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다시 한번 대한민국

월드컵, 다시 한번 대한민국

2022 카타르 월드컵 미리 보기

피파 월드컵, 세계 최대의 축구 대회

2002년 4강 신화의 영광과 함께 대한민국의 여름을 한층 더 뜨겁게 달군 한일 월드컵 이후에도, 월드컵은 4년마다 독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브라질, 러시아에서 세계 축구 팬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맞은 2022년, 피파 월드컵은 황금빛 모래가 찬란하게 펼쳐진 사막의 나라 카타르에서 세계인의 축제 개막을 다시 한번 화려하게 알릴 예정입니다.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기구인 피파 (FIFA)는 프랑스어 약자로 국제 축구 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을 의미합니다. 1904년 프랑스와 네덜란드, 스페인, 스위스 등을 포함한 7개 국가의 서명으로 설립된 피파는 점차 비유럽 지역 국가의 가입과 함께 회원국을 늘려갔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회원국 숫자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기도 했으나 설립 119주년을 맞은 지금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6개국보다 많은 211개 회원국이 가입한 거대 국제기구로 성장을 이뤘습니다.

FIFA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로고. REUTERS/Arnd Wiegmann/File Photo /REUTERS/뉴스1 /사진=뉴스1 외신화상
FIFA (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 로고. REUTERS/Arnd Wiegmann/File Photo /REUTERS/뉴스1 /사진=뉴스1 외신화상

최초의 월드컵은 1930년 우루과이에서 개최되었습니다. 남미 대륙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을 호소한 일부 회원국의 반발이 있었으나 총 13개국이 참가, 개최국 우루과이의 우승과 함께 월드컵이 현 최대의 국제 축구 대회로 자리 잡는 성공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2회와 3회 월드컵을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차례로 개최되었지만 1942년 독일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제4회 월드컵이 2차 세계 대전으로 취소되면서 1950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12년간 공백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유럽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의 회원국에서 번갈아 개최되던 월드컵 대회는 2002년 제17회 월드컵이 이례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공동 개최로 확정되며 아시아 첫 번째 월드컵이자 최초의 복수 국가 개최의 타이틀을 기록합니다. 8년 뒤인 2010년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을 유치하며 6개 연맹 중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나머지 대륙에서 월드컵을 1회 이상 개최하게 됩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과 2026년 예정된 미국, 캐나다, 멕시코 아메리카 3개국 공동 개최 월드컵까지, 월드컵은 계속해서 놀라운 기록, 짜릿한 승리와 아쉬운 패배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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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참여한 첫 번째 월드컵은 제5회 1954년 스위스 월드컵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겪으며 이전 월드컵까지 참여하지 못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스위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을 상대로 1승 1무를 거둬 아시아 지역에 배정된 1장뿐이던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냅니다. 비록 조별리그에서는 헝가리에 9-0, 튀르키예에 7-0으로 패배하며 토너먼트 진출에는 실패하지만, 아시아 독립국 최초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낸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첫 번째 본선 진출 이후,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축구협회 관계자의 참가 신청서 분실로 기권,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는 지역 예선에서 일본을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유고슬라비아에 패배하며 본선 진출은 실패,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은 아마추어 자격 유지 및 예선 라운드 개최국 변경을 사유로 기권하였으며,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1982년 스페인 월드컵까지 지역 예선 탈락으로 32년 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출전권이 분리되며 강력한 라이벌인 호주와 경쟁을 피할 수 있게 된 대한민국은 지역 예선 라운드에서 일본에 승리, 본선 진출을 확정합니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그리고 불가리아와 함께 A조에 편성된 우리 대표팀은 불가리아와 무승부를 기록해 처음으로 월드컵 조별리그 승점 1점을 획득하는 등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나 이탈리아전 판정 논란에 시달리며 0승 1무 2패, 조 4위로 토너먼트 진출은 아쉽게 실패합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네 번의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본선 진출에 성공해 아시아의 축구 강국임을 증명해냈으나 동시에 조별리그에서 단 한 번의 승리도 기록하지 못하며 국제무대의 높은 벽을 체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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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2002년, 21세기 첫 번째 월드컵이 막을 올립니다. 전설로 기억되는 2002 한일 월드컵은 그 출발점인 유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유치 경쟁 상대이던 일본은 월드컵을 개최한 첫 번째 아시아 국가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해둔 상태였고, 대한민국은 여전히 휴전 상태라는 점이 큰 걸림돌이 되어 일본 단독 개최가 유력한 상황이었습니다.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과 양 국가의 공식 대회 상대 전적이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결국 양국은 공동 개최에 합의하였고, 대회의 꽃인 결승전이 치르는 장소를 일본에 양보하는 대신 대회 공식 명칭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 일본 (2002 FIFA WORLD CUP KOREA/JAPAN)으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한일 월드컵은 2026년 월드컵 개최지가 미국, 캐나다, 멕시코로 확정되기 전까지 최초이자 유일한 공동 개최 월드컵이었습니다.

2002월드컵 공식 엠블럼
2002월드컵 공식 엠블럼

미국, 포르투갈, 폴란드와 함께 조별리그 D조에 편성된 우리 대표팀의 첫 번째 경기는 2002년 6월 4일, 폴란드를 상대로 치러졌습니다. 황선홍, 고 유상철 선수가 전반전, 후반전에 각각 득점하며 2-0으로 승리한 이 경기는 대한민국 월드컵 본선 최초의 승리입니다. 첫 승으로 기세를 올린 히딩크호는 미국과 1-1 무승부를, 포르투갈을 상대, 박지성 선수의 골로 1-0으로 승리하며 2승 1무, 조 1위의 성적으로 최초로 16강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 짓습니다.

이미 기대를 넘은 최고 성적을 기록했지만, 대표팀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6강 전 이탈리아를 상대로 1-0으로 끌려가던 중 설기현 선수가 경기 후반 극적인 동점 골을 성공시켰고, 이어진 연장전 안정환 선수의 아름다운 헤딩이 골든 골로 이어져 우리 대표팀은 8강 진출마저 성공합니다.

[서울=뉴시스]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 (사진=대한축구협회)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2002 한일월드컵 16강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골든골. (사진=대한축구협회) /사진=뉴시스

8강 상대는 스페인, 연장전을 포함 120분간 무득점 끝에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스페인 대표팀 4번째 키커 호아킨의 슛이 골키퍼 이운재 선수의 선방에 막힌 반면 대한민국 대표팀은 마지막 키커인 홍명보 선수까지 골을 성공시키며 대한민국은 준결승전(4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이뤄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전 국민의 응원 속에 펼쳐진 독일과의 4강 준결승전에서 16강과 8강 유럽 강팀을 상대로 거듭된 연장전으로 체력 소모가 컸던 대표팀 선수들이 고군분투했지만 1-0 석패를 당하며 영광의 기록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어진 3, 4위 결정전에서도 투르키예를 상대, 2-3으로 아쉽게 패배함으로 대한민국은 브라질, 독일, 투르키예를 뒤이어 최종 4위로 월드컵을 마감하긴 했으나, 토너먼트 진출을 넘어 준결승전 진출까지 이뤄내는 과정과 기록은 전 국민에게 생생한 감동을 선물했습니다.
#한일월드컵 #2002월드컵 #2002한일월드컵

기록으로 보는 월드컵

세계 축구 팬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는 대회인 만큼 월드컵과 관련된 기록 또한 월드컵 시즌마다 빠지지 않고 다뤄지곤 합니다.

월드컵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국가는 브라질로, 2002년 한일 월드컵 우승을 포함 총 5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최다 우승 국가답게 월드컵 최다 본선 진출 22회 (카타르 월드컵 포함), 최다 승리 73승, 최다 득점 229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모두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결승에 가장 많이 진출했던 국가는 브라질이 아닌, 2002년 우리 대표팀의 준결승전 상대였던 독일입니다. 독일은 결승전 무대에 8회 진출했지만, 4번을 잉글랜드,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가로막혀 최다 준우승 국가의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월드컵을 들어 올린 독일은 이탈리아와 함께 최다 우승 국가 공동 2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개최한 대회인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개최국가로서 우승을 차지한 뒤, 2006년 결승에 진출하며 두 번째 우승을 목표했지만,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패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우승 20주년이 되는 해인 2018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마침내 두 번째 우승컵을 따내며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와 최다 우승 공동 3위를 차지합니다.

카타르 월드컵을 제외한 총 21회의 대회에서 개최국이 우승을 한 월드컵은 우루과이 (1930), 이탈리아 (1934), 잉글랜드 (1966), 독일 (1974), 아르헨티나 (1978), 프랑스 (1998) 여섯 차례입니다. 모두 21세기 이전에 치러진 월드컵이긴 하지만 월드컵 홈팀의 이점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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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팀의 최고 성적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입니다. 총 19번의 참가 중 11번을 지역 예선을 통과, 본선에 진출하고 있으며 그중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제외한 10번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장 연속 본선 진출 6위, 1위 브라질 22회)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 골을 넣은 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고 있는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제공) © 뉴스1 /사진=뉴스1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결승 골을 넣은 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고 있는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제공) © 뉴스1 /사진=뉴스1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로 세계를 놀라게 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조 2위로 16강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을 확정합니다. 대표팀은 우루과이 수아레스 선수의 멀티 골로 1-2 패배, 탈락하긴 하지만 월드컵 우승을 두 번이나 경험한 강팀을 상대로 저력을 다시금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2022년은 2002 한일 월드컵 20주년입니다. 1998년과 2018년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처럼,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기적의 역사를 써 내려가길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월드컵 #월드컵최고성적 #4강신화

피파는 1993년 회원국의 축구 실력에 대한 지표와 상대적인 순위를 보여주기 위해 피파 랭킹을 만들었습니다. 지표가 처음 도입되었을 당시에는 실제 축구 전력과는 동떨어진 점수와 순위 산정 방식으로 외면받기도 했으나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친 지금의 피파 랭킹은 월드컵 조별 리그를 위한 시드 배정에 사용될 정도로 권위가 높은 지표로 발전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피파 랭킹 역대 최고점은 1998년의 17위입니다. 바로 다음 해 순위가 51위까지 하락했으나 2002년 7월 한일 월드컵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다시 20위로 상승합니다. 대륙 간 차등 시스템이 적용된 이후 대한민국은 피파 랭킹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2022년 월드컵 평가전 등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둬 2012년 7월 이후 10년 만에 20위권에 진입했습니다. (2022년 8월 기준 28위)
#피파 #랭킹 #FIFA

2022 카타르 월드컵, 겨울에 만날 최초의 중동 월드컵

제22회 카타르 월드컵은 중동 국가에서 치르는 최초의 월드컵입니다. 2010년, 다른 입후보 국가였던 대한민국과 일본, 미국, 호주와 치열한 유치전 끝에 2022년 월드컵 개최 자격을 얻은 카타르는 기존 월드컵이 열리던 6~7월 평균 기온이 40도가 넘어가는 등 개최국으로서 과연 적합한지 여러 차례의 추가 검증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월드컵 개막 일정을 온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겨울에 하는 방향으로 불안한 요소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국가별 프로리그 일정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참가국들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최종적으로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정상적으로 겨울 개막을 확정합니다.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은 총 32장으로 대륙별 배당된 출전권을 위한 지역 예선을 거쳐 진출 국가를 가립니다. 가장 많은 출전권을 배정 받은 대륙은 유럽으로 13장, 반대로 가장 적은 대륙은 오세아니아로 0.5장을 받았으며, 대한민국이 속한 아시아는 4.5장을 배당 받았습니다. 지역 예선의 경우 대륙 연맹별로 일정에 조금씩 차이는 있었으나 2021년 11월 중 예선 대진 및 조를 추첨했고, 2022년 3월까지 플레이오프를 제외한 나머지 예선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카타르월드컵 #2022카타르 #월드컵 #겨울월드컵 #중동월드컵 #월드컵11월

카타르 월드컵의 개막전 (카타르-에콰도르 전)은 2022년 11월 20일 현지 시각 기준 오후 7시 (UTC+0300), 대한민국 시각을 기준으로 2022년 11월 21일 오전 2시 (UTC+0900)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FIFA "카타르 월드컵 개막 하루 앞당긴다." (루사일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일을 기존 11월 21일에서 20일로 하루 앞당긴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진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결승전이 개최될 카타르 루사일의 루사일 스타디움 모습. 2022.08.12 ddy04002@yna.co.kr (끝)
FIFA "카타르 월드컵 개막 하루 앞당긴다." (루사일 AFP=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국제축구연맹(FIFA)은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일을 기존 11월 21일에서 20일로 하루 앞당긴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진은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결승전이 개최될 카타르 루사일의 루사일 스타디움 모습. 2022.08.12 [email protected] (끝)

본래 개막전은 카타르가 자국 경기 일정을 개막식 밤하늘에 펼쳐질 불꽃놀이 행사와 맞추기 위해 조정한 관계로 네덜란드-세네갈 전이 21일 그보다 앞선 오후 1시에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회를 주최하는 피파 측과의 협의 끝에 개막식의 취지와 월드컵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카타르는 대회의 개막 일정 자체를 하루 앞당겨 20일 단독 개막식을 펼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2022카타르월드컵개막 #개막식 #월드컵개막식

본선 진출 32개국의 조별리그 조 편성은 대한민국 시각 (UTC+0900)을 기준, 지난 2022년 4월 2일 오전 1시에 이루어졌습니다. KBS, SBS, MBC를 통해 한국에서도 생중계한 조 추첨식 당시에는 플레이오프가 치러지지 않아 편성이 완벽하게 짜이지 못했으나 6월 진출팀이 모두 확정, 조 편성이 완성되었습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식이 4월 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다 (FIFA 월드컵 SNS) © 뉴스1 /사진=뉴스1
2022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식이 4월 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렸다 (FIFA 월드컵 SNS) © 뉴스1 /사진=뉴스1

카타르 월드컵의 본선 32강 조별리그는 알파벳 A부터 H까지 총 8조, 각 조 4개 국가로 구성되며 승점이 가장 높은 2개 국가가 16강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을 확정 짓습니다.

조 추첨의 경우 개최국으로서 월드컵 본선에 처음으로 진출하는 카타르를(자동 1 포트) 제외한 나머지 국가를 피파 랭킹 및 소속 대륙 연맹으로 구분하여 4개 포트로 나눈 상태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라이벌 일본과 같은 3 포트에 위치해 1,2 포트의 조 추첨이 끝나고 추첨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월드컵 조 편성 결과
본선 진출국
A 카타르, 네덜란드, 세네갈, 에콰도르
B 잉글랜드, 미국, 이란, 웨일스
C 아르헨티나, 멕시코,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D 프랑스, 덴마크, 튀니지, 호주
E 스페인, 독일, 일본, 코스타리카
F 벨기에, 크로아티아, 모로코, 캐나다
G 브라질, 스위스, 세르비아, 카메룬
H 포르투갈, 우루과이, 대한민국, 가나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의 조 추첨 결과는 H조.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 한 조로 편성됩니다. 2 포트 국가까지 모두 추첨을 한 결과에서 기대했던 최상의 추첨 결과는 아니었지만, 1 포트 최하위 포르투갈과 4 포트 최하위 가나와 한 조를 이루며 팀 간 전략 차가 크지 않아 최악은 면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반면 일본은 스페인, 독일, 코스타리카와 E조에 편성, 죽음의 조라고 불리며 16강 진출 가능성이 굉장히 낮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카타르월드컵조편성 #조추첨 #예선결과 #지역예선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경기는 2 포트로 H조에 편성된 우루과이를 상대로 2022년 11월 24일 한국시간 오후 10시에 펼쳐집니다. 비록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16강에서 만나 패배를 기록한 전적이 있긴 하지만, 2018년 10월 다시 맞붙은 친선경기에서는 대한민국이 2-1 승리를 거두며 복수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경기 상대는 H조 4 포트의 가나입니다. 11월 28일 첫 경기와 동일한 10시에 시작하는 가나전은 H조에 속한 팀 중 유일하게 대한민국보다 전력상 약체로 평가받고 있어 16강 진출을 위해선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상대로 평가되는 만큼 치열한 경기 내용이 예상됩니다. 최근 기록은 2014년 친선경기로 당시 홍명보호는 가나에 4-0 패배당했으나 종합 전적은 3승 3패로 호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나전 5일 이후 12월 3일 자정 12시 우리 대표팀은 1 포트 포르투갈을 상대로 조별리그 마지막경기를 치릅니다. 전력의 차이가 커 쉬운 승리를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박지성 선수의 득점으로 1-0 승리를 거둔 바 있습니다.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시드 본선 진출국 최고 성적 전적 (대한민국 기준) 대한민국 상대 경기 일정
1 포르투갈 (9) 3위 (1996년) 1전 1승 2022년 12월 3일 오전 12시
2 우루과이 (13) 우승 (1930년, 1950년) 8전 1승 1무 6패 2022년 11월 24일 오후 10시
3 대한민국 (28) 4강 (2002년)
4 가나 (60) 8강 (2010년) 6전 3승 3패 2022년 11월 28일 오후 10시
(파이낸셜뉴스)
#카타르월드컵H조 #일본 #E조 #죽음의조 #포르투갈 #가나 #우루과이 #대한민국

2019년, 카타르 월드컵의 엠블럼이 공개되었습니다. 피파에 의하면 공개된 엠블럼은 아랍 문화권의 전통 의상 목도리인 모직 숄을 모티브로 만들어져 최초의 겨울에 개막하는 대회의 특성과 아랍 전통문화 요소를 살렸다고 합니다.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형상화한 숫자 '8' 모양의 엠블럼은 카타르 월드컵의 경기가 8개의 경기장에서 열린다는 의미를 갖고 동시에 무한대 기호를 세로로 90도 세운 모양으로 해석하기도 해, 전 세계를 연결하는 국제 대회의 비전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로고 엠블럼 [FIF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2 카타르 월드컵 로고 엠블럼 [FIF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스코트인 '라이브 (La'eeb)'는 월드컵 본선 조 추첨식에서 공개되었습니다. '알 리 훌라', 여정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의 공인구가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된 '라이브'는 목도리를 모티브로 한 엠블럼과 마찬가지로 아랍 문화권의 전통 머리 장식인 '구트라 (Gutra)'를 캐릭터화하여 디자인되었습니다. 라이브는 아랍어로 '뛰어난 기술을 가진 선수'를 의미하기도 하며, 피파는 라이브가 축구의 즐거움을 모두에게 전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서울=뉴시스]카타르월드컵 마스코트 라이브 공개. (캡처=FIFA 홈페이지)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카타르월드컵 마스코트 라이브 공개. (캡처=FIFA 홈페이지) /사진=뉴시스


#카타르월드컵엠블럼 #우승트로피 #마스코트 #라이브

대한민국 국가대표 명단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카메룬의 경기, 선발 출전한 선수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2.09.27. livertrent@newsis.com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카메룬의 경기, 선발 출전한 선수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2.09.27. [email protected] /사진=뉴시스

골키퍼 (GK):

김승규 (알사밥) / 송범근 (전북현대) / 조현우 (울산현대)

수비수 (DF):

권경원 (감바오사카) / 김문환 (전북현대) / 김민재 (SSC나폴리) / 김영권 (울산현대) / 김진수 (울산현대) / 김태환 (울산현대) / 윤종규 (FC서울) / 조유민 (대전하나시티즌) / 홍철 (대구FC)

미드필더 (MF):

권창훈 (김천상무) / 나상호 (FC서울) / 백승호 (전북현대) / 손준호 (산동타이산) / 손흥민 (토트넘홋스퍼) / 양현준 (강원FC) / 이강인 (RCD마요르카) / 이재성 (FSV마인츠05) / 정우영 (알사드) / 정우영 (SC프라이부르크) / 황인범 (올림피아코스FC) / 황희찬 (울버햄튼)

공격수 (FW):

조규성 (전북현대) / 황의조 (올림피아코스FC)
#대한민국국가대표 #월드컵선수명단 #벤투호 #월드컵엔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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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50] 11월 개막‧짧은 이동거리…변수 많은 낯선 월드컵이 온다

[월드컵 D-50] 11월 개막‧짧은 이동거리…변수 많은 낯선 월드컵이 온다

(서울=뉴스1) 김도용 기자 =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은 여러 가지로 새롭다. 사상 처음으로 11월에 대회가 개막하고 경기장 간 이동 거리도 짧다. 여기에 대회 엔트리가 기존 23명에서 26으로 늘어나는 등 앞선 21차례 월드컵과는 다른 점들이 꽤 많다. 기존과 비교해 많은 것이 바뀐 만큼 변수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카타르에서 받는 성적표가 달라질 수 있다. '낯선' 카타르 월드컵은 11월20일(현지시간)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의 경기를 시작으로 개막, 12월18일까지 대장정이 시작된다. 대회 개막까지 이제 50일 남았다. △사상 첫 중동 개최에 따른 11월 개막 카타르 월드컵의 여러 변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11월에 대회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FIFA는 카타르로 개최국을 확정하면서 중동 지역의 날씨를 고려, 기존 6~7월에 열렸던 대회를 약 5개월 뒤로 미뤘다. 개최 시점이 전과 달라지면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전에는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시즌을 마친 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대표팀에 소집돼 월드컵에 임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이 부상으로 낙마하거나 지친 체력 탓에 본선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K리그나 일본, 중국 등 추춘제로 시즌이 펼쳐지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은 시즌 도중 월드컵에 출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반대가 됐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새로운 시즌을 약 3개월 소화하다가 월드컵을 치른다. 유럽 그리스 무대에서 활약 중인 황의조(올림피아코스)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는 시기에 월드컵을 치른다"며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회를 준비하는데 수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K리거와 일본, 중국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은 시즌을 모두 마친 뒤 휴식 없이 월드컵에 임해야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2010년 남아공 월드컵까지 3번의 월드컵을 경험한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도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컨디션 관리가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회에 맞춰 컨디션이나 체력적인 부분을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개최 시기가 바뀌면서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짧게 호흡을 맞춘 뒤 본선에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부분 개막 일주일 전까지 소속팀에서 일정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월드컵 직전 팀 훈련 시간이 길지 않다. 이에 본선 직전 대회에 나서는 팀들끼리의 평가전도 꺼리는 분위기다. 현재까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페인 등은 대회 직전 평가전을 잡지 않고 있다. 한국 역시 국내에서 유럽파 없이 평가전을 치른 뒤 결전지 카타르에서는 팀 훈련에 집중할 계획이다. △멀어야 4시간, 부담 없는 이동거리 카타르 대회는 '콤팩트 월드컵'이라고 불린다. 8개의 경기장이 수도 도하를 비롯한 인근 지역에 몰려 있다. 카타르의 면적 자체가 1만1581㎢ 밖에 되지 않아, 주요 경기장들 간 거리가 아무리 멀어봐야 차로 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 모든 대회가 펼쳐지다보니 각 팀들은 이동에 따른 부담이 크게 없다. 2014년 브라질, 2018년 러시아 대회 직전 각 경기장과 훈련장의 거리를 측정하면서 유불리를 따졌던 것과는 분명 대조되는 상황이다. 또한 이동거리가 짧아지면서 각 팀들의 선수단은 휴식과 훈련 등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경기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변수로 작용했던 이동거리는 카타르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26명 엔트리와 교체 5명, 강팀에 유리하게 작용 가능 FIFA는 이번 대회 최종 엔트리를 기존 23명에서 26명으로 확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와 유럽 리그가 진행 중일 때 대회가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다. 최종 명단이 기존보다 3명 늘어나면 각 팀 감독들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 3명을 더 본선에 데려갈 수 있다. 이 변화는 강팀에 더 유리할 전망이다.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스페인, 독일 등은 활용할 수 있는 자원들이 많다. 우승 후보로 평가되는 팀들은 늘 최종 명단이 발표된 뒤 선택받지 못한 선수들이 집중 조명되는 등 대표팀 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 최종 멤버가 3명이 더 늘어나면서 강팀의 감독들은 보다 색깔이 뚜렷하고, 전술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선수들을 더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아가 한 경기에서 교체가 최대 5명까지 가능, 강팀들은 상황에 맞게 선수를 투입하며 자신들이 준비한 전술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반면 한국을 비롯, 본선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일단 높은 레벨의 선수들이 그리 많지 않다. 또 본선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력에 주안점을 둬야 하기 때문에 선수 가용 풀이 넓어진다고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잘알]신기술의 집합체…월드컵 공인구의 역사

[스잘알]신기술의 집합체…월드컵 공인구의 역사

기사내용 요약 초대 월드컵 결승전에선 전반과 후반에 다른 축구공 사용 1970년 멕시코월드컵부터 아디다스서 공인구 제작 1998년 프랑스월드컵서 처음 흑백 아닌 다른 색깔 들어가 2002년 한일월드컵 '피버노바'…양국 경제 원동력 불을 이미지화 '신기술의 역효과' 팀가이스트·자블라니는 선수들에게 혹평 2022 카타르월드컵 공인구는 '알 리흘라'…아랍어로 '여행' [서울=뉴시스]안경남 기자 = 오는 11월 개막하는 2022 카타르월드컵에 사용될 공인구 '알 리흘라(Al Rihla)'가 공개됐다. 아랍어로 '여행'을 뜻하는 이번 공인구는 자주색과 짙은 파란색으로 개최국 카타르를 표현한 게 특징이다. 한국의 '캡틴' 손흥민(토트넘)과 리오넬 메시(파리생제르맹)가 공식 모델로 나선 알 리흘라는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최신 축구공이다. 아디다스의 풍동 실험장에서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 만든 알 리흘라는 기존 축구공보다 더 빠르게 정확하게 날아가는 게 특징이다. 특수 돌기가 들어간 20조각의 사각형 폴리우레탄 피스와 공을 구성하는 스피드셀 기술이 정확도와 비행 안전성을 높였다. 또 친환경적인 수성 잉크와 수성 접착제로 만든 최초의 월드컵 공인구이기도 하다. 공인구는 단순히 개최국 문화를 반영하고 신기술을 뽐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특징의 공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월드컵의 우승팀이 달라진다. 공인구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고 활용하면 세트피스 등 정지된 상태에서 훨씬 더 많은 이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1930년 첫 월드컵 공인구는? 처음 월드컵부터 공인구가 등장한 건 아니다. 1930년 초대 대회인 우루과이월드컵이 시작되고 40년이 지나서야 참가국이 모두 하나의 공을 사용했다. 그전에는 대부분 개최국의 스포츠용품 업체가 제작한 축구공을 썼다. 당시엔 나라마다 축구공의 크기나 재질이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우루과이월드컵 결승전 당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각각 전후반을 나눠 자신들의 축구공을 사용했다. 전반전은 아르헨티나의 티엔토가, 후반전엔 우루과이의 티-모델이 쓰였다. 흥미로운 건 전반에는 아르헨티나가 2-1로 앞서가다가 후반에는 우루과이가 3골을 몰아넣어 4-2로 역전승했다는 것이다. 익숙한 축구공이 경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셈이다. 1962년 칠레월드컵 때는 유럽팀들이 칠레에서 만든 공인구 크랙 대신 다른 공을 쓰기도 했다. 이후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까지 축구공은 대회마다 달라졌다. 한국이 처음 월드컵에 등장했던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사용된 축구공은 코스트 스포르트가 제작한 스위스 월드챔피언이란 공이었다. ◆최초의 월드컵 공인구 '텔스타'의 탄생 월드컵에 공인구가 처음 도입된 건 1970년 멕시코월드컵부터다. 이때부터 스포츠브랜드 아디다스가 지금까지 월드컵 공인구를 독점으로 제작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월드컵마다 최신 기술을 적용한 축구공을 선보였고, 공의 이름과 디자인에 개최국의 특징을 반영했다. 멕시코월드컵 공인구 '텔스타'는 20개의 흰색 육각형 패널과 12개의 검은색 오각형 패널로 이뤄졌는데, 월드컵 경기가 TV 생중계된 것에 맞춰 흑백 텔레비전 화면에 가장 돋보이도록 디자인됐다. 텔스타란 이름도 텔레비전 스타의 의미다. 1974년 서독월드컵에선 텔스타의 후속인 텔스타 두를라스트가 쓰였다. 두를라스트는 최초의 폴리우레탄 코팅 축구공으로 방수와 마모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선 향후 축구공 디자인의 기본이 된 탱고가 탄생했다. 20개 패널로 이뤄져 있고, 패널 안에 삼각 무늬를 이으면 12개의 원이 되는 디자인이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최국 아르헨티나의 특징이 담겼다. 탱고는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탱고 에스파냐로 이어졌고,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선 아스테카로 이어졌다. 아스테카는 멕시코 아스테카의 전통 문양이 차용됐으며, 처음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진 축구공이기도 하다. 아디다스의 신기술 적용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공인구 에트루스코에는 처음 폴리우레탄 폼안감을 사용해 방수 기능을 더욱 강화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공인구 퀘스트라는 특수 소재를 통해 공의 컨트롤과 속도가 향상됐다. ◆혁신적인 디자인의 2002 한일월드컵 '피버노바' 텔스타 이후 유지됐던 흑백 무늬가 다른 색깔로 쓰이기 시작한 건 1998년 프랑스월드컵 공인구 '트리콜로'부터였다. 개최국 프랑스의 삼색기 색깔인 빨간색과 파란색, 흰색이 사용됐다. 2002 한일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꼽힌다. 익숙한 벌집 무늬를 벗어나 단색 바탕에 4개의 커다란 황금색 삼각형 4개가 새겨졌는데, 그 안의 붉은 불꽃이 매우 인상적인 공인구였다. 당시 아디다스는 한일 양국의 경제 성장 원동력인 불을 이미지화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으로도 신택틱 폼 기술을 적용해 축구공 표면의 반발력이 크게 향상됐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정확하게 공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신기술의 역효과…'팀가이스트'와 '자블라니' 지나친 신기술의 적용은 오히려 선수들에게 독이 되기도 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공인구 팀가이스트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자블라니가 대표적이다. 14개 패널로 이뤄진 팀가이스트와 8개 패널이었던 자블라니는 최신 기술이 적용됐으나, 선수들이 적응에 애를 먹었다. 팀가이스트의 경우 공이 지나치게 가벼워 비가 올 경우 공의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자블라니는 남아공 고지대에서 공의 궤적을 예측하기 어려워 골키퍼들에게 악몽으로 불렸다. 실제로 자블라니는 야구의 너클볼처럼 공의 방향이 크게 휘곤 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공인구 브라주카는 패널이 6개로 줄면서 가장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 됐다. 덕분에 기능적으론 이전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때는 48년 만에 텔스타가 부활했다. 텔스타18로 불린 당시 공인구는 과거 특징인 흰색과 검은색 패널이 사용됐고, 기능적으로 훨씬 개선됐다. 6개의 대칭 패널을 바람개비 모양으로 합쳤던 브라주카와 달리 6개의 다각형 모양의 패널로 좀 더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구현했다. 당시 텔스타18은 러시아 우주인 올렉 아르테미예프가 소유즈 MS-08을 타고 우주정거장으로 가져갔다가 지구로 무사히 착륙 시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전설 더하기 전설…차붐이 닦아 놓은 길, 손흥민이 넓히다

전설 더하기 전설…차붐이 닦아 놓은 길, 손흥민이 넓히다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척박했던 시절,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감 자체가 유럽에서 그리 대단치 않았던 때 혈혈단신으로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해 '차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차범근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축구사의 레전드다. 그때 독일 분데스리가는 당대 최고의 무대였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위상이 당시는 분데스리가의 몫이었다. 세계의 별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도 차범근은 톱클래스로 10년을 활약했고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큰별이었다. 1978년 다름슈타트에 입단하며 독일 무대를 밟은 차범근은 이듬해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레버쿠젠에서의 활약상을 더해 유럽을 호령했다. 그가 유럽에서 작성한 득점만 121골이었다. 당연히 한국인이 유럽에서 기록한 최다득점은 차범근의 몫이었고 모두들 그 기록은 불멸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깨졌다. 손흥민이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손흥민은 7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라이코 미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리그 4차전에 선발로 출전, 2골을 터뜨리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손흥민은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후반 13분 박스 안에서 강력한 왼발 슈팅을 시도해 즈베즈다 골망을 크게 흔들었다.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던 순간이다. 이 경기 전까지 개인통산 121골을 기록 중이던 손흥민은 122번째 득점과 함께 한국인 유럽무대 최다득점자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손흥민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불과 2분 뒤 대니 로즈의 낮은 크로스를 가볍게 밀어 넣으며 멀티골까지 작성했다. 시즌 6, 7호골을 동시에 작성하며 통산기록도 123골까지 늘렸다. 손흥민의 맹활약을 앞세운 토트넘은 결국 4-0 완승을 거두며 UCL 2연승에 성공했다. 현재의 축구팬들이야 동시대를 살면서 눈으로 직접 활약상을 보고 있는 손흥민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은 박수를 보다 많이 보내고 있지만, 과거 유럽무대 전체를 호령했던 '차붐'의 플레이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아직은 비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한 축구인은 "사실 한국인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정표를 남긴 것이다. 차범근 감독이 유럽에 나간 것이 1980년대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잔디구장도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자란 선수가 유럽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표현으로 위업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꿈처럼 느껴지던 그 지점에, 적어도 득점 기록만은 전설을 넘어선 손흥민이다. 하지만 '기록'만 가지고 "손흥민이 차범근을 앞섰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차범근은 영원한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그대로다. 전설이 닦아 놓은 길을 더 넓힌 새로운 전설 손흥민이 탄생했다고 짚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최근 차범근 감독에게는 큰 경사가 찾아왔다. 주한독일대사관은 지난 5일 "수십 년 동안 한국과 독일의 관계 발전을 위해 애쓴 차범근 전 감독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이 차 전 감독에게 대십자공로훈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대십자공로훈장은 정치, 경제, 사회, 사회복지, 자선 등의 분야에서 독일을 위해 특별한 공로를 세운 이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한국인으로는 고 김수환 추기경(2001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2005년)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차범근의 업적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단순한 축구선수, 그 이상이다. 그런 차범근이 누구보다 아꼈던 선수가 까마득한 후배 손흥민이다. 위대한 전설이 흐뭇하게 바라볼 또 하나의 전설이 점점 더 무르익고 있다.

[2002 20주년⑧] 한국 축구사는 2002 월드컵 전과 후로 나뉜다

[2002 20주년⑧] 한국 축구사는 2002 월드컵 전과 후로 나뉜다

[편집자주]보면서도 믿기 힘들던 2002 월드컵 4강의 기적이 벌써 20주년을 맞았다. <뉴스1>은 그때의 영웅들을 만나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새롭게 나아갈 20년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언제 떠올려도 흐뭇할 일이나 매양 '그땐 그랬지'로 끝나선 곤란하다. 더 흐릿한 기억이 되기 전에, 미래발전을 위한 값진 유산으로 활용하려는 생산적 자세가 필요하다. (서울=뉴스1) 안영준 기자 = 2002 월드컵 4강 신화는 그저 '그때의 행복'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대회를 준비하면서 쏟은 다양한 노력들은 이후 한국 축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발전하는 자산이 됐다. 2002년 6월이 한국 축구계에 안긴 선물은 대단했다. 우선 인프라 구축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축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 중 다수는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처음 생겼다. 먼저 이 땅에 10개의 월드컵경기장이 생겨났다. 이 경기장들은 모두 월드컵 기준에 맞는 초대형 경기장일 뿐 아니라 관중 입장 동선, 잔디, 미디어 수용, 부대시설 등 이전까지 한국 축구에서 보기 힘들었던 최고의 인프라를 갖췄다. 전국 각지에 세워진 이들 10개 경기장을 토양 삼아 한국 축구의 인프라는 완전히 바뀌었다. 4강 신화의 주역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은 "한국 축구는 2002 월드컵 전과 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맨땅에서 경기할 정도로 열악했다. 하지만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인프라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역시 같은 맥락에서 "2002 월드컵은 내 삶을 BC와 AD로 나눈 분기점이다. 축구 인생과 개인적인 삶 모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2 월드컵 성공 개최에 큰 역할을 했던 이용수 KFA 부회장은 "2002 월드컵이 없었더라면 그런 좋은 경기장을 한꺼번에 10개나 갖게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월드컵을 개최하지 않았다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월드컵 규격을 갖춘 경기장 10개를 갖고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고 설명했다. 훈련 시설 등도 2002 월드컵 준비를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이야 파주NFC와 천안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건설 중)를 비롯, 전국에 훌륭한 훈련 시설들이 많다. 하지만 2002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이용수 부회장은 "(2002 월드컵) 이전에는 A대표팀도 훈련 한 번 하려하면 버스를 타고 잔디구장을 찾아 뱅뱅 돌아야 했다. 훈련 한 번 하러 하남까지 다녀오는 일도 흔했다"고 회상했다.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파주NFC를 건립, 비로소 각급 남녀 대표팀이 언제든 훈련할 수 있는 전용 훈련시설이 생겼다. 이후 파주NFC는 대표팀 훈련뿐 아니라 축구 산업 관련 세미나와 교육 등 한국 축구 발전을 꾀하는 요람이자 성지로 자리 잡았다. 유소년 시스템과 지도자 교육 등 오늘날 한국 축구 발전에 큰 기능을 하고 있는 주요 시스템들도 이 시기 만들어졌다. 이용수 부회장은 "2002 월드컵을 준비하며 KFA 차원에서 '비전 2010'이라는 중기적인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했다. 지금의 지도자 라이선스 시스템과 관련 커리큘럼도 이 과정서 도입됐다. 또한 드래프트 제도를 자유선발 제도로 바꾸면서 유소년 축구 환경이 크게 바뀌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2002 월드컵이라는 메가 이벤트를 등에 업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큰 틀에서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축구계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시스템 변화도 월드컵이 없었더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아울러 이때 만들어진 '비전 2010'의 성공은 KFA가 새롭게 진행 중인 '비전 해트트릭 2033'이라는 또 다른 중장기적 프로젝트의 수립과 실현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다. 2002년 당시 10개 팀으로 구성된 1부 리그뿐이었던 K리그가 이제는 K리그1·2를 합쳐 23개 팀으로 늘어나고 K3부터 K7까지 탄탄한 하부 리그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도 결국은 2002년이 준 선물인 셈이다. 2002 월드컵은 한국 축구,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식의 변화'도 가져왔다. 눈에 보이는 경기장과 잔디 구장의 증가보다도 더욱 큰 센세이션이었다.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2002 월드컵 당시 축구는 남녀노소, 진영, 계층을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 모두를 하나로 묶었다.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는데, 축구가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걸 한 번이라도 느껴본 것과 그렇지 않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한 위원은 "2002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와 팬들 간의 접촉면이 늘어났고 축구를 보는 형태와 규모가 완전히 새 역사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시기 한국 축구는 공정함이 뿌리내렸고, 과학적 시스템 도입에 대한 필요성도 실감했다. 한 해설위원은 "2002 월드컵 당시 대표팀은 공정한 선수 선발로 한국 스포츠 사상 최고의 성과를 냈다"면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공정한 선발과 과학적인 운영은 한국 축구 전체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한국 축구에 만연하던 학연·지연과 불공정한 악습 등이 많이 사라져, 발전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각 분야별 전문 코치와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훈련 프로그램 도입도 이 시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2002 월드컵 대표팀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한국 축구 전체가 자신감을 얻은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용수 부회장은 "이전까지 1승도 하지 못했던 대표팀이 4강까지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축구 전체가 자신감을 얻었다. 엘리트 축구인 A대표팀의 성공이었지만 그것은 그동안 쌓여왔던 한국 축구 전체의 가능성을 활화산처럼 터뜨리는 계기가 됐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장에서 오랜 시간 축구해설도 겸했던 이 부회장은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는 중요 대회에 나설 때마다 이전보다 훨씬 자신감을 갖고 나서고 있다. 그때의 열매가 한국 축구 전체를 20년 동안 받쳐준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2002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렸던 설기현 경남FC 감독 역시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설기현 감독은 "이전까지 유럽이나 남미 등 강호들과 경쟁한다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2002 월드컵 이후로는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비단 A대표팀뿐 아니라 국가대표팀 선수를 꿈꾸는 많은 유망주들, 축구 산업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까지 이전엔 갖지 못하던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를 등에 업고 한국 축구는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 다가올 2022년 월드컵에서도 그동안 축적된 자신감과 실력을 바탕으로 더 큰 성공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02 월드컵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상식과 모든 기본적인 것들을 가능하게 한 큰 계기"라면서 "참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2002 20주년③]"어제처럼 생생, 인생 최고의 순간"…영웅들이 돌아본 그때

[2002 20주년③]"어제처럼 생생, 인생 최고의 순간"…영웅들이 돌아본 그때

[편집자주]보면서도 믿기 힘들던 2002 월드컵 4강의 기적이 벌써 20주년을 맞았다. <뉴스1>은 그때의 영웅들을 만나 과거와 현재를 되짚고 새롭게 나아갈 20년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언제 떠올려도 흐뭇할 일이나 매양 '그땐 그랬지'로 끝나선 곤란하다. 더 흐릿한 기억이 되기 전에, 미래발전을 위한 값진 유산으로 활용하려는 생산적 자세가 필요하다.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김도용 기자,안영준 기자 = 벌써 2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한일 월드컵 영웅들에게 2002년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제는 지도자로, 행정가로, 방송인으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구성원 모두 "그때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 생각하는 것은 동일하다. 박지성(41)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는 2002 월드컵이 낳은 최고 스타다. 월드컵을 통해 네덜란드 에레데비지에 에인트호벤에 입단한 박지성 위원은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QPR(이상 잉글랜드) 등에서 뛰면서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박 위원은 뉴스1을 통해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말을 들으니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면서 "아직도 생생하게 많은 장면들이 기억난다. 내 기억 속에 평생 남아서 날 웃음 짓게 만들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한일 월드컵을 돌아본 박지성 위원은 "축구 선수 생활 중 가장 자랑스럽고 행복했던 시간"이라며 "그 기분을 또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으로 계속 선수 생활을 했다. 어찌 보면 너무 일찍 영광의 순간을 맞이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월드컵 당시 주장으로 4강 신화의 중심에 섰던 홍명보(53) 울산 감독도 당시를 떠올리며 특별한 감정을 나타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영광을 항상 갖고 살았기 때문에 '벌써 20년이 됐나'라는 생각도 든다"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하나됐던, 한국 축구사에 있어 가장 성공한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선홍(54) 23세 이하 축구대표팀 감독과 함께 맏형으로 임했으니 더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홍 감독이다. 그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었는데 과외 선생님(히딩크 감독)을 잘 만나서 풀어낸 느낌"이라고 웃은 뒤 "1990년부터 월드컵을 9경기 뛰었는데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언제나 벽에 부딪히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전 월드컵들을 회상했다. 이어 "앞선 3차례 대회에서 실패했기에 다시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컸고 고민거리이 많았다. 그러나 국민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팬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월드컵 첫 승(폴란드전 2-0 승) 결승골 주인공인 황선홍 감독도 비슷한 마음이다. 그는 "홍 감독과 함께 최고참이었기에 승리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다"면서 "선수 인생에 있어 마지막 승부수였다. 다행히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승부수가 통했다"고 미소 지었다. 황 감독 첫 골을 어시스트 했던 이을용(47) 전 감독도 폴란드전 도움의 기억과 느낌이 생생하다고 했다. 이을용 감독은 "(황)선홍이형에게 크로스 했을 때의 순간이 여전히 또렷하다"면서도 "아들 (이)태석이가 2002년생인데 벌써 프로에서 뛰고 있다. 시간이 참 빠르다"고 웃었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선방으로 4강 신화의 일등공신이 됐던 이운재(49) 전북 현대 코치도 그날을 떠올리면 감정이 복받친다. 이 코치는 "20년이 지났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없이 귀중한 시간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자 축구 선수로서 새로운 전환점이 됐던 월드컵이었다"고 강조했다. 홍명보 감독과 함께 대한민국 최후방을 든든히 책임졌던 최진철(51) 전 감독에게도 한일 월드컵은 굉장히 소중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최 감독은 "세월이 참 빠르다"며 "20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가슴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특히 폴란드와의 첫 경기는 잊지 못한다. 당시 긴장감과 첫 골(황선홍)이 들어갔을 때의 환호, 승리했을 때의 감정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골의 주인공이었던 설기현(43) 경남 감독도 한일 월드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설 감독은 "대표팀에서 월드컵 4강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을 경험했다"며 "월드컵을 계기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고 지도자인 지금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안정환의 골든골을 어시스트 했던 이영표(45) 강원FC 대표이사도 월드컵 4강 신화에 큰 의미를 전했다. 이영표 대표는 "축구가 갖고 있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때 여실히 느꼈다"면서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앞에 모두가 하나 돼 서로 포옹하게 만들었다. 최근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분열된 한국 사회에 한일 월드컵은 어떤 메시지를 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2 월드컵이 있었기에 유럽에 나갈 수 있었다. 덕분에 축구인생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기대하지 못했던 큰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면서 "유럽 축구를 통해 얻은 경험이 내게 자신감을 가져다 줬다. 그것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포르투갈전에서 세계적인 축구 스타 루이스 피구를 꽁꽁 묶었던 송종국(43)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값진 시간이다. 송종국은 현재 축구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2002년 멤버들과 예능 프로그램도 출연 중이다. 송종국은 "6월이 올 때마다 특별한 느낌을 받았는데 어느새 20주년이 됐다"며 "예전 동료들을 보면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났다는 것을 느낀다. 그때 멤버들이 지금 감독이나 대표이사 등 축구계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을 보니 나이 먹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고 했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수문장이었던 김병지(52)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2002년 월드컵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는 "벌써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그때 멤버들이 축구를 참 잘했다. 덕분에 한국 축구가 4강이라는 기적을 쓸 수 있었고 축구 붐이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병지 부회장은 "한일월드컵은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겨준 대회"라며 "결과적으로 대회가 끝난 뒤 박지성, 이영표와 같은 선수들이 해외 무대에 나가서 한국 축구가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는 2002년 월드컵 멤버들이 힘을 합쳐 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돌려 드리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