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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파행이 관행된 최저임금 심의

역시나 큰 이변은 없었다. 법정 시한인 지난달 29일을 넘기고도 아직 결론 나지 않은 2027년도 최저임금 이야기다. 삼성전자발 '대기업 N% 성과급'이 불을 지핀 최저임금 심의는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의 시각차만 확인한 채 여전히 공전하고 있다. 노동자 측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며 처음에 16.3% 인상안을 들고 온 가운데 사용자 측은 노동자보다 더 큰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며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한 상황에서 이미 기한 내 합의는 물 건너간 상황처럼 보였다. 영세자영업자, 소상공인 가운데에는 최저임금만큼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일견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대급 성과급의 이면에서 1600원을 두고 벌어지는 처절한 논쟁은 날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아이러니다. 이제 내년도 최저임금은 지난 1988년 처음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대다수의 과거가 그랬듯,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심의촉진구간이라는 이름의 중재안을 통해 최종적으로 정해지는 흐름이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과연 중재안이 정말 중재안이냐는 점이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되는 중재안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관행은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단 9차례뿐이다. 거의 매년 시한을 넘기고 결국 7월 중순께 중재안이 등장하고서야 결론이 났다.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2026년 적용분까지 39차례의 결정 가운데 노사 합의로 마무리된 것은 단 8차례뿐이고, 나머지 31차례는 모두 표결로 매듭지어졌다. 그리고 그 31차례 표결의 절반이 넘는 16차례가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으로 결정됐다. 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자, 사용자 및 정부가 지정하는 공익위원이 9명씩 들어가는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으로는 불가피한 결과라는 말도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위원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결국 결국 캐스팅보트는 정부가 임명하는 나머지 9명의 공익위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중재안이 결국은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다.노사는 올해 4차 수정안까지 주고받으며 격차를 1680원에서 1290원까지 좁혔지만 이 속도라면 결국 최종 순간에는 또다시 공익위원의 중재안이 등판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늘 그랬듯 4차례에 걸쳐 줄어든 390원의 격차보다 중재안으로 나올 금액이 주는 격차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심의요청 이후 90일 이내라는 법정 시한이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최저임금 협상이 중재안이라는 메인요리를 내놓기 전 무의미한 애피타이저처럼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이 좋지는 않아 보인다. 매년 노동자는 큰 폭의 인상을, 사용자는 동결 혹은 소폭 인상을 내걸고 평행선을 달리다가 법정 시한을 넘기고 결국 공익위원의 중재안으로 결론이 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애초에 법정 시한 준수를 전제로 제도가 설계되지 않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노사 각자 자기편 논리만 밀어붙일 뿐 애초에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균형을 갖고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공익위원의 역할은 필요하다. 다만 최저임금은 전체 기업의 99% 넘는 중소기업들의 경영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민감하고 중요한 결정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는, 미루거나 양보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다. 최저임금 시한을 넘기는 파행이 어느새 당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법정 시한을 늘리거나 노동자와 사용자 측의 이견을 조정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등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중기벤처부장

[사설] 홈플러스 파산 위기, 일자리·지역경제 후폭풍 대처를

서울회생법원이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폐지를 결정하면서 한때 국내 2위였던 대형마트가 사실상 파산 수순에 들어섰다. 회생계획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2000억원이 조달되지 않아 파산이 불가피하다. 남은 2주간 자금 문제가 해소되면 극적으로 회생절차를 밟을 수 있다. 홈플러스 문제는 대형 유통기업 하나가 사라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직원·협력업체·입점 점주들의 생계와 지역 상권까지 연쇄적으로 흔들릴 사안이어서 심각하게 짚고 넘어갈 대목들이 있다. 당장 신경써야 할 점은 청산 이후 경제적 후폭풍이다. 홈플러스가 직간접적으로 고용한 인원은 주차·카트관리·청소 인원까지 포함해 대략 1만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지면 수많은 실직자가 발생할 것이다. 홈플러스와 거래해온 중소업체와 상공인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납품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자금회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다행히 임금체불 피해 근로자에게 대지급금과 생계비 융자를 해주고 협력업체를 위한 긴급 유동성 지원 방안을 내놓긴 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가 폐업을 하게 되면 일자리가 아예 없어지고, 중소상공인들은 정상적인 주요 거래처가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지역별로 점포가 순차적으로 문을 닫을 경우 인근 상권의 유동성도 떨어지고, 지역 세수에 미치는 파장도 클 것이다. 이에 정부는 실직자에 대한 재취업 지원까지 멀리 내다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청산 절차가 진행될 경우 사각지대에 놓이는 이해관계자가 없는지 촘촘히 살펴야 한다. 동시에 이번 사태를 대형마트를 포함한 오프라인 유통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홈플러스의 몰락에는 대주주와 채권단 간 책임 문제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유통산업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산업발전 방안을 재구성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이커머스로 소비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대형마트라는 업태 자체의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점포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대응으론 영업의 반전을 기약할 수 없다. 실제로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최악의 혹한기를 걷고 있다. 홈플러스의 잔여 점포들이 매물로 나오더라도 경쟁 대형마트들이 점포 인수에 소극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다. 남은 대형마트들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새로운 사업모델이나 지역 밀착형 서비스로의 전환 등 생존전략을 치밀하게 점검할 시점이다. 정부 역시 대규모 고용을 창출해 온·오프라인 유통업이 무너질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감안, 업태 전환과 재취업을 지원하는 중장기 정책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홈플러스에 남은 시간은 2주 남짓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수만명의 생계가 걸린 만큼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안전망을 미리 갖춰야 한다.

[사설] 쿠팡 사태, 법 집행 원칙 지키되 동맹 갈등은 막아야

미국 백악관 당국자까지 한국 정부가 쿠팡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앞서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도 한국 정부가 쿠팡 등 미국 기업을 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중간보고서를 낸 바 있다. 개별 기업의 법 위반 의혹이 동맹 현안으로 비화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미국의 과도한 주장에는 사실과 원칙으로 대응하면서 사태를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 동시에 이 문제가 한미 관계의 다른 현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쿠팡 사태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쿠팡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3755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판단하고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사건의 본질은 전 국민 대다수에 해당하는 개인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간 중대한 보안사고다. 더구나 유출된 정보가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엄정한 조사와 제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미국 의회와 백악관의 태도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하원 법사위 보고서는 한국 정부의 설명과 소비자 피해 실태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한국의 정당한 법 집행을 차별적 규제로 몰아가는 것은 동맹국에 대한 예의에도, 법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의 쿠팡 주식 거래 내역과 미 통상·외교 핵심 인사들의 과거 쿠팡 관련 보수 수령 사실까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측은 이해충돌 소지부터 투명하게 설명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한국 정부는 이럴수록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쿠팡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뉴욕증시에 상장된 기업이다. 쿠팡에 대한 조사 절차와 법적 근거, 과징금 산정 방식, 국내외 기업 제재 사례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미국 정부와 의회, 언론, 투자자에게 적극 설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쿠팡 사태가 한미 안보·원자력 협력 논의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한미는 현재 원자력추진잠수함과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 원자력·안보 협력 후속 논의를 진행 중이다. 방산 등 전략 협력까지 맞물린 상황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양국의 핵심 현안을 흐리는 변수로 작용해선 곤란하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튀르키예 앙카라를 방문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하는 다자외교 무대인 만큼 쿠팡 사태가 양국 간 접촉 과정에서 문제로 제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는 국내법 집행의 정당성을 분명히 설명하되, 이 문제가 양국 간 외교 현안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쿠팡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과징금 부과나 조사 결과에 대해 법적 불복 절차를 밟는 것은 기업의 권리일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의 당사자인 기업이 미국 정치권을 움직여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듯한 모습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쿠팡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유출 경위와 피해 규모를 투명하게 밝히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과 피해자 보호 방안을 내놓는 것이다. 쿠팡 사태는 기업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와 법 앞의 평등에 관한 문제다. 정부는 법 집행의 정당성을 지키면서 동맹의 큰 틀이 불필요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대응해야 한다.

[사설] 보유세 강화하되 거래세 낮추라는 OECD 권고 적극 참고해야

[파이낸셜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부동산 세제는 보유세 비중을 높이고 거래세 비중은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보유세 강화, 거래세 인하'라는 그간의 제언이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한다는 점을 확인한 셈이다. 우리도 일방적 증세보다 거래 활성화와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정부는 이달 말 부동산 세제 개편을 포함한 세법 개정안을 내놓을 예정인 만큼 이번 권고를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 OECD는 2일 발표한 '2026 한국경제보고서'에서 부동산 세제를 거래세 중심에서 보유세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전환해 주거 이동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해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더글러스 서덜랜드 OECD 경제국 국가분석과장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 거주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적응 기간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부동산 세제는 거래를 이중삼중으로 가로막는 구조다. 취득세와 양도소득세 부담이 크다 보니 집을 팔려는 사람도, 옮기려는 사람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거래가 막히면 매물이 줄고 주거 이동도 위축된다. 공급 부족과 전월세 불안이 이어질수록 시장 안정을 위해 도입한 규제가 오히려 시장 왜곡을 키울 수 있다. 투기 억제와 조세 형평성을 위해 보유세 강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거래세를 그대로 둔 채 보유세만 올려서는 매물 확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부동산 세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0%로 OECD 평균(1.6%)보다 높다. 전체 조세에서 부동산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11.7%로 OECD 평균(5.1%)의 두 배를 웃돈다. 반면 보유세 비중은 29.4%로 OECD 평균(56%)의 절반 수준이다. 전체 세 부담을 늘리기보다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는 방향으로 세목 간 비중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OECD는 이런 세수 중립적 개편이 주거 이동성을 높이고 노동시장 효율을 개선하며 주택시장 경직성도 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래가 살아나면 매물이 늘고 집값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실수요자의 주거 이전 부담이 줄고 지역 간 노동 이동도 활발해져 경제 전반의 활력도 높아질 수 있다. 거래세 인하가 투기를 조장한다는 정치적 부담을 덜고 조세 형평성과 시장 활성화를 함께 추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도 이번 권고는 의미가 적지 않다. 다만 보유세 강화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세 부담이 전월세 가격으로 전가돼 세입자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 세금 때문에 정든 집을 떠나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 보유세 강화와 거래세 인하를 함께 추진하되 세 부담을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정교한 보완책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강남視角] 이제는 선관위가 답할 때

최근 5년 동안 치러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발생한 선거관리 사고는 모두 184건이다. 파이낸셜뉴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선거인명부 착오와 투표용지 관리, 회송용 봉투 오류, 투표함 관리, 개표 결과 오입력까지 유형은 다양했지만 공통분모는 뚜렷했다. 자료를 들여다볼수록 눈에 들어온 것은 사고 건수보다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됐다는 점이다. 서울 잠실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선거관리 부실이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선과 총선, 지선은 선거 방식과 규모가 서로 다르다고 해도 자료 속의 사고 패턴은 사실상 동일했다. 사전투표 과정에서는 회송용 봉투와 투표지 관리 문제가 이어졌고, 투표소의 경우 선거인명부 착오와 투표용지 오교부가 잇따라 발견됐다. 개표 단계도 예외는 없었다. 투표함 관리와 결과 입력 오류가 연이어 확인됐다. 물론 모든 사고를 같은 무게로 볼 수는 없다. 단순한 행정착오도 있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미세한 유형도 나왔을 것이다. 다만 선거가 바뀌어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다시 나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번이라면 현장 문제로 치부하더라도, 같은 잘못이 여러 선거에서 재차 등장한다면 시스템 전체를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지선 사고 건수는 51건이다. 선거인명부 관리 부실, 이중투표, 투표함 관리, 개표 결과 오입력 등 투표 절차와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수다. 2022년 지선 때와 유사하다. 당시 13건보다 약 4배 많다는 점만 다르다. 그래서 더욱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선거는 결과뿐 아니라 절차에 대한 신뢰도 함께 관리해야 하는 제도다. 선관위가 다른 행정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복되는 사고를 모두 현장 직원의 실수로 돌리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선거는 중앙선관위와 지방선관위, 투표소·개표소 현장 인력이 동시에 움직이는 업무다. 명부 확인, 투표용지 교부, 봉투 관리, 투표함 이송, 개표 입력이 이들의 협력 속에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는 만큼 교육과 매뉴얼, 점검 체계가 중요하다. 따라서 같은 절차에서 착오가 되풀이된다면 어느 단계에서 관리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사고를 한 덩어리로 묶어 '현장 착오'라고 넘겨버리면, 다음 선거에서도 반복된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선관위가 그간 교육을 강화하고 각종 매뉴얼을 보완해 왔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교육이 현장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인지, 인력이 부족한 것인지, 기존 매뉴얼이 실제 투표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향후 사안별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국정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명부 관리, 투표용지 교부, 투표함 관리, 개표 입력 가운데 어느 절차를 어떻게 고치겠다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해외라고 완벽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선거 때마다 우편투표와 개표 지연 문제가 논란이 되고, 일본 역시 투표용지 교부 착오나 개표 오류가 보고된다. 영국은 선거가 끝난 뒤 독립기구가 운영 전반을 평가하고 개선 권고를 국민에게 알린다. 그러나 사후점검 방식에선 우리와 차이가 난다. 사고를 공개하고, 원인을 분류하며, 다음 선거 전까지 개선 권고 이행 여부를 다시 확인하는 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주민등록등본을 잘못 발급하면 다시 발급하면 된다. 세금이 잘못 부과되면 이의신청과 정정 절차가 있다. 반면 투표와 개표는 한 번으로 끝난다. 선거 후에는 없었던 일로 되돌릴 방법이 없다. 이런 이유에서 선거관리 사고는 사후 해명만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설명과 개선책이다. 동일한 사고가 왜 다시 나왔는지, 다음 선거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까지 선관위가 이제는 내놔야 한다. jjw@fnnews.com 정지우 사회부장

[사설] 종전에도 치솟는 물가, 못 잡으면 성장도 속빈 강정

중동전쟁 여파에 따른 고유가에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소비자물가가 두 달 연속 3%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도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무더위까지 덮친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취약계층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가데이터처는 6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2% 상승했다고 2일 발표했다. 2년6개월 만의 최고치다. 올해 1~2월 2%였던 상승률은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으로 3월 2.2%, 4월 2.6%로 높아진 데 이어 5월 3.1%, 6월 3.2%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3%를 웃돌았다.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석유류 가격 상승이 결정적이었다.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보다 24.7% 뛰며 전체 소비자물가를 0.93%p 끌어올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충격이 한창이던 2022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기름값 상승은 식재료 운송비와 배달비, 매장 운영비를 거쳐 외식물가까지 밀어올린다. 그나마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전체 소비자물가를 0.4%p 낮춘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물가지수도 5월 3.3%에서 6월 3.4%로 더 올랐다. 식품은 2.3%, 식품 외 품목은 4.1% 상승했다. 서울 유명 냉면집의 냉면값은 2만원에 육박하고 삼계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장면·김밥·칼국수 같은 서민 음식도 줄줄이 올랐다. 직장인과 학생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점심값 부담이다. 미·이란 간 종전합의라는 대형 호재로 유가가 다소 안정을 찾고 있지만 물가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안팎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충격이 시차를 두고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2일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도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압력이 커지면서 당분간 물가가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진단했다. 반도체 성과급발 임금 상승이 소비를 자극하고 있는 데다 달러당 1500원을 넘어선 고환율과 시중 통화량 증가까지 겹쳐 고물가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인플레이션 압력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잇달아 올리며 물가 잡기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긴축 기조를 강화했고, 한국은행 역시 금리를 올려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문제는 고물가의 충격을 취약계층이 더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금리까지 오르면 빚을 안고 살아가는 서민과 영세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검토 중인 추가경정예산도 신중해야 한다. 재정지출 확대가 자칫 고물가·고환율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안정과 경기대응 사이에서 더욱 정교한 정책공조를 펼쳐야 한다. 물가를 잡는 것이 최우선의 민생대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설] ‘호남 반도체’ 문제 없다 장담 말고 여건 잘 따져야

호남권 반도체 산단 신설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안에 단지를 완공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공장 운영에 필요한 전력과 용수 등을 과연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느냐를 놓고도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일 호남 반도체 산단의 인프라 문제에 대해 방송에 출연해 언급했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영산강과 섬진강을 합하면 7개 댐이 저장하고 있는 물의 양이 약 15억t인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전력 공급에 대해서도 김 장관은 "호남은 한빛 원전 6개와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에너지원이 풍부한 곳"이라며 "6.3기가와트(GW)가 필요한데 현재 3~5GW 정도의 전력이 여유가 있다"고 했다. 김 장관의 설명대로만 된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나. 그러나 현실은 김 장관의 말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용수가 충분하다고 해도 가뭄이 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기후변화로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발생하는 상황에서 마냥 낙관하는 태도는 좋지 않다. 2022~2023년 서남권 가뭄이 극심했을 때 동복댐과 주암댐 저수율은 10%대에 불과했다. 섬진강은 4대강 공사도 반발로 취소됐었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돌아가야 한다. 물을 공급할 수 없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전기 또한 마찬가지다. 한빛 원전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유가 있다는 전력의 원천은 신재생에너지다. 풍력이나 태양열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크게 달라진다. 안정적인 공급원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장기적으로 공급이 끊기지 않는 전력원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원전뿐이다. 용수와 전력 외에도 공장 건설과 가동에 필요한 주요 인프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송전 시설도 그중의 하나다. 호남지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이상 이제는 소모적 정치적 논쟁은 중단해야 한다. 과정이 비록 썩 투명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건설 지역이 정해졌으므로 산단을 이 대통령이 약속한 시간 안에 완공하고 제반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여야 정치권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당연히 산단 건설과 운용에 필요한 여건을 어떻게 확보할지 고민하겠지만 철저한 시뮬레이션을 거쳐 한 치의 모자람이 없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시간이 걸려도 원전을 호남지역에 추가로 건설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바란다. 용인 반도체 산단 건설이 늦어지는 이유는 바로 전력과 용수난 때문이다. 호남 산단도 비슷한 문제에 부딪힐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무조건 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할 계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사업의 당사자인 기업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의견을 귀담아듣고 반영해야 한다. 설령 입지를 정할 때는 그렇지 못했다 해도 이제부터는 그들의 주장과 요구를 우선시해야 한다. 전력과 용수뿐만이 아니라 산단 건설에 필요하다면 관련 제도도 정비해야 하고 규제도 풀어야 한다. 근로시간 규제를 풀어주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도입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 지역에만 가능할지는 몰라도 할 수 있는 지원책은 다 꺼내들어야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을 것이다. 야당도 이제는 협력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fn광장] 2030이 버럭 화를 낸 진짜 이유

대학에 다니는 20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가끔 있다.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소위 '86세대'인 내가 보기엔 정치적 입장이 다소 보수적이지 않나 싶을 때가 종종 있어서다. 그중 하나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부정선거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실선거가 명백한 이번 사태를 대하는 기성세대의 상대적으로 차분한 대응에 아들은 화가 좀 난 듯했다. 특히 스타벅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연일 격앙된 언어를 쏟아냈던 이들이 선거 부실 앞에서는 침묵하는 듯한 모습을 두고 '선택적 분노'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들의 분노는 소셜미디어와 잠실 올림픽공원 거리로 쏟아져 나온 2030세대의 목소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과거 이들은 정치적 무관심층이나 '사회에 무심한 개인주의자'쯤으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전후해 이들은 확실한 캐스팅보터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특정 조직의 지휘 없이 자발적으로 "참정권 보장"을 외쳤다. 이를 두고 기성세대의 일각, 혹은 일부 진영론자들은 "청년층이 우경화되었다"라거나 "보수화되었다"라며 손쉽게 재단하려 든다. 늘 그렇듯 현상의 본질을 놓친 단편적 진단이자, 기성세대의 관성적 시선이 낳은 오독이다. 2030세대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과 생존'의 문제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과거 86세대에게 자유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집단적 개념이었다면, 지금의 청년들에게 참정권은 내 삶을 규율하는 최소한의 규칙이자 개인의 권리다. 사기업의 실책에는 정부와 사회가 나서 매섭게 책임을 묻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정작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이 침해당한 사태에는 절제된 언어로 유감을 표하는 기성 권력의 이중적 태도에 그들의 공정 감각이 요동친 것이다. '스타벅스보다 못한 참정권'이라는 자조 섞인 외침은 기성세대의 진영 논리와 선택적 분노를 거부하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청년들의 목소리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논란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파동, 조국 사태는 물론 최근 여당의 공소취소 특검 발의와 대한축구협회의 독단적 감독 선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현실이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고 느낄 때마다 거침없이 의사를 표출해 왔다. 한때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90년생이 온다'의 저자는 2030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정직함'을 꼽은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이란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의미의 '어니스티(Honesty)'가 아니라 시스템의 진실성과 온전함을 뜻하는 '인티그리티(Integrity)'에 더 가깝다. 청년들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채용시스템인 9급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공시족'이 되었던 배경에도 정직하고 온전한 시스템에 대한 갈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에게 공정은 단순한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날로 좁아지는 기회의 문턱에서 자신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가혹한 경제적 구조조정 속에서 살아간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도입으로 일자리는 급감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신입 공채마저 줄여 청년들을 '인턴 무한 루프'로 내몰고 있다. 여기에 자산 양극화와 주거 불안정이라는 가혹한 현실이 더해지면서 청년들은 깊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기성 정치권은 기존 노동자만 보호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거나 일회성 지원금 같은 단기 처방으로 이들의 표심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2030이 보수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역대 최저의 지지율을 보내는 것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득권이 되어버린 세대의 오만함과 위선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청년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회를 전망하며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이룩한 과거의 성취에 취해 청년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그들의 분노를 해묵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기존 방식만 고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꼰대'로 전락하는 길이다. 이들이 던지는 돌은 위선적인 진보와 탐욕스러운 보수 모두를 향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기득권의 안일함을 버리고 청년들의 누적된 분노와 요구를 직시해야 한다. 삶과 직결된 공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2030세대의 생생한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사설] 월간 첫 1000억달러 돌파, 새 역사 쓰는 수출

한국 수출이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산업통상부가 1일 발표한 '6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70.9% 증가한 1022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월간 기준으로 사상 첫 1000억달러 돌파다. 독일·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 기록이다. 상반기 누적 수출은 4967억달러로 같은 기간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중동전쟁에 따른 물류·에너지 불안, 미국발 관세 압박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거둔 성과라서 더 값지다. 이 흐름이 하반기까지 이어진다면 연간 수출 1조달러 달성도 못하란 법이 없다. 수출 호황으로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올라가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최근 한국의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제시했다. 지난 2월 1.0%였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다른 주요 기관들도 3%대 이상의 성장률을 제시했다. 당분간 반도체 호황이 지속되면 3% 이하의 저성장률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하다. 일시적 호황, 반짝 성장으로 보는 것이 아직은 맞기 때문이다. 자축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다. 반도체 한 업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편이다. 양극화는 더 극명해지고 있다. 외형적으로 좋은 경제지표가 나타나도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문제다. 수출을 견인하는 품목은 사실상 반도체 하나다. 물론 컴퓨터, 석유 제품, 선박, 화장품도 수출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으나 반도체가 차지하는 규모가 전체에서 워낙 크다. 상반기 반도체 수출액은 1924억달러로 지난해 연간 실적을 반년 만에 넘어섰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반도체 증가분을 빼면 작년 정도의 속도다. 특정 업종이나 일부 대기업이 주도하는 수출은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메모리 가격 사이클이 꺾이거나 글로벌 수요가 둔화되면 수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대기업에 쏠리면서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이 쪼그라드는 점도 보완해야 할 과제다. 매번 지목되었던 문제들이다. 품목·시장 다변화와 중소기업 수출 경쟁력 강화를 수출정책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거시지표 개선의 온기가 국민 전체로 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도체 관련 업종이 사상 최대의 수출실적을 구가한 반면, 내수와 서민 경제는 여전히 냉기가 감돌고 있다. 성장률이 올라도 반갑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출이 아무리 잘되어도 과실이 중소기업과 일반 서민에게 골고루 전달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되레 양극화만 부추길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한달 수출 1000억달러 돌파는 그 자체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수출은 한국 경제를 일으킨 원동력이다. 1977년에 100억달러, 1995년에 1000억달러를 달성했다. 수출 입국을 기치로 내세워 총력을 기울여 거둔 성과였다. 이제 1~2년 안에 대망의 1조달러 기록을 넘어설 것이다. 다만 산업 다변화 전략으로 산업구조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앞에 놓였다. 반도체만이 아니라 미래형 첨단산업을 키우고 거기에 전통적 제조업이 힘을 보태면 수출 5강을 넘어 3강도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니다.

[사설] 코스닥 30년, 신뢰 회복·체질 개선 더 미룰 수 없다

한국판 나스닥을 지향했던 코스닥시장이 1일 출범 30년을 맞았다. 1996년 벤처·중소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고 혁신기업을 키우겠다는 취지로 문을 연 시장이다. 외형 면에서는 적잖은 성장을 이뤄냈다. 개장 초기 300여개였던 상장사는 현재 1700개를 넘어섰고, 시가총액은 7조원에서 500조원대로 커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기업공개와 유상증자를 통해 공급한 모험자본도 90조원에 육박한다. 강소기업의 성장 통로 역할을 해온 공로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내실 면에서는 실망과 아쉬움이 크다. 코스피가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대형주를 앞세워 뜨겁게 달아오른 반면, 코스닥은 증시 활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냉랭하다. 올 상반기 코스피 지수는 9000선까지 질주했지만 코스닥은 오히려 뒷걸음쳤다. 시장은 일부 대형주에 의존한 채 변동성을 키우며 극심한 양극화 장세를 보였다. 대형주 쏠림을 완충할 건강한 중소형 성장주 생태계가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스닥 침체는 한국 증시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단면이다. 한국 증시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코스닥의 체질개선을 더는 미뤄선 안 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부실기업을 과감히 걸러내는 일이다. 실적개선 없이 편법으로 생명만 연장하는 좀비기업이 시장에 남아 있는 한 투자자들이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혁신기업은 외면받고 코스닥 전체가 저평가를 면치 못한다.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부실기업을 과감하게 퇴출하는 것이야말로 시장 신뢰 회복의 출발점이다. 거래소와 금융당국이 이날 퇴출제도 강화와 세그먼트 도입을 핵심과제로 제시한 것은 늦었지만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선언에 그치지 말고 확고한 실천으로 시장질서 회복을 주도해야 한다. 불성실공시, 횡령·배임, 회계 부실 등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 상장 유지요건도 최소한의 형식 기준을 맞추는 데 머물러선 안 된다. 매출과 영업 지속성, 기술력, 내부통제, 주주 보호 수준을 종합적으로 따져 시장에 남을 자격을 더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 세그먼트 도입도 신중하되 분명하게 추진해야 한다. 코스닥 안에서 성장성과 안정성을 갖춘 대표기업을 선별해 투자자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우량기업이 좀비기업과 한데 묶여 할인받는 구조를 바꾸려면 시장 안의 층위를 정교하게 나누는 것이 맞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와 AI를 중심으로 다시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이 대형주 쏠림에 갇힌다면 혁신 생태계는 넓어질 수 없다. 코스닥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나오려면 기술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야 한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시장의 신뢰성을 갉아먹는 부실기업과 테마주가 판치는 풍토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우량기업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구조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 코스닥의 다음 30년은 달라야 한다. 과감한 개혁으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재도약의 원년을 열기 바란다.

[테헤란로] K조선, 낙관 이르다

"지금이라도 중국은 마음만 먹으면 K조선이 수주한 물량을 다수 가져올 수 있다. 정부·민간 투트랙 시너지가 본격화되는 시점을 경계할 때다." 최근 만난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다. 역대급 호황을 누리는 K조선이 사이클 변동에 대비해야 할 때라는 시각이다. 공격적인 설비투자(Capex·자본적지출)보다 호황일 때 적극적인 합병을 통해 중형 조선사를 대형 조선사로 만드는 등 경쟁력을 확보해 신(新)빅4 체제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은 현재 글로벌 조선업계의 지배자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중국의 누적 수주잔량은 1억2943만CGT(표준선환산톤수·선박의 부피를 나타내는 총톤수에 선종별 계수를 곱해 산정)로 전체의 65%에 달했다. 전월 대비로도 중국은 2552만CGT가 증가했다. 현대차그룹 물류 전문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가 완성차 해상 운송에 투입한다고 밝힌 자동차운반선(PCTC) '글로비스 리더호'도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산하 광저우광촨궈지 등이 건조했다. 설계 또한 중국 상하이 선박연구설계원(SDARI)이다. 길이 230m·폭 40m·중량 10만2590t으로 적재공간 14개 층을 합하면 축구장 약 28개 면적을 갖춰 소형차 1만대 이상을 운송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수준의 선박도 중국 차지다. 고급 함정인 항공모함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자체 기술로는 처음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전자기식 '캐터펄트'를 장착한 항공모함인 '푸젠함'까지 건조했다. 국내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푸젠함'이 사출기 설계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중국의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항공모함이 건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건조 실패 경험을 그대로 다른 건조에 적용, 빠르게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 조선의 무서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호경식 한국투자파트너스 중국법인 대표는 최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넥스트라이즈에서 "중국은 실패한 기업의 자산이 다음 기업으로 이동하면서 산업 전체가 학습 효과를 얻는다"며 "중국은 다수의 기업이 경쟁하고 검증받는 과정 자체를 성장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만드는 중국의 도전 속에 K조선이 지금의 호황을 누리기만 한다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때는 곧 온다. 역대급 영업이익 'N% 성과급'을 말하기 전에 '생존'을 위한 산업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때다. ggg@fnnews.com

[특파원 칼럼] 370조엔 vs 4755조원

"인공지능(AI)·반도체 등 17개 전략분야에 대해 민관이 370조엔 이상의 투자를 추진한다."(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관이 강하게 나선 만큼 민간도 마인드셋을 전환해 투자목표를 다시 제시해야 한다."(쓰쓰이 요시노부 게이단렌 회장) 지난달 30일 관민 협력 투자구상이 공개된 일본 성장전략회의에서 정부와 민간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AI, 반도체, 에너지, 조선, 바이오 등 17개 전략분야를 묶어 2040년까지 370조엔(약 3532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은 민간 설비투자 목표를 250조엔(약 2394조45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맞받았다. 겉으로는 관민이 함께 속도를 맞추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투자 방향을 제시하고 민간이 그 틀 안에서 대응하는 분위기다. 이번 구상은 경기 부양보다 산업정책을 개별 지원에서 패키지형 투자로 전환하는 성장전략에 가깝다. 그러나 시장은 환호보다 계산기를 먼저 두드리고 있다. 실제 민간과 재정의 비율이 어떻게 나뉠지, 추가 국채 발행이 어디까지 확대될지가 초점이다. 일본 국채 시장은 오랜 기간 안정을 유지해왔다. 일본은행(BOJ)이 국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초저금리 환경 속에서 정부의 이자 부담은 억제돼 왔다. 그러나 금리 정상화가 본격화되는 지금 이 구조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계획이 더 복잡하게 읽히는 이유는 '일회성 경기 부양'이 아닌 '상시투자 체제로의 전환'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경기대응을 위해 재정을 늘리고 다시 줄이는 일이 반복됐지만 이제는 AI·반도체 같은 전략산업이 장기 재정 구조 안으로 편입되는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다. 투자 확대가 성장정책이면서 동시에 재정구조 자체가 되는 순간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경로가 된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일본 정부는 2027년 이후 연간 약 10조엔(약 95조7810억원) 규모의 추가 재정 지출을 전제로 효과를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17개 분야, 62개 기술을 포괄하는 설계는 범위가 넓어 선택과 집중이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에 구체적인 투자배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어떤 기술과 산업을 우선순위로 둘 것인지 기준이 불분명할 경우 정책은 전략적 투자보다 분산된 지출로 흐를 수 있다. 이 논쟁은 한국과 무관치 않다. 한국 역시 지난달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대규모 산업 투자 사이클에 들어섰다. 핵심은 제조 AI 전환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민관이 20조원을 투입해 100조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국가 제조데이터와 AI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산업단지와 제조 현장으로 확산시키는 구조다. 물론 한국의 접근은 일본과 결이 다르다. 일본이 국가가 산업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투자 프레임을 전면에 세우는 방식이라면 한국은 민간기업의 투자결정이 먼저 움직이고 정부는 데이터, 인프라, 제도, 금융을 보완하는 구조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도의 4755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 용인 클러스터, AI 데이터센터 확장은 이미 민간 사이클이 주도하는 형태다. 다만 두 나라가 마주한 질문은 같다. 투자 규모가 아니라 그 투자가 어떤 구조 위에서 지속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일본은 국가 주도의 투자 확대가 재정과 금리 제약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올라 있고, 한국은 민간 중심 투자구조가 경기 사이클 변화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낼지가 관건이다. 최근 벌어지는 논쟁도 결국은 투자 규모보다 그 결정을 가능하게 한 원칙과 구조가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시장의 검증 과정인지 모른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강남視角] 퍼스트 펭귄은 어디서 태어나나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은 혁신과 리더십을 상징한다. 범고래와 표범물범이 서식하는 차디찬 바다 앞에서 펭귄 무리는 망설인다. 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야 먹고살 수 있지만, 그 순간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 그때 한 마리가 먼저 몸을 던진다. 퍼스트 펭귄의 용기가 나머지 무리를 움직인다. 경영학은 이 장면에 홀딱 반했다. 스타트업 투자자들은 '퍼스트 펭귄상'을 만들었고, 기업들은 "우리 회사의 퍼스트 펭귄을 찾습니다"라는 채용공고를 냈다. 2010년대 혁신의 열풍 속에서 퍼스트 펭귄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이 비유는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다. 퍼스트 펭귄은 가장 먼저 잡아먹힐 수도 있다. '혁신의 선구자'라는 찬사에 떠밀려 실패의 짐을 혼자 짊어진다. 조직이 퍼스트 펭귄에게 명운을 맡긴 채 결과만 기다린다면, 그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희생양 고르기에 가깝다. 혁신을 독려하면서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조직에서 퍼스트 펭귄의 신화는 잔혹사에 가깝다. 퍼스트 펭귄은 아무 조직이나 사회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그를 키우고 배려하고 누군가 희생하는 건강한 생태계에서만 퍼스트 펭귄이 등장하는 법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생태계의 주인공은 '황제'라는 이름의 실재하는 펭귄이다. 황제펭귄의 생존 비결은 '허들링(Huddling)'이다. 영하 50도 남극의 혹한 속에서 수천마리가 거대한 원형 대열을 이룬다. 바깥쪽 펭귄이 칼바람을 몸으로 막으면, 안쪽 펭귄들은 체온을 회복한다. 온기를 되찾은 안쪽 펭귄이 다시 바깥으로 나가 동료를 지킨다. 그리고 그 허들링 안에서, 수컷들은 발등 위에 알을 올린 채 두 달을 굶으며 버틴다. 알이 얼음 바닥에 닿는 순간 단 몇 초 만에 생명은 끝난다. 그 알을 지키려고 무리 전체가 필사적으로 서로의 온기를 나눈다. 혹한이 끝날 즈음, 알에서 새 생명이 깨어난다. 훗날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들 퍼스트 펭귄의 탄생이다. 허들링은 아름다운 이야기도 지혜로운 선택도 아니다. 그렇게 안 하면 다 죽기 때문에 그냥 하는 행위다. 수백만년에 걸쳐 극한의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생태적 본능이다. 이러한 펭귄의 생태 본능은 우리 사회와 빼닮았다. 위기를 돌파하는 영웅 즉 퍼스트 펭귄이 등장하는가 하면, 공동체가 똘똘 뭉쳐 국난을 극복하는 허들링을 보여주기도 한다. 분명한 사실은 퍼스트 펭귄은 허들링이라는 환경 속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회를 이끌 유능한 리더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허들링 환경은 어떤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에다 민주주의 선도국가라는 자부심. 우리는 그 박수 소리에 취해 경계심이 느슨해졌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계엄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두 개의 나라처럼 쪼개졌다. 같은 팩트를 보고도 정반대로 이해하고 적대시한다. 고질적인 세대·지역·젠더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서로의 급소에 감정의 날을 겨냥하는 등 더 깊이 곪아가고 있다. 서로를 위해 차가운 외풍을 막아주기보다 내부적으로 표독스럽게 쏘아붙이며 사분오열한다. '역(逆)허들링'의 광풍이 부는 것 아닌가 싶다. 황제펭귄은 바깥의 찬바람보다 내부 분열이 더 치명적이라는 점을 본능으로 안다. 원형 대열 가운데 한 곳이라도 무너지는 순간, 혹한은 그 틈을 파고들어 공동체를 전멸시킨다. 공동체를 이끌 패기 있고 건강한 리더는 시기와 질투로 분열된 공동체에서 나올 수 없다. 이것이 펭귄 생태계가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갈등 공화국'의 특징은 사람들 스스로 고립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역허들링 문화를 바로잡는 변화는 거창한 데서 오지 않는다. 삶에 지쳤다면 먼저 자신을 한번 꼬옥 안아주자. 그리고 옆자리의 동료를, 혹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꼬옥 껴안아 보자. 황제펭귄이 수백만년 동안 그래왔듯이, 그 작은 온기 하나가 대열을 되살린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사설] 시장 뒤흔드는 레버리지 ETF, 금융당국 책임 크다

금융당국이 시행령까지 고쳐 도입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 한달 만에 시장을 흔들고 있다. 출시 때부터 시장 변동성을 키울 우려를 샀던 ETF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 시장 왜곡과 투자자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고강도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최근 증시에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자금이 쏠리면서 하루 5~10%씩 오르내리는 변동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두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까지 등장하면서 이를 활용한 초단타 매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루 수익률을 2배로 추종하는 구조여서 짧은 시간의 방향만 맞히면 큰 차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홀짝 도박판'에 비유하면서 투기성 단타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루 회전율이 1261%나 되는 상품도 있었다. 하루 동안 전체 물량이 12차례 넘게 손바뀜한 셈이다. 이들 상품에 개인 자금 8조원 이상이 몰리면서 시장 왜곡도 심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이 압도적인 데다 레버리지 ETF의 급등락이 시장 변동성까지 키운다는 것이다. 두 종목만 오르면 다른 종목이 대부분 하락해도 코스피는 상승하는 구조다. 한 증권사 보고서는 단일종목 ETF 출시 이후 국내 상장사 주식의 95% 이상이 하락했는데도 코스피는 강세를 이어갔다고 분석했다. 상승률 상위 종목도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가 휩쓸었다. 코스닥 역시 1000선을 내주는 등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 반도체주로의 자금 쏠림을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열풍이 불고 있다. 변동성을 키운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은 시장구조가 한국과 다르다. 수백개의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상장돼 있어 특정 종목 쏠림이 덜하다. 대표 종목인 엔비디아도 S&P500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 수준이다. 지수 영향력이 절대적인 소수 종목에 집중된 한국과는 사정이 다르다.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해외에서는 코스피와 개별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초고위험 레버리지 선물상품까지 등장했다. 애초 단일종목 ETF는 홍콩 상장 레버리지 ETF 투자 수요를 국내로 돌리기 위해 도입됐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규제 사각지대에서 새로운 투기 시장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는 코스피 150배 투자 선물상품까지 등장했다. 금융당국도 판촉 제한과 투자자 교육 강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부작용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만큼 보다 정교하고 강도 높은 보완책이 필요하다. 예탁금 요건 강화와 신용공여 한도 축소, 증거금 비율 상향 등을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서킷브레이커와 비슷한 '과열 시 매매 제한' 등 시장 불안을 줄일 수 있는 종합대책을 더 늦기 전에 마련해야 한다.

[사설] 반도체 호황에 가려진 전반적 경영난 살펴야

반도체 등 일부 업종 외에 다른 기업들의 경영 사정은 좋지 못하다. 관련된 통계가 30일 나왔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상장기업 가운데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 비중이 27.6%로 2017년보다 15.8%p 상승했다. 미국 등 다른 주요국들도 비중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우리의 속도가 유독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국 경제는 반도체가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AI)의 발전에 따른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반도체 강국으로서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고유가 등의 악조건 속에서 한국의 분기 성장률이 주요국 가운데 1위를 한 것도 반도체 효과다. 반도체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유럽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대외 여건의 악화로 산업계 전반으로는 불황이 지속되고 있는데 반도체 초호황의 착시 효과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물론 반도체 산업이나마 선전하고 있는 것은 정부나 국민으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지만 경영난에 빠진 다수 업종과 기업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반도체 경기는 순환하기 마련이고 AI 산업이 계속해서 발전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는 순간 한국 경제의 민낯이 드러나고 단기 성장률이 급전직하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한두 업종이 전체 경제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산업 전반의 고른 발전과 성장이 바탕이 되어야 쉽게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경제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정부로서는 경제와 산업 전체를 보면서 불황에 빠진 전통적인 제조업도 옥석을 가려 도와주고 이끌어 줘야 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한계기업은 조속히 정리하고 살릴 가치가 있는 기업은 어떻게든 살려서 제 역할을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한경협이 설명했듯이 기업들 앞에 놓인 대외 여건은 역대 최악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고유가·고환율·고금리에 높은 인건비와 내수 부진이 겹친 복합적 요인이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드니 이익률을 높일 수가 없다. 가용한 정책과 금융 지원을 동원해 기업들의 애로를 해소해 줘야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자영업, 소상공업의 부진은 이보다 더하다. 지난 1·4분기 자영업자들의 금융권 대출잔액이 1100조원에 육박해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르렀고, 연체율 역시 2%대로 10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자영업은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다. 한국의 자영업 비중은 주요국 중에서 4위권이다. 자영업이 무너지면 경제 전체가 작지 않은 충격을 서서히 받을 것이다.반도체 등 일부 대기업의 호황과 거액의 성과급 지급은 최저임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저임금을 많이 올리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게는 당장 사업을 그만두라는 소리와 다름없다. 임금을 주지 못해 실제로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날 것이다. 고용은 감소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최저임금을 받고 생활하는 서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다. 이처럼 우리 경제의 본모습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전체적인 상황이 좋을 때 언젠가는 닥칠 수도 있는 위기에 대비하는 게 유비무환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