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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글로벌 석유시장 낙관 이르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석유 공급에 숨통이 트이고, 그동안 크게 올랐던 기름값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MOU 체결은 반드시 필요한 시기에 이뤄졌다. 이란전쟁으로 세계 원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해협이 막힌 이후 세계 각국의 비축원유 재고가 현재 위험 수준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원유 재고가 바닥을 보일수록 유가는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어 지난달 말에 이미 국제에너지기구(IEA)와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모두 감소 위험에 대해 경고한 상황이었다. 이란전쟁이 이어졌던 100여일 글로벌 석유시장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수입량을 대폭 줄인 것과 최대 산유국인 미국의 원유 증산, 각국의 전략비축유(SPR) 방출 때문이다. 전쟁 초기만 해도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이란을 공습하기 전날인 지난 2월 27일 배럴당 72.48달러였던 것이 3월 31일 119.24달러까지 오른 것이 최고치였다. 프랑스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에 따르면 지난 1973년 주요 산유국들의 원유 금수조치로 인한 석유파동 당시 공급량이 7% 감소하고 유가가 130% 이상 상승했다. 반면 이란 사태로 인한 유조선들의 호르무즈해협 통행 차질로 공급량이 14% 줄었음에도 유가 상승폭은 약 30%를 보였다. 1970년대의 오일쇼크 때보다 상승폭이 크게 떨어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에 비해 충격을 잘 흡수했다. 휴전 소식에 기름값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 18일 해운정보업체 로이즈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110일 만에 주요 선사 등록 선박들이 호르무즈해협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석유시장이 곧바로 좋아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지난 100여일 전쟁으로 억제됐던 수요가 급격히 회복되는 것이 유가에 큰 변수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석유파동이 끝난 후 각국이 에너지 안보 강화에 나서면서 '2차 수요 파도'를 겪어왔다. 이번에도 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있는 전략비축유 채우기에 나설 것이며, 정유업체들도 원유 확보에 적극적일 것으로 보인다. 원유 수입국들은 또다시 공급 차질로 인한 고통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기 위해 대량으로 사들이던 과거의 관행을 반복할 것이다. 현재 석유 생산이 회복에 들어가는 시기로 치열한 확보 경쟁이 겹쳐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문가들은 중동의 휴전이 앞으로 30일이나 60일 이상 지속되는 안정된 상황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원유 생산이 더 본격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MOU 합의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해협 안전 통행에 대한 불확실성과 느린 수송 같은 문제로 당장 숨통이 트이기는 힘들며, 에너지 기업들이 가동을 정상화하고 글로벌 수요를 맞추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해협 내 기뢰 제거 등 안전도 확보돼야 해 유조선 선사와 보험사들은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이란의 고농축우라늄 폐기와 희석 문제를 두고 더 까다로운 핵협상 또한 남아 있어 장기적인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네덜란드 투자은행 ING는 비록 미국과 이란이 MOU에 합의했지만 유조선들의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이번 여름 안에 최대한 빨리 정상화돼야 한다며, 차질이 생긴다면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급등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와엘 사완 셸 최고경영자(CEO)는 글로벌 석유 수요 증가로 유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 5~10년 유가가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비톨 같은 글로벌 상품 거래기업들은 앞으로 치열해질 원유 확보 경쟁의 심각성이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무턱대고 석유 시장이 안정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jjyoon@fnnews.com

2030년 월드컵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공동개최… 실제 경기는 6개국서 진행

역대 최대 규모의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이 개막한 지 약 열흘이 지난 가운데 벌써 2030년 월드컵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2030년 월드컵은 규모와 환경, 수익 모델을 두고 국제축구연맹(FIFA)과 FIFA 회원국 간의 갈등이 예상된다. 스페인 매체 데모크라타에 따르면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17일(현지시간) 월드컵 준비와 연관된 15개 부처 관계자들과 합동 회의를 열고 경기 준비를 논의했다. 산체스는 "최근 스페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를 위한 시간이 4년도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앞서 FIFA는 지난 2023년 발표에서 2030년 월드컵을 스페인과 포르투갈, 모로코가 공동으로 개최한다고 밝혔다. FIFA는 월드컵 개최 100주년을 맞는 2030년을 맞아 1회 월드컵 개최국이었던 우루과이에서도 경기를 열기로 했다.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도 개최국에 포함되었으며 3개의 남미 국가에서 각각 3개의 경기가 열린다. 그 결과 2030년 월드컵은 유럽·아프리카·남미를 합해 역대 최초로 3개 대륙에서 6개국에 걸쳐 열리게 됐다. 영국 BBC는 2030년 월드컵 참가국들이 5개의 시간대와 2개의 다른 계절을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와 스페인 사이 평균 비행 시간은 약 13시간이다. 외신들은 이와 관련해 경기 분산에 따른 이동 문제로 불필요한 대기오염이 생긴다고 지적했다.더욱 눈길을 끄는 쟁점은 본선 진출국이다. 211개 회원국을 보유한 FIFA는 올해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국 숫자를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렸다. 현재 알레한드로 도밍게스 남미축구연맹 회장은 2030년 대회의 참가국을 64개국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달 미국 매체들은 독점적인 수익 구조를 건설한 FIFA가 올해 월드컵 본선 진출국 확대 및 경기 숫자 증가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고 지적했다. FIFA의 잔니 인판티노 회장(사진)은 아직 본선 진출국 확대 문제에 대해 확답을 내지 않았다. 12일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인판티노는 지난 11일 브라질 매체와 인터뷰에서 "참가국을 64개로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한 바 있으며, 이 사안은 FIFA 평의회에도 보고됐다"고 말했다. 박종원 기자

월드컵 환상… 재주는 개최국이 부리고 돈은 FIFA가 번다 [글로벌 리포트]

"역대 가장 성공적인 월드컵이다. 그렇게 많은 티켓이 이렇게 빨리 팔린 적이 없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2026년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두고 성공을 자신했다. 트럼프와 친분으로 유명한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같은 날 미리 성공을 축하하며 티켓을 600만장 이상 팔았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정작 경기의 75%가 열리는 미국에서는 분위기가 시큰둥하다. 실제 눈에 보이는 것은 빈자리와 적자였기 때문이다. ■빈자리 보이는 관중석, 숙박도 시들 인판티노의 주장은 숫자만 보면 설득력이 있다. 역대 월드컵 티켓 판매량은 2014년 310만장 이후 280만장, 320만장을 기록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에도 350만장의 티켓이 팔렸다. 그러나 영국 일간 가디언의 축구 칼럼니스트 린더 쉐러레켄스는 13일 미국 공영방송 PBS를 통해 "경기가 훨씬 많아졌으니 당연히 팔아야 할 티켓도 늘었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진출팀과 경기 숫자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각각 32개국, 64개 경기였으나, 이번 경기부터는 48개국이 104경기를 치른다. 경기 숫자만 약 40% 늘었다. 아울러 미국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은 15일 FIFA의 주장과 달리 이번 월드컵 경기 중 공식 집계보다 빈자리가 많은 경우가 잦았다고 주장했다. 14일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열린 F조 1차전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빈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또한 19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현지 부동산 조사 기업 코스타를 인용해 뉴욕, 토론토, 마이애미를 포함한 일부 개최 도시의 경기 당일 호텔 예약 건수가 1년 전보다 적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11일 뉴욕호텔협회는 월드컵 기간 호텔 매출 성장 전망치를 기존의 절반 수준인 1억달러(약 1533억원)로 하향했다. 비제이 단다파니 뉴욕호텔협회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대회를 두고 "심각하게 실망스럽고 기대 이하"라고 평가했다. 그는 FIFA가 뉴욕 일대에 120만명의 방문객을 예상했으나 40만명도 채우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텔 수요가 침체된 이유로 치솟는 물가, 비즈니스 출장객들의 도시 기피 현상, 경기장 위치, 해외 비자 장벽을 꼽았다. 미국 호텔숙박협회(AHLA)에 따르면 FIFA는 보스턴, 댈러스 등 여러 개최 도시에서 스태프와 대표단을 위해 선점했던 객실의 최대 70%를 취소했다. AHLA는 5월 보고서에서 FIFA의 객실 선점이 "인위적인 초반 수요 착시 현상"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공생'보다 '이익' 택한 FIFA 물가 문제의 핵심은 티켓 가격과 공공요금이다. 특히 FIFA는 이번 대회에서 티켓 가격 변동제를 도입했다. 이는 가격이 정해져 있던 과거와 달리 항공권처럼 티켓 가격이 수요에 따라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이번 경기 티켓의 최저가는 60달러(약 9만원) 수준이지만 결승전 최고 등급 좌석 가격은 7875달러(약 1207만원)까지 올랐다. 이러한 가격이 가능한 이유는 FIFA가 이번 대회에서 티켓 발권부터 재판매 시장까지 직접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미국 경제지 포천은 이번 월드컵에서 역대 운영 공식이 깨졌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기존 대회의 경우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FIFA와 수익을 나눠 갖는 현지 '조직위원회'가 경기를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FIFA는 이번 대회에서 각국 축구협회를 거치지 않고 지방정부와 접촉해 경기장을 빌리는 등 경기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동시에 중계권과 후원사 계약, 기념품 판매까지 사실상 모든 수익을 독점했다. 미국 홀리크로스대학의 빅터 마테손 경제학 교수는 포천과 인터뷰에서 티켓 가격에 대해 "FIFA는 향후 30~40년 동안 미국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역 연고가 없는 FIFA 입장에서 "오늘 티켓 구매자를 화나게 만들더라도, 그들에게서 쥐어짤 수 있는 모든 돈을 짜내도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포천은 이번 월드컵의 개최지 도시들이 FIFA와 계약한 금액만 챙길 수 있고, 추가 수익에서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기 진행에 따른 비용 부담은 오롯이 개최지 몫이라고 주장했다. 포천은 막대한 비용 부담에 처한 지방정부가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시민에게 비용을 전가한다고 분석했다. ■경제 효과 불분명, 적자 걱정해야 일부 지방정부들은 월드컵에 따른 적자를 걱정하고 있다. 포천에 따르면 마크 레빈 뉴욕시(市) 감사원장은 지난 상반기 보고서에서 FIFA의 예측대로 뉴욕·뉴저지 지역에 120만명이 방문해도 뉴욕시가 얻을 수 있는 추가 세수가 최대 5500만달러라고 예측했다. 그는 뉴욕시가 월드컵으로 인해 경찰 지원 및 비상 대책, 소상공인 지원 등에 7000만달러(약 1073억원)의 비용을 추가 지출해야 한다며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스미스칼리지의 앤드류 짐발리스트 경제학 교수는 "4~8경기를 치르는 개최 도시들은 매우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라며 "이익은 얻지 못하고 1억달러가 넘는 비용만 떠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이익을 볼 도시는 단 한 곳도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미국의 11개 월드컵 개최 도시가 월드컵으로 부담해야 할 총 비용이 최대 2억5000만달러(약 3832억원)라고 분석했다. 미국 연방정부가 11개 도시의 월드컵 안보 강화 명목으로 배정한 금액은 6억2500만달러로 알려졌다. 앞서 FIFA는 월드컵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 172억달러(약 26조원)를 추가하고 일자리 18만5000개를 창출한다고 예측했다. 미국 경제지 배런스는 19일 뱅크오브아메리카은행을 인용해 이번 월드컵으로 세계 GDP가 450억달러 늘어나고, 미국 GDP 역시 190억달러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FIFA는 캐나다의 GDP 증가 효과가 14억달러라고 추정했으며 멕시코는 110억달러 규모의 경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15일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학의 컬럼 클라크 경제학 교수는 현지 NPR방송을 통해 월드컵으로 "몇 주일 동안은 소비세 수입이 잠시 증가할 수 있지만 그다음에는 원래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 보도에서 FIFA가 이번 월드컵으로 4년 동안 총 130억달러(약 19조원)의 수입을 거둔다고 예상했다. 이는 2022 카타르 월드컵과 비교하면 72% 증가한 수치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사설] 영세 소상공인들 신음하는데 또 무산된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파이낸셜뉴스] 최저임금위원회가 18일 제7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안건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 "문 닫고 알바를 해야 할 판"이라는 소상공인의 호소도 결국 통하지 않았다. 1988년 관련법 시행 첫해를 제외하면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은 해마다 노사가 첨예하게 맞섰지만 실제 도입된 적은 없다. 노동계의 반대 논리는 분명하다. 특정 업종에 더 낮은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노동자 차별을 제도화하는 것이며, 임금을 낮춘다고 일자리가 늘지 않고 오히려 고용의 질만 악화시킨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의 현실은 절박하다. 이들을 대변한 경영계는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숙박·음식업 등의 지불 능력이 다른 업종보다 훨씬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대기업 종사자들이 두둑한 성과급을 받는 반면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달앱 수수료와 임대료, 원자재 가격 상승도 이미 영세업자를 옥죄고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신해 갚아준 대위변제액은 1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의 3배를 웃돈다. 소상공인이 밀집한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업 등 골목상권 대출 잔액도 올해 1·4분기 말 356조원으로 역대 최대다. 경영계는 업종별 차등 적용이 특정 업종에 낙인을 찍는 차별이 아니라 고사 직전 업종의 숨통을 틔워 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생존의 사다리'라고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논의는 최저임금 인상률로 옮겨간다. 업종별 차등이 무산된 만큼 최저임금 인상 폭이라도 최소화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노동계는 일찌감치 올해보다 16.3% 오른 시급 1만2000원, 월 250만8000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3000만원을 넘는다. 경영계는 아직 요구안을 내놓지 않았지만 동결이나 낮은 수준의 인상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막판까지 치열한 공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최근 반도체 업계의 대규모 성과급 지급 이후 산업계 전반에서 임금 인상 요구가 커지고 있어 노사 간 합의는 더욱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반도체 호황이 곧 전 산업의 임금 인상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고성장을 이어가는 대만도 월 최저임금은 한국의 65% 수준에 머물러 있다. 노동자는 더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고, 사업주는 형편이 안 돼 더 줄 수 없는 현실이다.  경영계뿐 아니라 노동계도 위기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노동계는 명분만 앞세워서는 곤란하다. 노동자도 영세업자도 모두 우리 사회의 약자다. 눈앞의 임금 인상보다 지금 있는 일자리를 지켜내고 늘리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fn광장] 이란 전쟁이 소환한 북한 핵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에 체류하던 손자·손녀들을 다급하게 귀국시켰다.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과 미군 가족들의 귀국계획도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일본도 한국 체류 자국민 소개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 돌았다. 1994년 봄 상황이었다. 북한은 핵개발을 들키자, 1993년 3월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벼랑끝 전술로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핵포기 압박에 북한은 무력대응 카드를 흔들며 긴장 수위를 높여갔다. 판문점 남북한 접촉에서 북측 대표단장 박영수가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도 불바다가 된다"고 윽박지르던 것도 1994년 3월이었다. 당시 미국의 클린턴 정부는 영변의 북한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검토했다. 클린턴 정부는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한국에 미군 1만명 증원 및 최첨단 무기 추가 배치 등을 추진하며 북한 도발에 대비했다. 북한이 서울 등 수도권을 때리면 최소 50만명 이상이 사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겠다는 클린턴 정부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벼랑끝 대치와 충돌 위기 속의 그해 6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김일성 주석과의 평양 회담은 클린턴 정부의 강경 입장을 급선회시켰다. 한국·미국·일본 등이 북한의 핵개발 포기 대가로 경수로를 지어주는 '제네바 합의'가 타결됐다. 그러나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시도 등의 마찰 속에 2002년 조지 부시 정부는 핵시설 타격을 다시 계획했다. 9·11 테러로 공격은 미뤄졌고, 그 뒤 6자 회담 등 협상·결렬의 반복 속에서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 끝에 '사실상의 핵국가'가 됐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카터의 평양 방문과 클린턴의 대북 선제타격 계획 등 1994년 상황. 3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란전쟁은 그 사건을 소환시켰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핵개발 저지를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과 전쟁 명분으로 강조했다. 라파엘 하르파즈 주한 이스라엘대사는 개전 직후인 지난 3월 5일 "북한 핵에 대해 아무런 조치가 없어 현재와 같은 상황(북한 핵보유)이 됐다"고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그는 "1994년에서 1996년 사이 이곳(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북한은 40~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길라드 코헨 주일본 이스라엘대사도 며칠 뒤인 지난 3월 11일 더 직설적으로 이란 공격의 정당성을 북핵 사례에서 찾았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이 공격하지 않은 결과, 핵무장한 북한이 각국을 미사일로 위협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전쟁 이후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같은 맥락에서 북한 핵개발 대응을 실패 사례로 언급했다. 카터의 북한 방문은 김일성의 책략에 말려든 실책이었다는 주장도 더 커졌다. 북한은 그사이 미국에 핵군축 협상을 제의할 정도로 핵역량을 높이면서 전략적 입지를 다져왔다. 북한의 비핵화를 압박하던 중국도 지난 8·9일 평양 북중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를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7년 만의 북한 방문은 북중러 '북방 3국' 지정학적 밀착과 '사실상 핵국가' 지위를 굳힌 북한의 격상된 전략적 위상을 보여줬다. 지금은 30년 전 북핵 위기를 기억하는 국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의 커진 핵 및 미사일 공격 능력도 우리 관심사에서 밀려나 있다. 북한은 괌과 하와이를 넘어 미국 본토까지 닿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북한의 ICBM이 미국 본토에 닿게 되면 미국의 대북 억지능력은 손발이 묶이게 된다. ICBM 등 미사일과 결합된 북한의 핵역량은 우리 목을 겨냥한 비수다. '미국의 핵우산'도 북한의 강화되는 핵과 미사일 역량 속에 위축되고 있다. 핵무장에 자신감을 얻은 북한은 핵 고도화의 목표를 이뤄나가며 '적대적 두 국가론' 속에 역내 영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거래적 동맹 관계의 색채가 짙어지고 꿈틀거리는 '세력권 질서'의 부상 속에서 미국의 핵우산 보장을 넘어서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할 우리의 플랜B, 플랜C가 절실하다. 커가는 북한의 핵역량 앞에서 우리의 번영과 안정, 재래식 군사력의 우위가 한순간의 신기루가 되지 않도록 비상한 결의 속에서 다양한 대응책들이 준비돼야 한다. 1994년 북한 핵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진행형이다. june@fnnews.com

[기자수첩]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왜 형사가 됐나

메일함에 도착한 한 통의 제보메일. 첨부파일을 열어보니 서울 곳곳의 건물 위치와 임대인, 법인, 공인중개사, 가족관계가 선으로 연결된 관계도가 담겨 있었다. 얼핏 수사기관이 작성한 사건 분석자료 같지만, 이 자료를 만든 사람들은 경찰도 조사관도 아닌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 세입자들이었다. 지난해 서울 동작구 청년안심주택 '사당 코브' 보증금 미반환 사건 이후 비슷한 제보가 잇따랐다. 사당 코브 공동 임대인이 소유한 또 다른 건물의 세입자들, 임대인의 가족이나 특수관계인 명의 건물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사당 코브 임대인 중 A씨의 배우자, 부모, 장모 등 가족 명의 건물에서도 보증금 미반환과 경매가 반복됐다. 피해자들은 이를 근거로 A씨가 실질적 운영 주체였다고 주장한다. 실제 운영 여부는 수사와 재판을 통해 가려질 문제지만, 서로 다른 명의의 건물에서 비슷한 시기에 경매가 반복됐다는 점은 의문을 남긴다. 피해자들이 취합한 자료를 보면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16개 동, 428가구, 피해금액은 약 356억원이다. 피해자들은 공인중개사에도 주목했다. 서로 다른 자치구 건물인데도 동일한 중개인이 업체만 바꿔 반복 등장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임대인과 중개업소, 시행·시공사가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워크숍 사진과 SNS 게시물, 댓글까지 추적한 자료는 웬만한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피해자들이 직접 증거를 모으고 관계도를 그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와 제도만 믿고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청년안심주택 사태가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지만 사당 코브 임차인들은 사건 발생 1년여 만에야 보증금 반환 신청이 가능해졌다. 최근 국회는 전세사기피해자지원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보증금을 전혀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마련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2023년 특별법 제정 당시 약속한 '6개월 단위 보완 입법'은 지켜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직접 수사파일을 만들고 사건 관계도를 그리는 사회는 정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보증금을 잃은 청년들이 등기부를 떼고 관계인을 추적해야만 자신의 피해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당 코브에서 시작된 추적은 어느새 수백가구 규모의 의혹으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들은 정부나 수사기관이 아니라 피해자들이었다. going@fnnews.com 최가영 기자

[사설] 획기적 노동·규제 혁신 없인 국가경쟁력 정체될 것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2026년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70개국 중 2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27위에서 6계단 뛴 성적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인 '30-50 클럽' 7개국 중에선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그러나 수치의 이면을 자세히 보면 꼭 좋아할 것도 없다. 우리 경제의 문제점과 한계가 노출돼 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2024년 20위로 역대 최고 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후 비상계엄 등 정치 혼란의 여파로 다음 해 27위까지 7계단이나 추락했다. 이번 21위는 정치적 리스크 충격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은 것일 뿐이다. 오히려 몇 년의 발전 시간을 허비했다고 보는 게 맞다. 순위 면에서 경계할 대목이 엿보인다. 대만은 4위, 중국은 12위로 한국을 멀찌감치 앞섰다. 특히 대만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우리와 정면으로 경쟁하는 나라다. IMD의 조사 신뢰도를 전적으로 의존한 필요는 없으나 경각심을 갖는 수준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상위 '톱5'의 공통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싱가포르, 홍콩, 스위스, 대만, 아랍에미리트(UAE) 모두 인구가 적거나 도시국가형에 가까운 소규모 개방경제다. 몸집이 작을수록 정책 결정과 제도 개선의 속도가 빠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형 성장 모델을 모색할 때 강소국가의 경쟁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업 효율성이 34위로 10계단, 인프라가 15위로 6계단 뛴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경제성과 분야는 3계단 떨어졌는데 물가부문은 30위에서 40위로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고용부문도 5위에서 7위로 내려가 2020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국가경쟁력 순위는 올라갔지만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적으로 느끼는 물가와 일자리 지표는 나빠졌다는 뜻이다. 경제성장 지표는 나아지는데 체감도는 떨어지는 K자형 양극화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 살림살이가 좋아지도록 이끄는 게 정부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업환경을 둘러싼 신호도 엇갈린다. 노동시장 순위는 53위에서 45위로 올랐다지만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더구나 정부 효율성 분야의 기업 여건이 50위에서 53위로 오히려 떨어졌다. 우리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자면서 규제 완화와 기업환경 개선을 계속 강조해 왔다. 그런데 실제 평가에서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말로는 혁신과 개혁을 외치면서 현장에서는 변화가 더딘 것 아닌지 우리 내부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를 '경제 대도약 원년'으로 선언했다. 인공지능(AI)·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활용해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총력을 펼쳐야 한다. 국가 경쟁력을 상위권으로 올리려면 몇 가지 경쟁력을 높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확실한 경제체질을 개선해야 상위권 도약이 가능하다. 단순히 말로만 노동개혁과 기업여건 개선을 떠든다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력에서 자연도태를 부를 뿐이다.

[사설] 주민들이 반긴 영덕·기장 원전, 늦은 만큼 더 속도를

한국 원전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신규 대형 원전 후보지로 경북 영덕을, 국내 첫 소형모듈원전(SMR) 후보지로 부산 기장을 확정했다. 영덕의 대형 원전 2기는 2037년과 2038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첫 SMR은 기장에서 2035년 상업운전이 시작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신규 원전 부지가 결정된 것은 2002년 신한울 원전 이후 24년 만이다. 탈원전 논란과 정책 혼선으로 무너진 원전 생태계가 복원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전력은 산업의 공기와 같다. 부족하면 데이터센터가 멈추고, 비싸면 공장이 떠난다. 공급이 불안하면 투자도 없다. 향후 전력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경고는 차고 넘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소비가 2025년 485TWh에서 2030년 950TWh로 거의 두 배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 총괄위원회는 2040년 국내 연중 최대 전력수요가 138.2GW에 이르러 2025년보다 4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AI 시대의 전력난은 한국 산업의 코앞에 닥친 현실이다. 급변하는 에너지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뼈아프다. 세계가 전력 확보를 위해 앞다퉈 뛰는 동안 우리는 원전정책을 정권마다 뒤집고, 계획을 미루고, 생태계를 흔들었다. 원전 기자재 업체들은 일감을 잃었고, 전문인력은 현장을 떠났다. 공급망 체력은 크게 약화됐다. 지금 신규 원전 부지가 확정됐다고 해서 곧바로 전력난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완공은 10년 뒤에 있는 일이다. 정부는 이번 결정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늦은 만큼 공사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현장을 독려해야 할 것이다. 원전 확충계획도 서둘러야 한다. 원자력학회는 앞서 추가 대형 원전 2~4기, SMR 2기를 12차 전기본에 반영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는 폭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추가 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첫 SMR에 거는 기대도 크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건설기간이 짧고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수요처 인근에 건설할 수 있어 송전망 구축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 경쟁이 초기 단계인 만큼 한국이 실제 건설과 운영 경험을 먼저 축적한다면 새로운 수출동력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런 만큼 부산 기장의 첫 SMR은 단순한 실증사업이 아니라 한국형 SMR의 기술력과 안전성을 세계에 보여주는 무대가 돼야 한다. 송전망 확충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국내 곳곳에서 송전망 건설 지연이 전력 공급의 병목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기를 실어나르는 송전망이 거미줄처럼 뻗어있어야 원전도, 재생에너지도 생태계를 키울 수 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확인된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와 달리 원전 유치를 환영하는 지역 분위기가 뚜렷해졌다. 영덕과 기장 모두 주민 수용성이 중요한 평가요소로 작용했다. 지역 주민들이 원전을 무조건 위험시설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와 일자리, 지원금, 산업 기반 확충의 기회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합리적 판단이다. 더 이상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전정책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속도와 실행력을 높여 에너지 대변혁의 시대를 주도해야 한다.

[강남視角] 소버린 AI가 필요한 진짜 이유

소버린 인공지능(AI)이 도대체 뭐야? 챗GPT나 클로드 같은 모델을 국산으로 만든다는 거야? 수조원씩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질 떨어지는 AI를 만드는 게 효율성이 있는 거야? 지난 2년간 많은 사람들이 물었지만 누구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문제다. AI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도, AI기업 최고경영자(CEO)도 뾰족한 정답을 내놓지 못해 지켜보는 사람까지 답답했었다. 미국 정부가 돌연 앤스로픽의 최상위 AI모델 페이블5와 미토스5에 대해 외국인의 접근을 통제했다.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막연하게나마 예상 못했던 일도 아니다. 이미 국가안보를 이유로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틀어막은 미국 정부가 강력한 전쟁무기로 발전한 AI를 국가안보 단계에서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예측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도 전 세계는 화들짝 놀랐다. 앤스로픽의 AI모델을 기반으로 국방·의료·산업·연구의 AI 전환은 물론 사이버보안까지 앤스로픽 AI 위에서 준비하고 있던 나라들은 하얗게 질렸다. 앤스로픽 AI를 활용해 새로운 에이전트를 개발하던 개발자들은 그저 손놓고 미국의 정책변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 정부의 AI 접근통제로 전 세계가 정신 못 차리던 날,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우리는 우리만의 전략적 자율성을 구축해야 한다"며 "정보총국(DGSI)의 빅데이터 분석업체를 팔란티어에서 프랑스 업체 샵스비전으로 대체하고, 공무원들에게는 프랑스 AI 기업 미스트랄이 개발한 AI 비서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르코르뉘 총리는 "우리는 자체 AI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며 "이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가치가 걸린 문제이며, 앤스로픽 모델에 대한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일부 파트너들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년간 아무도 주지 못한 답을 프랑스 총리의 선언에서 찾았다. 소버린 AI는 옆집 파트너의 선의에 의존하지 않고, 협상과 협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우리의 생존권이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첨단 AI를 당장 만들지 못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편히 쓸 수 있는 AI모델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협상의 지렛대다. 그래서 소버린 AI는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답을 얻었으니 이제 소버린 AI의 필요성·효율성 논쟁을 끝냈으면 한다. 소버린 AI의 가치가 입증됐으니, 앞으로는 점차 강력해질 AI 패권국들의 통제에서 한국의 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더 촘촘하게 짜면 좋은지 논의했으면 한다. 프런티어 AI모델에 대한 장기투자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얼마나 지원할지, 한국의 AI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는 어떻게 확장해 나갈지 같은 전략적 논의에 정부와 전문가, 기업들이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기업들은 AI 공급망에 대한 관리와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AI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한국 기업들은 '의심받지 않을 준비'가 곧 협상력이다. 보안, 지분, 공급망의 투명성을 미국과 중국 어느 쪽이든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는 형태로 갖춰야 한다. 언론도 훼방꾼이 되면 안 된다. 미국의 한 언론이 앤스로픽 접근제한 원인으로 '중국과 연결된 한국 통신사의 보안 문제'라는 익명의 소식통 인용 보도를 했다. 정작 미국에서는 큰 반향이 없던 기사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한국 AI가 위험하다거나 한국 통신회사가 중국 기술에 종속되고 있다거나 확대해석까지 나오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실체는 없다. 한국에 중국과 연결된 통신회사는 없으니 말이다. 어느 때보다 투명성이 중요한 민감한 시기에 기업이 쌓아놓은 투명성을 언론이 근거 없이 훼손하는 데 앞장서면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이 첨단 AI모델을 전략자산으로 끌어들여 패권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부도, 기업도, 언론도 국익에 충실한 냉정한 판단이 절실하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강남視角] 한반도 비핵화 ‘동상이몽’

한반도 비핵화가 주변 강대국들의 엇갈린 시각 속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유엔 회원국들은 북한 비핵화 채택을 두고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 내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도 북핵에 대한 미묘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뉴욕 유엔본부에서 191개국 회원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에서도 이 같은 시각차가 그대로 표출됐다. 평가회의에 참석한 외교부 출신의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북한 비핵화 문구가 채택되지 않자 노골적인 유감을 국제사회에 표명했다. 또한 북한이 결코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북핵 문제를 주도해야 할 통일부는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번 평가회의를 마무리하면서 NPT 체제 강화를 위한 합의문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란 핵문제와 관련한 글로벌 강대국들의 대립 속에 합의문 채택조차 불발됐다. 북핵 관련 문구는 2차, 3차 수정본을 거치며 두 단락에서 한 단락으로 줄더니 4차 수정본에서 아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비핵화를 두고 글로벌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팽팽한 물밑 신경전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달 가진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백악관은 홈페이지에 공개한 미중 정상회담 팩트시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유된 목표를 확인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백악관의 발표에 대해 중국은 철저히 침묵했다. 오히려 중국의 침묵을 대신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총무부장은 백악관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반발했다. 시 주석은 10여년 전만 해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종종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하지만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원칙은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의 핵무장 자체를 억제하기 위한 의도가 포함된 것이었다. 북핵을 인정하는 경우 한반도에 미국의 전술핵이 전개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시 주석이 미중 관계가 악화된 이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런 우려는 시 주석이 이달 초 7년 만에 평양을 1박2일간 방문하면서 북핵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않으면서 기정사실처럼 굳어져 버렸다. 다급해진 것은 미국과 함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해왔던 우리 외교라인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 초 중국을 방문해 친밀외교를 펼치면서 북핵 문제를 두고서 시 주석의 직간접 개입을 내심 기대해왔다. 하지만 공들였던 한중 간 친밀외교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두고선 아무런 작동을 하지 못하면서 근심만 커졌다. 외교안보 라인 내에서 동맹파들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미국 편에 철저하게 서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때부터 시종일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만을 추구해왔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두고 우리 정부의 다양한 시각의 조율도 필요해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북핵의 일괄 타결보다 '동결→축소→비핵화'로 가는 단계적 접근안을 신중하게 대안으로 검토해왔다. 자주파로 분류되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이 같은 단계적 비핵화 정책을 추구해왔다. 그렇지만 핵 군축은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안팎의 평가가 극심하게 엇갈렸다. 게다가 북핵 군축안은 아직 우리 국민과 미국 정부의 일치된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 종전협상을 체결한 뒤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 전후로 북한 비핵화 문제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복잡해진 글로벌 환경 속에서 꼬여 버린 한반도 비핵화 실타래를 풀기 위한 묘책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rainman@fnnews.com

[사설] 글로벌 긴축 본격화, 시장안정 위한 선제 대응 필요

유럽중앙은행(ECB)에 이어 일본은행(BOJ)도 최근 기준금리를 31년 만의 최고 수준인 1%대까지 끌어올렸다. 호주중앙은행(RBA)은 금리를 동결했지만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글로벌 주요국의 긴축 기조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한국도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시중금리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선반영하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와 시장은 긴축의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성장동력을 지켜낼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시장의 관심은 케빈 워시 신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취임 후 처음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쏠려 있다. 연준은 중동전쟁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을 고려해 매파적 기조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이번 회의에서 기준금리는 동결되겠지만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강경한 신호가 나올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다만 최근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씨티그룹은 중동전쟁 종전 양해각서(MOU) 발표 이후 국제유가 하락으로 금리 인하 여건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시타델증권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예상보다 광범위하고 지속적이라며 이르면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제기했다. 월가의 전망이 갈리면서 17일(현지시간) 워시 의장의 첫 기자회견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연준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계 경제가 고금리·고물가 이후 저금리 시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이다. 연준이 예상대로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확인된다면 한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금리 인상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물가안정을 위해 '늦지 않게'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밝히며 매파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성장과 물가, 금융안정 등 정책 변수들이 모두 금리 인상 필요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는 다음 달 16일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다. 미국·이란 종전합의에도 불확실성이 남아 있고 공급망 정상화 지연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글로벌 긴축 기조가 확산하는 만큼 정부와 시장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금리 인상은 기업과 가계의 부채 부담을 키우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한계기업의 부도 위험이 커지고, 부동산·주식·채권 등 자산시장 변동성도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신흥국은 미국 금리 인상 시 달러 강세에 따른 환율 급등과 자본유출이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 물가는 잡히지 않은 채 경기가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한국 역시 4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생산·소비·투자가 동반 감소한 바 있어 긴축의 충격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다행히 우리 경제는 반도체 수출 호조 등에 힘입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세수와 투자, 소득도 개선되며 긴축을 견딜 체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금리 인상은 물가안정과 과열 조짐을 보이는 수도권 부동산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미 빚 부담에 시달리는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이자상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자영업자가 못 갚은 빚은 올해만 8% 늘어 38조원에 이른다. 정부는 선별적 지원책을 마련,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긴축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되 그 부담이 취약계층에 집중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사설] 채용에서 학력제한 철폐한 SK하이닉스의 실험

SK하이닉스가 신입사원을 채용하면서 학력제한을 철폐한다고 17일 발표했다. 채용공고에 명시하던 '4년제 학사학위 이상 지원 가능' 등 학력 자격요건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대비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직무수행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곧 수시채용을 시작하는데 경험, 직무역량, 기업문화 적합성 등이 일치하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학력과 학벌을 중시한다. 좋게 보면 높은 교육열의 소산이지만 지나치게 대학 진학에 매달리는 풍토를 만들어 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없고 대졸자 위주로 사람을 뽑다 보니 누구라도 4년제 대학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1980년 11.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76.3%로 높아졌다. 미국은 60%가 조금 넘고, 독일은 50%를 상회하는 정도다. 물론 대학 졸업자와 고교 졸업자의 능력이 차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의 창의력이나 잠재력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SK하이닉스의 학력제한 철폐는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결정이다. 물론 학력제한을 철폐한 채용시험을 시행한 결과에서 학력이 낮은 고졸 이하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대학 교육에서 습득한 지식의 수준을 측정하는 것이 아닌 창의력을 테스트하는 내용이라면 고졸자나 그 이하 학력의 소유자라도 뽑힐 수 있을 것이다. 고졸자 등의 채용 비율이 극히 낮게 나올 수도 있다. SK하이닉스의 학력제한 철폐는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미래인재의 역량과도 연관이 있다. 최 회장은 스스로 질문하고 본질을 파고드는 '생각 근육', 새로운 기술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적응 근육', 다양성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협업하는 '공감 근육' 등 '3대 근육'을 강조한 바 있다. 최 회장이 말하는 역량의 조건은 학습능력보다 타고난 창의성을 중시한 것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창의성을 발굴하고 키워주기보다는 주입식 교육 위주로 돼 있는 것이다. 대입시험부터 그렇다. 교과서나 학습지를 달달 외우고 빠르게 문제 푸는 데 능한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받아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한다. SK하이닉스가 과연 이런 풍토를 깨고 교육의 작은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선발한 결과에서 기존에 우대받던 학벌과 학력이 파괴된 것으로 나타난다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학력제한을 폐지한 기업도 있고, 공직시험에서는 오래전에 없어지기는 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학력에 집착하는 사회 분위기부터 바꾸는 것이다. 고졸·대졸 차별을 넘어 유명 대학을 나와야 대접을 해주는 그릇된 풍토다. 정부도 사회도 하지 못한 일을 기업은 해낼 수 있다. 실질적인 채용을 통해 실현하면 금세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테헤란로] 'K조선' 가로막는 암초

1970년대 세계 선박 건조량을 양분하며 바다를 호령하던 영국 조선업의 몰락 원인은 이른바 '영국병(British Disease)'이었다. 수많은 하청과 직종별로 쪼개진 노조가 사사건건 파업을 무기 삼아 도크를 마비시켰고, 납기를 놓친 영국 조선소들은 신뢰를 잃으며 아시아에 패권을 넘겼다. 퀀텀점프를 앞둔 한화오션에 덮친 노동 리스크를 보며 반세기 전 영국의 뼈아픈 역사가 기시감처럼 스치는 이유다. 옛 대우조선해양 시절의 만성 적자를 끊어낸 한화오션은 최근 K-해양방산의 최전선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미국 필리조선소를 전격 인수하며 한미 조선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의 선봉에 섰고, 수백조원 규모의 미 해군 함정 유지·정비·보수(MRO) 및 신조 건조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단숨에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총사업비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수주전의 승기를 굳히며 명실상부한 종합 해양방산의 절대 강자로 비상할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순항하던 뱃머리 앞에 '무한 사용자성'이라는 거대한 암초가 등장했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는 사내 급식 및 시설관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 웰리브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대해 원청인 한화오션의 실질적 사용자성을 전격 인정했다. 선박 건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구내식당 등 간접지원 업무를 맡은 하청 협력사까지 원청이 직접교섭에 나서라는 폭넓은 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다. 교섭 범위가 무한정 넓어지면 사내 수많은 하청노조 중 단 한 곳만 쟁의에 돌입해도 원청의 조업이 마비되는 연쇄 리스크에 노출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2022년 하청 노조의 51일 도크 점거 파업으로 무려 8000억원대 손실을 냈던 뼈아픈 상흔이 뚜렷하다. 방위산업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국가안보와 직결된 '적기 인도'가 생명이다. 급식 하청업체의 파업으로 수조원대 이지스함 건조가 멈추고 미 해군 함정 MRO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을 용납할 동맹국은 없다. 무리한 파업 리스크가 마스가 프로젝트마저 좌초시킬 수 있다. 하청 근로조건 개선은 우리 사회가 안고 가야 할 숙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도급 계약의 법적 근간을 흔들면서까지 원청에 무분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모처럼 훈풍을 탄 K-방산이다. 불명확한 잣대로 촉발된 소모적인 분쟁이 국가 핵심 안보자산의 도약에 족쇄가 되어선 안 된다. 영국 조선업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현장 혼란을 막을 현실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

"늘어나는 본가살이 청년… 그들 게으름 아닌 사회구조 문제" [fn 인사이트]

저성장과 고용 불안, 주거비 부담, 고령 부모의 돌봄 수요가 맞물리면서 청년뿐 아니라 중장년 자녀까지 가족 안에 머물거나 다시 들어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처럼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캥거루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는 자산과 소득을 공유하고, 자녀는 집안일·간병·생활 지원 등 가족 안에서 필요한 기능을 제공한다. 가족 내부에서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필요를 교환하는 새로운 분업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노동일 파이낸셜뉴스 주필과의 대담에서 이를 '전업 자녀'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전 교수는 전업 자녀에 대해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얹혀사는 부정적 의미의 캥거루족과는 다르며, 부모의 필요와 자녀의 필요가 맞물린 쌍방향 관계라고 설명했다. 고용과 주거라는 독립 분가의 두 날개가 약해진 상황에서 전업 자녀를 개인의 나태로만 볼 수 없다는 취지다. 그는 청년의 독립을 요구하기 전에 일자리, 주거, 세대 간 자산 이전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업 자녀'라는 개념이 낯설다. 무엇을 뜻하나. ▲직업이 자녀인 상태를 뜻한다. '직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녀입니다'라고 답하는 셈이다. 다소 도발적인 표현이지만 시대 변화가 만든 새로운 개념이다. 과거에는 전업주부라는 말이 있었다. 전업 자녀도 가족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고, 그 역할이 생활 기반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핵심은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기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의 소득이나 자산을 일정 부분 공유받는 대신 자녀도 가족 안에서 집안일, 돌봄, 간병, 생활 지원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계약서를 쓰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내부에서 역할과 보상이 교환되는 구조다. ―기존의 캥거루족과는 어떻게 다른가. ▲캥거루족은 대체로 부모의 자산이나 소득을 자녀가 일방적으로 받는 구조로 이해됐다. 독립해야 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부모 집에 머물며 소비만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도 강했다. 그래서 사회적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전업 자녀는 다르다. 부모의 필요와 자녀의 필요가 맞물린다. 부모는 노후 돌봄이나 생활 지원이 필요하고, 자녀는 고용과 주거 장벽 때문에 독립이 쉽지 않다. 서로의 필요가 가족 안에서 교환된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곁에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의 자산과 소득을 바탕으로 생활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나. ▲독립 분가를 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본인의 호구지책, 즉 일자리다. 다른 하나는 주거다. 고용과 주거가 독립 분가의 양 날개인데 이 두 개가 모두 약해졌다. 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지는 생애 경로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작동했다. 지금은 첫 관문인 취업부터 어렵다. 4학년 때 취업해 바로 사회에 나가는 경우가 줄고, 졸업을 유예하면서 5학년으로 남아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늘었다. 취업준비생이라는 기간도 1~2년, 길게는 2~3년까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됐다. 문제는 그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4학년, 5학년, 취업준비생이라는 단계를 지나도 사회 진입이 안 되면 결국 '직업이 자녀'인 상태가 된다. ―원인은 무엇인가. 청년 개인의 의지 부족인가. ▲대부분의 전업 자녀는 독립 분가를 위한 의지와 노력, 능력이 있다. 다만 개인의 노력으로 뚫기 어려운 장벽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 이제는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한다는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는 줄고, 기업은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한다. 그런데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출발선부터 딜레마다. 늦게 취업해도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다는 보장도 약하다. 사회 진입 연령은 늦어지는데 안정적 직장에서 퇴장하는 시점은 빨라지고 있다. 부모가 30년 가까이 자녀 교육과 준비에 투자해도, 자녀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20년도 안 될 수 있다. 부모 세대가 믿어온 교육 투자와 계층 상승의 공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부모 세대의 인식도 바뀌었나. ▲전업 자녀는 자녀만의 선택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지금의 중년 부모 세대는 고성장과 저성장의 경계를 모두 경험했다. 교육을 통해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는 신화를 믿고 자랐지만, 동시에 그 신화가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도 봤다. 그래서 무조건 취업만 강요하지 않는다. 취업이 정말 자녀의 미래를 보장하는지 의심한다. 자녀가 불안정한 일자리에 급히 들어가는 것보다, 부모가 벌 수 있을 때까지 지원하면서 자녀에게 맞는 업을 찾도록 돕겠다는 태도도 나타난다. 취업보다 평생의 업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부모가 늘었다. 조금 더 지체되더라도 자녀의 성향과 능력에 맞는 일을 찾을 때까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쉬었음' 청년 통계와도 연결되는 문제인가. ▲국가가 '쉬었음'이라는 통계를 주기적으로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국가 통계는 특정 시대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과거에는 극소수였거나 별도 통계로 잡을 필요가 없던 현상이 이제 정책의 근거로 삼아야 할 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20대의 쉬었음 인구가 많은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취업 준비, 진학 준비, 경력 탐색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대와 40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는 일시적 취업 준비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통계에 잡히는 숫자는 일부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전업 자녀의 성격을 갖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들을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기력한 집단으로 볼 수 없다. ―전업 자녀에도 차이가 있나. ▲우선 취업 유예형이 있다.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부모 집에 머물며 준비하는 경우다.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면서 독립을 미루는 경우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온 재취업 준비형도 있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중도 퇴직 이후 안정적 일자리로 다시 진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유형도 늘 수 있다. 간병·돌봄형도 중요하다. 노부모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시장에서 간병 서비스를 구매하기 어렵거나 비용 부담이 크면 자녀가 직접 돌봄을 맡게 된다. 이 경우 자녀는 부모의 생활 기반을 공유하고, 부모는 자녀의 돌봄 기능을 받는다. 다만 전업 자녀를 무직 청년이나 미혼 자녀로만 볼 필요는 없다. 나이가 많고, 고학력이고, 분가했고, 직업이 있는 자녀도 부모의 자산이나 돌봄 기능에 기대는 경우가 있다. ―고령화와 간병 부담이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나.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복지가 확대됐다고 하지만 노후에서 가장 큰 부담은 여전히 간병이다. 시장에서 제공되는 간병 서비스는 비용이 높고 만족도는 낮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의료와 간병을 외부에 맡기기보다 자녀가 직접 맡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경우 가족 안으로 돌봄 기능이 다시 들어온다. 부모는 자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자녀도 부모를 돌보는 대신 부모의 자산과 소득을 공유한다. 제도 변화가 없다면 간병·돌봄형 전업 자녀는 계속 확산될 수 있다. ―정책 대응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나. ▲첫째는 일자리다. 청년이 독립하려면 안정적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생산가능인구도 함께 줄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청년이 일자리를 골라 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제는 일자리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산업 전략과 고용 전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둘째는 주거다. 취업을 해도 살 집을 구할 수 없다면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4인 가족 중심 주택 공급에서 벗어나 1인 가구, 근거리 가족, 세대 교류형 주거, 공동체 주거 등 다양한 모델을 정책적으로 실험해야 한다. 셋째는 자산 이전이다. 청년 세대가 사회에 진입하려면 부모 세대에 묶인 자산이 아래 세대로 흘러갈 수 있어야 한다. 상속이 사망 이후에야 이뤄지는 구조만으로는 늦다. 증여와 상속 구조, 주거 지원, 창업 지원, 직업훈련 등을 통해 세대 간 자산 이동을 어떻게 설계할지 논의해야 한다. ―전업 자녀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도덕적으로만 비난해서는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전업 자녀는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저성장, 고용 불안, 주거비, 고령화, 간병 부담, 가족 기능 약화가 동시에 만든 결과다. 현상은 늘 변화 속에서 생긴다. 중요한 것은 그 현상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사회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전업 자녀는 불편한 현상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의 고용·주거·복지·가족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청년에게 독립하라고 말하기 전에 독립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전업 자녀 현상이 사회문제로 굳어지지 않게 하려면 청년이 일하고, 살 집을 구하고,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복원해야 한다. 정리=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

[강남視角] 유일한의 길

1945년 초 미국 전략정보국(OSS)의 비밀기지가 있던 캘리포니아 샌타카탈리나섬. 머리가 희끗희끗한 쉰 살의 기업가가 여기에 있었다. 수십킬로미터의 해안을 헤엄치고 밤하늘의 비행기에서 맨몸으로 낙하산을 펼쳐 뛰어내리는 특수훈련을 받고 있다. 20대의 젊은 청년들도 피를 토하는 지옥 같은 시간이다. 작전명은 냅코(NAPKO) 프로젝트. 경성(서울)과 조선총독부 침투가 목표 중 하나다.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은 결국 무산됐지만 8개월에 걸친 훈련은 혹독했다. 요원들은 폭파 기술, 위장술, 독도법, 무선통신기술까지 마스터한다. 이 경성 침투조의 조장이 당시 쉰 살의 기업가,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1895~1971)이다. 미국에 간 것은 아홉살 때였다. 그가 태어났던 구한말 평양은 당시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 거점이 평양이었고, 선교사를 통해 태평양을 건넌 것이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손에 낯선 언어로 쓰인 성경 한 권을 쥐여주며 먼 길을 배웅했다.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배는 한달 만에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한다. 다시 기차로 갈아타고 마지막 당도한 곳이 네브래스카주의 신앙심 깊은 자매의 집이다. 역사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된 것은 독립운동가 박용만이 이끌던 한인회 조직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고교생 때 박용만을 도와 미국 국무부로부터 '대한제국 시민의 자주권'을 인정받는 레터를 받아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미시간대 3학년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이 주도한 한인 자유대회에서 청년 연사로 단에 오른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로운 민주 국가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독립할 자격이 있고,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연설의 제목이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에 대한 선언'이었다('유일한의 생애와 사상, 김형석'). 고국의 땅은 제물포항을 떠난 지 20년이 흐르고 나서야 밟게 된다. 미국에서 제너럴일렉트릭 회계사로 출발해 식품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였다. 거부가 된 유학파 청년 사업가의 눈에 고국의 풍경은 참담했을 것이다. 메마른 산천에 깡마른 농부들만 득실했다. 가장 열악한 문제가 보건이라고 봤다. 의사의 수도, 약품도, 영양도 형편없었다. 미국으로 돌아가 회사를 정리하고 의약품을 사모아 다시 귀국한다. 그때가 1926년이었다. 종로2가 덕원빌딩에 사무실을 차려 유한양행 간판을 올렸다. 의약품 수입을 우선으로 시작해 화장지, 비누, 치약 등 위생용품과 염료, 농기구까지 품목이 확대된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한다. 한국의 특산품을 미국 시장으로 수출하는 일도 했다. 나아가 의약품 자체 생산에 도전해 수출까지 성사시킨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판로개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 태평양전쟁 발발로 그는 미국에서 발이 묶인다. 거기서 선택한 일이 목숨을 건 경성 침투 특수공작이었던 것이다. 해방 후 돌아와 그가 걸었던 길은 경영자의 모범답안이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그리고 교육보국이다. 나라의 힘은 학벌이 아니라 기술인재에 있다고 말한 이가 그다. 그러면서 기술학교를 세우고 전 재산을 사회에 돌렸다. 딸에게 남긴 유언장엔 "학교 벌판의 땅 5000평을 유한동산으로 꾸며 학생들이 마음대로 놀 수 있게 하라"고 썼다. 그리고 '절대 울타리를 치지 말 것'. 미래의 아이들 발목을 잡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유일한이 세운 유한양행은 올해로 100년이 됐다. 연매출 2조원대의 회사는 국내 대표 제약사를 넘어 국산 신약 가능성을 보여주며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다. 창업주의 정신이야말로 이 회사의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유일한을 기리는 창작물도 인기다. 윤태호의 웹툰 'NEW 일한' 연재물이 공개됐고, 뮤지컬('스윙 데이즈, 암호명 A')도 무대에 올려졌다. 더 많이 그의 삶이 공유되었으면 한다. 오로지 권력을 잡는 것만이 목표로 보이는 정치권이 눈을 크게 뜨고 돌아보아야 할 발자취다. 기업가의 길, 이 시대 어른의 길을 다시 생각한다. jins@fnnews.com 최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