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맞춤교육부터 '꿈꾸는 오후'까지… 고의숙 제주교육 4년 설계도 나왔다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고의숙 제주교육감이 이끌 향후 4년의 제주교육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학생 맞춤교육과 교권 보호, 온마을 돌봄, 제주4·3·생태교육, 학교 행정업무 감축을 중심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19일 제18대 제주특별자치도교육감직 인수위원회인 '모두가 주인공, 제주교육준비위원회'가 공개한 활동 백서에 따르면 위원회는 지난 6월 9일 출범한 뒤 약 40일간 5개 분과를 운영하며 5대 교육시책과 47개 추진과제를 마련했다. 백서는 교육지표와 정책과제, 학교 현장 방문, 도민 의견 수렴, 제주도와의 협력과정 등을 266쪽에 담았다.
새 교육지표는 '모두가 주인공, 함께 성장하는 제주교육'이다. 학생을 배움의 주체로, 교직원을 교육의 전문적 책임 주체로, 학부모와 지역사회를 성장의 동반자로 설정했다.
5대 교육시책은 △삶의 힘을 기르는 책임교육 △모두를 품는 포용교육 △평화와 생태의 민주시민교육 △미래를 여는 제주다움교육 △현장을 지원하는 청렴행정으로 구성됐다.
■ AI가 학생을 진단하고 교사는 최종 판단
책임교육 분야의 중심에는 '제주교육 AI플랫폼'이 놓였다.
백서는 학생의 학습 상황과 성장 이력을 통합 관리하고, 이를 토대로 수준과 영역별 맞춤교육을 제공하는 '초개별화 맞춤교육'을 제안했다. AI가 학생별 학습자료를 추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습과 정서, 건강, 진로 정보를 연결해 교사의 판단을 돕는 구조다.
플랫폼에는 학생·교원·직원이 학습과 수업, 행정업무에 활용하는 생성형 AI 기능도 포함할 계획이다. 교육청은 AI 분석 결과와 교사의 종합적인 판단을 결합해 학생 지원의 정확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AI 의존에 따른 과제도 남는다. 학생의 학습·정서·진로 정보가 하나의 플랫폼에 축적되면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접근권한, 알고리즘 편향에 대한 통제 기준이 필요하다. AI가 내린 분석을 교사가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학생을 수치와 등급으로 고정할 위험도 있다.
제주AI미래교육원 설립도 추진과제에 포함됐다. 교육정책 연구와 플랫폼 운영, 학교 인프라 지원, 교수·학습자료 개발을 전담하는 교육 허브다.
초등학교에서는 AI 이해와 체험, 중학교에서는 활용과 문제 해결, 고등학교에서는 심화·융합과 진로 연계 교육을 강화한다. AI 서·논술형 채점 보조시스템과 AI 기반 진로·진학 상담도 검토한다.
독서교육은 AI 시대의 기초체력으로 제시됐다. 초·중·고 학생의 독서 이력과 사고력 성장을 연결하는 '내 인생 백 권의 책' 디지털 포트폴리오와 질문·토론 중심 인문학교육을 추진한다.
■ 교권보호 전담관 신설… 야간·주말 상담 구상
포용교육 분야에서는 교육감 직속 '교육활동보호담당관' 신설이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교육활동 침해 예방·치유, 사안 대응, 법률지원을 맡는 전담조직을 두고 교육활동보호 관련 민원 접수 창구를 일원화하는 방안이다. 학교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갈등조정전문가를 현장에 파견해 사실관계 확인과 사안 조사, 중재를 지원한다.
평일 오후 10시까지와 주말에도 상담하는 교육활동보호 안심콜센터도 구상했다. 상담 결과는 갈등조정전문가와 법률지원 부서로 연결해 교사가 개별적으로 민원을 감당하는 구조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특수교육 분야에서는 제주영지학교 교사동 증축과 동부지역 특수학교 분교장 신설, 서귀포온성학교 교실 증축을 제안했다. 백서가 제시한 향후 소요액은 영지학교 증축 약 185억원, 동부지역 분교장 약 229억원, 온성학교 증축 약 93억원이다.
특수교육 대상자의 졸업 뒤 진로 단절을 줄이기 위해 일반고에 직업교육 중심 전공과를 설치하고, 지역사회와 고용 연계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담았다.
읍면지역 학생에게는 '안심택시'를 지원한다. 고정된 기사와 시간·경로를 지정하는 일대일 방식과 인근 학생이 함께 타는 노선형 방식으로 나누고, 보호자가 차량 위치와 승·하차 여부를 확인하도록 설계했다.
위기학생 지원은 상담 이후 의료기관 치료와 회복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체계를 목표로 한다. 학교와 위기센터, 전문의료기관의 연계 절차를 표준화하고 예방 중심의 '마음교육과정'을 강화한다.
■ 4·3교육과 신설·온마을 돌봄… 제주형 모델 실험
제주다움을 살린 교육정책도 전면에 배치됐다.
백서는 제주4·3 평화·인권교육과 민주시민교육, 생태전환교육을 전담하는 '제주4·3교육과' 신설안을 제시했다. 4·3 인정교과서를 개발해 연구학교에 시범 적용한 뒤 도내 학교와 전국 시·도교육청으로 확대하는 4년 단계 계획도 담았다.
제주4·3 교육의 전국화·세계화를 위해 다국어 교과서를 보급하고 4·3 평화·인권교육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하는 국제교육대상 신설도 추진한다.
생태교육은 교실 수업에서 학생의 생활과 정책 참여로 확장한다. 유치원 생태교육 인증제와 탄소중립 학교, 학생이 환경정책을 제안하는 가칭 '그린의회', 태양광 설비를 활용한 '햇빛이음학교' 등이 포함됐다.
돌봄 분야의 대표 정책은 '꿈꾸는 오후'다. 정규수업을 마친 학생이 학교와 마을에서 돌봄과 문화·예술·체육, 생태체험, 진로교육을 받는 제주형 온마을 돌봄·교육 모델이다.
교육청과 제주도가 정책과 예산을 공동으로 설계하고 마을과 지역기관이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한다. 지역별 시범모델을 만든 뒤 제주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제주도와 교육청은 인수위 단계에서 △온마을 돌봄 △IB 교육지구 △제주특별법 교육특례 개선 △4·3 세계화 △생태·환경교육 △에너지 신산업 인재양성 △안심택시 △AX 행정혁신 △느린학습자 지원 등 9개 협력과제에 합의했다.
하지만 도와 교육청이 공동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은 예산 부담과 운영 주체를 명확히 나누지 않으면 실행 단계에서 표류할 수 있다. 돌봄 인력의 고용과 안전책임, 학교시설 사용, 이동 지원, 프로그램 품질관리 기준부터 구체화해야 한다.
■ 학급당 20명·학교업무 총량제… 실행은 재정과 인력에 달려
교육환경 개선 분야에서는 2027년부터 초등학교 1·2학년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으로 낮추는 방안이 제시됐다.
3~6학년도 학교와 지역 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감축해 2031년에는 전 학년 20명을 목표로 한다. 저학년의 학교 적응과 기초학력 지원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학급 증가에 따른 교원 확보와 교실 증축이 전제돼야 한다.
학교 행정업무를 줄이는 '학교업무 총량제'도 추진한다. 신규 사업을 도입할 때 기존 사업을 통합·폐지하고 목적사업과 행사, 공문, 자료 제출을 전면 재검토하는 방식이다.
AI 업무비서를 활용해 공문과 계획서 작성, 지침 검색 등 반복 업무를 지원하고 계약·채용·현장체험학습 등 학교 부담이 큰 업무는 권역별 학교지원센터로 넘길 계획이다.
예산과 계약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청렴 계약 포털'도 구축한다. 계약 진행 과정을 공개하고 빅데이터로 특정 업체의 반복 수주와 분할계약 등 특혜 의심 사례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인사 분야에서는 전보·승진 기준의 사전 공개를 확대하고 지방공무원의 평정 등급과 점수, 평정단위별 서열명부 순위를 공개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도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제주교육자치 시민의회'는 만 14세 이상 도민 가운데 지역과 나이, 성별을 고려해 100명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시민의회가 교육 의제를 발굴하고 토론한 뒤 정책 반영 여부를 지속해서 점검한다.
■ 251건 도민 제안… 정책 반영 과정 투명해야
준비위원회가 지난 6월 9일부터 7월 1일까지 받은 도민 정책 제안은 251건이다.
분야별로는 유아·돌봄이 51건으로 가장 많았고 교직원 40건, 학생지원 33건, 교육과정과 안전·건강이 각각 31건, 학교행정 30건, 문화·지역 18건, 시설·배치 17건이었다.
백서에는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일반계고 전환, 교장공모제, 자율학교 재구조화, 교권 보호, 학생 노트북 지원 등 주요 제안과 준비위원회의 검토 의견도 실렸다.
정책 제안을 받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251건 가운데 반영·부분 반영·장기 검토·수용 곤란 과제를 구분하고 그 이유와 추진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 도민 의견이 백서에만 남고 실제 예산과 조직개편에서 사라지면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교육지표의 의미도 약해질 수 있다.
47개 과제 가운데 일부는 조례 제정과 보건복지부 협의, 정부의 교원 정원 배정, 제주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 대규모 시설사업과 신규 조직·인력 운영에는 안정적인 재원도 뒷받침돼야 한다.
정책의 규모보다 중요한 지표는 학교와 학생이 체감하는 변화다. AI플랫폼이 교사의 업무를 더 늘리지 않는지, 교권보호 조직이 실제 갈등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돌봄과 통학 지원이 읍면·도서지역 학생에게 닿는지, 학교업무 총량제가 공문과 행사를 줄이는지를 매년 공개해야 한다.
강봉수 제주교육준비위원장은 "도민과 교육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제주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담는 데 힘을 모았다"며 "백서가 활동 기록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4년간 제주교육 정책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서는 도내 학교와 교육기관, 유관기관에 배포하며 제주도교육청 누리집에서 전자파일과 전자책으로 공개한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