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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변동성 증폭기 '삼전닉스 레버리지 ETF' 개선 시급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의 일간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국내 증시를 흔들고 있다.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 하락 시 손실도 두 배로 불어나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이 도입을 후회하는 취지의 발언까지 내놓으면서 시장 안팎에서는 대책 마련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23일 코스피지수는 10% 가까이 하락하며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한 달 전 도입된 두 종목의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는 시장 하락폭을 훨씬 웃도는 평균 25% 급락했다. 이는 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상품 도입 직후부터 등락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음의 복리효과'의 덫에 걸린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코스피 시가총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두 종목에 레버리지가 집중되면서 시장 변동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드러누워 막았어야 했나,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수장이 정책 실패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황성엽 금융투자협회장도 "손실이 커질 수 있어 염려된다"고 우려했다.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최근 미국과 유럽 증시 급락 과정에서 한국 시장발 충격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관련 매도세가 겹치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전했다. 노무라증권도 "레버리지 ETF를 둘러싼 구조적 역학으로 변동성이 증폭되고 있다"며 "지구 반대편에도 영향을 미치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상품은 투자자 선택권을 넓히고 해외로 유출되는 투자 수요를 국내로 흡수하기 위해 지난달 도입됐다. 적은 자금으로 레버리지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장점도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시장에서도 이미 출시된 만큼 글로벌 추세에도 부합한다. 하지만 부작용이 현실화된 상황에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미 도입된 상품을 퇴출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금융당국 수장이 공개적으로 '후회'와 '반성'을 언급할 정도라면 동원 가능한 대책을 모두 강구해야 한다. 우선 유사한 초고위험 상품의 추가 출시는 신중해야 한다. 시장 활성화에 대한 의욕이 투기성 금융상품의 위험을 가려서는 안 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예탁금 요건을 강화하고 신용공여 한도 축소와 증거금 비율 상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레버리지와 빚투가 결합하면 시장 불안을 더욱 키울 수 있다. 현재 2시간인 사전 의무교육을 늘리는 등 투자자 적격 요건을 높이고, 증권사의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한 감독 역시 강화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시장 왜곡과 투자자 손실을 최소화할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사설] 증시 뜨거워도 MSCI 불발, 시장 선진화 더 고삐를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관찰대상국 등재가 또다시 불발됐다. MSCI는 23일(현지시간) 공개한 '2026년 연례시장 분류결과'를 통해 역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전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점 등을 들어 한국 증시를 선진국지수 관찰대상국에 올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올 들어 코스피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이 일었지만 시장 제도와 관행은 아직 선진국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시장 선진화를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아직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 글로벌 규모와 기업 경쟁력, 증시 시가총액을 감안할 때 증시가 여전히 신흥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물론 정부와 금융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투자자 등록제 폐지, 외환시장 거래시간 연장, 공매도 재개 등 여러 조치를 추진했다. 그럼에도 MSCI가 한국을 관찰대상국에 올리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개방 수준이 미진하고, 개선책 효과 역시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된 것이 원화의 역외거래 제한이다. 원화는 여전히 해외시장에서 실물 인도 방식으로 자유롭게 거래되기 어렵다. 역내 외환시장 거래시간이 늘어났다고 해도 실제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으면 글로벌 인덱스펀드와 기관투자자 입장에선 환헤지와 자금 운용에 제약이 생긴다. 공매도 역시 전면 재개됐지만 새 감시체계 아래에서 시장 참가자들이 느끼는 운영 부담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가 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의식해 속도 조절을 해온 측면도 있는데 이를 감안해 균형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선진국지수 편입의 효과는 작지 않다. 지수 추종자금이 대거 유입되고 외국인 투자 저변이 확대될 수 있다. 증시 변동성이 줄고 밸류에이션이 개선되는 효과도 상당하다. 상징적인 의미는 더 크다. 한국 증시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선진시장으로 인정받게 되는 만큼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 증시가 계속 신흥국에 머무르는 것은 경제 위상과 맞지 않는 일이다. MSCI 선진국지수에는 미국·일본·영국 등 23개국이 포함돼 있는 반면, 한국은 중국·인도 등과 함께 신흥국지수에 묶여 있다.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와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글로벌 기업 경쟁력을 감안하면 어색한 분류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지난 1992년 신흥국지수에 편입된 뒤 번번이 선진국 진입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고 편입만 되면 증시 체질이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기대는 곤란하다. 최근 한국 증시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대를 타고 과열 논란이 나올 정도로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수 편입 기대가 다시 투기적 자금 유입을 자극할 수도 있다. 신흥국지수에서 빠지는 과정에서 일부 자금 이탈이 생길 수 있고, 대형주 쏠림이 심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를 이유로 선진국지수 편입을 주저할 것이 아니라 시장 선진화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투자 저변을 다지는 것이 맞는 방향이다.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은 결국 시장 신뢰의 문제다. 정부는 속도감 있게 제도 개혁을 추진해 시장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어렵게 활기를 찾은 증시가 MSCI 선진국지수 편입으로 지속 가능한 상승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테헤란로] 반도체로 분열된 사회

SK하이닉스에 다니는 지인은 요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성과급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가족 모임에서도 비슷하다. 말로는 아무도 요구하지 않지만, 왠지 올해는 그가 무슨 선물을 해올지 기대하는 눈빛이 느껴진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하이닉스로 가주세요"라고 해도 돌아오는 말은 비슷하다. "성과급 많이 받으셨겠네요." 그는 "이마에 성과급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기분"이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부러웠다. 그 정도 성과급을 받는다면 그쯤의 시선은 감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러나 곱씹어보니 이 장면이 지금 한국 사회가 반도체를 바라보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도체가 잘되자 모두가 반도체를 이야기한다. 노조는 성과급을, 주주는 배당을, 지방자치단체는 공장을 원한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이 가져올 세수 효과를 계산한다. 모두 이해할 만한 요구다. 성과를 낸 노동자는 보상받아야 하고, 투자자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지역은 좋은 일자리를 원한다. 문제는 순서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반도체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반도체가 앞으로도 계속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무엇을 해야 하느냐다. 성장의 과실을 말하는 목소리는 넘치지만 성장의 조건을 묻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호남 반도체투자설'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지역 발전을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본질은 호남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정말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입지가 어디냐는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 반도체 공장이 지역균형발전의 상징처럼 소비되기 시작하면 논의는 위험해진다. 반도체는 정치적 배분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다.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는 단순히 지역 안배로 결정할 수 없다. 전력과 용수, 인력, 협력업체, 물류망, 인허가 속도까지 맞물려야 한다. 어느 지역이 더 절실한지가 아니라 어느 곳이 반도체 경쟁력을 가장 높일 수 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물론 반도체의 성과는 사회와 나눠야 한다. 기업만 배불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성과를 배분하는 논의가 경쟁력을 쌓는 고민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 대만, 일본이 반도체 전쟁에 뛰어든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음 10년의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지 묻는 일이다. 열매를 나누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나무가 계속 자라야 열매도 있다. aber@fnnews.com

[강남視角] 민간에 방치한 매물 정보

선거를 치르고 나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여론조사, 특히 방송 3사 출구조사 무용론이다. 지난 3일 치른 지방선거 역시 다시 한번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됐다. 출구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수도권 전역을 비롯, 11개 시도에서 우세하고 4곳에서 경합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접전지역이 속출했고 서울과 경남에서는 결과가 뒤바뀌기도 했다. 이겨도 이긴 것처럼 안 느껴지고, 져도 진 게 아닌 것 같다는 얘기가 나왔다. '샤이 응답자'와 사전투표 증가가 출구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의 괴리를 불러왔다고 해석됐다. 하지만 뒤늦게 서울·대구·울산·충북 4개 지역에서 사전투표자 예측 데이터가 누락된 채 당일 출구조사 결과만 반영된 것이 확인됐다. 출구조사와 실제투표 결과가 달랐던 결정적인 이유로 지목됐다. 여론조사만큼 데이터에 민감한 분야가 부동산 시장이다. 매주 발표되는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을 비롯해 부동산심리지수, 미분양주택 현황, 주택 인허가·착공·분양·준공 실적, 청약통장 가입 현황,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 KB주택가격동향조사,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HBSI), 아파트 입주전망지수 등 주택시장과 관련된 정기적인 데이터 발표만 어림잡아 30개가 넘는다. 특히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은 일반인, 업계 관계자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찾아보는 데이터 허브가 됐다.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중개플랫폼 직방과 다방,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 플랫폼 호갱노노와 아실 등이 모두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제공한다. 이쯤이면 주택시장 관련 정보는 모두 데이터화된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바로 매물 정보다.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에 매물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집을 구하려는 수요자들이 매물을 확인하는 주요 루트는 네이버나 아실이다. 특히 네이버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부동산매물클린관리센터를 통해 허위매물 여부를 검증받는다. 아실은 네이버에 올라온 매물을 기반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허위매물은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한 공인중개사가 무려 1300건을 시세보다 훨씬 싸게 올린 것이 서울시·국토부 조사에서 적발되기도 했다. 생활숙박시설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올려놓은 인터넷 광고도 315건이 적발됐다. 더 큰 문제는 주택시장의 흐름을 판단할 핵심 기준인 매물 증감을 민간업체의 데이터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아파트 매물통계를 공개하는 대표적인 민간업체는 아실이다. 이 플랫폼에서는 시도, 시·군·구별 매물 통계를 매일 업데이트한다. 매매, 전세, 월세까지 일별로 제공하다 보니 기자들은 매일 이 플랫폼을 들여다보며 기사 작성에 참고한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발표로 서울 아파트 매물이 늘었을 때도, 실제 시행 전후로 매물이 줄었을 때도 기초 데이터는 이 플랫폼에서 나왔다.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의 증감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빌라 매물정보 플랫폼도 주목을 받았다. 재개발닷컴이라는 플랫폼인데 수도권과 부산의 매물정보를 제공한다. 물론 참고용일 뿐 개별 정보는 중개 플랫폼이나 공인중개사를 통해 확인하라고 공지하고 있지만 한두번 인용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지난 2021년 아실 데이터를 인용해 작성한 전세매물 부족 기사에 대해 '민간업체에서 제공하는 매물 데이터는 거래상황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며 시장상황 판단에 유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민간 플랫폼의 매물 데이터는 말 그대로 대세가 됐다. 국토부 말대로 매물 데이터는 시장 상황 판단에 주요하다. 이쯤이면 정부가 나서서 매물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거나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cynical73@fnnews.com 김병덕 기자

[강남視角] '셔세권'과 실리콘밸리의 교훈

2013년 12월 어느 새벽,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 24번가. 저소득 주민이 반세기 넘게 살아온 이 동네에 구글 로고를 단 2층 통근버스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곧바로 기다리던 노란 조끼의 활동가와 주민 수십명이 버스를 둘러쌌다. 확성기에서 날카로운 구호가 터졌다. "샌프란시스코는 투기 대상이 아니다." 이듬해 4월, 인근 오클랜드에선 애플·구글·야후의 통근버스가 시위대에 30분 넘게 가로막혔다. 한 시위자는 버스 지붕 위로 올라가 오물을 투척했다. 과격했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주민들에게 통근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빅테크의 성공과 오만,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현실, 그 불평등을 보여주는 존재였다. 시위는 2016년까지 이어졌다.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성장과 주택 공급 부족 속에서 통근버스는 고소득 정보기술(IT) 인력을 샌프란시스코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출퇴근이 편해지자 편의시설이 좋은 도심에 살며 인근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원이 늘었다. UC버클리 연구 결과 셔틀버스 정류장 인근 임대료는 주변보다 20% 이상 높았다. 2011년부터 2014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평균 임대료는 50% 넘게 뛰었다. 원주민들은 하나둘 동네를 떠났다. 통근버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표상이 됐다. 2026년 6월 한국에서는 수도권 남부가 들썩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구가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최대 수억원대 성과급이 돌아갔다. 대출규제로 일반인 자금줄은 막혔지만, 이들은 최대 5억원까지 저금리 사내대출도 받을 수 있다. 일반 수요자보다 훨씬 강한 구매력을 갖게 된 셈이다. '삼전닉스' 직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용인·수원·분당 일대는 이미 이들 회사의 셔틀버스 노선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돼 있다. 이른바 '셔세권'(셔틀버스+역세권)이 새 투자처로 떠올랐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셔틀버스 노선도가 임장 지도로 공유된다. 용인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요즘은 셔틀 노선도를 들고 집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5일까지 화성 동탄 아파트값은 9.57% 올랐다. 전국 상승률 1위다. 용인 수지(9.03%), 성남 분당(7.4%), 수원 영통(5.72%)의 누적 상승률도 5%를 넘겼다. 수도권 평균 아파트값 상승률(2.8%)을 크게 웃돈다. 동탄은 규제지역 지정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연히 전월세가 상승세도 가파르다. 다시 10여년 전 실리콘밸리. 거센 시위 뒤에야 기업과 지방정부가 움직였다. 빅테크들은 정류장 사용료를 내고 일부 노선과 운행 횟수를 줄였다. 구글은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무료 버스 패스를 지원했다. 구글과 메타는 각각 10억달러 규모의 주택지원 계획을 내놓고 보유 토지를 주택용으로 돌렸다. 애플도 수십억달러를 주거 지원에 쏟았다. 하지만 한번 뛴 집값과 주택난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국에 실리콘밸리 사례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셔세권' 주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도 아니다. 기업 문화도, 주택시장 구조도 다르다. 단순 비교는 무리다. 그렇다고 교훈까지 외면할 일은 아니다. 통근버스가 집값을 끌어올리고, 그 부담이 누군가를 밀어내며, 결국 기업과 지역 모두의 비용으로 돌아오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다. 갈등은 대개 집값이 오른 뒤에야 터져 나온다.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은 이를 한동안 외면했다. 기업들도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그 대가로 주민과 기업, 도시 모두 수년간 막대한 갈등비용을 치러야 했다. '셔세권'이 성공의 상징으로 남을지, 갈등의 씨앗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주민들의 불만이 밖으로 터져 나온 뒤에는 이미 늦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외침은 치솟는 집값보다 그 뒤에 가려진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데서 비롯됐다. '셔세권'이 양극화의 상징이 되어서는 안 된다. sangsoo123@fnnews.com

[사설] 최저임금 논의, 벼랑 끝 자영업자 호소 귀 기울이길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최저임금 논란이 올해도 거세다. 노동계가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전년보다 16.3% 인상된 1만2000원을 제시했다. 최저임금은 근로자 생계 보호라는 본연의 취지가 우선이다. 하지만 중소 자영업자들의 존폐위기와 고용 악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최저임금 논쟁이다. 최저임금 인상안을 논의할 때 여러 가지 파급효과를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전국 자영업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조사는 최저임금 인상의 파급력을 읽을 수 있다. 응답자의 57%가 올해 경영 상황이 지난해보다 나빠졌다고 답했다. 개선됐다는 응답은 고작 8.4%에 그쳤다. 특히 도소매업(66.3%), 숙박·음식점업(65.8%) 등 서민 밀착형 업종일수록 체감경기 악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영업이 힘들다 보니 자영업자 3명 중 1명이 가져가는 월 소득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215만원대에 불과한 실정이다. 힘들게 고생하며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이 종업원 월급보다 못한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미 고용 여력이 없다는 응답도 59.2%에 달했고, 현 상황이 폐업 직전의 한계라고 토로한 응답자도 25.2%나 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정인건비가 올라 자영업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다. 자영업 운영 상황이 안 좋다 보니 노동계가 최저임금을 대폭 올려도 제대로 월급을 주지 못하는 문제까지 벌어진다. 실제로 자영업 가운데 숙박이나 음식업종의 경우 적자 영업을 면치 못해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많다. 현행 최저임금조차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외면한 채 인상안을 밀어붙이다간 자영업자들을 범죄자로 만들 뿐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안을 밀어붙인다면 자영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최악의 경우뿐이다. 고용을 줄이거나 극단적으로 폐업을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3명 중 1명 이상은 현재 최저임금 수준에서도 이미 판매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근로자 복지를 높이려고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면 오히려 물가를 자극해 저소득 근로자에게 피해가 되는 역설이 벌어질 수 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핵심 제도다. 다만 최저임금 논의를 단순한 명분만 놓고 진행해선 안 된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자영업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면 내수경제와 소비자까지 피해를 본다는 점을 두루 따져봐야 한다. 고용주의 지불능력과 고용 여건을 제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저임금 인상안을 논하는 행태를 매년 되풀이해야겠는가. 더구나 자영업자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최저임금 논의는 결국 일자리 감소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최저임금 논의로 가장 큰 수혜를 누려야 하는 대상은 저임금 근로자들이다. 냉정한 현실 인식과 균형 잡힌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사설] 민생 실패에 무너진 英 스타머, 우리도 경고 새겨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집권 2년 만에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노동당 압승을 이끌며 14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뤘던 정치 지도자가 지방선거 참패와 고물가 책임을 지고 결국 결단을 내린 것이다. 스타머의 퇴진은 한 정치인의 실패로만 볼 일은 아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데이비드 캐머런부터 스타머까지 10년간 총리 6명이 교체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민생은 나아지지 않았고 성장동력은 계속 약화됐으며, 공공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재정 여력은 소진돼 갔다. 브렉시트는 주권 회복이라는 정치적 구호로 포장됐지만 실상은 무역장벽, 투자위축, 인력난, 생산성 둔화라는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다. 스타머를 선택했던 유권자들은 영국의 변화를 갈망했지만 달라지는 것 없는 현실 앞에서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스타머의 퇴진은 영국의 구조적 피로감의 산물로 봐야 한다. 체력 고갈은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유럽의 또 다른 심장인 독일 경제도 비슷한 고통의 터널에 갇혀 있다. 독일은 한때 제조업 강자, 수출 강국, 재정 건전성의 모범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이 과했고 여기에 중국시장 둔화, 전기차 전환 지연, 과도한 규제와 관료주의가 한꺼번에 발목을 잡았다. 인공지능(AI) 속도전에서도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 독일은 일찍이 정밀제조와 자동차 산업에서 압도적 성공을 거뒀지만 과거의 공식이 AI 대격변기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프랑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원전·관광·문화산업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높은 공공지출과 재정적자, 연금개혁을 둘러싼 사회 갈등은 심각한 부담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 유럽 재정위기의 상징이던 남유럽 국가들이 오히려 반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한때 '피그스(PIGS)'로 불리며 유로존의 약한 고리였으나 혹독한 구조조정과 재정 관리로 체질개선을 이뤄냈다. 유럽 맹주들이 과도한 복지와 개혁 실패로 글로벌 입지가 약화된 것과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잇단 총리 교체와 유럽의 엇갈린 흐름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포퓰리즘과 정치적 구호가 경제 성과를 대신할 수 없다. 과거의 성공 산업에 안주하면 순식간에 주도권을 잃게 된다는 사실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반도체 호황이라는 강력한 순풍을 타고 있다. AI 시대가 열리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첨단 반도체 수요가 폭발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수출과 증시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는 한국 반도체를 다시 주목한다. 성장률 전망도 반도체 덕분에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호황이 한국 경제 전체의 체질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실적과 주가는 뛰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청년층과 서민의 체감경기는 싸늘하다. 증시와 부동산은 펄펄 끓는데 임금과 일자리, 주거안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반도체에만 기댄 경제는 예기치 못한 리스크에 고꾸라질 수 있다. 글로벌 기술 사이클과 미중 갈등, 공급망 재편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바이오, 로봇, 방산, 원전, 콘텐츠,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리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혁은 미룰수록 더 큰 비용과 대가를 요구한다. 영국의 실패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고른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과 산업재편에 지금 총력을 쏟아야 한다.

[기자수첩] 겉도는 최저임금 제도개선

"기자님 월급도 기자님이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결정하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취재현장에서 만난 20대 아르바이트생이 이같이 물었다. 이 청년은 "매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을 뉴스로 보고 있는데 결정방식이 기이하다"고 했다. 노동계 대표로 최저임금 협상 테이블 전면에 나서는 양대노총이 과연 청년의 대표성을 갖고 있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동계 9명, 경영계 9명, 공익위원 9명이 투표로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서 일단 최대한 높은 금액을 부른다. 반면 인건비를 줄여야 영업이익이 남는 경영계는 동결 또는 삭감을 제안하고, 이 간격을 좁히는 '흥정식' 논의가 매년 되풀이된다. 노동계는 물가상승률과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안정, 경영계는 경영악화로 인한 폐업 증가 등 각자 주장하는 논리도 역시 매년 비슷하다. 심의 기간 내내 서로의 주장만 펼치다 결국 끝을 내야 하는 정부 고시 시한이 임박하면 서둘러 마칠 준비를 한다.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을 내면 표결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식이다. 사실상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기이한 구조다. 노사의 차선책으로 등장하는 공익위원 안은 늘 논란을 일으킨다. 현재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인상률이 정해진 기준 없이 상황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정부 성향에 휩쓸린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년 전 '최저임금이 정말 정부 성향에 따라 결정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고위 공무원이 "문재인 정부 때는 어떻게 최저임금이 한 해에 16.4%나 올랐을까요"라고 반문한 것이 이해가 된다. 이에 정부가 공익위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최저임금 제도개선 연구회가 대안을 내놓았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연구회 출범부터 노동계가 빠져 있어 개선안에 효과가 있을지 물음표가 붙었다. 개선안이 나오자 예상대로 노동계는 반발했다. 학자들의 견해만이 아니라 노사도 참여해야 제도 개선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지적에도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한 결과다. 수개월간의 논의는 세금만 낭비한 꼴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라는 이유로 올해 또 개편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 매번 노동계의 반발 속에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발목을 잡히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 출신인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중재를 기대해보는 건 욕심일까. honestly82@fnnews.com

[사설] 집값 잡기용 보유세 인상 검토, 과거 실패 돌아봐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경기 호황이 부동산 매수심리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며 "보유세와 양도세를 조정하는 부동산 과세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금을 내고도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생기면 어지간한 규제로는 막기 어렵다"고도 했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등록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축소를 제안했다. 정부가 그동안 '최후 수단'이라고 해온 부동산 증세를 사실상 공식화하는 분위기다. 김 실장의 언급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규모 성과급 지급 이후 동탄 등 수도권 일부 지역 집값이 들썩이는 상황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는 세제를 통한 부동산 안정 방침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하지만 이번 발언으로 시장에서는 다음 달 발표될 세제 개편안에 보유세와 양도세 인상이 동시에 담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는 애초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해 부동산에 쏠린 자금을 증시로 돌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실제 반도체 호황과 자본시장 개혁에 힘입어 코스피가 9000선을 돌파하면서 상당한 자금이 증시로 이동했다. 그러나 돈의 흐름은 정부 기대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증시 자금이 다시 부동산으로 향하는 '역머니무브'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지급 이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오르는 것도 우려스럽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동탄 아파트값은 최근 2주 새 4% 넘게 뛰었고, 올해 누적상승률은 9.57%에 이른다. '삼전닉스' 직원들의 성과급과 저금리 사내 대출 등을 감안하면 이들 두 회사발 부동산 대기자금이 50조원을 넘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정 확대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까지 감안하면 규제만으로 시장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경험도 이를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잇따른 징벌적 증세정책은 '매물 잠김' 현상을 낳았고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입 부담을 키웠다. 세금 부담이 전월세 가격으로 전가되는 부작용도 컸다. 최근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와 대출규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등 강력한 수요억제책을 내놨다. 하지만 집값뿐 아니라 전월세 가격까지 다시 뛰고 매물 부족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홍수가 난 둑의 한쪽을 막으면 다른 쪽이 터지는 격이다. 집값 안정과 전월세난 해소를 위해서는 결국 공급 확대밖에 없다. 서울과 수도권은 택지가 부족한 데다 단기간에 늘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공공뿐 아니라 민간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합리적으로 완화해 실질적인 공급 확대에 나서야 한다. 세제 개편 역시 일방적 증세보다 거래 활성화와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보유세를 높인다면 거래세는 낮춰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양도세 등 거래세 부담을 완화해 시장에 매물이 나오도록 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설]노란봉투법 100일, 엄격한 판단이 혼란 줄이는 길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된 지 100일이 됐다. 예상대로 하청노조들의 교섭 요구가 빗발쳐 원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할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지침과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엇갈리는 등 혼선도 발생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사용자성 확장이다.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이 인정되면 하청노조는 원청 기업을 상대로 직접 교섭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하청노조 1161곳이 원청 439곳을 대상으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시행 100일이므로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 경영사정이 어려운 기업이 하청노조와 교섭해야 하는 책임까지 떠맡는다면 경영난은 가중될 것이다. 중노위의 재심 판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총 13건 가운데 9건에서 사용자성이 인정됐다. 사용자성 여부를 놓고 다툼이 있는 사건들 중에 인정되는 건수가 더 많은 것이다. 건수도 건수지만 생산과 무관한 지원 직군에까지 교섭권을 부여하는 판단이 내려져 재계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구내식당 직원들의 '진짜 사장'이 원청 대기업이라는 판단도 내려졌다. 중노위는 지난 15일 한화오션의 급식·세탁 업무를 맡고 있는 협력업체가 제기한 사건에서 한화오션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이 판단으로 한화오션의 선박 제조 업무와 무관한 근로자들도 교섭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한화오션 사례가 하나의 사례로 굳어지면 다른 기업들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청소나 통근버스, 조경 등 생산과는 관련이 없는 업종들의 사용자성 요구가 늘어날 것이고 중노위의 판단을 받으려 할 것이다. 기업이나 노조나 중노위의 판단에 불복하면 법적 판단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소송이 봇물을 이룰 것이다. 재계의 불만은 노동부의 노란봉투법 해석 지침에서는 공장 구내식당 등은 원청의 구조적 통제에 해당하지 않는 대표적 사례로 예시하고 있는데도 중노위가 이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물론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중노위가 하청노조에 유리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100일 시행 평가는 긍정적이다. 우려한 만큼 무분별한 쪼개기 교섭 요구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 또한 노동계의 시각에서 본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정부는 기업과 노조의 중간에 서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노조에 편향된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왕에 노란봉투법이 시행됐다면 노사 자율로 합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자율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중노위와 법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데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동부는 법의 취지를 정확히 해석해 지침을 내려야 하고 중노위는 그 지침을 따라야 정책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제 법 시행 100일이 되었으니 앞으로 시행 과정을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법의 허점이 노출되면 개정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노란봉투법의 취지는 노사 상생이다.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하청노조들의 권익 향상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과는 전혀 무관한 노조까지 원청이 교섭을 하고 책임지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규정이 모호할 때는 최소한으로 적용하는 것이 법을 지키는 길이다. 과잉 적용하면 위법의 문제가 생긴다.

[강남視角] '달콤한 잔치'가 끝나면

1980년대 일본은 대호황기였다. 반도체와 전자 등 주력산업에서 대체불가 일본산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수출기업은 돈을 쓸어담았다. 1985년부터 4년여간 닛케이지수는 1만3000에서 3만9000까지 급등했다. 돈은 부동산으로 흘러 가격이 치솟았다(연평균 상승률 22%). 1989년 도쿄 도심 부동산 가격은 미국 전체 국토의 가치를 넘어설 정도였다. 두둑한 월급을 받은 근로자들은 호황의 단맛을 누렸다. 그러나 1985년 플라자합의(엔화 절상)를 거쳐 거품이 붕괴된 것은 한순간이었다. 4만을 코앞에 둔 닛케이지수는 1992년 1만4000으로 폭락했다. 쏟아진 매도 물량에 반토막 난 부동산 가격은 더 떨어졌다. 이후 '긴 침체에 빠진' 일본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복지지출이 급증(GDP 대비 20% 이상)했고, 과잉 생산설비 감축과 같은 구조개혁에 실패했다. 2026년 '반도체 초호황'이 40년 전 '일본의 대호황'의 단면과 닮아 있다. 코스피지수는 5000에서 다섯달 만에 9000을 넘어섰다. 올 한 해 수십조원의 돈이 반도체 회사의 성과급과 증시, 부동산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집값은 급등세다. 경제지표 중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올해 사상 최대인 2300억달러를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지난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5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전 분기 대비 1.8% 성장했다. 명목 GDP는 50년 만에 상승률 10%를 넘었다. 커진 '모수(명목 GDP)' 덕에 올해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50%를 넘지 않을 모양이다. 초과세수는 많게는 5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1년 전만 해도 중국에 반도체 빼고 주력산업 주도권을 다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과 초조함이 컸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반도체의 가격이 치솟는 울트라 사이클에 올라타면서 '그런 걱정을 했었나' 할 정도로 잊혀 버렸다. AI만 갖다 붙이면 대박이 날 것 같은, 지금의 반도체가 홀로 끌어올린 수출·증시 호황에 '붕 떠있는' 듯한 축제의 분위기가 한몫했을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금은 한국의 시간"이라고 치켜세웠으니 "우리가 뭔가 대단히 바뀌고 있나" 할 만하겠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0%대로 하락 수렴해가는 잠재성장률의 본질이 달라진 것은 없다. 우리는 세계 최저 출산율(0.8명), 초고속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급감(20년 후엔 2700만명)한다. 매년 20조원 이상 지출하는 기초연금과 몇 년 안에 기금이 고갈될 공무원연금·사학연금 등 공적연금, 적자에 빠진 건강보험 등의 위험신호도 그대로다. 여기에 농어촌 기본소득 등과 같은 새로운 현금성 복지까지 출현하고 있다. 나는 지금껏 우리 경제가 단단히 다져온 구조조정과 혁신의 노력이 이제서야 발현된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현상은 본질이 아닌 '프레임'의 전환일 뿐이다. 그래서 이 '가벼운 잔치', 국지성 호황이 머지않아 끝날 것 같다. 거품이 일시에 붕괴되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K자형 양극화는 심화될 것이고, 정책비용은 더 들 것이다. 정부의 씀씀이가 커진 만큼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을 것이다. GDP와 경상흑자 등 놀라운 경제지표와 역행하는, 제조업과 청년층의 악화하는 고용지표는 그래서 더 사실적이다. 우리가 잔치에 흥겨워하는 중에 중국은 AI 반도체 자립에 고삐를 더 죄어 우리를 넘어설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한국과 대만을 앞세운 반도체 밸류체인 재건에 이를 악물고 있다. 이것들이 적어도 5년 안에 벌어질 일이다. 초과세수는 횡재가 아닌, 기업과 납세자가 인내한 결실이다.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기반을 깔아주고, 이것이 일자리가 되는 선순환을 만드는 미래 투자에 '귀한' 세수를 써야 한다. 그것이 실용정부가 말하는 '성공의 비용'과 '상상력의 투자'라는 취지에 맞을 것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테헤란로] 경고음 커지는 채권시장

1997년 가을 한국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한보철강에 이어 기아자동차까지 무너지면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시장은 얼어붙었고, 해외 금융기관들은 한국 금융회사들에 빌려준 단기 외화자금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이 폭락하기 전 먼저 무너진 것은 신용시장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주택가격 하락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부실로 이어졌고, 구조화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상대방의 신용을 믿지 못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글로벌 증시 폭락은 그 이후에 찾아왔다. 금융위기의 역사는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 언제나 채권시장에서 먼저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최근 금융시장의 관심은 온통 코스피 9000선 돌파에 쏠려 있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주식시장은 경기 회복과 풍부한 유동성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채권시장이 보내는 신호는 다르다. 지난해 홈플러스 사태에서 제이알글로벌리츠의 기업회생 신청, 중앙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동시 기업회생절차 신청까지 이어지면서 크레딧 시장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있다. 제이알글로벌리츠 사태는 안정적 임대수익을 창출하는 해외 우량 부동산 리츠도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중앙그룹 사태는 시장의 자금조달 창구가 막히는 순간 대기업집단조차 회생절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특히 JTBC의 유동화 채무 디폴트는 단순한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 기업 규모와 브랜드만으로는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이 개별 기업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이미 위험기업에 대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으며 크레딧 스프레드는 확대되고 있다. 금리 상승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시장이 발행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 상황이다. 차환에 실패하는 기업이 늘어나기 시작하면 충격은 금융회사와 투자자, 나아가 실물경제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시장은 코스피 9000이라는 숫자에 환호하고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와 제이알글로벌리츠, 중앙그룹 사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현재의 문제는 개별 기업 부실이 아니라 신용시장에 대한 신뢰 약화와 차환시장 경색이다. 1997년에도, 2008년에도 위기의 첫 신호는 주식시장이 아니라 채권시장에서 울렸다. 지금 채권시장이 보내는 경고음을 단순한 잡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노동일 칼럼] 항미원조는 박제된 구호가 아니다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무명용사 추모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등과 함께 '무명용사 봉안관'이 자리하고 있다. 무명용사 봉안관에는 "6·25전쟁 등에서 전사하여 유해는 수습하였으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이름 없는 무명용사(無名勇士) 5,800여 위(位)를 모신 공간"이라는 설명이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전사자가 이토록 많은 사실에 놀란다. 봉안관 건물 외벽에 새겨진 "이름마저 바친 충절, 조국과 함께 영원하리" 문구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생명을 조국에 바친 호국영령들이 무명으로 남은 것은 혹시라도 신원파악 등 우리 후손들의 노력이 소홀했던 탓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6·25전쟁은 김일성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민족의 비극이자,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많은 선열들이 피를 흘린 호국(護國)의 역사이다. 6·25전쟁의 남북한 사상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530만명에 달한다. 특히 1950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은 인명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계기가 되었다. 미 국방부 통계에 따르면 미군 전사자의 70% 이상이 중공군 참전 이후 발생했다. 특히 장진호전투 등 중공군의 동계 공세 기간 단 몇주 만에 수만명의 사상자가 집중되었다. 북한의 남침과 중공군의 참전은 이처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이 땅에 남긴 무도한 도발이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를 '조국해방전쟁', 중국은 '항미원조전쟁'이라는 미화된 이름으로 부른다. 중국 공산당이 6·25전쟁에 참전하며 내세운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조선을 돕는다)'라는 구호는 철저하게 기획된 선전 수사학이다. 대내적으로는 '보가위국(保家衛國·집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의 구호를 결합하여 미군은 '침략자', 자신들은 '정의의 구원자'로 포장했다. 왜곡된 항미원조 용어는 오늘날까지 중국과 북한에서 체제 결속의 혈맹(血盟) 서사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평양에 있는 '조중우의탑(朝中友誼塔)' 기단부에는 중공군과 북한군이 어깨를 나란히 한 조각과 함께 항미원조의 공적이 찬양조로 새겨져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일 7년 만의 북한 국빈방문에서 '조중우의탑'을 참배하고, 항미원조 역사와 전쟁 영웅들을 부각하는 행보를 보였다. 아주대 한상준 교수가 분석하듯, 중국은 항미원조를 현재의 미중 패권 갈등에 대응한 외교적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최근 북러가 급격히 밀착하자, 중국은 6·25전쟁을 함께 치른 자신들이 북한의 '원조 혈맹'임을 상기시키며 북한을 다시 중국 영향권 안으로 끌어당기려고 한다.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명확히 하는 데 항미원조 구호를 활용하는 것이다. 항미원조는 1950년 10월의 참전 명분으로 박제된 언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시기에 국방부 산하 공공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가 교육 프로그램에서 '항미원조' 표현을 소개하며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침략자의 프레임을 민주사회의 다양성이라는 미명하에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은 당연하다. 여론의 질타에 게시물을 내리긴 했지만 어이없는 발상의 경위가 무엇인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게다가 사업회는 오는 8월 초·중·고 교사를 대상으로 기획된 해외 항일유적지 연수에서 중국 항미원조기념관 방문 일정을 포함했다가 취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가 안규백 장관 지시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해당 일정을 검토했던 건 중대한 과오라고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항미원조라는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병기하는 행위는 북한의 불법 남침 역사를 가리고, 침략의 조력자였던 중공군의 가해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항미원조라는 용어는 결코 대등한 역사적 해석의 선택지가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외국 국가 정상이 타국을 방문할 때 무명용사탑(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은 방문국과 그 국민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표하고, 양국 간의 역사적 유대와 동맹 관계를 확인하는 외교적 관례이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장소는 그 국가의 역사적 정체성이 집약된 '성역'이기 때문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 모레 25일은 6·25전쟁 76주년이다. 우리 대통령부터 시작하여 여러 기관장들이 현충원을 참배하지만 과문인지 몰라도 무명용사 봉안관 참배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학생과 교사들에게 6·25전쟁의 역사적 해석을 교육하고 싶다면 성역인 현충원 무명용사 봉안관부터 참배하는 게 마땅하다. 전쟁기념사업회 구성원들부터 모범을 보이기 바란다. dinoh7869@fnnews.com

[사설]상용직도 세대역전 고령층이 청년 추월, 돌파구 절실

고용 안정성이 높은 상용직에서도 60세 이상 고령층이 청년층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5월 60세 이상 상용근로자 수는 220만명, 청년층(15~29세) 상용근로자는 212만명으로 집계됐다. 상용직은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자리를 말한다. 안정적 일자리에서도 청년층이 노년에 밀리는 일자리 세대 역전은 사회 활력과 한국 경제의 장래성을 위협하는 경고음이다. 냉철한 시장 분석과 장기 대책이 더욱 절실해졌다.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는 그 자체로 부정적으로 볼 순 없다. 기대수명이 늘고 노후소득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60세 이상이 계속 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고령층 일자리가 늘어나는 동안 청년들은 갈수록 시장 진입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청년층 상용근로자는 2022년 이후 4년 연속 감소했다. 더 심각한 건 속도다. 최근 4년간 청년 인구는 9.0% 줄었지만 청년 상용근로자는 17.0% 감소했다. 올해는 더 가파르다. 청년층 상용직 감소율이 인구 감소율의 3배를 훌쩍 넘었다. 산업 격변기 청년층 설 자리가 더 험난하다는 사실도 주시해야 한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제조업은 여전히 가장 큰 고용 산업이지만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비중은 계속 줄어 지난 5월엔 15% 아래로 떨어졌다. 통계가 시작된 지난 2013년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반도체 호황의 수혜를 우리 기업들이 보고 있지만 반도체 업종 일자리는 제조업 전체의 4%에 불과하다. 반도체를 제외한 제조업 전반의 불황으로 제조업 취업자 수는 23개월 연속 감소했고, 청년 채용이 먼저 타격을 입었다. 일자리동향 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 7년간 40대 이하 제조업 일자리는 25만개 줄었고, 50대 이상 일자리는 33만개 늘었다. 생산직의 고령화가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보통신업에서도 청년 상용직이 줄고 있다. 인공지능(AI) 도입 확산과 경력직 중심 채용 문화가 맞물리면서 초급 직무, 신입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흐름을 방치하면 청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 문제가 된다.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실패는 저출산, 내수부진, 지역소멸, 성장잠재력 약화로 이어지는 연쇄 충격을 낳는다. 정부가 청년 고용대책을 수시로 내놓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지만 단편적 임시처방으로 시늉만 내선 곤란하다. 단기 인턴, 일회성 보조금, 숫자 채우기식 일자리로는 한계가 있다. 청년들이 산업전환의 문턱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신입 채용과 훈련, 직무전환을 연결하는 실질적 사다리가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의 신규 채용을 북돋울 유인책을 다각도로 추진하고 시장 유연성을 살려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낮은 생산성의 구조적 병폐를 도려내야 신규 채용 여력이 생긴다. 더불어 기득권 정규직의 획일적인 정년연장 요구도 점진적 추진으로 재논의가 필요하다.

[사설]국제유가 급락에 시장가격도 신속히 내려야 납득할 것

미국과 이란의 종전합의 소식에 국제유가가 한달 새 30% 가까이 떨어졌다. 한달 전 배럴당 107달러에 육박했던 두바이유는 현재 74달러 선까지 내려왔다. 한때 170달러 턱밑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전쟁 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유가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국민들은 곧바로 시장의 제품과 서비스 가격도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직감한다. 그런데 이런 국민의 체감과 시장의 현실 가격은 매우 동떨어져 있다. 실제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국제유가가 30% 넘게 빠지는 동안에도 2000원선에서 크게 변화가 없다. 물론 국제유가 변동이 곧바로 주유소 판매가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국제유가 하락분이 주유소 판매가에 녹아들기까지 몇 주 걸린다. 더구나 최근 환율 변동과 정부의 최고가격제 운용까지 겹쳐 현장의 가격 반영은 더 느려질 것이다. 문제는 가격 반영의 시차가 유가가 오를 때와 내릴 때 대칭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는 점이다. 유가가 뛸 때는 발 빠르게 소비자가격에 반영하고, 막상 유가가 가파르게 떨어지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가격 인하를 늦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가격 비대칭은 기름값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건설업계의 경우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뛸 때는 공사비에 즉각 반영한다. 그런데 정작 유가가 안정세로 돌아서도 한번 오른 공사비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오히려 가격 반영의 시차가 느려서 올해 건설 공사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가격결정구조가 단순하지 않다는 점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유사의 재고비용, 환율, 세금체계, 유통망의 마진 구조 등 여러 변수가 얽혀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제유가 하나만 떼어놓고 국내 가격에 반영이 느리다는 식으로 단순히 따질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전문적인 가격결정구조가 있다면 국민에게 소상히 알려주는 게 더 필요하다. 가격이 오를 때는 신속하게 결정한 만큼, 가격이 내려갈 계기가 됐을 때에도 정부와 업계는 더 분명하고 투명하게 가격의 변동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구조가 복잡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둘러대는 것은 국민에 대한 기망이다. 더구나 정부는 이런 가격 반영에 대한 시장 관리감독을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 시장가격이 오를 때는 정부가 각 업종과 시장을 이 잡듯이 통제한다. 그런데 가격이 내려갈 시점에는 상대적으로 정부의 관리가 느슨한 면이 있다. 이처럼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시장가격 관리가 중요한 것은 소비자 권익 외에 고물가 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고물가 위기를 맞고 있다. 유류비와 공사비처럼 생활과 산업 전반에 걸쳐 시장가격이 올랐다. 이런 물가상승 압력 때문에 서민들의 고통이 심화되고 있으며, 국가의 내수경제도 침체를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관계당국은 국제유가 하락분이 국내 가격에 신속하고 투명하게 반영되도록 가격결정구조를 면밀히 점검하기 바란다. 오를 때만 빠르고 내릴 때는 느린 가격 관행은 소비자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