를 오래 쓸 수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정성을 들여서 연필을 깎아야 했다"고 설명했다. 곁에 있던 김 주무관이 "요즘에는 과거와 달리 건물을 네모 반듯하게 짓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건물의 모양이 특이하고 복잡하면 지도 상에 표현할 때도 그리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류 주무관은 "지도제작 장비 등은 선진국에 비해 5년 정도 뒤지지만 지도를 만드는 기술은 선진국 이상이고, 특히 도화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조사팀 '발품'이 지도의 정확성 높여 그 다음은 도화작업을 통해 만든 지도를 들고 현장에서 눈으로 점검하는 작업이다. 오전 11시께 광교신도시 연무중학교 앞에서 현지조사를 벌이고 있는 신한항업 탐사조사팀을 만났다. 2인 1조로 움직이는데 한 사람은 5000분의 1 지도를 4배 확대한 2500분의 1 지도를, 다른 한 사람은 측량장비를 들고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건물의 층수와 명칭, 대표성 있는 상가 등은 물론 모든 도로의 포장 여부, 차선 등도 확인을 거쳐야 한다. 통상 5월에서 10월까지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1년 중 제일 더운 시기를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보내는 셈이다. 류 주무관은 "같은 상가 안에 A병원과 B병원이 있을 경우 하나만 지도에 표시해주면 다른 병원에서 아주 난리가 난다"며 "종교시설도 빼먹으면 종교 차별을 거론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곤 한다"고 말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야 이들이 처리하는 면적은 1㎢ 정도다. 20년 경력을 가진 김종복 신한항업 조사탐사팀 부장은 "5000분의 1 지도의 전체 면적이 6.25㎢인 점을 감안하면 사나흘은 걸릴 것"이라며 "수원시만 해도 같은 지도 20장을 조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그래도 도심에서의 조사는 양반에 속한다"고 했다. 산 속에 있는 절이나 기도원 등도 빠트려서는 안 된다.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면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 지도에서 표시를 빠트리면 어김없이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는 "초입에 간판이 있어도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세 시간이나 산을 올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최근 산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이 늘어나 산에 오르는 횟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진을 보고 이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해 바뀐 게 있으면 하나하나 확인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요기를 할 만한 식당이 없어 아무 집에 들어가 얻어먹기도 했어요. 사람도 살지 않는 섬에 갔다가 뱀이 너무 많아서 식겁한 적도 있고, 여름에 더위를 피해서 새벽이나 밤에 조사를 하러 다니다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비록 민간에서 일하지만 '국가기본도를 만든다'는 사명감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것처럼 비쳐질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류 주무관은 이미 소송도 서너 차례 경험했다. 그는 "개발지역에 사는 한 주민이 보상을 더 받기 위해 급하게 유실수를 심고서는 '10년 전부터 심어서 재배해왔다'고 우겼다. 하지만 2∼3년 전 지도를 확인해본 결과 그런 사실이 없었다. 해당 주민은 항의를 하다 하다 뜻대로 안 되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모텔들이 밀집한 곳을 조사할 때는 사진을 찍다가 심부름센터 직원으로 오해를 받은 적도 있고, 재개발지역에서는 지도를 들고 왔다갔다 하니까 개발을 반대하시는 분들이 낫을 들고 쫓아오기도 했다"며 웃었다. 이처럼 현장조사팀이 발로 뛰어 검증한 내용을 보완·편집하면 국가기본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하루 1만4000건 변화에 쉴 틈도 없어 우리 국토에서는 하루 약 1만4000건, 연간 500만건이 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영국(하루 5000건)의 2.8배에 달하는 것이다. 류 주무관은 "지난 해의 경우 도로·철도 등에서 2269건의 변화가 발생했다"면서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변화무쌍한 곳은 세종시를 품고 있는 충남 공주와 대전 일부"라고 설명했다. 국가기본도는 이 같은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하기 위해 2년마다 새로 제작된다. 국토를 서북권(서울, 경기, 충남·북, 전북)과 동남권(부산, 강원, 경남·북, 전남, 제주)으로 나눠 항공 측량에 기반한 기본수정과 수시수정을 병행하고 있다. 류 주무관은 "가끔 '지도가 있는데 왜 또 만드느냐'는 얘기를 들으면 힘이 빠진다"며 "사람이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줘야 하는 것처럼 지도 역시 계속 유지·보수를 해줘야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고, 비용도 적게 들어간다"고 부연했다. 올해는 서북권에 대해 기본수정을, 동남권에서는 도로와 철도, 하천, 주요 시설물 등의 변화를 반영하는 수시수정을 진행하고 있다. 류 주무관은 "실시간으로 지도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신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000분의 1 축척의 전국지도를 가진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영국, 일본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국토가 너무 광대한 탓에 2만분의 1이나 2만5000분의 1 지도를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서울이나 부산 등 대도시에서는 표시해야 할 지형정보가 워낙 방대해 더욱 세밀한 대축척지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국토지리정보원이 만든 것이 1000분의 1 지도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고, 최신정보가 생명인 지도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최 이사는 "5000분의 1 지도는 지형지물을 표시하는 데 그치고, 내부까지는 상세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며 "지도를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1000분의 1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국가기본도, 이렇게 만듭니다 경비행기 타고 항공사진을 먼저 찍습니다. 국토 전체를 담으려면 약 20만장이 필요합니다. 이 사진을 토대로 도화를 작성합니다. 지금은 컴퓨터가 하지만 옛날엔 연필로 일일이 그렸답니다. 이렇게 그려진 도화를 가지고 현장을 발품 팔며 다닙니다. 건물명이라도 하나 빠지면 난리가 난답니다.

  (51) 경북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 간호사

(51) 경북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 간호사

"머리 감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니 좋지요. 제 부모도 아니고 남이잖아요. 더럽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지금 생각해도 눈물 나네요." 경북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 김진숙 수간호사(왼쪽)가 이경숙 간호조무사와 함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머리를 씻겨주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 김천(경북)=윤경현기자】'뇌종양 수술을 한 차례 받았던 아내에게 암이 재발한다. 간병을 위해 병원에서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남편의 피곤한 하루하루가 쌓여간다.'최근 개봉한 영화 '화장'의 내용 중 일부다. 실제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가족이 입원했을 때 치료비 이상으로 보호자를 힘들게 하는 것이 '간병'이다. 병실 보조의자에서 새우잠을 자고, 아픈 부모를 누가 간병할 것인지 형제들끼리 다툼을 벌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최근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입원환자의 19%는 간병인을 쓰고, 35%는 가족이 이를 떠안는다. 간병비용은 연간 3조원으로, 환자 1인당 275만원이 들어간다. 입원비(231만원)보다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보호자 없는 병동'으로 불리는 포괄간호서비스는 이 같은 고민을 단박에 해결해준다. 간병인도 가족도 병실에 없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간병까지 맡는다. 관건은 간호인력의 확충이다. 포괄간호서비스병동의 경우 일반 병동에 비해 2배 이상의 간호인력을 필요로 한다.지난 9일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을 찾아 기본적인 간호는 물론 환자들의 손과 발 역할까지 대신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김천의료원 3층 포괄병동(32병동)에서 일하는 김진숙 수간호사(48·여)의 하루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이른 아침 7시에 시작된다. 먼저 야근조로부터 인수인계를 받고 회진 준비를 한다. 오전 8시30분에 시작한 회진은 오전 10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간호사 경력 26년차의 베테랑인 그에게도 포괄병동은 어렵고 힘들다. 기본 간호는 물론 보호자를 대신해 환자의 식사 보조나 목욕 수발 등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과, 내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등 여러 환자들이 모이는 병동이라 항상 공부를 해야 한다. 그는 "다양한 과를 경험했지만 아직도 모르는게 많다"면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환자를 믿고 맡기려면 환자에 대해, 병에 대해 그만큼 알아야 하지 않겠나"고 반문했다.농촌도시의 특성상 '아이고 허리야'를 버릇처럼 외치는 노인 환자들이 많다. 포괄병동에 대한 수요는 끊임이 없다. 하루 평균 유료 간병비는 3만5000원이다. 반면 포괄병동은 본인부담금 5700원만 내면 된다. 경제적으로 큰 이득이다. 그래서 포괄병동의 침대는 늘 만원이다. 지난 해 병상 가동률은 93.3%, 이달에는 95.8%를 기록하고 있다. 포괄병동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 중인 환자도 있다. 이날도 46개 병상 가운데 44개는 이미 주인이 있고, 2개만 비어 있었다. 그나마도 오후에 새 환자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현재 포괄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모두 18명, 간호조무사까지 합쳐도 24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46개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을 24시간 돌보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는 6∼7명이 일하지만 늦은 밤부터 새벽에는 4명이 전부다.김 수간호사는 "지난 해 2월 포괄병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56병상에 간호인력은 32명으로, 1명이 환자 7.6명을 돌봤다"며 "병원 증축공사 등으로 병상이 축소되면서 간호인력도 덩달아 줄어 지금은 1명이 환자 9.2명을 돌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가 남산처럼 부른 박미진 간호사(33·여)가 지나가자 김 수간호사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 김 수간호사는 "오는 6월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애기 낳고 난 후에 병원 그만둔다고 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간호인력 구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실제 병동 내 게시판에는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채용공고가 붙어 있었다. 포괄병동 간호사의 절반은 이제 20대 초반인 1∼2년차 간호사들이다. 지난 해만 해도 14명의 간호사가 새로 들어왔지만 그중 5∼6명은 견디지 못하고 그만뒀다. 김 수간호사는 "김천과학대 등에 간호학과가 있어 인력 수급에 도움이 되고 있으나 연봉 등에 큰 격차가 있어 대다수는 서울·대구 등 대도시로 빠져나간다"고 하소연했다. 경북 김천의료원 포괄간호서비스병동 서화진 간호사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식사를 돕고 있다. 최진희 간호사(24·여)는 지난 해 간호사가 됐다. 처음에는 '보호자 없는 병동'이라고 해서 가족이 없는 사람들 내지는 불우한 사람들만 오는 병동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해보니 일이 만만치 않았다. 하루를 콜벨 울림과 함께 시작해 콜벨 울림으로 마무리하는 일이 다반사였다.그는 "식사 보조와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 침상 목욕과 세발 등 내가 알고 있던 간호사의 일과는 너무 달랐다"며 "다른 병동 간호사들은 하지 않는 보호자 역할까지 맡아서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힘든 날이 많았다"고 설명했다.같은 2년차인 서화진 간호사(23·여)도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너무 달라 많이 힘들었던 기억 밖에 없다"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돼서 괜찮지만 지난 해만 해도 여러 번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털어놨다.서 간호사는 또 "인력이 적어서 야간근무가 가뜩이나 힘든데 아픈 증상이 밤에 더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콜벨도 더 자주 울린다"며 "늦은 시간에는 담당 주치의를 바로 호출하기도 힘들어 애를 먹는다"고 덧붙였다.김 수간호사가 한 간호조무사와 함께 병실로 향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머리를 씻겨드리려는 참이다. 물 없이 가능한 샴푸를 쓰는 덕분에 많이 편해졌단다. 김 수간호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환자는 제외하고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 세발은 두 번씩 해드린다"고 설명했다.사실 포괄병동을 시작할 때 어느 선까지 해줘야 하는지 몰라 막막했었단다. 속옷을 입힌 상태에서 샤워를 시켰는데 '때를 밀어달라'는 할아버지 환자까지 등장했다. 김 수간호사는 "집에서 남편 발을 씻겨준 적도 없는데 참으로 난감했다"며 "어린 간호사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라고 소회했다. 결국 샤워가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침상에서 세정제를 사용해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아주는 방법으로 바꿨다.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서 간호사가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하는 한 할머니의 식사를 도와드리기 위해 나섰다. 메뉴는 비빔밥과 미역국이었다. 환자를 옆으로 눕힌 채 밥 한 숟가락, 국 한 숟가락을 번갈아 떠넣어줬다. 할머니가 불편함을 호소하자 서 간호사는 환자의 자세를 이렇게 저렇게 바꿔가면서 한술이라도 더 뜨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간호사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하나같이 한국으로 시집온지 3개월 밖에 안 된 베트남 출신 여성환자를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는 지난 해 시아버지와 함께 남편이 모는 경운기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포괄병동에 입원했었다. 시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남편은 의식불명으로 대구의 큰 병원으로 후송됐다.시어머니가 보호자로 있었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말을 못하는 처지라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가 아파요'라는 간단한 질문도 온갖 손짓, 몸짓을 동원해야 했다. 급기야는 사전을 들고 서로 단어를 찾아 보여주기도 했다.최 간호사는 "보호자가 있었다면 간호사들도 이렇게까지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고, 딱딱한 환자-간호사 관계에 머물렀을 것"이라며 "포괄병동이었기에 환자와 교감할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간호사들을 힘들게 하는 환자도 더러 있다. '포괄서비스'라는 단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다. 어느 40대 남자 환자는 '옷을 모두 벗기고 갈아 입혀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있다. 김 수간호사는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아니어서 '도와드리기만 하겠다'고 했더니 '이런 거까지 해주는데 아니냐, 너희가 이런 거 하려고 있는거 아니냐'고 오히려 역정을 내더라"면서 "순간 '내가 이러려고 간호사가 된 게 아닌데'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서 간호사는 "간호사들도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가족들이 왔을 때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쏟아내시는 환자들을 보면 서운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허리 골절로 입원하신 90대 할머니는 입원기간(3개월) 내내 불만사항을 늘어놓으셨지만 정작 퇴원하실 때는 연신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더라"며 웃었다.최 간호사는 지난 해 가을 놀라운(?)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가 변했다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은 아침 출근길이었다. 병원 앞에서 어떤 여성이 최 간호사를 보고는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모르는 사람이 왜 나한테 인사를 하지'라며 의아해하며 지나려는데 그 여성이 최 간호사를 붙잡았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여름에 포괄병동에 입원하신 적이 있는데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서 좋았다. 최근에 다시 입원을 하셨는데 포괄병동으로 옮길 수 없겠나" 하고 부탁을 했다.최 간호사는 "다른 백마디 말보다 그 보호자의 '어머니가 고마워했다'는 한마디에 그동안의 모든 수고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면서 "어느덧 '나는 포괄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라는 자부심까지 생겨났다"고 말했다.김 수간호사도 "걷지도 못하는 아픈 몸으로 왔다가 건강한 몸으로 걸어서 나가는 환자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환자들이 병원을 나서면서 '딸·아들보다 고맙다'고 인사를 할 때는 정말 뿌듯함을 느낀다"고 거들었다.오후 2시가 넘어가면서 김 수간호사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새로 오는 환자를 맞기 위해서다. 5층에 입원 중인 70대 할머니 환자라고 했다. 정형외과로 입원을 했는데 한쪽 눈은 실명했고, 다른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그는 "간호사 하나가 전적으로 매달리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환자 5명을 맡는 것보다 힘들다"며 "도움이 절실한 환자이니 할 수 있는 만큼 성심성의껏 돌봐드릴 것"이라고 말했다.김 수간호사는 "오늘은 상대적으로 조용하지만 수술이 많거나 입·퇴원이 많은 날에는 간호사들도 더 힘이 든다"며 "얼마 전 퇴원 8명, 입원 11명이 하루에 벌어진 적이 있는데 퇴근시간 무렵에는 간호사들이 모두 지쳐서 헉헉거릴 정도였다"고 설명했다.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니 1층 로비에 할머니 여럿이 앉아 있었다. 그중 김천시 양천3동에 사는 이분덕 할머니(91)를 만났다. 그는 지난 해 8월 2주 동안 포괄병동에 입원했었다. 할머니는 "자기 부모도 잘 돌보지 않는 요즘 세상에 나이 들고 아픈 나를 돌봐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했다."머리를 감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주니 좋지요. 제 부모도 아니고 생판 남이잖아요. 더럽다고 생각할 법도 한데 손주같은 어린 아이들이 목욕하는 날이라며 몸을 깨끗이 닦아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샴푸 냄새가 좋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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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숫자로 보는 국회 속기사의 삶

(50) 숫자로 보는 국회 속기사의 삶

■300,599 18대 국회 회의록 쪽수 제18대 국회에서 발간된 회의록 쪽수다. 국회 속기사들이 본회의, 상임위원회 등 각종 회의에서 속기한 내용 모두 포함한 것으로 제헌국회에서 발간된 회의록 분량인 8456쪽에 비해 35배 가량 증가한 30만599쪽에 달한다. ■1948 국회 속기록이 시작된 시기 국회 회의를 속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시기는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1차 회의부터다. 기록의 중요성을 초기 국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1995 컴퓨터 속기 시대의 개막 1995년 9월 4일 신규 속기사 8명 중 컴퓨터속기사 4명을 채용하면서 컴퓨터 속기 시대가 열렸다. ■74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속기사의 수 현재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실무속기사의 수는 74명이다. 국회 속기사들은 2인 1조로 근무하며 전담하는 상임위원회 외에 특별위원회, 공청회 등 행사에서 속기업무를 수행한다. ■60 국회 속기사 채용 경쟁률 60대 1 최근 국회 속기사 전형의 경쟁률은 60대 1이다. 국회 속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공인 속기사 1급 자격증이 필요하고 별도의 필기시험도 거쳐야 한다. 자격증 시험이 1년에 두 번이기 때문에 최종 합격을 위해 1~2년 가량 소요되는 편이다. ■14 남성 실무속기사의 수 국회에 근무하는 전체 74명의 실무속기사 가운데 남성 실무속기사는 모두 14명이다. 과거에는 여성 속기사 비율이 높았으나 최근엔 전문직 선호 경향과 직업 안전성 등의 영향으로 남성 속기사들의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22 10년간 정년·명예퇴직자 수 최근 10년간 퇴직자 26명 가운데 정년퇴직 또는 명예퇴직자(20년 이상 근무)의 수다. 국회 속기사의 평균 근속연수에 대한 통계는 없지만 다른 공무원과 비슷하게 근속 연수가 높은 편이다. ■8 하루 평균 15분씩 8번 속기업무 국회 속기사들의 업무량은 회기마다 편차가 커 정량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렵지만 회의가 집중되는 국정감사 기간 중에는 속기사 1인당 하루 평균 15분씩 7~8번 속기 업무를 수행한다. 많을 때는 10번을 넘기기도 한다. ■1 검은색 제복 1년에 1벌씩 받아 국회 속기사들은 한 해 한 벌씩 근무할 때 입는 검은 색 제복을 지급 받는다. 사무처 직원 등 국회에서 일하는 다른 근무자들과 다르게 이름표도 착용한다. 조지민 정상희 기자

  (50) 21세기 사관, 그들의 손 끝에서 역사가 기록된다

(50) 21세기 사관, 그들의 손 끝에서 역사가 기록된다

국회 속기사, 빠른 손보다 듣는 귀가 중요하다 '현대판 사관'으로 불리는 속기사들은 국회에서 진행되는 모든 회의를 빠짐없이 기록해 문서자료로 남기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의 기록인 역사와 소통한다는 점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는 국회 속기사들은 "빨리 기록하는 손보다는 바로 듣고 정확히 이해하는 귀가 중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경력 15년차 속기사로 현장 최고참에 속하는 최혜련 주무관(오른쪽)과 2년차 손아영 주무관. 사진=박범준 기자 국회 속기사들은 '현대판 사관'으로 불린다. 국회의원들의 공식 행사와 회의에 참석해 속기록을 남기는 속기사들을 보면 조선시대 사관들이 임금과 가까운 곳에 앉아 언행을 낱낱이 기록했던 모습이 연상된다. 조선시대 사관은 궁궐에서 숙직하면서 조정 행사와 회의가 열리면 임금의 지근거리에서 속기록이라 할 수 있는 사초를 작성했다. 국회가 바쁘게 돌아갈 때면 숙직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속기사들의 일상도 사관의 삶과 닮았다. 최근 다양하게 전개되는 입법활동으로 인해 바쁜 일정 속에서도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역사의 현장을 묵묵하게 지키는 '속기사의 꽃' 국회 속기사들을 4월 임시국회 둘째날인 8일 만나봤다. ■'손'보다 '귀'가 중요한 공복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말'이 오가는 여의도동 1번지 국회. 한시도 쉬지 않고 쏟아지는 말을 고스란히 기록하는 속기사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은 역시 '얼마나 빨리 받아칠 수 있는가'였다. 하지만 빠르게 쓴다는 뜻의 '속기'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이 같은 단순한 궁금증에 15년차 속기사로 현장에서 뛰는 최고참급 속기사 최혜련 주무관은 "속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매일 바뀌는 정책 현안에 대해 각계 전문가 집단인 국회의원들은 맥락을 생략하고 발언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속기사는 빨리 받아치는 직업이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실은 정확하게 알아듣고 찾아보기 쉽게 기록으로 남기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말이 특별히 빠르거나 사투리를 쓰는 의원들의 말을 속기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한 상임위원회를 맡아 소속 의원의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처음에 잘 알아듣지 못했던 의원의 말도 결국은 들린다"고 프로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최 주무관은 "누가 더 정확히 듣느냐, 듣는 귀가 더 좋으냐가 관건"이라면서 "귀는 시험을 안 보는데 들어오고 나선 손보다 귀가 더 중요하다고 깨닫게 된다"며 웃었다. 특히 국회의 업무가 이전보다 전문화되고 회의도 많아지면서 비공개로 열리는 소위원회의 중요성이 훨씬 높아졌다. 실제 지난 제15대 국회에선 344쪽에 불과했던 소위원회 회의록이 제18대 국회에선 4만7078쪽으로 100배 이상 증가했다. 소위원회가 열리는 빈도와 진행 시간이 그만큼 증가한 셈이다.언론에도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위원회의에서의 유일한 관찰자이자 기록자는 속기사들뿐이다. 상임위 회의 가운데 법안소위 회의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모여 진행하는 것으로, 법안소위 회의 기록은 속기사들이 가장 애를 먹는 작업 중 하나다.최 주무관은 "소위원회에서는 정돈되지 않은 말이 오가고 의원들은 모두 전문가이기 때문에 주어를 생략하고 말한다"면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용어들이 그때 파악되지 않으면 속기 이후에도 정리하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담당 상임위 관련 현안을 항상 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이처럼 속기사들은 5분, 10분, 15분 등 짧은 간격으로 교대하며 속기하는 그 순간보다는 정확한 '받아쓰기'를 위해 미리 공부하고 기록 후 정리하는 과정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바쁘게 일한다. 단 5분 속기를 하고 나와 전문 용어를 확인하는 데 2박 3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예산정책처에서 발간되는 보고서와 연구결과 등 간행물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완벽한 속기를 위한 준비작업에 속한다.국회 의사국 의정기록1과 이순영 과장은 "얼핏 보기에 국회 속기사는 기술적인 능력이 더 필요해 보이는 직업으로 보이지만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지적 능력이 더욱 요구되는 직업"이라면서 "발언을 하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글로 풀어낼 수 없기 때문에 발언자와 동일한 지식과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속기 후 조각조각 떨어져 있는 기록물을 하나로 묶고, 오타와 오류를 수정하는 것은 20년차 이상 베테랑 선배 속기사들의 몫이다. 본회의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의 경우 빠른 시간 내에 취합과 검토가 끝나 회의 바로 다음날 임시회의록이 의원실로 배부돼야 한다. 이처럼 신속히 처리해야 하는 회의는 1인당 5분씩 시간이 배정돼 업무 속도를 높인다.의원들의 발언이 분 단위로 정확히 나눠지지 않을 경우엔 발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정 부분 '겹치기' 업무를 하기도 한다. 기계처럼 나눌 수는 없고 앞뒤로 10초 정도 겹쳐서 기록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 이 부분을 이어 붙이는 것도 편집을 맡은 선배들의 업무다. 5분을 속기한 내용을 검토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1시간 가량 소요된다. 이렇게 정리된 회의록은 전자회의록 형태로 만들어져 요즘은 누구에게나 인터넷상에서 공개된 자료로 제공되고 있다.■회기 중엔 쉴 틈 없이…"칼퇴근은 남 얘기" "가을에 정기국회와 국감이 동시에 진행되면 애인이랑 헤어지는 여직원들이 종종 있어요." 농담으로 넘겨 버릴 수 없는 이러한 고충은 '공무원=칼퇴근'이라는 공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국회 속기사들의 애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회 회의가 진행되는 곳에는 항상 함께 해야 하는 속기사의 숙명은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전엔 연말마다 예산심의가 해를 넘겨 계속되는 관례 아닌 관례에 12월 24일과 31일을 모두 국회에서 맞게 했다.지난해에는 예산 심의를 기한 내에 마치면서 연말을 가족과 보냈지만 그렇다고 국회선진화법이 마냥 고마운 것은 아니다. 일명 '날치기 방지법'인 선진화법 때문에 전처럼 최루탄을 맞을 수도 있는 극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대화와 타협 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선진화법의 취지 탓에 절대적으로 회의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최 주무관은 "사실 전에는 회기와 비회기 구분이 명확해서 비회기 땐 분주한 느낌이 적었는데 요즘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올해 들어서도 비회기 도중 열린 국무총리와 장관 인사청문회, 공무원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등으로 회기 때와 다름없는 바쁜 날을 보냈다.그래서 공무원은 대부분 '9 to 6'를 지키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의 인식이 서운할 때도 많다. 최 주무관은 "친구들도 당연히 '칼퇴(정시에 퇴근하는 것)' 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실상은 주말에도 남편 혼자 아이를 보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국회 속기사들은 일반 공무원과 똑같이 수당에 대한 규정을 적용받기 때문에 아무리 추가 업무 시간이 길어져도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추가 업무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마저도 야근이 집중되는 9~12월 기간에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추가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야근보다 더한 고충은 시간이 정해진 회의가 아니다 보니 퇴근 시간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회의 비중을 보고 야근 인원을 정하는데 익일 회의록 발간을 요하는 중요 회의는 절반 이상의 속기사들이 남아서 대기하는 경우도 있다.20여년 '빠르게 받아치는' 업무에 종사하면서 얻게 되는 직업병도 있다. 일반 사무직 종사자들도 흔히 겪지만 어깨나 손가락, 손목 관절에 대한 부담이 훨씬 큰 편이다. 또 속기한 원고를 자세히 보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시력저하와 안구건조증 등은 덤으로 따라온다. 2년차 신입 손아영 주무관은 회의가 길어지니 '미용'을 포기하고 렌즈 대신 안경을 선택하게 되더라며 육체적 피로를 호소했다.그렇다면 여타 공무원 직급체계와 똑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으면서 훨씬 강한 업무 강도를 이겨내는 속기사들의 보람은 뭘까. 최 주무관은 "지금 하고 있는 회의가 몇백년 후에도 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사명감이 있다"면서 "특히 활자로 정제된 자료는 의원뿐 아니라 학생, 교수 등의 연구자료로도 활용되고 있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국회 속기사들은 회의가 끝난 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연락이 오는 의원들의 전화가 오히려 반갑다고 했다. 요즘은 의원들이 회의 도중 "지금 이건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발언하는 것"이라고 '무언의 관찰자'인 속기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줄 때면 책임감과 동시에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특히 국회의 입법활동이 다양해지면서 국회 속기사들의 중요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의사국 의정기록1과 이순영 과장은 "사회적 화두가 소통과 공감인데 국회 속기사는 과거의 기록인 역사와 소통한다는 점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면서 "선진 의회에서는 회의 내용이 어떻게 기록되는지 다른 국가 의회의 속기사들과 교류하면서 우리의 속기 문화와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mail protected] 정상희 조지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