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기사 67개

  (4) 사회복지사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족이니까”

(4) 사회복지사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족이니까”

서울 강서구청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인 김정환씨는 "사회복지사란 직업은 돌보는 이를 내 가족같이 생각하는 마음과 사명감으로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가 강서구청 인근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인 황금자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강서구 사회복지사 김정환씨 독거어르신과 장애인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구청사를 나선다. 병원에 계신 황금자 할머니부터 찾는다. 할머니는 가족이 없다.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는 그때 기억으로 사람을 믿지 못한다. 자주 오가며 진심을 다하자 이젠 아들처럼 가까워졌다. #. 선린원 근무하는 조선화·송유아씨 5명의 복지사들이 10명의 중증 장애인을 돌본다. 가정집처럼 꾸며져 분위기가 포근하다. 청소, 목욕, 음식까지 복지사들의 몫이다. 입소자 대부분이 남자라 목욕은 공익요원이나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는다. 매일 같이 먹고, 자니 한가족이나 다름없다. 유난히도 춥던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청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사회복지사)인 김정환씨(50)는 작은 수첩과 필기도구를 챙겨 구청사를 나섰다. 독거 어르신과 장애인 시설 등을 둘러보고 요구사항과 개선해야 할 점을 챙기기 위해서다. 이날 김씨가 가장 먼저 발길을 찾은 곳은 구청 인근의 한 병원이다. 노환으로 인해 얼마 전부터 입원한 황금자 할머니(91)를 찾아 뵙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보살펴줄 가족이 한 명도 없는 독거 어르신이다. 그의 보호자라면 사회복지공무원인 김씨가 유일하다. 간병인이 24시간 할머니를 보살펴주고 있지만 김씨에게 이 할머니는 좀 더 특별하다.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업무 관계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부모 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업무 관계에서 모자 관계로 할머니가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 할머니라는 것을 안 것도 이때쯤이다. 마땅히 기댈 곳 없던 할머니가 김씨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의지하면서 김씨가 황 할머니의 양아들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김씨는 "할머니는 일제 위안부 시절의 충격 때문인지 쉽게 사람을 믿지 못했다"며 "진심으로 대했고 점차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오늘 이런 인연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병실에 들어서 할머니를 보자 김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화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김씨는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할머니의 몸 상태에 대해 세심하게 물었다. 할머니는 현재 노환으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는 등 위독한 상태다. "어머니 식사는 좀 하셨나요? 잠은 얼마나 주무셨어요?" 할머니 상태에 대해 간병인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눈 김씨는 이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또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김씨는 "노환으로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는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 어머니의 안부를 챙기고 있다"며 "건강을 다시 회복하셔야 할텐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황금자 할머니는 지난 2006년과 2008년, 2010년 등 3차례에 걸쳐 서울 강서구 장학회에 장학금으로 1억여원을 기증했다. 이런 공로가 인정돼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강서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구민 조례에 따라 구민장으로 장례를 치를 계획이다. 김씨는 "친인척 없이 혼자 계신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재산을 처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 중 하나로 생각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도움 손길 '톡톡' 병원을 나선 김씨는 오후 3시께 화곡동의 장애인 단기거주복지시설인 '선린원'을 찾았다. 이 시설은 여느 장애인 복지시설과는 외관부터 좀 달랐다. 복지시설이라기보다는 일반 가정집 같은 건물이다.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시설 분위기를 가족적인 분위기로 만들기 위한 배려라고 시설 관계자는 설명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설 입소자에 대한 목욕이 한창이었다. 공익근무요원과 자원봉사자 등 2명이 남자 장애인 입소자를 목욕시키고 있었다. 시설 입소자들 모두 중증 장애를 앓고 있어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워 목욕시키는 것이 무척 힘겨워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라는 듯 능수능란했다. 목욕을 시키고 있던 자원봉사자인 박기완씨(27)는 매주 금요일 오후 이곳을 찾는다. 이 곳에서 박씨는 장애인 목욕시키기는 물론 청소 등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도 매주 와서 일을 도와주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자원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여러 가지 봉사활동도 생각했지만 복지시설에서 소외계층을 돕는 것이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해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며 "처음에는 힘들고 어렵기도 했지만 자주 하다 보니 그냥 형 같고 동생 같은 한가족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음식 준비부터 서류 작성까지 이곳 시설에는 소속 사회복지사 5명이 10명의 중증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 김씨는 수시로 이곳에 들러 시설운영에 대한 어려움을 듣기도 하고 장애인들과 소통한다. 자원봉사자들이 장애인을 목욕시키고 있는 사이 김씨는 방에 있던 장애인들의 안부를 살폈다. 시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지, 지원이 필요한지 등을 꼼꼼히 둘러봤다. 그러고나서 김씨는 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조선화(42), 송유아씨(33)와 함께 생활여건과 시설운영 전반에 대해 토론했다. 이 시설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5명은 주야로 교대근무를 하면서 24시간 시설 입소자들을 돌본다. 청소와 목욕, 음식 준비, 서류 정리 등 시설의 모든 업무가 이들의 일이다. 사회복지사 모두 여성인 탓에 입소자들의 목욕이 쉽지 않다. 입소자는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목욕은 공익근무요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이들은 설명했다. 사회복지사 조선화씨는 "시설 입소자들과 매일 같이 먹고 자니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이 없다"며 "기본적인 음식 준비부터 서류 정리까지 해야 하니 힘이 들기도 하지만 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낸다"고 말했다. 송유아씨는 부부가 사회복지사다. 남편은 노원구의 한 복지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다. 송씨는 "남편과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업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어려운 일은 조언도 구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과 시설 전반에 대해 대화를 나눈 김씨는 시설을 나와 구청으로 향했다. 김씨의 수첩에는 이날 둘러본 현황에 대한 메모가 꼼꼼히 적혀 있었다. 김씨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먹고, 자고, 입는 것 의식주를 도와주는 직업으로 사명감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며 "도움을 준다는 생각보다는 내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한다"며 밝게 웃었다. [email protected] 김서연 기자

(3) “교도관은 ‘부패와 악의 화신’이 아니에요”

강원도의 한 교도관인 A교감(경찰의 경감에 해당하는 교도관 계급)은 지난 2012년 옛 친구에게서 들은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시절 친구는 그를 보자마다 대뜸 "오늘은 네가 술을 사라"고 말하더니 "감방에서 담배 몇 개비만 팔면 되지 않느냐"며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의 농담이기에 차마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그날 저녁 내내 A씨의 마음이 불편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싶었지만 일반인들의 선입견 역시 그 친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불편한 기색을 숨기느라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현직 교도관들은 국민이 교도관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주요 이유로 '영화'를 꼽고 있다. 영화관이 '기피장소 1위'라고 말하는 교도관도 있다. 각종 영화에서 교도관들이 마치 '부패와 악의 화신'처럼 그려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흥행을 일으킨 '7번방의 선물'에서 배우 정진영씨가 맡았던 역할처럼 비교적 호의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 교도관의 이미지는 좋지 않게 그려진다. '재소자에게 담배를 팔아 돈을 번다'는 좋지 않은 선입견이 번진 것도 영화의 역할이 컸다. '쇼생크 탈출' 같은 영화에서 교도관은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고 재소자의 노동력을 착취해 돈을 버는 구제불능의 악당으로 그렸다. 수도권에 근무하는 교도관 B씨는 "몇몇 영화에서는 단역까지도 나쁜 교도관들뿐"이라면서 "어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교도관이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면 옆에 앉은 가족이나 지인의 눈치부터 살피게 된다"고 억울해 했다. 그는 "영화에서처럼 수용자들에게 담배 등 금지물품을 팔아 치부한 교도관이나 수시로 폭력을 행사하는 교도관은 '별종 중에서도 별종'으로 전국에 한두 명 있을 정도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도관들은 영화관에 가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된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견해다. 교도관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가 개봉되면 한동안 친지나 지인과의 만남을 일부러 피한다는 현직 교도관도 있었다. C교도관은 "영화 '집행자'(주연 윤계상)가 개봉됐을 때에는 '너희 교도소도 사형장 있냐' '넌 사형집행 몇 번이나 했냐"라고 묻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명절에도 친지나 이웃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는 "99.9%의 교도관은 어떤 직렬의 공무원보다 교정공무원의 청렴도가 높다"가 전했다. 그는 "징역 아닌 징역살이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오해에 시달린다"며 "처우개선도 시급하지만 무엇보다 교도관에 대한 국민의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장용진 기자

  (3) 죄없이 철창에 갇힌 감시자들..교도관 K씨의 하루

(3) 죄없이 철창에 갇힌 감시자들..교도관 K씨의 하루

오전 7시 요란한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을 깬 K씨는 반쯤 눈을 감은 채 화장실로 가 세수를 시작했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하품을 하고 나니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이 껄끄러워 먹을 수 있을까 싶지만 밥심이라도 있어야 오늘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만큼 억지로 밥을 먹는다. 주섬주섬 제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 시각은 오전 7시50분. 남들은 외곽에서 시내로 출근하지만 그는 정반대 방향이다. 초년 시절 '출근 시간 교통난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교도관이라는 직업의 장점'이라고 말했던 직속 선배 L교위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K씨는 오전 8시10분께 직장인 중부지역의 OO교도소에 들어섰다. OO교도소는 지방교도소 중에서도 등급이 낮은 재소자들이 주로 수용된다. 별의별 재소자들이 다 있다 보니 교도관들도 그만큼 고되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사생활 제약에 업무 긴장 높아 사무실에 들어와 이것저것 챙기고 정문 앞에 서니 오전 8시20분이다. 여기서 정문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정문과 다르다.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사동으로 들어가는 문을 '정문'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교도소 입구의 정문은 '외정문'이다. 이제 정문을 들어서면 교도관도 사실상의 징역살이가 시작된다. 휴대폰은 물론 흡연, 독서까지 금지된다. 이를 위반하다 적발되면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근무가 끝나는 오후 6시까지는 900명이나 되는 '죄수'들을 관리하는 데만 전념해야 한다. 이들 중 K씨가 맡은 재소자는 60여명이다. 사동으로 들어가니 야간 근무자들이 눈에 띈다. 하룻밤 사이지만 눈에 띄게 초췌한 모습이다. 취재진과 K씨를 보자 야간 근무자는 '무사히 근무가 끝났구나'하는 표정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수인계에 30분 정도 걸렸다. 20xx번은 열이 많이 나는 것 같으니 의무과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하고, 31xx번은 잔뜩 골이 나 있으니 꼬투리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인수인계에 포함됐다. 오전 9시30분, 야간 근무자들이 퇴근한 뒤 본격적인 주간조 근무가 시작됐다. 20xx번은 의무실로 보냈다. 상태가 안 좋다니 링거주사라도 맞으라고 해야 겠다. 출역 나가는 재소자를 따라 나가는 근무자와 사동에 남는 재소자를 관리하는 근무자들이 각각 나눠졌다. K씨는 출역 나가는 재소자들을 따라 나섰다. 이제부터 K씨가 주로 할 일은 재소자들을 감시하는 것. 감시업무이다 보니 편할 것 같지만 그저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평화로워 보이던 재소자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눈깜짝할 사이다. 교도관들은 그런 일이 터지기 전에 낌새채고 예방해야 한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팽팽한 긴장의 연속이고 그냥 쳐다보는 것 같지만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 한다. ■2시간30분마다 30분 휴식 오전 11시30분에 K씨의 휴식시간 차례가 돌아왔다. 사동 밖으로 나오니 바람도 햇살도 안쪽과 다른 느낌이다. 이제부터 돌아가면서 30분씩 휴식이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일근조가 투입된다. 30분 안에 밥도 먹고 용변도 봐야 한다. 이른 점심을 '폭풍흡입'하고 나니 아랫배가 살살 신호를 보낸다. 시간이 빠듯하지만 화장실에 들러야 겠다. 몇 년 전부터 사동 안에 교도관용 화장실이 생겼지만 지금도 웬만하면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낮 12시. 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다음 휴식조가 나온다. 사동 밖으로 나가는 근무자와 안으로 들어가는 근무자들의 표정이 묘하게 대비된다. 사동 안으로 들어가니 재소자들의 점심식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식사시간이라고 교도관들이 긴장을 풀 순 없다. 배식을 놓고 재소자들끼리 적지 않은 신경전이 있어왔고 몇몇은 시끌벅적한 틈을 타 무슨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31xx는 아까부터 여기저기를 훑어보며 투덜대고 있다. 분명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는 거다. 그는 교도소 내에서 '소송전문'으로 꼽힌다. 그에게 걸리면 한동안 법원과 검찰을 들락거려야 한다. 나와 교대를 하는 J 교사는 소리를 지르는 31xx의 팔을 움켜잡았다가 '폭력 교도관'으로 검찰조사를 받았다. 그때의 스트레스로 J교사는 정신과 진료까지 받았다. 그런 꼬투리를 잡지 못하면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낸다. 지난달 그는 교도소장 판공비 명세와 지난해 OO교도소에서 생산한 문서의 종류와 총 건수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냈다. 결국 교도소 측은 A4용지 2상자 분량으로 자료를 요약해 넘겨줘야 했다. 교도관 4명이 꼬박 1주일 그 일에 매달렸다. 혼쭐난 교도관들은 그를 피하게 됐고, 그는 재소자들 앞에서 영웅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또 먹잇감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K씨는 더욱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교도관은 외롭다 그렇게 2시간30분이 지나고 두 번째 휴식시간. K씨는 어느새 파김치가 됐다. 이제 다시 사동 안으로 들어가면 야근자들이 올 때까지 계속 근무를 해야 한다. 오후 5시30분부터는 야근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테니 조금 수월할 테고 재소자들이 저녁식사를 시작할 무렵이면 퇴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오후 7시20분. K씨는 퇴근하면서 출근 때 반납한 휴대폰을 돌려받는다. 전화를 켜보니 12통의 전화와 문자가 와 있다. 근무 중에 전화를 못 받는다는 것을 아는 가족들의 전화는 아니다. 대부분 스팸 아니면 대출 문자. 친구들과의 연락은 끊긴 지 오래다. 몇 번 전화를 받지 못하자 어느새 멀어져 버린 것이다. 동료들은 삼삼오오 모여 동호회 모임을 한다거나 술 한잔을 하자며 나선다. K씨는 얼마 전부터 시작한 우슈학원에 갈 계획이다. 정신 수양에 좋다며 선배 교도관이 권했다. 교도관은 그렇게 수양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직업이다. 더구나 다음날 K씨는 야간근무다. 야간근무가 힘든 것은 잠자고 있는 수용자를 감시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점. 심지어 책도 볼 수 없다. 그저 잠든 수용자들을 쳐다보면서 밤을 새워야 한다. 편할 것 같지만 엄청난 고역이다.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돌아가며 3시간씩 가수면을 취한다고는 하지만 전혀 잔 것 같지 않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오늘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 K씨는 서둘러 차를 몰아 우슈학원이 있는 시내로 향했다. 어두워진 하늘 위로 교도소 담장 위 경비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email protected] 장용진 기자 정문, 재소자가 생활하는 곳으로 통하는 문이 '정문'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징역살이'가 시작된다. 휴대폰은 물론 흡연, 책 읽는 것도 금지된다. 정문 앞 인수자와 인계자의 표정이 교차한다. 감시자, 사람들은 감시하는 업무가 편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교도관은 얼굴만 쳐다보는 게 아니라 생각까지 바라봐야한다. 재소자들간의 팽팽한 긴장감, 싸움은 순식간에 시작된다. 별명이 '소송전문'인 '31XX번'은 재소자 사이 영웅으로 통한다. 그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법원과 검찰에서 곤욕을 치른다. 순식간에 '폭력 교도관' 딱지가 붙기도 한다. 빛과 어둠, 퇴근 후 받은 휴대폰엔 부재중 전화가 가득하지만 대부분 스팸이다. 연락 받을 수 없는 휴대폰에 전화 거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친구들과 관계도 끊긴 지 오래다. 퇴근길 어두워진 하늘 위로 경비등이 환하다. 긴장된 시간들, 퇴근 후 평안을 찾기 위한 시간이 절실하다.

  (2) 황진규 119구조대장 “생명 구하는 소방관, 하늘이 내려준 천직”

(2) 황진규 119구조대장 “생명 구하는 소방관, 하늘이 내려준 천직”

지난해 7월 7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서울 노량진 배수로공사 현장의 수몰사고 당시 구조활동을 진두지휘했던 황진규 동작소방서 119구조대장(44·사진). 황 대장은 소방관을 '하늘이 내려준 직업'이라고 정의했다. 보통 사람이면 생명을 위협하는 화재·재난·재해 등 위험한 상황을 피하려 하지만 소방관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남다른 사명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황 대장은 "생명을 위협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손을 내미는 사람이 바로 소방관"이라며 "사고 현장의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이겨야 하고, 육체적인 고충도 견뎌야 하는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올해로 소방관 19년차인 황 대장은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특전사 출신으로 1995년 소방관에 투신해 줄곧 구조대에서만 일해왔다. 그동안 1만~2만여차례 현장 구조 활동을 벌여온 구조 전문 베테랑 소방관이다. 이런 그도 지난해 7월 발생해 7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노량진 수몰 사고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소중한 생명 여럿을 앗아간 탓도 있지만 정말로 '물과의 전쟁'을 치른 사고였다고 회상했다. 사고 당일인 15일 오후 5시를 넘긴 시간. 황 대장은 오후 6시 야간 근무조와 교대근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후 5시29분께 노량진 배수로 공사 현장에서 침수 신고가 들어왔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장마철인 탓에 단순한 침수 사고로 생각했는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공사장 인부들이 수몰됐다는 소식이었다. 사고 현장은 높이만 수십m에 이르는 U자 형태의 구조물이어서 인부를 구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물을 빼내야 했다. 펌프는 망가지기 일쑤였고 집에는 들어가지 못한 채 김밥과 빵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4일간의 구조활동 끝에 시신들을 수습했다. 유가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흙투성이가 된 시신을 닦아주기 위해 깨끗한 물통을 짊어진 현장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으로 내려가 시신을 수습했다고 황 대장은 당시 상황을 전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부인과 다섯 살 아들을 둔 황 대장은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큰 불이라도 나면 숨 돌릴 틈 없는 화재진압 때문에 가족과의 연락이 두절되는 것은 물론이고 며칠 동안 집에 못 가기 때문에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 대장은 "현장 소방관이라면 사고가 나면 누구나 사명감으로 현장으로 출동하고, 가족들이 할 걱정보다는 사고 현장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뛰어든다"면서 "큰 화재가 나거나 사고 현장에 진입할 때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지만 항상 함께하는 동료 소방관과 의지하면서 두려움을 잊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김서연 기자

  (2) 24시간 화재와 싸우는 119 구조대, 거침없이 ‘화마’속으로

(2) 24시간 화재와 싸우는 119 구조대, 거침없이 ‘화마’속으로

서울 동작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지난 2일 진입로 확보와 인명구조를 위해 서울 신대방동의 한 건물 옥상 화재현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딩동 딩동 화재출동, 화재출동, 신대방동 686-48번지 한국광물자원공사 화재 발생!" 지난 2일 오후 1시32분 서울 여의대방로의 동작소방서는 침묵을 깨고 시끄러운 화재출동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졌다. 출동 사이렌과 동시에 황진규 119구조대장을 비롯해 7명의 구조대원은 하던 업무를 멈추고 소방차가 있는 차고지로 뛰어나갔다. 펌프차, 구급차, 사다리차 등 함께 출동하는 차량들도 대기 상태였다. 대원들이 소방차에 올라타자마자 사이렌을 울리며 화재현장으로 출동했다. 출동명령이 떨어진 뒤 출동하기까지 채 20초도 걸리지 않았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출동차량 내 지휘소도 긴박 화재 현장으로 달려가는 도중 소방차 안에서는 소방대원들이 소방복을 갈아입는 등 화재진압 준비로 부산했다. 흔들리는 차안에서 옷을 갈아입기가 쉽지 않아 보였지만 이들은 능숙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바지와 웃도리를 입고 공기호흡기를 메고 랜턴과 도끼, 무전기를 점검했다. 소방복을 비롯해 각종 장비로 완전무장하면 무게가 20㎏에 육박한다. 이러는 사이에 차 안에서는 "건물 옥상에서 연기가 많이 올라가고 있다"는 현장 상황이 무전을 통해 계속 전해졌다. 현장에 없더라도 현장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화재 현장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공단119안전센터가 선발대로 도착해 화재 현장 상황을 소방서에서 출동하는 본대에 전달한 것이다. "1조는 옥상으로 바로 올라가고, 2조는 건물에 있는 시민을 밖으로 대피시키고…." 119구조대 한정엽 팀장의 작전 지시와 화재진압 작전 지령도 계속해서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한 팀장은 선발대로부터 현장 상황을 듣는 즉시 무전으로 대원들에게 전달했다. 대원들도 하루이틀이 아니라는 듯 한 팀장의 지시를 듣고는 이내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서울 동작소방서 119구조대는 7명이 1조로 구성돼 3교대로 24시간을 근무하면서 시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킨다. 동작소방서 119구조대원인 박대희 소방사, 박호빈 소방사, 김태언 소방장, 신종열 소방장, 박창원 소방사, 백세현 소방사, 한정엽 소방장(12시 위치부터 시계반대 방향). 사진=박범준 기자 ■멈칫거림 없이 '화마' 속으로 소방서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신고 접수 2분 만인 오후 1시34분께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4층 규모의 한국광물자원공사 건물 옥상에는 시꺼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파괴조와 인명 대피조로 나뉜 이들은 지시 받은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한 치의 두려움이나 멈칫거림 없이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파괴조는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는 진압조가 들어갈 수 있도록 가장 먼저 현장에 들어가 문을 부수거나 장애물을 처리했고, 인명 대피조는 말대로 인명 대피 활동을 펼쳤다. 다행히 큰 화재는 아니어서 불은 쉽게 잡혔다. 현장에 도착한 지 6분 만인 오후 1시40분께 화재가 진화됐다. 불이 꺼지자 가장 먼저 현장에 진입했던 파괴팀이 철수했다. 이어 화재 조사팀의 화재 원인 조사가 진행됐다. 임무를 마친 대원들은 오후 2시2분께 소방서로 복귀했다. 복귀한 뒤에도 이들은 장비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장비는 항상 처음 그대로 정비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화재 장비 점검의 손길도 능숙한 모습이다. ■평상시 체력단련은 필수 소방관들이 현장에 출동하지 않을 때 주로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낼까 궁금했다. 해답은 금방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온 이들은 이날 구조활동 일지를 작성하거나 밀린 행정업무를 했다. 일지는 사고 현장에 출동할 때마다 작성해 별도로 보관해 자료로 활용한다. 몇몇 대원은 사무실 내 빈 공간에서 체력단련에 여념이 없었다. 위험한 현장에는 자신과 동료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몸을 가꿔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처럼 이들은 출동하지 않는 시간을 이용해 밀린 업무를 하거나 체력단련 등을 통해 현장 긴장감을 해소하는 듯했다. 오후 5시께. 또 다른 대원들이 하나 둘 사무실로 들어왔다. 오후 6시부터는 교대근무를 하는 또 다른 팀이 출근했다. 119구조대는 7명이 1조로 구성돼 3교대 근무를 한다. 그나마 이 근무체계도 2~3년 전에 도입됐다니 2교대 근무시절에 이들의 고충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원들은 업무 인수인계를 하고는 차고지로 내려가서 근무 교대 점검을 했다. 점검을 마친 이들은 큰 소리로 '안전구호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안전, 안전, 안전'을 외쳤다. 교대 점검을 마치고 어둑어둑해지자 언제 터질지 모를 사고에 대비한 소방서는 낮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편 동작소방서는 지난해 11월 소방의 날에 서울 노량진 수몰사고 구조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서울시로부터 '최우수 소방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email protected] 김서연 기자

  (1) 김진문 대림파출소장이 밝히는 ‘경찰의 철학’

(1) 김진문 대림파출소장이 밝히는 ‘경찰의 철학’

김진문 영등포경찰서 대림파출소장'국민(중국동포)을 가족처럼! 친절을 넘어 감동을 드리겠습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대림파출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문구다. 김진문 대림파출소장(55)은 "관할구역에 사는 중국동포들 대부분은 경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서 "이들을 이기는 대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지난 1984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 올해로 31년째를 맞고 있다. 군대를 전역하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호기심으로 경찰에 뛰어들었다. 그는 "경찰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24시간 2교대에 봉급도 적었다"면서 "지금은 엄청나게 좋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근무시간에만 농구의 '올 코트 프레싱'처럼 열심히 일하면 자기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여가활동도 즐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김 소장은 영등포경찰서 당산지구대장, 강서경찰서 발산파출소장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대림파출소장에 부임했다. 그는 서울 방화동에서 오전 7시에 출근해 보통 오후 9시가 넘어서야 퇴근한다. 원래는 퇴근 시간이 오후 6시지만 야간조 근무교대를 보고 퇴근하려면 어쩔 수 없다.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새벽이라도 1시간 이내에 나와서 현장을 지휘해야 한다. 대림파출소는 영등포경찰서 관내에서 순찰실명제 '포돌이 톡톡'의 대표적인 적용지역 중 한 곳이다. 지난해 경찰청 '고객만족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도 대림파출소 등 일선에서 열심히 뛰어준 덕분이다. 김 소장은 "'순찰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남병근 영등포경찰서장의 뜻을 이해하고 충실히 따랐을 뿐"이라며 "범죄는 일단 발생하면 피해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틈날 때마다 골목골목을 순찰하라고 직원들을 독려한다"고 말했다. '포돌이 톡톡'으로 영등포서는 범죄 발생건수가 크게 줄어드는 등 큰 효과를 냈으며 지금은 전국 100여개 경찰서에서 이를 벤치마킹해 시행 중이다. 영등포서는 '포돌이 톡톡'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성공사례를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이달 초 전국 일선 경찰서에 배포할 예정이다. 김 소장의 가장 큰 목표는 '법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처리하되 사회적 약자에게 따뜻한 경찰이 되자'는 것이다. 그래서 대림파출소 경찰관들은 주민들에게 구청이나 출입국관리소 등 다른 관공서 업무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그는 "아무리 사소한 민원이라고 할지라도 직접 해당 관공서에 물어보고 확인해서 끝까지 해결해주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석회에서 '오늘의 명시'를 낭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찰관이 늘 술취한 사람이나 죄인들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예술적 감각을 갖추면 그 혜택은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제로 경찰관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부드러워지고 친절도 역시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느낀다. 그래서 지역경찰이지만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파출소는 말단에서 치안정책을 실행하는 곳이고 업무도 정형화돼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왕이면 창의적으로 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한다"면서 "일상업무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을 중심으로 '지식나눔북'을 만들어 조·석회 때마다 다함께 하나씩 공부한다"고 설명했다. 윤경현 기자

  (1)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대림파출소의 24시

(1)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대림파출소의 24시

영등포서 대림파출소 대원들이 주택가를 돌며 방범활동을 벌인 후 주민들에게 당부사항 등을 적은 순찰카드를 걸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연말연시 분위기로 국민이 들떠 있는 지금 이 시간. 국민의 안전과 행복 지킴이를 자처하며 불철주야 24시간을 뜬눈으로, 그림자로 보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온 몸을 투신해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밝히고 활기찬 세상을 여는 '민중의 숨은 지팡이'들이다. 파이낸셜뉴스는 새해를 맞아 사회 곳곳에서 소리소문 없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는 공무원을 발굴, 활약상을 소개함으로써 이들에게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국민에게는 이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시리즈를 진행한다. 관련기사 ☞ 기획연재 [대한민국 빛과 소금,공복들] '지나다니는 사람 10명 중 8∼9명은 중국말을 쓴다.' 서울에서 가장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이 자리를 잡은 영등포구 대림동에 대한 얘기다. 과거 구로구 가리봉동에 살던 중국동포들이 재개발과 함께 10여년 전부터 임대료가 싸고 노후 주택이 많은 대림동으로 옮겨왔다. 대림동에서 길을 걷다보면 한국말보다 중국말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이 일대에서도 술집 등이 밀집해 있는 대림1·2동은 경찰 내에서 인정받는 '특별치안강화구역'이다. 전체 4만3000여명의 주민 가운데 중국동포 등이 1만6000여명으로 40%에 육박한다. 이곳의 치안을 맡고 있는 대림파출소 김진문 소장(경감)에 따르면 주말에는 유동인구를 포함해 적게는 4만명, 많게는 6만여명이 몰려든다. 대림파출소에 근무하는 인원은 김 소장을 포함해 모두 35명으로, 8명씩 조를 나눠 4조2교대로 근무한다. 김 소장은 "문화가 달라 다툼이 집단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잘못을 하고도 본인이 잘못한 것인지를 모르는, 경찰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답답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영등포서 대림파출소 조홍석 팀장(왼쪽 두번째)과 대원들이 유흥가를 돌며 방범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밤낮 없이 골목골목 순찰활동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 26일 대림파출소. 오후 2시가 되자 조홍석 팀장(경위)이 순찰에 나섰다. 오전 7시 출근해 9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 조 팀장의 이날 두 번째 순찰이다. 다행히 춥지는 않았지만 함박눈이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였다. 대림파출소 경찰관들은 보통 주간에는 하루 10시간, 야간에는 대기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동안 차량과 도보로 30분씩 번갈아가면서 순찰활동을 벌인다. 순찰차가 들어가기 힘든 골목이 많기 때문이다. 조 팀장은 좁은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길가로 난 방범창을 일일이 흔들어보고 창문의 잠금 여부 등을 확인한 후 현관 문고리에 순찰카드를 걸었다. 지난해 5월부터 영등포경찰서가 시행하고 있는 '포돌이 톡톡' 제도다. 경찰관마다 담당구역을 정해 취약한 골목길 등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순찰을 하고 허술한 방범창 등 범죄 취약점이 있는 주택은 범죄 예방을 위한 당부사항을 기재해 경찰이 다녀갔음을 알림으로써 주민을 '안심'시킨다. 조 팀장은 "시행 초기에는 여러모로 고충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처음에는 다들 내심으로 귀찮아했던 게 사실입니다. 주민들도 '무슨 사건이라도 났느냐'며 달가워하지 않았죠. 일부 주민은 '경찰이 자주 왔다갔다하면 집값 떨어진다'는 얘기까지 하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안심할 수 있어 좋다'며 주민이 더 반깁니다. 경찰들도 추운 날씨에 고생해도 과거보다 큰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사실 그전에는 새벽에 순찰을 돌아봐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으니까요." 한 번은 절도가 발생한 집 순찰카드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살펴보겠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 집 주인이 경찰에게 오히려 감사를 표하는 바람에 가슴이 뭉클한 적도 있단다. 조 팀장이 한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이 집 할아버지 오늘은 댁에 무사히 잘 계신가"라며 혼잣말을 하더니 초인종을 눌러 직접 확인을 했다. 치매로 여러 번 길을 잃고 헤매던 70대 노인의 집이다. 자주 순찰을 돌다보니 자연스럽게 '요주의' 대상인 집의 상황을 훤히 꿰고 있는 것이다. 조 팀장은 골목을 나와 중앙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각종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이다. 조 팀장은 상가마다 들러 주민의 애로사항을 듣고 전단을 나눠주면서 범죄 예방을 위한 여러 사항을 당부했다. 대림동이 중국동포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면서 강력사건 발생이 더 많아졌다는 조 팀장의 설명이다. "한 번은 각각 다른 지역에 사는 10대 중국동포들이 인터넷 채팅으로 싸우다 실제 싸움으로 번진 적이 있어요. '대림역 12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합의를 본 거예요. 한쪽은 7명이 야구방망이를, 반대편은 둘이서 칼을 들고 나와 한바탕 큰 싸움을 벌였습니다. 지금은 낮이니까 조용하지만 밤에는 전혀 딴 세상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이은 출동으로 몸 녹일 새도 없어 오후 9시에 다시 찾은 대림파출소는 주야간 근무교대에 따라 새로 순찰근무를 편성하고 순찰계획을 짜느라 다소 부산스러웠다. 경찰관들은 테이저건(권총형 전기충격기)을 비롯해 가스총과 수갑, 칼을 막아내는 방건복까지 갖춰 조 팀장이 낮에 했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정식 경사가 밤거리 순찰에 나섰다. 칼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세차게 할퀴었다. 주말에는 오후 9시부터 오전 1∼2시까지 정신이 없을 만큼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지만 이날은 평일이라 상대적으로 조용하다고 했다. "날씨가 춥다는 것만 빼면 겨울이 훨씬 편합니다. 찬바람이 부니까 한눈에 봐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안 보이잖아요. 지금 이 시간에 여름이었으면 길거리를 지나다니기조차 힘들었을 겁니다. 매일 영하 10도의 날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요. 대림파출소를 자원해서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힘든 곳이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서는 자주 강력사건이 일어나는 편입니다. 수갑이 모자라기 일쑤입니다." 정 경사가 파출소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11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무전기에서는 연신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고 전화벨도 요란하게 울려댔다. 한쪽에서는 교통사고, 다른 한쪽은 폭행사건이었다. 대기 중인 경찰들이 순찰차를 현장으로 보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폭행을 당해 다친 사람을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내고, 사고로 크게 부서진 차를 겨우겨우 인근 공업사로 보내는 등 사건을 수습한 다음 밤 12시가 훌쩍 넘어서야 파출소로 복귀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일 시간도 없이 다시 신고가 연달아 들어왔다. 이번에는 '집에 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다'는 여성, 택시비를 놓고 손님과 시비가 붙은 택시기사였다. 상황근무를 하던 임선규 경위까지 출동 준비를 하고 나섰다. 잠시 뒤 안심귀가서비스를 신청하는 여성의 전화가 걸려왔으나 전부 출동 중이어서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사건신고가 잠잠해진다는 새벽 1시가 돼서야 커피 한 잔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고요함은 채 5분이 가질 않았다. 정 경사는 다시, 술에 취해 어느 건물 복도에서 잠들어 있다는 시민을 깨우기 위해 모자를 쓰고 밤거리로 향했다. [email protected]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