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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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작년 단속한 '짝퉁' 6만8828점.. 정품가격은 312억 이상

(49) 작년 단속한 '짝퉁' 6만8828점.. 정품가격은 312억 이상

'312억8811만2000원.'2014년 한 해 동안 서울 중구청이 압수한 '짝퉁(위조상품)'의 정품가격이다. 중구청은 지난해 총 449건을 단속해 6만8828여점을 압수했다. 전년에 비해 단속건수는 272건, 압수물량은 3만1764점, 정품가격은 73억7449만7000원이 늘어난 수치다.단속건수를 지역별로 보면 동대문관광특구가 285건으로 63.5%를 차지했고 남대문시장 92건(20.5%), 명동 72건(16%) 등이었다. 또 장소별로는 노점이 283건으로 최다를 기록했고 상가 147건, 차량 15건, 가판대 4건 등의 순이었다.'짝퉁'이 적발된 상표는 모두 103종에 달했다. 압수물량을 기준으로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샤넬'이 최다인 2만7360점으로 집계돼 전체 '짝퉁' 5점 가운데 2점이 '샤넬' 상표를 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 '루이비통'(1만132점), '구찌'(2775점), '나이키'(2546점), '디스퀘어드'(2350점), '보테가베네타'(2068점), '아디다스'(1986점), '꼼데가르송'(1727점), '몽클레어'(1537점), '버버리'(1536점) 등이 뒤를 이었다. 품목별로는 반지·목걸이·귀걸이 등 액세서리가 2만3516점으로 가장 많았고 의류(1만4406점), 양말(1만679점), 휴대폰 케이스(2928점), 지갑(2846점), 벨트(2157점), 선글라스(1831점), 가방(1419점) 등의 순이었다.중구청은 '짝퉁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지난 2012년 하반기부터 기초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받아 명동, 남대문시장, 동대문 등지 노점과 상가에서의 위조상품 판매를 집중적으로 단속해왔다. 이 같은 중구청의 노력은 국내는 물론 외국계 명품업체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루이비통의 글로벌 지식재산권 전담부서로부터 지식재산권 보호에 기여한 공헌으로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윤경현 기자

  (49) 하룻밤 새 10㎞ 누비며, 매의 눈으로 '짝퉁' 단속

(49) 하룻밤 새 10㎞ 누비며, 매의 눈으로 '짝퉁' 단속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 '짝퉁' 단속에 나선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수사관들이 지난달 26일 밤 동대문패션타운의 한 상가에서 '가짜' 명품 시계를 판매하는 매장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서울의 한복판인 중구에는 명동과 동대문, 남대문시장 등 3곳의 관광특구가 있다. 한 해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 가운데 절반을 웃도는 800여만명이 이들 관광특구를 거쳐간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쇼핑을 즐기며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느끼게 된다.하지만 명동과 동대문시장 등지에서 팔리는 '짝퉁' 상품은 그동안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대한민국은 짝퉁 천국'이라는 인식을 강렬하게 심어줬다. 3개 관광특구를 모두 관할하는 중구청이 '짝퉁' 상품을 단속하는 전담팀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중구청 관계자는 "서울의 관광특구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위조상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창피해서 안되겠더라"고 말했다.지난달 26일 밤 서울 중구청 시장경제과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소속의 특별사법경찰관들과 함께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부는 명동·남대문으로 나갔다. "향후 업무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는 당사자들의 우려에 따라 조덕진 팀장을 제외하고는 성만 공개한다.■지속적 단속에 '짝퉁' 줄어위조상품 전담 TF의 사무실은 건물 옥상 쪽켠에 별도로 마련돼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한 층은 걸어올라가야 하고, 인터폰을 통해 방문자를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준다. 모두가 단속에 적발돼 조사를 받으러 나오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시곗바늘이 오후 9시30분을 가리키자 조 팀장과 수사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동을 시작으로 동대문을 둘러볼 계획이란다. 조 팀장은 "남대문은 오후 7∼8시면 노점들이 문을 닫고 명동은 보통 10∼11시까지 장사를 한다"며 "동대문은 오후 10시30분께 문을 열어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설명했다.수사관들은 "2∼3일에 한 번씩 야간단속을 나가면서 체력적 부담과 함께 생체리듬이 깨져 힘들다"며 "오죽하면 구청 내에서 기피부서로 첫손가락에 꼽히겠느냐"고 입을 모았다. 특히 '짝퉁'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야간단속을 마친 다음 날에도 단속에 걸린 노점상들을 조사하느라 쉬지도 못했다. 조 팀장은 "올해 들어서도 2월까지는 9명이 3개조로 나뉘어 주말·휴일도 없이 매일 야간단속을 벌였으니 지금은 근무여건이 훨씬 나아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이날 단속에 투입된 수사관은 모두 6명이었다. 그중에서도 TF의 '산증인'으로 꼽히는 조 팀장은 2013년 3월부터 2년을 꼬박 단속에 나서고 있는 '짝퉁' 적발의 달인이다. 지난해 1월부터 TF에서 근무하고 있는 장 수사관 역시 '짝퉁'을 취급하는 이들 사이에서 '저승사자'라고 불릴 정도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수사관들이 도착한 곳은 명동 은행연합회관 앞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장 수사관이 "다리가 좀 아플텐데 준비 단단히 하고 왔느냐"고 농담을 건넸고, 기자는 "전혀 문제 없다"며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단속을 나왔을 때 걷는 거리가 보통 10㎞ 안팎"이라고 했다.수사관들은 흩어져서 명동 골목골목을 누볐다. 의류, 액세서리를 파는 노점이 나타나면 느린 걸음으로 훑고 지나가기를 계속 반복했지만 장 수사관의 날카로운 레이더에 걸리는 노점은 없었다. 장 수사관은 "명동은 지갑이나 벨트, 액세서리 '짝퉁'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지속적인 단속 덕분에 크게 줄었다"며 "명동 노점의 상당수가 음식으로 업종을 바꿨다"고 설명했다.그는 이어 "일본 관광객이 '짝퉁' 제품의 주요 고객인데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며 "중국인 관광객은 자기 나라에도 좋은(?) '짝퉁'이 많아서인지 잘 안 산다"고 덧붙였다.조 팀장은 "매일 단속을 나오다 보니 버젓이 진열해놓고 파는 사례는 거의 없어졌다"며 "과거에는 2∼3명이 단속을 나가도 다 못 잡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건당 압수물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강조했다. 서울 중구청 위조상품 전담 태스크포스(TF) 수사관들이 지난달 26일 밤 명동 거리에서 '짝퉁'을 판매하는 노점상을 단속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예리한 눈으로 '짝퉁' 찍어내오후 11시가 가까워오자 명동에서 허탕(?)을 친 수사관들은 동대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수사관들은 어디서부터 훑어볼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장 수사관은 "노점들의 경우 단속반이 뜨면 재빨리 도망을 가버리기 때문에 최대한 노출되지 않도록 동선을 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에 다다르자 신 수사관이 "오늘의 마지막 코스가 될 것"이라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너편을 가리켰다. 인도에는 이미 노란색 천막이 줄지어 서있었는데 어림잡아봐도 200m는 족히 되는 듯했다. 조 팀장은 "명동이나 남대문은 수사관들도 활동력이 왕성한 시간대여서 그나마 낫지만 동대문은 새벽에 주로 단속을 하는 터라 두세 배로 힘들다"고 푸념했다.수사관들을 태운 승합차는 작은 골목길에서 멈췄다. 대형 상가들이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 수사관은 "동대문의 30여개 대형 상가 가운데 '짝퉁'을 취급하는 곳은 10곳 정도"라며 "이들 상가를 위주로 단속을 벌인다"고 말했다.서울지방경찰청 기동본부 인근에는 구청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서있었다. 조 팀장은 "원래 '짝퉁'의 천국이었던 골목인데 지난해 10월부터 노점 설치를 막기 위해 밤마다 지키고 있다"며 "덕분에 노점이 모두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고 설명했다.한 대형 상가 앞에 이르자 조 팀장이 수사관들을 향해 점검할 구역을 정해줬다. 기자는 장 수사관을 따라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여성용 의류와 신발 등을 파는 소형 매장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미로 같은 매장 사잇길을 장 수사관은 희한하게 잘 찾아서 돌아다녔다.상가 안에 남자라고는 수사관들과 기자가 전부였다. 행동거지 역시 일반 쇼핑객들과는 달라 단박에 눈에 띄었다. 하지만 장 수사관은 한 바퀴만 도는 것이 아니라 조금 미심쩍은 곳은 두 번, 세 번을 돌기도 했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20여분이 지나자 눈이 따갑고 눈물이 자꾸 흘렀다.1층으로 올라온 장 수사관이 한 액세서리 매장에서 '보테가베네타' 상표의 팔찌를 발견했다. 주인은 "자신이 하던 것을 잠시 판매대에 걸어둔 것"이라고 했다. 장 수사관이 주인의 동의를 얻어 매장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다른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다른 상가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조 팀장을 뒤쫓아 액세서리 매장이 많은 지하 2층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조 팀장이 어느 매장 진열대에 있는 '구찌' 상표의 귀걸이를 발견했다. 새끼손톱 절반 크기였지만 '매의 눈'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이내 수사관들이 모여들었다. 조 팀장과 다른 수사관이 매장 내부를 확인하는 사이 장 수사관은 주인으로부터 진술서를 받았다. 여기저기서 '티파니' '마크제이콥스' 등 명품을 베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상황이 대강 정리되자 조 팀장은 다시 단속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거 뭐야. 여기도 있네"라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0m도 떨어지지 않은 시계 매장에서 '짝퉁'을 찾아낸 것이다.조 팀장이 '샤넬' 브랜드가 새겨진 시계를 들고 추궁하자 주인은 "상표가 아니라 디자인을 차용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거짓말은 금세 들통이 났다. 수사관들이 매장 안 서랍을 열자 '샤넬' 외에 '구찌' '에르메스' '루이비통' 등의 상표를 단 '짝퉁' 시계 100여개가 더 나왔다.■신분증이 가장 큰 무기한양공고 앞을 지나 노란 천막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동시간을 제외하고는 3시간 가까이 앉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거리에는 일본·중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내국인들이 드문드문 있었다.한 노점상이 장 수사관에게 알은 체를 했다. 두어 차례 단속에 적발된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조 팀장이 "여기 장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두번씩 단속에 걸린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수사관은 "남대문시장에서는 가족들이 노점 5∼6개를 소유하면서 '짝퉁'을 판매한 사례도 있었다"며 "덕분에 엄마와 아들, 딸이 줄줄이 단속에 적발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조 팀장은 얼마 전 노점상들과 물리적 충동을 빚어 무릎에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그는 "노점상들의 상당수가 전과자 등 거친 사람들이고, 숫자상으로도 항상 밀리기 때문에 가끔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도 한다"며 "보호장구를 따로 갖춘 것도 아니어서 '신분증' 하나로 누르는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단속에 적발되고도 계속 '짝퉁'을 파는 이유가 뭘까. 조 팀장은 "벌금이 너무 적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짝퉁' 제품의 규모 등을 따져 벌금을 매기는데 보통은 100만∼300만원에 그친다. 지금까지 최고로 큰 벌금액수는 90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단다.길을 걷던 장 수사관의 눈에 '데상트' 상표가 박힌 스포츠 의류가 들어왔다. 주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고, 텐트 안에는 다른 '짝퉁' 상품은 없었다. 조 팀장은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날이 새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의류 3벌에 불과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장 수사관은 '30분이 경과된 이후에도 소유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영장 없이 압수하겠다'는 알림장을 판매대에 올려둔 채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노점 사이를 눈으로 쓸고 가던 조 팀장에게 '에르메스' 브랜드와 똑같은 반지가 꽂혔다. 액세서리를 꼼꼼하게 하나하나 확인했다. '브랜드' 이름이 정확하게 찍혀 있어야 단속이 가능하다고 했다. '에르메스' '불가리' 상표를 단 반지 5개를 찾아냈다.이번에도 주인은 등장하지 않았다. 조 팀장은 알림장과 함께 30분을 기다렸다. 봄이라지만 새벽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길거리에 서서 시간을 보내기는 여간 고되지 않았다. 조 팀장은 새벽 1시가 훌쩍 넘어서야 '상표법 위반으로 물건을 압수했으니 낮 12시까지 구청으로 와서 의견을 제시해달라'는 알림장을 남긴 채 돌아섰다. [email protected] 윤경현 기자

  세월호에 눈물 마를 날 없어도 그래도, 그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세월호에 눈물 마를 날 없어도 그래도, 그들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시리즈 1년 뒤돌아보니 파출소서 닥터헬기까지 1년간 40차례 전국 누벼 올해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에 소개된 서울시아동병원 간호사, 서울 영등포구청 환경미화원, 동부광산보안사무소 광산보안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위에서부터)의 일하는 모습. fn자료사진 우리나라에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및 공기업 근로자들은 '철밥통', '신의 직장' 등으로 불린다. '국민의 혈세로 돈 잔치를 벌인다'며 과감한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살기가 이렇게 어렵다. 올해는 세월호 침몰 참사, 공무원연금 개혁 등으로 더욱 궁지에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공복(公僕)들도 참 많다. 이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 사회가 유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이낸셜뉴스는 올해 신년기획으로 '대한민국의 빛과 소금 공복들'을 내놓았다. 지난 1월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 대림파출소를시작으로 이달 18일 경북 안동병원 닥터헬기까지 40차례에 걸쳐 전국 곳곳을 누볐다. 우리가 낸 세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고생하는 이들에 대한 얘기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한 달 평균 3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국선전담 변호사를 비롯해 △종자독립국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는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원 △대한민국 하늘길의 안전을 책임지는 항공교통센터 관제사 △선거 유세현장을 누비는 선거관리위원회 공정선거감시단 △60여년 전 조국을 지킨 영웅들의 유해를 찾아 지뢰밭을 걷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아이들의 엄마 역할까지 대신하는 어린이병원 간호사 △광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지하 1300m 막장을 마다하지 않는 광산보안관 등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 주인공이었다. 지난 8월에는 서울 영등포구청 환경미화원 이황용씨(47)와 함께 영등포역앞을 청소했다. 불과 500m 남짓한 대로의 한 쪽을 치우는 일이었지만 새벽 2시30분 손에 쥔 빗자루를 아침 7시까지 놓을 수 없었다. 인근 나이트클럽에서 뿌려댄 명함과 시민들이 아무렇지 않게 내던진 담배꽁초들이 울화통을 치밀게 만들었다. 이씨는 4개월이 지난 지금도 하루에 두 차례 영등포역앞을 깨끗하게 치운다. 험한 일이지만 자부심은 강했다. 이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환경미화원임을 숨기지 않을 뿐더러 친구들과 기러기를 자나가도 반갑게 인사하고 새벽에 나와 청소를 돕기도 한다고 했다. 이씨는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응원해준 덕분에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같은 달 서해 백령도 가는 길에 위치한 인천해양항만청 소속 소청도 등대를 찾아 등대관리원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한 달에 22일을 근무하고 주말을 몰아서 쉬는데 독자의 상당수가 '땡보직(편안한 보직)'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등대관리원의 일상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채 혼자서 끼니를 해결하고 여름에는 잡초 제거, 겨울에는 눈치우기 등 항로표지관리소 전반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혼자서 긴긴 밤 등대를 지키는 일은 마냥 쉬워 보여도 실제로는 여간 고된 것이 아니다. 강원 영월우체국 김민규 집배원(37)에게서는 공무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한편 역할의 변화에 주목하게 됐다. 시골에서는 집배원이 택배업무까지 겸하고 있는데 다른 택배업체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우체국에 물품을 다시 맡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공무원인 우체국 집배원은 배달을 해주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전화나 이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편지를 대신하고 있지만 시골의 집배원들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사회복지서비스와 연계, 복지 대상자를 발굴하고 이들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희대 최연식 세무회계학과 교수는 "일부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등으로 공직사회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다"며 "하지만 뒤에서 말없이 열심히 노력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복들이 훨씬 많다는 점을 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윤경현 기자

  (40) 삶과 죽음의 경계 가르는 '골든타임 5분' 향해 날다

(40) 삶과 죽음의 경계 가르는 '골든타임 5분' 향해 날다

안동병원 항공의료팀 '닥터헬기' 경북 안동병원의 닥터헬기는 산이 많고 큰 병원이 없는 지역특성상 중증응급환자의 조기 대응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안동병원 항공의료팀 의료진이 예천공설운동장에서 환자를 닥터헬기로 싣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 안동(경북)=윤경현 기자】 #.지난 8월 1일 가족들과 동해안으로 피서를 떠난 김모씨(54·여·경북 경산)는 갑작스러운 가슴통증을 호소해 울진군의료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심근경색을 의심한 의료진은 즉시 안동병원에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안동병원 항공의료팀은 운항통제실에 기상상황을 확인한 후 환자를 인계받기 위해 울진으로 날아갔다. 울진중학교까지 걸린 시간은 23분이었다. 의료팀은 헬기 내에서 응급조치를 시행하며 병원에 심장혈관조영술 준비를 요청했다. 김씨는 응급실혈관중재술을 받고 며칠 후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을 나왔다.응급의료 전용헬기인 닥터헬기(Air Ambulance)는 '하늘을 나는 응급실'로 불린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탑승해 현장에 도착하는 즉시 치료를 시작한다. 항공이송 중에도 병원과 연락을 유지하면서 필요한 의료진과 장비를 대기시켜 놓는 등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도서 및 산간지역 중증응급환자는 장시간 이송되거나 적정한 이송수단이 없어 응급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닥터헬기가 생겨났다. 2011년 9월 섬이 많은 인천(가천대길병원), 전남(목포한국병원)에 처음 도입됐다. 지난해 7월 강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경북(안동병원)에 추가로 배치됐다.닥터헬기는 국립중앙의료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헬기사업자인 대한항공과 계약을 맺고 운영한다. 기장과 부기장을 비롯해 의사, 응급구조사(또는 간호사), 환자, 보호자 등 최대 6명까지 탈 수 있는 소형 헬기다.규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인공호흡기, 응급초음파기기는 물론 심근경색 진단이 가능한 12유도 심전도와 효소측정기 등 여느 병원 부럽지 않은 고성능 응급의료기기와 응급의약품을 갖추고 있다. 환자를 이송하는 중에도 제세동(심장박동)과 심폐소생술, 기계호흡, 기관절개술, 정맥 확보와 약물 투여 등 전문적인 처치가 가능하다.지난달 27일 경북지역 중증응급환자들의 신속한 초기대응을 돕고 있는 안동병원을 찾아 닥터헬기의 활약상을 들여다봤다. 안동을 포함한 경북 북부는 산악지대인 데다 농촌인 탓에 큰 병원도 없어 닥터헬기의 존재가 무겁게 느껴지는 곳이다. 경북 안동병원 항공의료팀 이성훈 응급의학과장(오른쪽)과 김효중 응급구조사(왼쪽)가 닥터헬기 내에서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헬기로 줄인 5분이 환자를 살린다오전 9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임에도 안개가 자욱해 50∼100m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안동병원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자리잡은 응급항공의료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응급구조팀의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것이라는 게 병원 관계자의 설명이다.이날 근무조는 이성훈 응급의학과장(43)과 김효중 응급구조사(29)였다. 의료진 외에 대한항공 소속의 헬기 운항관리사와 조종사, 정비사 등이 한 팀이 된다. 이들의 달력에는 휴일이나 명절의 구분이 없다. 김 구조사는 "매일같이 생사가 왔다갔다 한다. 한가로이 휴일을 즐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현황판에는 이달에 23번 출동해 18명의 환자를 이송했다고 적혀 있었다. 김 구조사는 "올해 전체로는 하루에 한번꼴인 345차례 출동했다"면서 "환자의 사망이나 기상악화 등으로 임무가 취소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311명의 환자를 이송했다"고 설명했다.이들의 근무시간은 헬기가 움직일 수 있는 일출부터 일몰까지다. 다만 하루 일을 준비하기 위해 적어도 해뜨기 30분 전에는 나와야 한다. 김 구조사는 이날 오전 6시30분에 출근했다. 곁에 있던 운항관리사가 "헬기가 이륙하기 위해서는 시정이 5000m가 돼야 하는데 오전에는 헬기가 뜨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알려줬다.헬기 탑승에 대한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을 법도 하다. 실제로 헬기 타는 게 싫어서 병원을 그만둔 의사도 있단다. 그런데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도 무서워서 못 탄다'는 김 구조사는 지난 3월 닥터헬기를 자원했다. 헬기를 타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나 지금은 버스나 택시를 타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 돼버렸다.닥터헬기가 탄생할 때부터 고락을 함께하고 있는 이 과장은 "군대에서 헬기를 타본 이후 헬기는 처음"이라며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헬기와 응급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 닥터헬기를 맡는데 지금까지 100여차례 탑승했다"며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헬기가 휘청거려 아찔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김 구조사는 "119 헬기가 3000㏄급 '대형 승용차'라면 닥터헬기는 '경차'로 생각하면 된다"며 "내부공간이 좁아 심정지 환자의 경우 처치가 곤란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더구나 보호자가 환자에게 필요한 짐까지 싸갖고 올 때면 더욱 비좁아진다. 이 과장이 "구급차보다 좁은 공간에 환자를 실은 카트가 들어오면 바로 앞에 환자의 머리가 위치해 다리를 움직일 공간도 없다"며 "그래서 좁은 데서 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거들었다.체중이 90∼100㎏에 이르는 '무거운' 환자들을 이송할 때도 만만치 않게 힘들다. 김 구조사는 "들것을 이용해 환자를 이송하기 때문에 인계점이 자갈밭이나 잔디밭인 경우 잘 안 끌려 무척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그는 "그래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현장에서 제대로 처치한 다음 병원으로 와 시술을 잘 받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환자들을 볼 때면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낀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 여름 등산하다 낙상한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봉화 청량산이었습니다. 등산을 하다 낙상해 후두부 부상을 입은 70대 남성이었어요. 산 근처 주차장이 환자를 넘겨받는 인계점이었는데 두개골 골절에 뇌출혈까지 환자상태는 안 좋은데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자리에서 기관 내 삽관을 하고 헬기로 이송했습니다."국내 닥터헬기의 1000번째 출동환자도 안동병원 항공의료팀의 몫이었다. 올해 설 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1월 30일 영주 성누가병원에서 닥터헬기를 요청한 것이다. 이 과장이 기억하는 당시 상황은 이렇다."50대 남성이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의료진이 심전도검사 등을 실시한 결과 급성심근경색으로 의심된다면서 심혈관조영술 및 스텐트 삽입술 등이 가능한 우리 병원에 환자이송을 요청했어요. 헬기로 12분 만에 30㎞ 떨어진 현장에 도착해 응급처치와 함께 헬기에 올랐죠. 환자의 상태를 미리 병원에 알려 응급시술팀을 준비토록 한 덕분에 즉시 스텐트 삽입술을 받을 수 있었어요. 환자는 며칠 후 정상퇴원했습니다."닥터헬기가 하루에 가장 많이 출동한 것은 지난 6월 18일이었다. 그때도 이 과장과 김 구조사가 일하는 날이었다. 영주 세 차례, 영양과 예천 각각 한 차례 등 모두 다섯 차례나 헬기에 올랐다. 외상성뇌출혈, 패혈증, 경추신경손상, 중증폐손상 등 모두 상태가 중한 환자들이었다. 김 구조사는 "출동했다 돌아오면 헬기 안을 정리하고 물품도 다시 채워놓고 해야 하는데 그날은 잠시 앉을 시간도 없었다"고 소회했다.영주는 헬기로 왕복 30분, 영양은 38분, 예천은 25분이 걸렸다. 구급차로 오는 것과 비교해 짧게는 10분, 길게는 20분 정도 시간이 단축된 것이다. 이 과장은 "언뜻 봐서 차로 가는 시간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진료가 시작되기 때문에 실제 시간은 훨씬 단축되는 셈"이라며 "일반적 상황에서는 대수롭지 않을 수 있는 5∼10분이 응급환자에게는 생과 사를 가르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헬기 안에서도 치료는 계속된다언제 응급상황이 발생하지 모르는 터라 점심은 항상 병원 구내식당에서 가져다 먹는다.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5분 안에 헬기가 이륙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사가 얼추 끝났을 때 하늘은 헬기 이륙이 가능할 정도로 개어 있었다.낮 12시40분께 갑작스레 항공의료팀의 전화벨이 울렸다. 예천의 실버요양원에서 80대 남성이 폐렴·폐결핵이 의심된다며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운항관리사가 날씨를 다시 확인한 다음 'OK' 사인을 내자 출동명령이 내려졌다. 이 과장과 김 구조사는 구급차를 타고 즉시 병원 뒤편에 위치한 헬기 계류장으로 달려갔다.이 과장은 의료진과 일반인 사이에 '응급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당장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출동을 한다"며 "요양병원에는 전문의가 없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정작 가보니 큰 일(두부 손상)인 경우도 있었다"며 "가급적 출동해서 확인을 해보는 게 최상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헬기가 예천을 왕복하는 데 들어가는 기름값은 10만원 안팎이다.낮 12시54분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닥터헬기가 날아올랐다. 잠시 후 헤드폰을 통해 "인계점은 예천공설운동장, 인계점의 날씨는 양호하다"는 운항관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 구조사는 "겨울에는 관리자가 눈을 안 치웠다든지 해서 인계점에 눈이 쌓여 있는 경우가 있다"면서 "프로펠러로 생기는 바람에 눈이 날려 이착륙이 곤란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안동병원에서 직선거리로 25㎞가량 떨어진 예천공설운동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6분이었다. 12분이 걸렸다. 출발 전 휴대폰 내비게이션으로 측정한 결과에서는 30㎞에 33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었다.10분 가까이 환자를 기다렸다. '환자가 이미 대기하고 있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다르다고 했다. 요양원 측에서 구급차가 아닌 일반승합차에 환자를 태워서 왔다. 김 구조사가 환자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 곧바로 헬기로 이동했다. 열이 나고 호흡이 힘든 정도로 다급한 환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김 구조사가 혈압을 재는 사이 이 과장이 활력 징후를 체크하고 산소를 공급해줬다. 맥박이 낮은 것 같아 심전도를 확인했으나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헬기는 오후 1시26분 안동병원 계류장에 도착, 5분 뒤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이 과장은 "환자의 얼굴을 보면 느낌이 온다. 중증도가 파악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위급한 환자의 경우 긴장해서 안전벨트도 매지 못한 채 돌보기도 하고, 떴는지 내렸는지를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며 "거의 죽음에 다다랐던 환자를 살렸다 싶을 때는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39) 900m 땅속 막장에 '보안관'이 떴다

(39) 900m 땅속 막장에 '보안관'이 떴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광산보안관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이광국 부소장(왼쪽)과 중부광산보안사무소 장영덕 부소장이 강원 태백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 대한 안전점검을 마친 뒤 조치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윤경현 기자 【 태백(강원)=윤경현 기자】 우리나라에도 '보안관'이 있다. 미국 서부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굵은 시가를 입에 물고 허리에 총을 차고 다니며 악당을 응징하는 영화 속의 그 보안관은 아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수백개 광산의 안전을 책임지는 '광산보안관'이다.광산보안관은 광산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각 출동해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한다. 광산보안법에 의해 모든 광산에 대한 채굴 중단, 광업주 및 보안관리자에 대한 처벌 등의 권한을 갖고 있어 광산업계에서는 '저승사자'로 불린다.하지만 광산업이 한창 잘나가던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각광을 받던 광산보안관도 석탄산업의 사양화와 함께 기피직종으로 전락했다. 100명 안팎이던 광산보안관은 30년이 채 안 돼 현재 5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광부가 아니지만 사실상 광부들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강원도 전 지역과 경북 일부(울진·봉화)의 광산에 대한 보안관리를 맡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동부광산보안사무소를 찾았다. 산업통상자원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소속 광산보안관들이 장성광업소에서 안전점검을 벌이고 있다. 광산보안관 경력 29년의 이광국 동부광산보안사무소 부소장(57)은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우리가 관할하는 대표적인 광산을 경험하러 가자"며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로 기자를 이끌었다. 그러면서 광산보안관들은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지하 수십, 수백미터의 광산을 들락날락한다는 얘기를 곁들였다.중부광산보안사무소에서 지원을 나온 장영덕 부소장(51)과 광산보안관 3년차의 이현석 동부광산보안사무소 주무관이 동행했다. 장 부소장은 민간에서 일한 6년을 합쳐 무려 32년을 광산 안전에 바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지하 수백미터 막장이 일터장성탄광은 작은 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1950년 11월 석탄공사가 생긴 이후 60여년 동안 8667만4000여t에 달하는 석탄(무연탄)을 캐냈다. 지난해 생산량은 56만5000t. 1970년대 말에는 한 해 200만t이 넘는 최대 생산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무한도전'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유재석과 차승원이 '극한 알바(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은 곳이기도 하다.한쪽 건물에 붙은 '안전제일(第一) 생산제이(第二)'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곁에 있던 이 부소장이 "옛날에는 '증산보국(增産報國)'이라는 문구였었는데 안전을 강조하면서 바뀐 것"이라고 알려줬다."과거에는 광산이 생산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갱도가 무너지거나 광부가 다치는 것에 대한 대비가 미흡했죠.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고 안전대책을 적당히 눈가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어요. 광산보안관이 정기 또는 수시로 실시하는 보안점검에서 지적을 받지 않기 위해 사고가 우려되는 갱구를 폐쇄한 것처럼 위장하거나 비교적 안전한 막장을 점검받는 일도 있었죠."갱으로 가는 길은 복잡했다. 속옷까지 모두 갈아입은 후 안전을 위한 헬멧과 길을 밝혀줄 램프, 탄가루를 막아줄 마스크도 착용했다. 탄광 관계자는 "절대로 라이터 등 인화물질을 소지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갱도를 따라 걸어가자 찬바람이 불어왔다. 장 부소장이 '점퍼를 꼭 입으라'고 했던 이유였다. 장화를 신은 데다 바닥이 울퉁불퉁해 걸음걸이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이런 길을 680m나 걸어가야 지하로 가는 케이지(일종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단다. 이 부소장은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다"라며 "안전수칙 준수 여부와 함께 설계도를 들고다니면서 상·하 작업장 간격은 잘 유지하는지, 화약류 취급은 잘 하는지 등을 살펴본다"고 말했다.10여분이 지나 케이지 앞에 도착했다. 케이지는 우리를 지하 900m의 세상으로 데려다줄 참이었다. 장성광업소 관계자는 "속도가 초속 7m로, 서울 여의도에 있는 63빌딩 엘리베이터보다 배 가까이 빠르다"고 자랑했다.잠시 덜컹거리는가 싶더니 2분이 채 안돼 케이지가 멈췄다. 밖으로 나오자 보안담당자가 '안전'이라는 구호와 함께 인사를 하고는 소지품 검사를 실시했다. 장 부소장이 "이제부터는 땀을 흘릴 테니 점퍼를 벗는 게 나을 것"이라고 했다.장성광업소 측에서 다양한 경험을 위해 특별히 작은 기차처럼 생긴 인차(人車)를 태워주기로 했단다. 이 부소장은 "눈으로 갱의 안전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 데다 작업에 지장을 줄 수도 있어 평소에는 인차를 거의 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탄가루에 눈·코·입 막혀인차를 탄 시간은 5분을 넘기지 못했고 다시 걷기가 시작됐다. 꼬불꼬불한 갱도를 따라갈수록 길이 좁아져 허리를 올곧이 펴기가 불가능했다. 탄가루가 날려 한 치 앞을 가늠하기가 어렵고 땀이 흘러 마스크는 자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게다가 갱도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에 박아놓은 나무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튀어나오는 바람에 아찔한 순간을 몇 번이나 넘겨야 했다.장 부소장은 "처음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로 길을 만들지만 압력이 커지면서 공간이 줄어든다"며 "이런 악조건 속에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보완 요청을 하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하니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날은 2∼3일 동안 목에서, 코에서 탄가루가 계속 나오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그 얘기가 끝나자마자 이 부소장이 심 부소장을 향해 지적사항을 조목조목 열거했다. '석탄 등을 나르기 위해 갱도에 설치돼 있는 컨베이어벨트가 작업자들의 통행에 불편한 것은 물론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곳곳에 튀어나온 나무들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등의 내용이었다.이번에는 가파른 경사에 설치된 계단으로 내려갔다. 잡을 것도 없는 터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보안관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능숙한 발걸음이었다. 한참을 힘들게 내려왔건만 "불과 20여m를 내려온 것뿐"이라는 이 부소장의 말에 다리가 풀리고 말았다.다시 허리를 숙인 채 한참을 가서야 채탄작업이 벌어지고 있는 '막장'에 도착했다. 출발점이 해발 600m였는데 서있는 곳은 그보다 975m 아래다. 1시간 반에 걸쳐 3㎞가량을 이동해 지하 375m까지 온 셈이다. 기온을 재보니 영상 31도다. 가만히 서있는 데도 땀이 줄줄 흐르고 숨이 턱턱 막힌다.이 주무관이 갖고 있던 가스점검기를 작동시켰다. 갱 안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메탄가스 농도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다행히 농도는 0.12%에 불과했다. 이 주무관은 "가스농도가 1.5%를 초과하면 작업을 중지한다"며 "유독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폭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옆에 있던 이 부소장이 "메탄가스 농도가 1%가 되면 탄층에서 이미 가스가 새고 있다는 얘기"라며 "금세 수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대피하기 힘들다"고 거들었다. 그는 "보통 농도가 5∼15%면 폭발을 일으키는데 9.5% 정도에서 가장 세다"며 "메탄가스가 폭발한 후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는 폭발성에 유독성까지 갖춰 더욱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장성탄광에서는 2012년 작업자가 담배를 피우다 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광산에서 가스 다음으로 무서운 것은 물이다. 장 부소장은 "갱내에서 지하수가 터지기도 한다. 고압의 물이 물폭탄처럼 터지면 철제 빔이 휘어진다"며 "사망자가 생길 경우 신원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처참한 광경을 연출한다"고 말했다.■휴일 없이 24시간 비상대기장성탄광의 갱도는 무려 260㎞에 이른다. 장 부소장은 "갱도가 거미줄처럼 층층이 연결돼 있다"면서 "이렇게 큰 광산은 2∼3명의 보안관이 한꺼번에 투입돼도 하루 만에 점검을 끝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하루 5∼6㎞를 걷는데 오늘처럼 하부까지 내려가는 경우 10㎞ 가까이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장 부소장은 "과거에는 도시락을 갖고 와 광부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도시락 뚜껑을 열면 탄가루가 수북이 앉아 밥에 고추장, 김치, 물을 섞은 '물말이'를 만들어 마셨다"며 "요즘에는 배가 고파도 참고 웬만하면 나와서 먹는다"고 말했다.그는 "생리현상은 현장에서 해결한다"며 "대부분은 광차에서 큰일을 해결하는데 간혹 작업을 안 하는 갱도를 찾아가 일을 보다가 산소 결핍으로 쓰러져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이 부소장은 정작 광산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익숙함에서 오는 '매너리즘'이라고 지적했다. 대다수 광부들이 오랜 기간 일해온 사람들이라 타성에 젖어 매일 하는 일,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라고 생각해 위험성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광산보안관이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휴일이 따로 없는 데다 항상 비상대기 상태라는 점이다. 사고가 터지면 5분 안에 광산보안사무소로 연락이 온단다. 이 주무관은 "일과가 끝난 뒤 동료들과 술 한 잔을 해도 사무실 번호나 모르는 번호가 휴대폰에 뜰까봐 불안하다"며 "24시간 긴장 속에 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장 부소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 등으로 안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현실은 여전히 차갑다"며 "안전과 시설에 대한 투자가 더 이뤄져야 하는데 생산에 투자하는 것도 벅차 예산 반영이 잘 안된다"고 안타까워했다. [email protected]

  (38) 거친 파도 헤치고 섬에 가면

(38) 거친 파도 헤치고 섬에 가면 "아이고, 의사선상님 오셨어유~"

충남 병원선 501호내 이름은 '충남 501' .. 의사 3명에 간호사 3명 등 모두 18명이 28개 섬을 매달 한차례씩 돌아다닙니다. 3층 배지만 둘러보는데는 5분도 안걸립니다. 그렇다고 얕보지는 마세요. 내과·치과·한방과에 임상병리과·방사선실·약제실까지 필요한 건 모두 있습니다 '충남 병원선 501호'는 한 해 7800㎞를 이동하며 섬 주민 4100여명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의료진과 병원선 관계자들이 외연도를 떠나며 주민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 보령(충남)=윤경현 기자】 충남 보령 외연도에 사는 50대 여성 임모씨는 지난 8월 피검사를 받은 결과 고지혈증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중성지방 수치가 높다며 아직 약을 쓸 단계는 아니고 3개월간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조절을 해본 후 다시 검사해보자고 했다. 외딴섬에 사는 주민들이 배로, 자동차로 몇 시간을 달려 육지의 병원을 다니기란 참 힘들다.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병원선이다. 병원선은 여러 섬을 순회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주민의 건강을 챙겨주는 '건강 돌보미' 역할을 한다. 국내 병원선은 지난 1978년 인천, 충남, 전북, 전남, 경남 등 섬이 많은 5개 지역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전남은 수요가 많아 배를 두 척으로 늘렸고, 전북은 새만금간척사업 등으로 수요가 줄어들자 다른 용도로 전환됐다. 배 타고 한해 7800㎞ 달립니다… 충남도는 1971년 '섬 돌보기호'(6t급)를 시작으로 1978년 135t급 병원선을 취항, 22년 동안 운항했다. 이어 2001년 4월에는 사업비 26억7000만원을 들여 160t급 병원선을 새로 건조했다. 보령시와 서산·당진시, 서천·홍성·태안군 등 6개 시·군에 흩어져 있는 28개섬을 매달 한 차례 이상 돌아다닌다. 의사 3명과 간호사 3명 등 모두 18명이 4100명에 이르는 주민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다. 지난 11일 오전 충남 보령의 대천항에서 외연도로 가는 병원선 '충남 501호'에 동승했다.■한 해 7800㎞ 이동…연인원 23만명 돌봐3개층으로 이뤄진 병원선은 한 바퀴 둘러보는 데 5분이면 충분할 만큼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덮어놓고 얕볼 정도는 아니다. 내과, 치과, 한방과에 임상병리실, 방사선실, 약제실까지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의료기기와 집기가 모두 끈으로 묶여 있는 점이다. 파도에 배가 흔들릴 때를 대비해 바닥과 벽에 고정해 놓은 것이다.충남 병원선은 지난해 연인원 23만5000명의 환자를 돌본 데 이어 올 들어서도 현재까지 20만명이 훌쩍 넘는 진료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991년부터 병원선에서 근무 중인 최건용 사무장(56)은 "과거 섬 주민이 모두 2만명 가까이 됐던 적도 있다"며 "인구가 줄었으나 의료수요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젊은층이 육지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섬에는 대부분 60대 이상의 노년층만 남았고 이들 대부분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 만성질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배에서 내려 마을회관으로 갑니다… 오종명 선장(56)은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고 뭍으로 한 번 나오기 힘드신 분들이 많다"면서 "시간을 충분히 할애해 드리기 위해 여름에는 조금 더 일찍 가서 늦게 오려고 노력한다"고 거들었다.섬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무조건 방문하는 것이 충남 병원선의 원칙이다. 태안·당진·서산에 있는 섬들은 한데 묶어 2박3일로 돌고 나머지는 그날 나갔다가 그날 들어온다. 최 사무장은 "인구(1100여명)가 제일 많은 원산도는 한 달에 네 차례, 삽시도와 마을이 앞뒤로 나눠져 있는 효자도는 각각 두 차례 들어간다"며 "하루에 4개섬을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남의 경우 두 척이지만 워낙 섬이 많아 1년에 한 번밖에 못 가는 섬도 있다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덧붙였다.일하는 곳이 '선상'이다보니 의사(공중보건의)들이 지원을 꺼릴 수밖에 없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지기 전인 파고 2∼3m에도 안전한 범위 내에서 진료를 나가야 하고 자칫 날씨가 좋지 않으면 사나흘씩 발이 묶이기도 한다. 오 선장은 "태안에 있는 가의도까지는 배로 5시간이나 걸린다"며 "날씨가 좋을 때는 무리가 없으나 파도가 심할 때는 이동 자체가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20년 넘게 일해온 최 사무장조차 '배타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할 정도다. 배를 타본 경험이 적은 의사들의 고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진료를 하다 보니 의료기기를 자신의 다리에 묶은 채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도 있단다.최 사무장은 "근무환경이 열악한 만큼 의사들에게는 1년만 근무하고 다른 곳으로 갈 때 희망하는 곳으로 우선 배치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면서 "병원선 역사가 40년에 육박하지만 연장신청을 해 2년 간 근무한 의사는 지난해까지 일했던 내과의가 유일하다"고 말했다.특히 근무 중인 공중보건의들은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난 지난 4월 16일이 첫 근무였다. 당연히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오 선장이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가족들이 병원선을 방문했을 때 '절대로 안전하니 믿고 맡겨달라' '책임지고 안전을 보장하겠다'며 안심시켰다"고 거들었다.병원선 운영에 들어가는 돈은 1년에 약 7억5000만원이다. 진료비와 약값이 모두 공짜여서 1년에 약값으로 1억8000만원이 소요된다. 어선과 달리 관공선은 면세유도 받을 수 없어 기름값이 무려 2억5000만원이나 되고 수리비도 2억원가량 필요하다. 충남 병원선은 지난해 186일을 운항, 항해거리가 7802㎞에 달했다.내과 담당 정항심 간호사(54)는 "약값이 무료라 옆 사람이 받아가면 당장은 필요없는데도 '나도 달라'며 우기는 어르신이 있다"며 "마음 같아서야 주고 싶지만 예산이 한정돼 있어 적정선에서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과 진료하며 할머니 고민도 들어주고… ■섬 어르신, 내과 거쳐 한방과로 '순례'대천항을 떠난 지 두 시간여 만인 오전 11시께 외연도 앞바다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파도도 잔잔했다. 한방과 정희정 간호사(43·여)는 "병원선에서 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멀미는 적응이 안 된다"며 "오늘은 억세게 운이 좋은 날"이라며 웃음을 보였다.원래는 항구에 배를 대고 진료를 보지만 오늘은 물이 많이 빠져 배를 대기 힘든 만큼 의료진이 섬으로 가 진료를 하기로 했다. 오 선장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본선까지 못오는 경우도 있어 육상진료를 한다"며 "거동 못하시눈 분들에게는 왕진도 간다"고 말했다.배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마치고 최 사무장과 내과, 한방과를 맡고 있는 의사·간호사들이 출발 채비를 했다. 배 안에서만 진료를 볼 수 있는 치과는 진료에서 빠지는 대신 환자들이 필요한 약의 조제를 맡기로 했다. 병원선에 붙어 있던 작은 선외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주민회관에 임시진료소가 차려졌다. 이인엽씨(82·여)는 병원선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벌써 30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는 "날씨가 따뜻할 때는 그나마 괜찮지만 쌀쌀해지면 뭍으로 나가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라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고맙지만 더 자주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한방과 진료하며 다리도 풀어드립니다… 환자들이 하나둘 들어오더니 10여분 만에 환자 수가 10명을 넘었다. 최 사무장이 접수를 맡고 내과 담당 정 간호사는 연신 혈압을 쟀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느냐"는 최 사무장의 질문에 대다수 어르신은 "안 아픈 데가 없다"고 대답했다.환자들은 세세한 것 하나까지 하소연하듯 털어놨다. 내과 전문의인 강화평 선생(31)은 이를 천천히 다 들어주고 원인과 예방책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환자 한 명을 보는 데 짧게는 5분, 길게는 20분이 걸렸다. 내과 담당인 정항심 간호사는 "의사가 환자를 본 뒤 처방을 내리면 간호사가 이를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배로 보내고 배 안에서 약을 조제해 진료가 모두 끝날 즈음 일괄적으로 갖고 와서 나눠주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이번에는 40대 여성환자가 감기몸살 때문에 찾아왔다. 진료를 끝낸 후 "남편이 일하러 가서 오늘도 오지 못했다"며 혈압약을 대신 받아가려 했다. 내과 담당 정 간호사가 만성질환자 리스트를 꺼내 "6월 이후 나오지 않았다"고 확인해줬다. 강 선생은 "여긴 약국이 아니다. 3개월 이상 진료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경남 창원이 고향인 강 선생은 평생 배를 탄 것보다 병원선에 와서 지낸 6개월 동안 더 많이 탔단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이 섬 저 섬을 다니면서 사람들을 알게 되고 '병원선이 기다려진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며 "어떤 분은 '외부에서 받는 진료보다 잘 맞는다'고 한다"고 말했다."지난 6월 초 당진의 대난지도를 찾았을 때였습니다. 80대 할머니가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다'고 하시는 거예요. 청진을 했더니 심잡음이 들렸고 엑스레이에서 심장기능이 떨어진 것을 발견했죠. 응급실에 갈 것을 권유했지만 '자식들에게 부담주기 싫다'며 한사코 거부하시더군요. 결국 소견서를 쓰고 아드님에게 연락했습니다. 몇 달간 안 보여서 전화를 드렸더니 병원에서 치료받고 오셨다고 하더군요. 좋아졌다고, 고맙다고 하시는데 기분이 참 좋더라고요."강 선생은 "환자에 따라 기민한 대처가 필요하고, 약을 바꾸거나 자주 봐야 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병원선은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 '다음 주에 오세요'라고 말할 수가 없다"면서 "그런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고 토로했다.내과를 거친 어르신들은 줄줄이 옆방으로 자리를 옮겨 한방과를 찾았다. 슬쩍 문을 열어보니 어르신 대여섯명이 무릎과 허리에 침을 꽂은 채 일렬로 누워있었다. 한의사 김건웅 선생(26)은 "한결같이 허리·무릎·어깨가 안 좋다고들 하신다"며 "대다수는 처음부터 한방을 찾기 위해 오신 분들이 아니라 내과를 보기 위해 오셨다가 한방, 치과가 있으니 들렀다 가는 '병원 순례'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이어 "오늘 같은 육지진료에서는 여건이 좋지 않아 한방의 경우 침만 쓸 수 있다"며 "파도가 치면 환자도, 의사도 힘들지만 오히려 장비가 갖춰진 배에서 진료할 때 양질의 치료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오후 3시가 넘어가자 환자의 발길이 뜸해졌다. 병원선에서 약을 조제해 가져왔다. 마을회관 앞 슈퍼마켓에 맡겨두면 환자들이 직접 찾아간단다. 이날 충남 병원선이 진료한 환자는 내과 48명, 한방과 10명 등 모두 58명이었다. 생업에 쫓겨 진료를 보지 못하고 한 달치 혈압약 등을 대신 받아간 사례도 상당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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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848개의 CCTV, 시민안전을 지키는 눈이 되다

(37) 848개의 CCTV, 시민안전을 지키는 눈이 되다

서울 U-영등포통합관제센터 서울 영등포구청 안에 자리잡은 U-영등포통합관제센터에서 구청 직원, 경찰관 등으로 구성된 관제요원들이 폐쇄회로TV(CCTV)를 보면서 불법주정차 단속 등에 관한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전국에 설치된(2013년 말 기준) 공공용 폐쇄회로TV(CCTV)는 56만5000여대에 달한다. 민간에서 설치한 것까지 포함하면 무려 428만대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해마다 수십만대가 늘어나고 있다. 거리에 나서면 늘 CCTV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셈이다. CCTV는 사생활 침해 등 불편함은 여전하지만 범죄수사 등에서 큰 기여를 하는 덕분에 시민들의 반감은 많이 사라졌다. 실제로 영화 '감시자들'을 보면 범죄자를 잡는 과정에서 CCTV는 경찰의 '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CCTV의 범죄예방 효과에 대한 의견이 아직 분분하지만 적어도 주민들의 불안감을 없애는 '심리적 안정'에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 영등포구는 24.56㎢ 면적에 38만명이 살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으로 손꼽히는 영등포역과 여의도, 중국동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대림동 등이 있어 CCTV 수요가 넘쳐나는 곳이다. 현재 영등포구에 설치된 CCTV는 모두 848대다. 방범용이 336대로 가장 많고 불법주정차 단속 275대, 그린파킹(담장을 허문 주택의 보안을 위해 설치한 CCTV) 92대, 공원방범 75대, 어린이보호구역 44대,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 24대 등이다. 지난 6일 오전 이들 CCTV를 들여다보면서 주민들의 낮과 밤을 지키는 'U-영등포통합관제센터'를 찾았다. ■불법주정차와의 숨바꼭질 통합관제센터 전면에 설치된 대형화면은 21개로 나뉘어 이곳저곳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슬로우비디오'에 나오는 여장부(차태현 분)는 없었다. 여장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을 볼 줄 아는 동체시력의 소유자로, 통합관제센터의 에이스다. 현실에는 수십개의 화면을 넘나드는 불법주정차 단속요원들의 매서운 눈과 현란한 손놀림이 있을 뿐이다. 곁에서 일하는 모습을 불과 5분간 지켜봤을 뿐인데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경력 10년의 안점순씨(52·여)는 "현장 단속을 하다 6개월씩 통합관제센터 근무를 한다. 처음에는 멀미가 날 만큼 눈이 어지러웠다.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바꿨다"며 "이제 눈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됐으나 이번에는 손목이 아파왔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림로에 1t 트럭이 주정차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씨가 해당 트럭을 지정하자 1차로 사진이 찍혔다. 안씨는 "5분 동안 3장을 추가로 촬영하게 되는데 그 사이 이동하지 않으면 단속에 걸린다"고 설명했다. 얘기를 하면서도 안씨의 눈과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는 "원래 자동으로 단속이 가능하지만 CCTV가 숫자가 있으면 오토바이 등 아무거나 찍어대는 통에 오류가 많이 발생한다"며 "정확한 단속을 위해 수동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9시30분까지 하루 적발 건수는 대략 130건이다. 요즘은 CCTV에 대한 운전자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단다. 단속요원들도 무리하게 단속하지는 않는다. 7년 경력의 임정화씨(48·여)는 "CCTV는 단속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도로,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해 있는 것"이라며 "덮어놓고 단속할 경우 민원이 폭주해서 구청의 업무가 마비되지 않을까 싶다"며 웃었다. 임씨는 "택시나 소형트럭 등 생계형 차량에 대해서는 단속을 자제한다"며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신청하면 CCTV가 첫 사진을 찍는 순간 '5분 내에 이동하라'는 문자를 운전자에게 전송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전자들도 많이 영악해져 단속요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실제로 CCTV에는 번호판을 가리기 위해 트렁크를 열어놓거나 걸레를 뒤집어 씌우는 등 교묘하게 번호판을 가린 차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단속요원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얌체' 운전자들은 누굴까. 임씨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번호판에 반사 스프레이를 뿌리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꼭 단속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씨는 "100% 확실하지 않으면 단속하지 못한다는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얄밉다"며 "번호판에 낙엽, 휴지 등을 테이프로 붙여 숫자 하나를 가리거나 껌을 붙여 '아'와 '어'를 구별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단속을 시작한 지 3시간 넘게 흐른 오전 11시50분까지 단속 건수는 39건이었다. 임씨는 "보통은 오전에만 50∼60건이 단속되는데 오늘은 유난히 거리에 차가 뜸하다"며 "점심시간에는 자동으로 전환하는 탓에 단속 강도가 더욱 약해진다"고 말했다. 쓰레기 무단투기를 단속하는 것도 관제센터의 주요 업무다. 오전 10시가 넘어가자 청소과 소속의 안선미씨(45·여)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를 유심히 바라보다 마이크에 대고 "쓰레기를 무단투기하시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계도방송을 했다. 계도방송은 하루에 14∼15회 정도 한다. 그중에 절반은 도로 쓰레기를 가져가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려두고 간단다. 안씨는 "많은 사람들이 대로변의 음식물쓰레기통을 보면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곳으로 생각한다"며 "현장단속에서 적발되는 경우에만 과태료(10만원)를 부과하고 CCTV는 계도를 위주로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해당 장소에 무단투기가 뜸해졌다고 판단되면 CCTV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고 덧붙였다. ■언제 어디서든 '목격자' 역할 CCTV는 시민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눈'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통합관제센터 내에서 24시간 CCTV를 들여다보는 곳은 방범용 CCTV를 맡은 팀이 유일하다. 영등포경찰서 생활안전과 소속 경찰관 3명과 용역직원 6명이 3교대로 24시간씩 자리를 지킨다. 이날은 남신웅 경위(45)의 차례였다. 한 사람 앞에 놓인 모니터가 적게는 2개, 많게는 6개에 이른다. 모니터 하나가 16개로 분할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100개가량의 CCTV를 한꺼번에 보는 셈이다. 야간에는 모든 CCTV가 방범용으로 변신한다. 남 경위는 "평소에도 CCTV는 '시민들의 눈' 역할을 충분히 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이 잠자리에 든 새벽 2시 이후 진가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수시로 요란한 벨소리가 들렸다. 위급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CCTV 지지대에 설치한 비상벨 때문이다. 작동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 90% 이상이고 나머지는 '쓰레기 치워달라'는 등의 민원성이다. CCTV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범죄 예방이다. 꼭 현장에 없어도, 주변에만 있어도 범죄자들의 검거를 도와주는 '목격자' 역할이 가능하다. 남 경위는 "과거에는 동네에 누가 사는지 주민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일이 생기면 문 잠그기 바쁜 것이 현실이다"라며 "그 자리를 CCTV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오는 날이면 핫팬츠 입은 여성을 성추행하는 남자가 있었죠. 인근 지역의 CCTV를 모두 뒤져봤으나 얼굴이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범행이 일어난 장소와 시간은 확실했죠. 대강의 인상착의를 바탕으로 도주경로를 따라가다 용의자가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편의점 내 CCTV로 얼굴을 보고 붙잡았죠." 지난 4월에는 수배차량을 적발했다. 하루 40대가량 수상한 차량에 대해 차적조회를 실시하는데 거기에 걸려든 것이다. 남 경위는 "저녁시간대 좁은 골목길에 외제차가 주차를 하는 모양새가 이상하다 싶어 조회를 했더니 도난차량으로 나왔다"며 "경찰서 상황실로 연락했고 경찰관이 즉시 출동, 서너 시간을 잠복한 끝에 용의자를 검거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달 초에는 CCTV를 보다가 현행범을 붙잡은 적도 있다. 밤 12시께 10대 청소년이 자전거를 훔치려는 장면이 CCTV에 그대로 포착된 것이다. 경찰서 상황실에 알렸고 즉각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서 검거했다. 남 경위는 "실시간으로 범인을 잡는 것은 아주 드물고 수사자료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남 경위는 "CCTV는 여성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라며 "CCTV가 없을 때는 고교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는 곳이었으나 CCTV 설치 후 사라져 동네에 사는 여성과 노인들이 안심·안도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CCTV의 순기능에 힘입어 주민들의 CCTV 설치 요구는 하루에도 2∼3건씩 밀려들고 있다. '동네에 수상한 사람이 돌아다닌다' 싶으면 앞다퉈 민원을 넣는다는 것이다. 전날에도 '도둑이 6개월 새 10번이나 들었으니 집 근처에 꼭 CCTV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와 곤혹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CCTV를 원하는 대로 늘릴 수는 없는 형편이다. CCTV 1대를 설치하는 데 1500만∼2000만원이 들어가고 저장장비 확충 등의 비용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통합관제센터를 총괄하는 서만원 홍보전산과장은 "안전행정부의 권고안은 1인당 CCTV 50대를 맡는 게 적당하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영등포구만 해도 3∼4명이 봐야 할 것을 두 명이서 감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CCTV를 더 설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를 판독하고 관제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기껏 설치한 CCTV를 무용지물로 만들지 않고 100% 활용하려면 인력 보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윤경현 기자

(36) "지하상가·월드컵경기장 등 시설물 관리는 기본, 장애인콜택시도 운행"

서울시설공단은 자동차전용도로 이외에도 서울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시설물을 관리한다. 그중에서도 시민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시설은 시내 29곳에 위치한 지하도상가,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이다. 우선 지하도상가의 경우 점포 2738개는 물론 계단, 지하보도, 벽면 등의 청소와 화장실 관리에도 시설공단의 손길이 닿는다. 공기질 관리와 화재대비시설도 당연히 시설공단의 몫이다. 청계천은 기본적 유지·보수뿐만 아니라 매년 11월 초 열리는 '서울빛초롱축제' 등 문화행사도 주관한다. 마포구 상암동의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중구 장충동 장충체육관 등 대규모 체육시설도 시설공단의 손을 거친다. 장충체육관은 지난 2012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해 내년 초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시설공단이 하루 3만여명의 시민이 찾는 광진구 능동 서울어린이대공원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총 96종, 506마리의 동물과 470종, 78만여본의 식물을 시설공단 직원들이 키우고 돌보는 셈이다. 민간기관이 담당하기 힘든 영역도 시설공단이 맡고 있다.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과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이 이런 경우다. 시립승화원은 지난 1970년 망우리 묘지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지만 시설공단이 1987년 인수하면서 운영을 시작했다. 또한 1·2급 지체 및 뇌병변 장애인과 휠체어를 이용하는 1·2급 중증장애인의 이동을 돕기 위해 '장애인콜택시'도 시설공단이 운행하고 있다. 2003년 1월 100대로 시작한 장애인콜택시사업은 올해 차량 460대와 콜센터 상담원 32명 규모로 성장했다. 이 밖에 시설공단은 공영주차장·버스공영차고지 등 각종 교통시설, 전력·통신·수도·난방시설을 공동으로 수용하는 공간인 '공동구' 등 대도시 서울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 필수적인 시설을 관리한다. 윤경현 김종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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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차 쌩쌩 달리는 도로 위 일터.. 안전 위해 위험 무릅씁니다"

서울시설공단 도로관리처 세척반이 도로 옆 방음벽을 세척하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서울에는 12개의 자동차 전용도로가 있다. 그 길이는 173.5㎞다. 하루 평균 자동차 130만대가 지나가는 이 도로는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한다. 갈라지고 팬 도로면을 방치할 경우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길이 필요한 곳은 도로면만이 아니다. 도로 근처 곳곳에 내걸린 각종 불법 현수막,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눈과 비 등 신경써야 할 것은 차고도 넘친다. 이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곳이 바로 서울시설공단이다.■불법 현수막과의 '숨바꼭질'지난 10월 30일 오전 서울 마장동에 자리잡은 서울시설공단 본사를 찾았다. 도로관리처 소속의 이성림 과장(45)과 정재부 대리(42)는 맨 꼭대기(20층)에 자리잡은 서울도시고속도로 교통관리센터에서 무전기를 들고 연신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전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서울시 전역의 도로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록(원활), 노랑(지체), 빨강(정체)이 도로 위에 표시되는 익숙한 그 지도다. 이 과장은 "서울지방경찰청 등과 함께 일하는 곳"이라며 "서울 전역의 차량검지기 1153개와 폐쇄회로TV(CCTV) 153대가 수집한 차량 통행정보는 자동으로 시각화 과정을 거쳐 지도 위에 교통상황을 색깔로 나타낸다"고 말했다.차량 흐름을 점검하는 것 외에 교통관리센터가 하는 중요한 작업이 하나 더 있다. 서울의 자동차 전용도로 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다. 이 과장은 긴급성이나 민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시설팀 근무자에게 보수·보강 등의 업무를 지시한다. "현수막 제거 요청 등 이곳 상황실로 들어오는 전화만 하루 30건가량"이라는 정 대리의 설명이다.오전 9시30분께 이 과장, 정 대리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30여분이 지나 동서울터미널 인근 강변북로에서 이흥표 반장(45)이 이끄는 1구간정비반 차량 2대와 합류했다. 정비반은 불법 현수막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과거에는 차량 한 대씩 따로 작업을 했으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탓에 5년 전부터 2대가 같이 움직이고 있단다. 말하자면 뒤따르는 차량은 보호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강변북로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정비반 차량이 잠실대교 북단에서 멈춰섰다. 교차로 녹지대 빈공간 여기저기에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었다. 10여분 사이 제거한 현수막이 8개였다. 모두 같은 아파트의 미분양 광고물이었다. 이 과장은 "요즘 제일 많이 걸리는 현수막은 미분양아파트와 수입차 광고"라며 "한 곳에 3~4개씩 걸어놓는 것은 예사이고 '숨바꼭질'하듯이 오늘 떼면 내일 또 걸어놓는다"고 하소연했다.지나는 한강다리마다 불법 현수막이 3∼4개씩은 꼭 붙어 있다. 이 과장은 "저것들은 날을 따로 잡아서 떼야 한다"며 "상황실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설공단 도로관리처 1구간정비반 반원들이 도로 위에 생긴 포트홀에 임시보수를 하고 있다. 사진=김범석기자 ■도로 관리는 '물과의 전쟁'정비반은 영동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청담대교 아래 포트홀(노면홈)을 메우는 일이란다. '도로 위의 지뢰'로 불리는 포트홀은 여름철 집중호우나 겨울철 폭설로 도로가 파여 생기는 것으로 별다른 표시를 해놓지 않는 한 운전자들이 주행 중 쉽사리 발견하기 어려워 신속한 복구가 중요하다.'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어떻게 이걸 발견했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 과장이 눈치를 챘는지 "시민의 민원이나 제보도 많이 들어오지만 하루 300㎞를 이동하면서 불법 현수막이나 도로 상태를 살피고 다니는 순찰대의 역할이 크다"고 설명했다.공사지점은 3차로였다.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별도의 차단시설도 하지 않았다. 양옆으로 차들이 시속 60∼80㎞로 '쌩쌩' 달리는 것이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이 반장은 "안전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솔직히 이럴 때는 '차라리 교통정체 상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털어놨다.다행히 아스팔트(아스콘)를 포트홀에 부은 뒤 석회 가루를 뿌리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차들이 지나면서 아스팔트를 다져줄 것이었다. 포트홀 4개를 메우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해답은 정 대리가 알려줬다."한마디로 아스팔트를 끓여서 주전자로 부어놓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스팔트 사이로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땜질하는 거죠. 교통량이 워낙 많아 지금처럼 임시조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5분만 차량을 통제해도 1㎞ 이상 정체가 발생하니까요. 그러면 상황실로 항의전화가 빗발칩니다. 현장 근무자에게 욕설과 함께 침을 뱉고, 차 안에 있던 병이나 기저귀를 던지는 경우도 있어요. 이번처럼 작은 포트홀은 임시조치를 하고 규모가 있는 경우에만 포장정비팀이 시간을 들여 보수합니다."이 과장은 "그래도 올여름은 비가 적게 와서 비교적 편하게 넘어갔다"며 "지난해만 해도 포트홀 신고가 하루에도 300∼400건씩 들어와 말 그대로 '포트홀과의 전쟁'을 벌였다"고 말했다. 하루 100개가 넘는 포트홀을 보수하려니 베테랑만 모인 정비반이 "두손 두발 다 들었다"고 할 정도였단다.이 반장이 무전기를 통해 "정비반이 보통 하루에 120㎞, 많을 때는 150㎞가량을 이동하며 이런저런 일을 한다"며 "그중에서도 7∼8월 비가 많이 올 때는 포트홀 보수하느라, 예고 없이 폭설이 내리는 겨울날에는 제설작업을 하느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가 없다"며 추임새를 넣었다.정비반은 다시 천호대교 방면으로 움직였다. 라디오에서 "주말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정 대리는 "가을에는 비 소식이 들리면 걱정부터 앞선다"며 "20㎜ 정도만 와도 낙엽이 배수구를 막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오전 11시30분께 천호대교 남단 공항방면 올림픽대로에 도착했다. 직진 차량과 옆에서 끼어드는 차들로 작은 정체가 발생하고 있었다. 무리한 끼어들기를 방지하기 위해 시선유도봉 5개를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걸린 시간은 10분에 불과했다. 이 반장은 "시선유도봉 설치작업은 전국에서 우리가 제일 잘한다고 자신할 수 있다"며 "1년에도 수천개씩 박았다 뽑았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 과장은 "시선유도봉이야말로 민원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며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와 설치기준 등을 고려해 설치하면 이튿날부터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거해달라'는 민원이 빗발친다"며 "심한 경우 전화기를 붙들고 20∼30분을 설명해서 겨우 설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불가피한 정체에 욕설 난무오후에는 포장정비반이 일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올림픽대로를 따라가면서 청담대교 인근 제설작업 전진기지에 겨울을 대비해 이미 염화칼슘을 쌓아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과장은 "많이 살 수도, 적게 살 수도 없어 겨울을 앞두고 늘 고민"이라며 "몇 년 전 겨울에는 예측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지방자치단체마다 '염화칼슘 확보전쟁'이 벌어졌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바람에 혼이 나기도 했다"고 소회했다.포장정비반을 만난 곳은 강변북로 일산방향 성수대교 북단 근처였다. 무거운 트럭들이 지나면서 생긴 '소성변형'을 바로잡기 위한 작업이었다. 도로를 살펴봤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 과장이 철제 자를 도로 위에 걸쳐놓자 그제서야 손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보였다. 타이어의 압력 때문에 도로가 그만큼 주저앉은 것이었다. 제때 수리하지 않으면 굴곡 탓에 운전자가 운전대를 놓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 대리의 설명이다.포장정비반에는 '시공이음'이라는 또 다른 적이 있다. 여러 개의 차선을 순차적으로 공사하면서 생기는 미묘한 차이가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를 겪으면서 점차 벌어지는 것이다. 겨울에 그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도로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되는 것이다.이 과장은 "제대로 공사를 하면 10년을 버틸 수 있는 아스팔트지만 도심의 도로를 전면적으로 통제할 수도, 며칠씩 통제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시간에 쫓겨 시공하는 탓에 5~7년밖에 쓰지 못한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포장정비반 안오훈 반장(45)은 "시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서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데 잠시라도 도로가 막히면 참지 못하는 시민들이 있다"며 "도로 보수의 필요성과 불가피한 정체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mail protected] 윤경현 김종욱 기자

  (35) 장난전화에 한해 평균 1만건.. 낭비되는 국민혈세

(35) 장난전화에 한해 평균 1만건.. 낭비되는 국민혈세

경기 부천원미경찰서 112종합상황실에서 최동열 상황3팀장과 조정희 경위, 이건식 경사. 김동호 경사, 안기준 경사(왼쪽부터)가 모니터를 보며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 최근 서울 도봉경찰서는 걸핏하면 112에 허위신고를 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40대 여성을 구속했다. 그가 지난 2010년 1월부터 올해 7월까지 4년 반 동안 112에 걸어온 허위신고는 무려 4654건에 이르렀다.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이 여성은 주로 만취 상태에서 허위신고를 했다. 2010년 37건의 허위신고를 한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대담해져 올해는 7개월간 2431차례에 달했다. 하루 200회 이상 신고한 날도 있었다. 112가 무료인 데다 항상 받아주니까 계속 걸었단다. 112 신고 이후에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휴대폰을 끄는 방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렸다. 주로 "지금 자살하러 간다" "누가 죽었으니 치워달라"는 심각한 내용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할 '국민의 비상벨' 112가 허위신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정작 필요한 상황에서는 경찰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가 높다.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만919건이었던 112 허위신고는 올해 7월까지 3만9324건이 발생했다. 연평균 1만건에 가까운 수치다. 허위신고로 인한 출동건수는 3만9030건이었다. 현장에 출동하지 않고서는 신고전화의 진위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대로 경찰력이 낭비되는 셈이다. 형법(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경범죄처벌법(거짓신고) 규정에 따라 112에 허위신고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6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구류 등으로 처벌할 수 있다. 같은 기간 허위신고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모두 7956명으로, 전체 허위신고자의 약 20% 수준이다. 이 가운데 형사입건은 565건(구속 40명)에 불과하다.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