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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작부터 격렬한 '하투', 파업 자제하고 대화로 풀라

올여름 노동계의 하투가 예년과는 다른 충격을 산업계에 미칠 전망이다. 올해 하투에는 임금 인상과 복지 문제를 넘어 첨예한 노사 간 쟁점들이 대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촉발된 원청과 하청의 고용구조 논쟁이 이번 하투의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여기에 완성차·정보기술(IT) 업계의 성과급 분쟁이 하투에 불을 지를 태세다. 나아가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고용불안까지 첩첩산중으로 얽히면서 하투의 파고가 거세질 전망이다. 이렇게 하투 쟁점들을 따져 보면 이 나라가 파업 공화국인가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먼저, 하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노란봉투법 시행이 촉발한 원청교섭 전선의 확대다. 지난 3월 법 시행 이후 원청과 하청 간 교섭을 놓고 갈등이 번지고 있다. 자동차·조선·철강·플랜트·건설 등 우리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업종들이 한꺼번에 원청교섭 문제를 놓고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재계에서는 노란봉투법이 통과되기 전부터 사업장 내 극심한 혼란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왔다. 그런 걱정이 현실이 되었고, 이제는 거센 하투를 일으킬 불쏘시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성과급 분쟁까지 덮쳤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파업권을 확보했다. 카카오는 창사 이래 첫 파업에 이어 '로그아웃 데이'를 예고했다. 이처럼 원청교섭 투쟁에 이어 성과급 분쟁이 제조업과 IT 업계를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형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금속노조는 AI 도입 시 고용과 인권 보호를 핵심 요구안에 포함시켰다. AI가 인간 노동시장을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있지만 즉시 나타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미래에 벌어질 문제까지 올해 투쟁의 무대로 끌어들인 것이다. 무조건 노동자를 탓할 순 없다. 노동3권은 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다. 그러나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한 요구는 기업은 물론 경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기업들의 생존을 건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세계시장을 잠식하고, 미국과 유럽은 관세장벽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등 각국의 경쟁이 살벌하다고 할 정도다. 한국 제조업은 그 사이에 끼어 사면초가 형국에 놓여 있다. 이 엄중한 시기에 파업을 볼모로 잡고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하투에 나서는 노동계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겠나. 노란봉투법 시행을 둘러싼 갈등은 노사 간의 대화로 풀 여지가 충분하다. 법 취지와 현장 적용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게 합리적 해결책이다. 원청의 사용자성 범위와 교섭 절차 등은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노동계도 요구를 관철할 만능의 무기로 파업을 꺼내 들기 전에, 대화의 끈을 먼저 잡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혼란을 자초한 노란봉투법이다. 문제가 크다면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강남視角] 텍스트힙, 유행 넘어 습관 됐으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픈런 도서전'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24~28일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얼리버드 티켓이 5일 연속 매진됐고, 1인당 구매 한도를 49장에서 10장으로 줄여야 할 정도로 예매 경쟁이 치열했다. 매년 15만명 안팎이 찾는 행사가 또 한번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비슷한 시기에 작은 도서전인 서울제대로도서전, 거북목도서전, 서울한평도서전 등도 열렸다. 책이 안 팔린다는 출판계의 오랜 한숨이 무색할 정도다. 이 열기의 배경에는 '텍스트힙(Text Hip)' 현상이 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행위 자체를 멋지고 트렌디하게 여기는 문화다. 단순히 독서가 좋다는 차원을 넘어, 북카페에서 책 읽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인증샷을 SNS에 올리는 식으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 됐다. 아이돌 팬덤에서 시작된 흐름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2024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확산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의 발생 배경이다. 한때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인식이 강했던 독서가 어떻게 '힙한' 자기표현 수단으로 뒤바뀌었을까.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독서 인구가 줄어든 현실에서 그 답을 찾는다.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희소해지면서, 책 읽는 모습이 오히려 지적이고 차별화된 이미지로 돋보이게 됐다는 해석이다. 과거에는 너무 흔해서 특별할 게 없던 행위가 모두가 영상 콘텐츠로 시간을 보내는 시대에는 거꾸로 '남과 다른 나만의 취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된 셈이다. 여기에 SNS 인증 문화가 기름을 부었다. 텍스트힙은 단순히 읽는 행위에 머물지 않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공유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책 표지를 든 인증샷, 북카페에서의 독서 풍경, 마음에 든 문장을 캡처해 올리는 행위 모두가 콘텐츠가 된다. 이는 독서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전시'로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기존 독서 문화와 결이 다르다. 책을 다 읽었는지보다 책을 읽는 모습이 얼마나 그럴듯한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도서전 풍경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된다. 굿즈를 사려는 줄, 사인회를 향한 인파, 다양한 연령대가 한자리에 모이는 모습은 분명 책에 대한 관심이 살아있다는 신호다. 한 출판평론가는 텍스트힙을 통해 10~20대의 독서 관심이 높아졌고, 굿즈는 이들의 문화 소비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짚었다. 출판사는 굿즈를 브랜딩 수단으로 활용하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 출판사와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흥미로운 건 이 열기가 서점이라는 공간의 성격까지 바꿔놓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교보문고는 이성적 호감을 목적으로 번호나 SNS 계정을 주고받는 '번따'의 명소로 떠올랐다. 책 읽는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는 인식이 서점을 '헌팅 명소'로 만드는 다소 예상 밖의 부작용을 낳은 셈이다. 불편 신고가 이어지자 광화문점은 "낯선 대화나 시선으로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해달라"는 안내문까지 내걸었다. 서점이 '힙한 만남의 장소'로 소비되는 모습은 텍스트힙 현상이 얼마나 폭넓게,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까지 퍼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다만 이 모든 흥행이 한번의 유행으로 그칠지, 독서 문화의 체질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텍스트힙이라는 현상이 더 많은 사람을 책으로 이끄는 입구가 될 수도 있지만, 정작 '몇 권을 읽었는가'보다 '얼마나 멋지게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가'에 그친다면 유행은 금세 시들 수밖에 없다. 인증샷을 찍던 손이 다시 책장을 넘기는 손으로, SNS에 올리는 한 줄 후기가 다음 책을 고르는 안목으로 이어질 때 텍스트힙은 비로소 유행이 아닌 습관이 된다. 이 같은 관심이 책장 안으로 들어가 오래 머물 수 있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도서전의 흥행이 아니라 축제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다시 책을 펼치는 일상이다.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사설] 세계 곳곳서 잇단 강진, 비상시 대응책 정밀점검을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연쇄 지진으로 인명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북부 카리브해 연안에서 잇따라 발생한 지진으로 사망자는 1400명을 넘었고 부상자도 3000명을 웃돌고 있다. 실종자가 7만명에 이르는 데다 구조 작업마저 늦어지면서 희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인 72시간이 다가오는 가운데 각국 구조대와 시민들은 한 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미국은 수색·구조와 항공 수송 지원에 나서는 한편 1억5000만달러의 긴급 지원을 결정했다. 프랑스·네덜란드·스위스·스페인 등도 구조 인력과 장비, 구호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레오 14세 교황도 10만유로의 구호금을 전달하는 등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정부도 500만달러의 긴급 지원을 결정했고 민간의 온정도 잇따르고 있다. 지구촌의 다른 곳에서도 강진이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와 가까운 일본에서는 지난 25일과 28일 이와테현 인근 해역에서 규모 7.2와 6.1의 지진이 발생했고, 27일에는 후지산 인근 야마나시현에서도 규모 5.6의 지진이 일어났다. 필리핀과 아프가니스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도 강진이 있었다. 세계 어디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2024년 전북 부안에서 규모 4.8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규모 2 이상 지진은 모두 87차례 발생했다. 지난해에도 연천에서 수도권 내륙 최대 규모 3.3의 지진 등 79차례의 지진이 이어졌다. 국내에서도 언제든지 강진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작년, 향후 30년 내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80% 정도로 전망했다. 동일본대지진에 버금가는 강진이 발생할 경우 부산·경남의 고층 건물과 교량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해안에 지진해일(쓰나미)이 밀려올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도 대비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최근 관계기관, 민간 전문가들과 국내 지진 대응체계를 점검하고 내진 보강과 단층 조사 등 대비 상황을 재점검했다. 공공시설물 내진율을 현재 82.7%에서 2035년까지 100%로 높이고 민간 시설물에 대한 비용 지원과 세제 혜택도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에 더해 국가 핵심 기반시설에 대한 안전점검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동·서해안에서 원전 25기를 가동 중인 만큼 지진과 지진해일에 대비한 원전 안전 확보에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대만의 경험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한 대만은 1999년 규모 7.3 강진으로 2400여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다. 이후 내진 설계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등 꾸준히 대비한 결과 2024년 규모 7.2 강진 때는 피해를 크게 줄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참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대비한 결과다. 지진 대비는 아무리 철저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설] 반도체 호남 유치 논란 가열, 입지보다 중요한 건 없어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보고회'가 29일 열린다. 삼성전자는 이 자리에서 1000조원 넘는 투자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한다. 특히 호남 지역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일단 호남을 반도체 투자처로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핵심은 반도체 투자의 호남 편중이다. 이 문제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거세지자 이 대통령은 28일 SNS를 통해 "정부의 용수, 전력, 용지, 인프라 등 기업환경 조성과 공직자들의 설득·요청에 따라 최고경영자(CEO)들이 회사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해 결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정치적 의도로 호남 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여건을 갖추고 있고 기업을 설득해 입지를 호남으로 정했다는 뜻이다. 정부가 삼성전자 측에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요청했고, 그러면서 환경과 여건이 훌륭하다고 설명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국민의힘은 외압이자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반도체 단지 조성에 정치적 입김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밝혀왔다. 이 대통령은 그것을 행정지도나 행정 조성이라고 표현했지만, 어쨌든 정치권이나 정부가 관여한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나 정치권이 행정적으로 산업단지 조성과 기업 유치에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정치적 개입으로 볼 것인지 선을 명확히 긋기는 어렵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개입과 지도의 중간쯤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행정지도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반도체 호남 투자가 알려진 것은 6·3 지방선거 이후로 불과 한달이 채 되지 않는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트 호남 이전 주장이 나온 것도 올해 초다. 그렇다면 그사이에 삼성전자 등의 제3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관한 논의가 나왔을 것이고 여기에 정부가 관여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수도권에서 떨어진 호남과 영남은 다 같은 균형발전 대상지역이다. 정치적으로 갈라져 있는 두 지역이기에 입지 선정의 후폭풍은 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결정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할 것이 아니라 중앙·지방정부와 기업의 3자가 공개적 논의를 거쳤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느닷없이 호남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하니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업의 공장 입지 선정에 있어 최우선의 조건은 무엇보다 여건과 환경이다. 그다음은 정부가 추진하는 균형발전이다. 아무리 지역 발전이 중요하다고 해도 여건이 좋지 못하면 공장을 지을 수 없다. 정부가 호남 지역을 입지로 정한 것은 여건이 좋고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호남은 영남에 비해 산업단지가 적어 같은 여건이라면 반도체 클러스터를 지을 명분은 있다. 여건도 좋고 명분도 충분하다면 과정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영남의 산업단지들도 자동차 외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남 역차별 주장이 나올 법하다. 아직 시간은 있다. 최종 결정권은 기업이 쥔 가운데 입지 선정을 공개적으로 더 논의해야 한다. 반도체 외 유망 산업의 클러스터를 영남 지역에 짓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자수첩] 청년에게 필요한 건 양질의 일자리

언제부턴가 '쉬었음'은 청년들에게 자조의 언어가 됐다. 취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의욕을 잃은 사람을 빗댈 때도 '쉬었음'이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통계 분류 용어였던 이 단어는 이제 예능에서는 웃음 소재가, 온라인에서는 하나의 밈이 됐다. 단어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사이 현실은 더 무거워졌다. 지난해 쉬었음으로 분류된 2030세대는 71만7000명으로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2022년 62만명 수준이던 2030 쉬었음 인구는 2024년 69만명, 지난해에는 72만명에 육박하며 가파르게 늘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달 발표한 청년 뉴딜 정책은 대기업이 설계·운영하는 직업훈련 프로그램 'K뉴딜 아카데미'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공공 일경험과 구직촉진수당 지원을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청년들의 실무 경험과 취업 경쟁력을 높여 노동시장 진입을 돕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숫자가 말하는 현실은 정부의 진단과는 조금 다르다. 청년들이 준비가 부족해서 '쉬었음' 상태에 머무는 것이라면 대졸 이상 고학력 청년들이 증가세를 주도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졸업 이후에도 자격증과 인턴 경험을 추가하며 취업을 미루는 '취업 유예'는 일상이 됐다. 준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준비를 마쳤는데도 들어갈 만한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이제 정부의 시선도 청년이 아닌 노동시장으로 향해야 한다.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부터 줄였다. AI 확산은 신입보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는 흐름을 키웠다.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는 기업은 많지만 정작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역설이 이어지고 있다. 채용이 줄어드는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청년들의 경쟁력만 높이려 해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정책의 무게도 취업 지원을 넘어 노동시장에 활력을 되살리는 데 실려야 한다. '쉬었음'이 밈이 된 것은 청년들이 게을러졌기 때문이 아니다.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체념을 웃음으로 포장하는 법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이제 청년들에게 또 하나의 강의실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강의실이 아니라 준비를 끝낼 수 있는 노동시장이다. [email protected]

[강남視角] 검색 이후의 네이버

네이버 앱의 검색창 아래 8년 동안 자리 잡고 있던 초록색 원형 버튼 '그린닷'이 사라지고, AI탭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수많은 이용자들이 세상을 탐색하던 출발점이었던, 모바일 시대 네이버의 상징 아이콘이 교체된 것이다. 단순한 사용자환경(UI) 개편처럼 보이지만, 이 변화는 검색 서비스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네이버의 답변을 담고 있다. 사실 네이버의 역사는 검색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뉴스도, 쇼핑도, 콘텐츠도 결국 초록 검색창을 통해 연결됐다. 사용자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검색창을 열고 답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네이버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린닷은 그 위상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이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음식점을 찾을 때도, 여행을 계획할 때도, 보고서를 작성할 때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먼저 찾는 사용자가 빠르게 늘었다. 여러 링크를 열어 비교하는 대신 AI의 답변을 받아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보 검색의 순서만 바뀐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검색 후 정보를 얻고 행동했다면, 이제는 AI에 질문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험이 익숙해지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검색 서비스를 AI 중심으로 재편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생성형 AI가 정보 제공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검색 시장의 경쟁은 이제 누가 더 많은 정보를 보여주느냐가 아니라, 누가 사용자의 다음 행동까지 자연스럽게 연결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네이버의 선택도 다르지 않다. 다만 더 큰 AI 모델 개발에 집중하기보다 자신이 이미 갖춘 생태계를 활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AI탭의 기능들을 보면 명확해진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자가 음식점을 찾으면 지도와 연결되고, 예약 가능한 시간이 즉시 표시되며, 실제 예약까지 한 앱 내에서 완결된다. 네이버가 부르는 '실행형 AI 에이전트'란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정보가 실제 행동으로 자동 연결되는 경험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네이버가 공개한 베타서비스 결과는 이런 전략이 실제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네이버플러스 멤버십 이용자를 대상으로 약 2개월간 베타서비스로 운영한 AI탭은 누적 사용자 400만명을 넘어섰다. 더욱 주목할 점은 AI탭 이용이 증가할수록 쇼핑과 지도 서비스로 이어지는 전환율도 함께 상승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정보 검색에서 실제 구매와 거래행동으로 연결되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이는 네이버의 전략이 단순히 새로운 기능 추가가 아니라 기존 플랫폼의 가치를 AI로 통합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네이버가 다른 글로벌 경쟁사와 다른 출발선에 서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일평균 5000만명이 찾는 네이버 메인은 국내 최대 디지털 접점이다. 검색, 쇼핑, 지도, 예약, 콘텐츠가 이미 하나의 생태계로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서 저녁 모임 장소를 찾아줘" "내일 저녁 8시에 3명 예약 가능한 서순라길 와인바 추천해줘" 등의 질문이 단순한 추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 예약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셈이다. 앞으로 네이버는 부동산 추천, 건강 관리 등 더 많은 기능을 AI탭에 추가할 계획이다. 모두 같은 맥락이다. AI 시대 검색 경쟁이 '정보량'에서 '행동 연결'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중요한 관건은 네이버의 AI탭이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실제 거래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자를 연결하고, 그것이 수익화로 얼마나 빠르게 이어지느냐 하는 점이 될 것이다. AI탭이 AI 시대 네이버를 상징하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email protected]

[fn사설] 기업의 지역투자, 정치 바람에 휘둘려선 안돼

[파이낸셜뉴스]  기업들이 앞다퉈 지역 투자에 나서고 있다. 삼성은 광주·전남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SK도 광주·전남에 전공정 팹을 비롯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망라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내주 국민보고회를 앞둔 26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들의 발표 숫자가 매우 낯설 것"이라고 밝힌 것도 막대한 투자 규모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현대차와 LG, 한화 등 주요 기업들은 K뉴딜 아카데미를 통한 지역의 청년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방산 등 미래 산업이 지역으로 확산되고, 투자가 청년 인재 양성과 맞물리는 흐름은 환영할 만하다. 수도권 집중과 청년 일자리 부족이 한국 경제의 고질병이 된 상황에서 기업 투자는 지역을 살릴 가장 강력한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실제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지역의 운명을 바꾼 사례도 적지 않다. 대만 가오슝이나 일본 구마모토가 반도체 공장 유치로 지역이 부활한 좋은 예다. 국내에서도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유치한 충남 아산은 인구가 크게 늘며 젊은 생산도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기업이 들어선다고 지역이 저절로 부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나 데이터센터 같은 첨단 시설은 막대한 전력과 용수, 숙련 인력, 물류망, 정주 여건이 뒷받침 돼야 한다. 지방에 공장을 짓겠다는 발표만으로 균형발전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는 관련 지역들이 실제로 대규모 첨단산업을 감당할 수 있는 지 두번 세번 따져보고 전력·용수·인재 공급 대책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야 한다. 호남권 반도체 유치를 둘러싼 타지역의 반발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구·경북과 구미 등은 소부장 기반과 산업단지 경쟁력을 내세우며 반발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산업 입지 결정에 정치가 과도하게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처음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새만금으로 옮기겠다는 식의 얘기가 나왔고, 반발이 커지자 호남에 별도의 새 공장을 짓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자율적 판단이 얼마나 보장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지역 균형발전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 과제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완화하고 지방에도 첨단산업의 성장판을 열어야 한다는 방향은 지극히 타당하다. 하지만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발전이 필요한 곳은 호남만이 아니다. 대구·경북, 부울경, 전북, 강원 등도 각자의 산업 기반과 절박한 사정을 갖고 있다. 기업의 투자가 특정 지역을 위한 선물처럼 비칠 경우 균형발전은 오히려 지역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는 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반도체는 지역 선물 보따리가 아니라 국가 생존 산업이다. 지역의 미래 경쟁력에 기반한 과학적이고 전략적인 전국 단위 산업지도가 필요하다. 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곳을 시장 원칙에 따라 선택하고 정부는 그 결정을 적극 뒷받침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기업이 앞다퉈 지역투자 의지를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이 기준이 더욱 지켜져야할 것이다.

[강남視角] 한강의 품격

서울 사람들은 한강을 건너기만 했다. 다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 차창으로 강을 흘끗 내려다볼 뿐, 그 물 위에 올라타 본 일은 없었다. 출퇴근길마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위를 시속 80㎞로 내달리며, 사람들은 한강을 풍경이 아니라 정체구간으로 기억한다. 강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장엄한 물줄기였지만 동시에 도시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는 거대한 장벽이다. 한강은 여름마다 다스려야 할 치수의 대상이고, 양쪽에 도로를 깔기 좋은 둔치였으며, 다리를 몇 개 더 놓아야 할 교통의 빈틈이었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대도시 가운데 이만한 강을 도시 한복판에 끼고 있는 곳은 드물다. 그런데 그 귀한 강을 가장 푸대접한 도시가 서울이 아니었을까. 강을 손본다는 것은 늘 강을 가두는 일이었다. 둔치를 콘크리트로 두르고, 고수부지를 주차장과 운동장으로 메우고, 물길을 곧게 펴 빠르게 흘려보내는 것. 홍수를 막고 길을 내는 데는 요긴했지만 한강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가는 곳이 됐다. 강에 다가가려면 복잡한 자동차도로부터 건너야 했다. 그렇게 서울은 강을 가까이 두고도 가장 멀리 사는 도시가 됐다. 서울시가 '한강버스' 계획을 발표했을 때 수많은 비판이 날아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울 시민에게 한강은 어디까지나 '바라보는' 강이었지 '타는' 강이 아니어서다. 그런데 올해 한강버스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운항을 재개한 봄부터 이용객이 다달이 불었다. 지난해 9월 정식 운항을 개시한 한강버스는 올해 정원박람회로 몰리는 이용객을 실어 나르면서 드디어 누적 이용객이 40만명을 돌파했다. 한번 타본 사람 열에 아홉은 또 타겠다고 했고, 만족한다는 응답이 100명 중 96명꼴이었다. 세금 낭비라던 한강버스 사업은 서울시장 선거의 표심까지 갈랐다. 꾸준히 늘어나는 이용객 숫자 앞에서 공세는 슬그머니 잦아들었다. 서울의 유권자들은 결국 발로 투표한 셈이다. 강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콘크리트 교각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비로소 그 위용을 드러내고, 강변의 빌딩 숲은 물에 거꾸로 잠겨 한 번 더 솟는다. 해 질 무렵이면 강물은 도심의 불빛을 받아 길게 일렁이고, 다리마다 켜진 조명이 수면 위에 두 번째 도시를 짓는다. 물살을 가르며 다리 밑을 지날 때, 매일 그 위를 건너기만 하던 도시가 문득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강을 가진 도시가 강물 위에 시민들을 올리는 일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런던의 템스강에는 '클리퍼'라는 수상버스가 다닌다. 지하철·버스와 같은 교통카드로 그냥 올라타면 되니, 시민들은 출근길 정체를 피하려 당연하다는 듯 배를 탄다. 파리의 센강에는 '바토뷔스'가 다닌다. 사방이 유리로 트인 배가 루브르며 에펠탑이며 도시의 명소만 골라서 잇고, 승객은 이동하는 내내 물 위에 떠서 파리를 즐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노란 전기배는 매연도 소음도 없이 운하를 미끄러진다. 자전거를 그대로 싣고 탈 수 있어, 깨끗한 도시라는 그 나라의 자부심을 닮았다. 런던은 실용을, 파리는 예술을, 코펜하겐은 친환경을 자기들의 강물 위에 그대로 투영했다. 도시가 가진 고유의 빛깔을 강에 입힌 것이다. 강 위에 길을 여는 일은 새 교통수단 하나를 보태는 것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고 완성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이제 서울 시민들도 그 정도 품격을 가질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한강버스가 대단한 명물이라고 추켜올리는 말이 아니다. 배 한 척으로 도시의 격이 단숨에 올라가지도 않는다. 다만 100년을 등지고 건너기만 하던 강 위에 비로소 사람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가치 있는 변화다. 런던도 파리도 아닌, 서울만의 빛깔을 강물 위에 입히는 일은 이제부터다. 적어도 그 물 위에 한번 올라본 사람이라면, 세금이 아깝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email protected]

[기자수첩] '머니 무브'의 그림자

"정말 적금 해지하시겠습니까?" 입사 후 매월 붓던 적금을 깨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1분 남짓이었다. 중도해지 이율이 적용된다는 경고문구도, 만기까지 남은 시간을 다시 알려주는 알림창도 그 순간만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적금을 깬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은행이 수신금리를 0.1~0.2%p 올린다는 기사를 쓰던 차였다. 같은 날 반도체주 주가 전망치가 줄줄이 상향 조정되며 '400만닉스·50만전자'를 예측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몇달 동안 돈을 묶어 얻는 이자와 단기간에 몇배씩 뛰는 주식 수익률 사이의 괴리감이 거대한 벽처럼 다가왔다. 은행권에서 말하는 '머니 무브'가 무엇인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은행에서 수억원을 증시로 옮기는 자산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월 넣던 적금을 중도해지하고, 만기가 된 예금을 다시 은행에 묶지 않은 채 증권사 앱을 들여다보는 평범한 직장인의 선택이 거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머니 무브가 보여주는 조급함이 다음 단계인 빚투(빚내서 투자)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상승장이 길어질수록 내 돈만 굴려선 주변의 화려한 수익률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때부터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통장을 뚫는 일이 기회를 잡기 위한 '레버리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된다. 실제 지난 23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8조6770억원으로 19일(107조6932억원)과 비교해 4일 새 1조원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마이너스통장 잔액도 43조3000억원을 넘어서며 연일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며 빚투 브레이크를 밟고 있지만 시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이 아니면 놓친다"는 불안심리를 자극해 카드론 등 고금리 상품으로 수요가 몰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한도 제한은 투자자들에게 '막차 안내방송'처럼 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시장은 속도전에 들어갔다. 옆 사람이 뛰니 나도 뛰고, 문이 닫힌다니 일단 몸부터 던지고 보는 식이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선로가 안전한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열차에 몸을 맡기는 형국이다. 대출 문턱을 높이는 일방적 규제만으로는 이 뜨거운 수요를 잠재우기 어렵다. 또 다른 대출 우회로를 찾게 만드는 풍선효과를 낳을 뿐이다. 지금 필요한 건 규제의 벽을 넘은 빚이 어디로 숨어들고 쏠리는지 그 위태로운 종착지를 추적하는 일이다. [email protected]

[사설] 상반기 1000만 K관광, '한일판 솅겐'으로 더 키워야

올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상반기에만 1000만명을 넘어섰다. 반기 기준 방한 외국인 1000만명 돌파는 역대 처음이다. 지난해보다 한 달가량 빠른 속도이고, 이 추세라면 사상 첫 연간 2000만명 돌파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를 홀린 K팝과 드라마, 뷰티, 푸드의 저력이 비로소 K관광 경쟁력으로 이어져 방한 수요를 끌어올린 것이다.관광객 증가가 소비 확대로 이어진 것 역시 고무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신용카드 지출액은 지난달 월간 기준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지방 공항을 통한 입국도 늘어 지난달 지방 공항 입국 외국인은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했다. 관광특수가 수도권 일부 상권에 그치지 않고 지방 도시와 지역경제 회복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K관광을 일회성 호황이 아닌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산업으로 키우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가 됐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5일 한일 관광협력 토론회에서 제기한 '한일판 솅겐조약' 구상은 이런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관광업계는 여권 대신 주민등록증으로 왕래하는 방안, 자국 간편결제 인프라 확대, 한일판 유레일패스, 단일 관광비자 도입 등을 제안했다. 한일 관광협력은 한일 경제연대 가운데 가장 허들이 낮고 국민이 효과를 빠르게 체감할 수 있는 분야다. 관광협력을 단순한 민간교류나 여행편의 차원이 아니라 양국 경제의 새 성장판을 여는 전략과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실제로 경제적 파급효과도 작지 않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일판 솅겐조약 체결로 최대 6조7000억원의 생산과 2만7000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기대된다. 추가 관광객 유입도 190만명에 이른다. 관광수지 개선 효과도 최대 19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제도 개선만으로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정부가 적극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단번에 전면 시행하기는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 보안과 불법체류, 출입국 관리 시스템 연계 문제 등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논의 자체를 미룰 일은 아니라고 본다. 김포~하네다, 부산~후쿠오카, 제주~오사카 같은 특정 노선이나 단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부터 시작해 볼 수 있다. 관광객이 실제로 체감하는 결제·교통·통역·지역이동의 불편을 함께 줄여야 효과도 커진다. 자국 간편결제 연동은 관광객의 소비편의를 높이고 지출 확대를 이끄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의 KTX와 일본의 신칸센, 양국 여객선을 묶은 한일판 유레일패스 도입도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한일 관광협력은 경제효과를 넘어 양국 관계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다. 과거사와 외교 현안으로 양국 관계가 흔들릴 때도 국민 간 교류가 촘촘하면 협력의 복원력은 강해진다. 관광을 한국 경제의 새 성장동력이자 한일 협력의 실질적 플랫폼으로 키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