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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업이 뿌린 사회공헌의 씨앗

전기 사용량 데이터로 고독사를 막고 저출생 극복을 위해 난임 직원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며, 화염 속을 뛰어드는 소방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들. 지난 7주간 파이낸셜뉴스에서 담아낸 기업 사회공헌의 현장이다. 단순 기부나 일회성 봉사를 넘어, 기업의 핵심 기술과 역량으로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이 흐름은 우리 사회가 기업 사회공헌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선언하는 데에서 나아가, 사회공헌을 기업 가치와 직결된 핵심 경영 전략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환경·사회적 활동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국제재무보고기준(IFRS) 재단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ESG 공시 표준을 발표했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상장 기업을 중심으로 공시 의무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ESG 공시가 이제 사실상 '제2의 재무제표'로 자리 잡는 것이다. 투자자와 소비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사회공헌은 이제 기업의 평판과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으며 기업 경영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올랐다. "좋은 일을 하기는 했는데, 얼마나 사회를 좋게 만들었나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주로 투입 중심이었다. 얼마를 기부했는지, 몇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는지가 주된 지표였다. 기업 사회공헌을 통해 실제로 수혜자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정부 지출이 필요한 공공 예산을 얼마나 절감해 주었는지는 제대로 측정되지 못했다. 일부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기업이 창출해 낸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해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데이터 수집의 어려움과 전문성 확보라는 과제 앞에서 일선 단체들은 아직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성과로 드러날 때 비로소 인정이 따라오고, 인정이 따라올 때 발전이 시작된다. 성과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면 선한 의지로 시작한 사회공헌 활동이라도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사회공헌의 성과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보다 민간이 스스로 측정하고 입증할 수 있도록 기반과 역량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측정하고 입증할 때 훨씬 신뢰성이 높아지며, 창의성과 혁신성도 북돋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창출된 성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성과가 세제·포상 등 인센티브와 연결될 때 기업은 더 전략적으로 사회공헌을 설계하게 되고, 민관협력은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다. 기업이 사회공헌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그 평가가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파이낸셜뉴스의 7주에 걸친 기획기사가 보여준 것처럼, 기업의 사회공헌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작동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기업의 선의가 성과로 증명되고, 그 성과가 다시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겠다. 기업과 사회, 정부가 함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포럼] 월성원전 계속 운전하려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4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NDC 달성을 위해 무탄소 에너지 확대를 천명했지만, 전력 현장의 실상은 시급하기 짝이 없다. 당장 2026년 11월 월성 2호기를 시작으로 3·4호기가 차례로 운영을 정지한다. 총 2.1GW 규모의 이 원전들이 제때 전력망에 복귀하지 못한다면 연간 약 160억kwh의 청정에너지가 증발한다. 이는 24시간 상시 전력공급원으로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도 어렵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600만t 이상의 온실가스가 추가 배출되어 2030 NDC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월성 2·3·4호기의 계속운전이 필수다. 그러나 현행 규제제도의 모순은 월성 원전 계속운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30 NDC 달성을 위해 법제도 개선과 관련 부처의 총력 대응이 시급하다. 우선 국회와 정부는 계속운전을 가로막는 두 가지 법적 걸림돌을 시급히 제거해야 한다. 첫째, 원자력안전법상의 인허가 기산점과 기간의 개정이다. 우리나라는 계속운전 허가 기간을 10년으로 묶어두고 있으며, 그마저도 과거의 '설계수명 만료일'부터 소급하여 계산한다. 월성 원전은 계속운전을 위해 수천억원을 들여 압력관을 교체해야 한다. 인허가 심사와 자재 조달, 시공에 수년이 소요되어 막상 재가동을 하더라도 정작 운전할 수 있는 기간은 6~7년에 불과하다. 6~7년 운전으로는 투자 대비 경제성이 나오기 힘들다. 미국처럼 계속운전 승인 후 '새 면허 발효일'부터 기간을 기산하거나 일본처럼 '정지 기간을 수명에서 제외'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또한 계속운전 허가 기간을 20년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사업자가 투자를 감행할 수 있다. 둘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내 독소조항의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 특별법 제36조 제6항은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의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으로 제한하고 있다. 월성 원전은 이미 1992년부터 부지 내 임시저장을 아무런 안전 문제 없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으로 인해 계속운전 허가를 받더라도 추가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저장시설을 지을 수 없다. 이 조항을 방치하면 월성 원전은 계속운전에 들어가도 2037년경 저장공간 포화로 가동을 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한다. 국회는 계속운전 등 여건 변화 시 저장용량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수력원자력은 선제적인 투자와 공급망 관리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핵심 부품의 적기 조달을 위한 '패스트 트랙' 공급망을 구축하고, 선행 정비계획을 수립하여 물리적 공사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탄소중립 컨트롤타워로서 적기 계속운전을 위한 전방위적 정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심사인력을 집중 배치하고 절차를 효율화하여 심사 장기화로 인한 가동공백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전향적인 법제도 혁신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전력공급 공백과 함께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약속도 지키기 어려워진다. 정동욱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

[fn광장] 지금이 금융 혁신의 골든타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금융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은행은 건전성을 중시하게 되었고, 자본비율과 리스크 관리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나라가 이제는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분명 값진 성취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외면해왔다. 그렇게 건전해진 금융이 과연 우리 경제를 더 생산적이고 더 포용적으로 만들었을까. 산업화 시기의 금융은 국가 성장전략의 도구였다. 국민의 저축을 모아 제조업과 수출산업에 공급했고, 그것이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IMF 이후에는 방향이 달라졌다. 금융은 안정성과 건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기 시작했다. 위기를 겪은 뒤였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금융이 점점 더 위험을 회피하는 구조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자금은 미래 성장성이 높은 혁신기업보다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과 가계대출로 몰렸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은 표준화가 쉽고, 손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로 보면 결과는 달랐다. 혁신기업과 스타트업에는 충분한 자금이 흐르지 못했고, 한국 경제는 부동산 중심의 구조에 갇히게 되었다. 금융은 더 안전해졌지만 더 생산적이지는 못했다. 동시에 금융의 문턱 밖에 놓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청년 창업자, 외국인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신용평가 체계 안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금융은 건전해졌지만 충분히 포용적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금융 대전환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1990년대까지의 산업화 금융 시대, 외환위기 이후의 안정화 금융 시대를 거쳐 이제 인공지능(AI) 기반 혁신금융의 시대로 금융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금융은 결국 정보를 판단하는 산업이다. 돈을 빌려줄지, 투자할지, 위험을 감수할지 결정하는 일이 모두 정보 분석의 문제다. 과거에는 사람이 제한된 데이터만 보고 판단했다. 이제는 AI가 수천 개 변수와 비정형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한다. 거래패턴과 현금흐름, 공급망 정보, 소비패턴까지 종합적으로 읽어낸다. 이 변화는 생산적 금융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 금융은 과거의 재무제표와 담보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과거 데이터가 부족하다. AI는 스타트업의 고객 유지율, 온라인 거래 흐름, 공급망 안정성 같은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가능성을 더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다. 자본이 과거 실적만 좋은 기업이 아니라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동시에 AI는 포용적 금융도 가능하게 만든다. 정규직 급여 이력이 부족하더라도 현금흐름의 안정성을 분석할 수 있고, 금융거래 기록이 짧더라도 소비 패턴과 생활 데이터를 통해 신용을 평가할 수 있다. 과거 금융 시스템이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포용성과 생산성은 원래 충돌하는 목표처럼 여겨졌지만 AI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을 더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금융은 동시에 더 생산적이고 더 포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회가 있다고 미래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금융회사 스스로 변해야 한다. AI 전담부서를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영업과 리스크, 마케팅과 IT 사이의 벽을 허물고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 실패를 최소화하는 문화만으로는 안 된다. 작은 실험을 빠르게 반복하며 학습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점포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AI를 얼마나 조직 깊숙이 내재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의 역할 역시 너무도 중요하다. 지금의 금융규제는 여전히 사전 허가와 세부 규정 중심이다. 하지만 AI 시대의 혁신은 실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모든 것을 미리 허락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보호와 책임성 같은 큰 원칙만 제시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샌드박스도 단순한 예외 허용이 아니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학습 체계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조건은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성과 실행력이다. AI 시대를 단순한 기술 변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금융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사적 기회로 만들 것인가. 답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10년 만에 뒤바뀐 이혼소송의 룰 — 위자료, 증거, 변호사 시장까지 다 바뀌었다[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이혼]

[파이낸셜뉴스]  최근 몇 년 사이 이혼 소송의 양상은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필자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그리고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다시 수원가정법원에서 근무하며 약 10년의 간극을 두고 이혼 재판을 직접 다루었다. 여기에 현재 변호사로서의 실무 경험까지 더해보면 이혼 소송이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 주요 변화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위자료, '보상'에서 '제재'로 첫 번째 변화는 위자료 액수의 상승이다. 과거 실무에서는 부정행위가 인정되는 경우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는 약 3,000만 원,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는 약 1,500만 원이 일종의 공식처럼 작용되었다. 법원 실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자료의 기능을 단순한 정신적 손해배상을 넘어 '불법행위에 대한 억지 및 예방 수단'으로 보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언론이 주목하는 고액 위자료 판결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여러 하급심도 전반적으로 위자료를 높게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가 갖는 의미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혼 사유의 중심, 부정행위 두 번째 변화는 이혼 사유의 구조적 변화다. 과거에는 이혼 사유로 폭력, 중독, 경제적 문제, 원가족과의 갈등 등 다양한 사유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부정행위는 그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사건들을 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상당수 사건에서 부정행위는 다른 이혼 사유들과 결합 되어 언제나 핵심 이혼 사유로 등장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부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없었는데 외도 때문에 이혼 소송이 촉발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젊은 부부들의 이혼 사유로는 부정행위가 압도적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SNS의 발달, 정조의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그리고 간통죄 폐지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와 달리 부정행위를 발견했을 때 '참고 살기' 보다 '즉시 이혼'으로 이어지는 선택이 증가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증거는 더 중요해졌지만, 증거 확보는 더 어려워졌다 세 번째 변화는 증거 확보 환경의 변화다. 과거에는 통화내역, 문자 메시지 수발신 내역, 카톡 내역, 카드 사용 내역, 기지국 위치 등 객관적 증거 자료를 법원을 통해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당사자가 증거 확보를 위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비밀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관련 증거 신청에 대한 법원의 채택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통신사나 플랫폼 사업자 역시 영장이 없으면 내밀한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부정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합법적 증거 확보는 더욱 어려워졌고, 일부에서는 도청이나 위치추적, 흥신소 의뢰와 같은 위험한 방법에 의존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이혼 소송 당사자가 재판 과정에서 형사적 리스크까지 부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열되는 '이혼 전문' 시장 마지막 변화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급증이다. 과거에는 이혼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의 풀이 제한적이었고, 실무 스타일도 비교적 균질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이혼 소송 시장에 진입하는 변호사 인원도 급격히 늘어났다. 이혼 사건은 다른 전문 분야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가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재산분할 규모의 확대에 따라 수임료도 상승하는 경향이 있어 더욱 많은 변호사가 몰리고 있다. 또한 이혼이 더 이상 숨겨야 할 일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혼 자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크게 증가하였다. 최근 방송과 여러 콘텐츠에서 이혼을 다루는 방식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시장은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경쟁은 치열해졌고, 전문성의 편차 역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변화의 본질 이 네 가지 흐름을 종합하여 보면, 최근 이혼 소송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이혼사유가 부정행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위자료는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증거 확보는 더욱 어려워졌고, 법률 시장은 과열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실무 변화만이 아니라 가족과 혼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혼 소송은 더욱 정교한 소송전략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포럼] 우주데이터센터에 거는 기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로 평가받았던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의 물결'은 정보화 시대가 가져다줄 미래를 다양한 측면에서 예측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시대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류 문명을 3개의 물결로 나누고 농업, 산업, 정보화 혁명으로 구분하였다. 제3의 물결에서는 인간의 두뇌에 저장되어 있던 사회적 기억이 컴퓨터의 등장으로 기억량이 증대되고 연결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문명건설 작업이 다양한 국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또한 소형화가 진행되면서 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장소에서 지적 정보가 가득찬 환경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제3의 물결'이 발표된 1980년은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와 모바일 컴퓨팅의 혁명을 이끌었던 정보기술(IT)산업의 선구자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관련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토플러가 예언한 정보화 시대는 이제 단순한 '정보의 생성과 처리'의 차원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혁명이 산업은 물론 일상 전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규모 정보의 저장·관리·배포를 위한 핵심 IT인프라가 집결된 데이터센터는 지식 정보화 시대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하게는 개인의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들이 구름(Cloud)을 타고 저장되는 것은 물론 챗GPT에 요청한 문의사항의 답변을 계산해 주는 거대언어모델 기반의 AI 기능까지 어딘가에 위치한 데이터센터에서 처리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 수요에 부응하여 데이터센터 부지를 확보, 건설하려는 노력도 전 세계 관련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보통 대형 축구장 크기의 수십, 수백배 이상의 부지를 확보하여야 하는 데다 웬만한 도시 규모의 전력소모와 열처리를 위한 수자원 확보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AI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현재 건설계획된 809개 데이터센터의 대부분이 가뭄 피해를 겪고 있는 지역에 건설되고 있으며, 급증하는 데이터센터가 생태계를 더 심각한 물 부족 상태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최근 발표되었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로 유타주에 건설이 승인된 '스트라토스' AI 데이터센터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서버보다 전력소비가 훨씬 높아 단일 시설이 원자력발전소 1기(1GW)와 맞먹는 전력을 소모하기도 한다. 정보화 시대의 심장인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력과 물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이자 AI산업 성장의 핵심병목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데이터 기반경제와 뉴스페이스를 견인하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가 작년 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우주 데이터센터 설립비전을 제시한 것은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AI 시대가 요구하는 전력 및 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를 떠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에 성공한 스페이스X의 우주데이터센터 구축 발표로 아르테미스 달탐사보다 더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주광혁 연세대 인공위성시스템학과 교수

[포럼] 李정부의 '메가특구' 성공하려면

6·3 지방선거가 끝나고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 선출된 자치단체장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업은 쇠퇴일로에 있는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을 살리는 일이다.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여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일자리를 늘리고, 종사자들의 정주 환경을 개선하여 지역에서 생활과 소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지방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떻게 기업의 투자를 끌어낼 것인가이다. 기업으로서는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인력을 구하기 쉬운 수도권을 떠나 지방에 연구센터나 생산공장을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기업의 지방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새로 선출된 광역단체장들이 관심을 기울여 추진해야 할 것이 메가특구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가균형 성장을 위해 새롭게 설계한 이 제도는 인접 시도에 걸쳐 있는 여러 개의 산업과 혁신 거점을 하나의 대규모 특구로 지정하고, 획기적인 투자 유인책을 마련했다. 먼저 특구에 최고 수준의 규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세 가지 방식의 규제 특례를 제공한다. 첫째, 메뉴판 식 규제 특례로, 기업과 지방정부가 필요로 하는 규제 완화를 미리 준비된 형태로 제공하여 투자 기업이 쉽게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수요응답형 규제유예는 메뉴판에 없는 규제 중 기업이 원하는 규제 완화를 빠른 심의를 통해 허용하는 제도이다. 셋째, 기존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개선하여 기업들이 신기술과 서비스를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빠르게 실증할 수 있도록 한다. 특구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이러한 규제 완화와 더불어 재정, 금융, 세제, 인재, 인프라 측면의 지원이 패키지로 제공되어 투자 매력도를 높인다. 재정에서는 성장엔진 특별보조금을 신설하여 메가특구의 신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현 정부가 새롭게 조성한 국민성장펀드와 지역성장펀드는 특구 내 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와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세제 혜택도 기존의 지방 이전 기업에 주어지는 법인세 감면에 더해 투자, 고용 및 연구개발(R&D)에 비례하여 확대할 예정이다.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특구 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여 공급하고, 산업단지를 비롯한 거점 지역의 주거, 교육,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여 정주 인구를 늘릴 계획이다. 특구 제도가 이번 정부에서 처음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로 시작한 연구개발 특구가 전국 19곳에 지정되어 있으며, 신기술의 실증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한 규제자유 특구도 전국에 40곳 이상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방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한 기회발전 특구도 55곳이나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각종 특구가 이미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가특구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 특구의 지원책이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는 데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새롭게 추진되는 메가특구가 지방경제의 신성장 엔진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외 기업에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표된 통합지원 패키지가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

[fn광장] 제조강국 韓, 혁신의 '두뇌' 심어라

지금 세계 경제는 단순한 경기 순환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적 전환(Structural Transformation)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인공지능(AI), 양자기술, 바이오 혁명이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은 과거의 '효율성' 중심에서 '안보와 신뢰'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 리쇼어링, 프렌드쇼어링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대외 격랑 속에서 한국은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가속화되면서 내수시장 축소와 복지비용 폭증이라는 이중고가 현실화되고 있다. 제조 강국으로 쌓아온 기반을 혁신 강국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장기 정체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추격형 성장 모델의 한계가 명확해진 지금, 혁신으로 돌파해야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 해답은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서 찾을 수 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뒤흔드는 혁신에서 찾았다. 새로운 기술과 기업이 기존 산업을 대체하는 과정 자체가 성장의 진정한 원천이다. 여기에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이 힘을 더한다. 기술과 혁신은 경제 시스템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며 지식 축적, 인적 자본, 강력한 인센티브가 결합될 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이는 202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필리프 아기옹·피터 하윗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지속적 성장'과 직결된다. 한국이 과거 추격형 성장에서 벗어나 선도형 또는 혁신형 성장으로 나가려면 바로 이 혁신 메커니즘을 작동시켜야 한다. 일본은 제조 강국이 혁신 강국으로 전환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1980년대 세계 최고 제조 경쟁력을 가졌으나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카이젠식 점진적 개선에는 강했으나 파괴적 혁신과 디지털 전환을 놓친 것이 결정적 한계였다. 경직된 노동 시장과 안정 지향 문화가 창업과 위험 감수를 막았다. 반면 미국은 대학, 벤처캐피털, 자본시장이 연결된 혁신 생태계를 통해 새로운 기업을 지속적으로 탄생시켰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강력한 인센티브가 핵심이다. 부가가치만을 강조해온 탓에 발생한 제조업 공동화의 부작용에 직면해 있으나, 최근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혁신과 제조 기반을 다시 결합하는 전략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의 최대 무역 상대국 가운데 하나인 중국은 '연성 예산 제약'하에서 부채를 동원해 성장을 이어온 결과 지방정부와 부동산 부채가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AI 등 전략 산업에서 빠르게 기술 경쟁력을 축적하고 있다. 과잉생산과 혁신 역량이 결합되면서 한국에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닌 구조적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을 기술 추격자이자 혁신 경쟁자로 정확히 인식하고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우위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 경제는 대기업 중심 연구개발(R&D)의 한계와 서비스 산업의 낮은 생산성이라는 구조적 제약에 봉착해 있다. 대기업 체계는 기술 추격에는 효과적이었으나 파괴적 혁신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26위로 최하위권이며, 그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각종 규제와 아날로그 법체계가 AI와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아 전체 생산성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제조업 편중 성장의 잔재로, 서비스 부문의 디지털 전환 지연과 규제 과잉, 중소기업의 투자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결국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혁신으로 돌파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혁신 주체를 대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등으로 다변화하고 창업부터 재도전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개방형 혁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지원정책이 필수다. 둘째, 서비스 산업의 고도화와 스마트 규제 개혁이 시급하다. AI와 데이터를 의료·교육·금융 등에 적극 도입하고, 규제 샌드박스 확대와 데이터 공유 체계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반 위에 AI를 접목한 지능형 제조로 전환하여 기술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넷째, 창의성과 문제 해결 역량을 중심으로 한 인재 양성 체계로 전환하고, 노동 이동성을 높이며 주 52시간제 같은 불합리한 노동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며, 해외 인재 유입을 확대함으로써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혁신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제조라는 강력한 심장에 혁신이라는 뇌를 이식할 때 진정한 혁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 박기순 한중경제포럼 회장

[기고] '연결'의 시대, 다시 뛰는 부산·경남

최근 부산과 경남에는 다시 '연결'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산업과 물류, 도시와 사람이 다시 이어져야 한다는 공감대다. 지역은 지금 또 하나의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앞서가느냐보다 어떤 방향으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느냐다. 세계의 물류지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첨단산업 경쟁 심화 속에서 이제 물류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고 있다. 최근 북극항로 가능성까지 현실화되면서 항로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항로가 바뀌면 물류가 바뀌고, 물류가 바뀌면 산업과 투자 흐름 역시 달라진다. 지금 부산과 경남은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가덕도신공항 건설과 진해신항 조성, 북극항로 논의까지 이어지며 동북아 물류 환경 자체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먼저 읽고 실제 성장동력으로 연결하느냐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력은 개별도시 경쟁이 아니라 항만과 공항, 산업과 물류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부산은 이미 해상 물류 경쟁력을 충분히 입증해 왔다. 신항은 대한민국 컨테이너 물동량의 중심축이자 세계적 환적항만으로 성장했고, 부산·경남·울산으로 이어지는 동남권은 조선·자동차·기계 산업이 집적된 국내 최대 제조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제조와 물류 기반이 동시에 집적된 지역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그러나 이제는 해상 물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반도체와 바이오, 인공지능, 로봇 같은 첨단산업일수록 속도와 공급망 안정성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글로벌 주요 물류 허브들도 항만과 공항, 철도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복합물류 체계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그 변화의 핵심에 가덕도신공항이 있다. 2035년 개항을 목표로 추진 중인 가덕도신공항이 완공되면 부산·경남은 해상과 항공, 철도가 결합된 '트라이포트' 기반을 갖추게 된다. 여기에 2040년 개항 예정인 진해신항까지 더해지면 동남권은 생산과 물류, 유통과 산업이 연결되는 거대한 복합 플랫폼으로 확장된다. 단순한 인프라 확충을 넘어 기업의 투자 환경과 산업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음 달이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으로 취임한 지도 어느덧 1년6개월, 임기 반환점을 맞게 된다. 최근 지역의 변화 역시 결국 '연결'의 문제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산업과 물류, 기업과 행정, 부산과 경남이 하나의 흐름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새로운 성장도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개발률은 이미 98%를 넘어섰다. 이제는 얼마나 넓게 개발하느냐보다 어떤 산업을 유치하고 어떤 기업과 함께 성장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 시점이다.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산업과 물류, 기술과 사람이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역시 조직체계를 다시 정비했다. 이달부터 기존 2본부 4부 12과 체제를 2본부 1실 4부 14과 체제로 확대하고, 정원도 102명에서 110명으로 늘렸다. 투자유치와 기업지원 기능을 보다 세분하고 전략산업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혁신성장부' 신설과 기업지원 체계 개편을 통해 기업의 투자 결정부터 성장, 후속 투자까지 보다 유기적으로 지원하는 현장중심 행정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도권 중심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많은 청년들이 기회를 찾아 지역을 떠났고, 지역은 인구감소와 산업 침체라는 어려움을 동시에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부산·경남은 다시 한번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산업과 물류, 기술과 사람이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부산·경남은 단순한 물류 거점을 넘어 대한민국 성장의 새로운 축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변화는 단순한 지역 개발을 넘어 대한민국 성장전략의 전환과도 맞닿아 있다.박성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

[fn광장] '퐁피두센터 한화'에 바란다

2026년 6월 4일 서울 여의도에 퐁피두센터 한화가 개관했다. 이는 우리가 아는 해외 유명 미술관의 분관 유치가 아니다. 이번 개관은 국제 문화기관과 국내 민간기업이 협력해 새로운 문화 인프라를 구축한 사례이자, 서울이 글로벌 문화 네트워크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정책적 사건으로 볼 필요가 있다. 퐁피두센터는 단순한 전시기관이 아니다. 1977년 개관 이후 현대미술, 디자인, 건축, 음악, 영상,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복합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현대 문화기관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해 왔다. 특히 미술관의 역할을 소장과 전시에 한정하지 않고 연구와 교육, 창작 지원, 국제교류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세계 문화예술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서울에 개관한 퐁피두센터 한화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스페인 말라가, 중국 상하이에 이은 세 번째 해외 거점이다. 이는 최근 서울이 국제 미술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프리즈 서울 개최 이후 서울은 아시아 주요 미술시장으로 자리매김했으며 국제 갤러리와 컬렉터, 문화기관의 관심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과거 국제 문화 콘텐츠를 수용하는 시장으로 인식되던 서울이 이제는 글로벌 문화 네트워크의 주요 거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파리 퐁피두센터 본관이 2030년까지 대규모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상황에서 서울이 해외 거점으로 선택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프로젝트는 문화 인프라 구축 방식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이 주로 후원과 협찬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퐁피두센터 한화는 장기간의 국제 협상과 공간 조성, 운영 전략이 결합된 프로젝트다. 문화예술을 일회성 사회공헌이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자산으로 접근한 사례라는 점에서 향후 기업 메세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건축적 측면 역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설계를 맡은 장 미셸 빌모트는 루브르박물관 리노베이션을 비롯, 세계 주요 문화공간 프로젝트를 수행한 건축가다. 퐁피두센터 한화는 전통 기와의 곡선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여의도라는 도시 맥락 속에서 개방적 문화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단순한 건축 디자인을 넘어 문화공간과 도시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제안으로 읽힌다. 그러나 퐁피두센터 한화의 진정한 가치는 개관 이후의 운영 방향에서 결정될 것이다. 파리 퐁피두센터가 세계적 영향력을 확보한 이유는 단순히 유명 작품을 소장했기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예술 실험을 지원하고 신진 예술가를 발굴하며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교류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퐁피두센터 한화 역시 단순한 해외 명작 전시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제교류의 허브로서 국내 예술가와 해외 문화기관을 연결하고, 공동 연구와 공동 제작을 촉진하며, 차세대 창작자를 육성하는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특히 아시아 문화기관들과의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함으로써 국제 문화교류의 실질적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확산은 예술 창작 환경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오늘날 문화기관은 더 이상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지식과 창의성, 기술과 예술이 융합되는 실험의 장이자 미래 문화 담론을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제 문화기관의 브랜드를 유치하는 것만으로 문화 경쟁력이 확보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을 통해 어떤 창작자를 성장시키고, 어떤 예술적 실험을 지원하며, 어떤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생산하느냐다. 퐁피두센터 한화 역시 세계적 명작을 소개하는 전시장을 넘어 창작과 연구, 교육과 국제교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개방형 문화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국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예술가와 연구자, 시민과 산업이 만나고 협력하는 혁신 생태계의 거점이 될 때 비로소 그 존재 이유가 완성될 수 있다. 퐁피두센터 한화의 개관은 하나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결국 그 가치는 얼마나 많은 관람객이 찾았는가가 아니라 한국 문화예술 생태계에 어떤 변화와 기회를 만들어냈는가에 의해 평가될 것이다. 서울이 글로벌 문화 네트워크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할지,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가 국제 문화협력과 문화인프라 구축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매김할지는 앞으로의 운영 역량과 장기적 비전에 달려 있다. 이상미 유럽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장

[포럼] 李정부의 지역외교 전략

프랑스에서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초청을 받아 참석하고 있다. 한국은 2020년 이후 꾸준히 G7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았다. G7 초청이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말이 진부할 만큼 글로벌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은 높고 견고하다. 높아진 위상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이런 위상에 걸맞은 적극적이면서도 치밀한 글로벌·지역 외교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한국의 지역외교전략과 비전은 탈냉전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냉전 시기 한국은 강대국이 만든 냉전질서 속에 옴짝달싹하기 어려웠다. 개발도상국인 한국의 국가 역량은 한반도 문제 관리를 위한 외교도 벅찼고 적극적 지역 정책, 비전은 먼 이야기였다. 냉전이 끝나면서 비로소 우리 외교를 구속했던 냉전질서도 느슨해졌고, 이어진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우리 외교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늘어났다. 한반도와 주변 4강을 넘어 더 넓은 지역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체제전환을 시작한 공산권 국가들과 적극적인 관계 수립을 통해 한반도 문제 관리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넘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의도가 이 정책에 드러났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화두로 삼았다. 너무 빠른 확장이란 비판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후반의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글로벌 차원으로 눈을 돌린 외교 이니셔티브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속에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최우선으로 했다. 함께 위기를 맞은 동남아 국가들과 연대를 통한 위기극복을 지역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아세안+3 등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이런 지역외교 전략의 결과였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만든 남북 화해의 분위기를 계승하면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동북아로 투영한 동북아 균형자론에 기반한 동북아중심국가 전략을 추진했다. 이어진 이명박 정부는 신아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창했다. 아시아 전반으로 외교적 초점을 확대하면서 한국의 구체적인 경제이익 실현을 앞세운 중상주의적 지역외교 전략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다시 동북아로 회귀해 동북아평화협력구상, 그리고 후반에는 이를 북방으로 연장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지역외교 전략으로 삼았다. 격화되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에 천착하면서도 아세안, 인도를 포함한 신남방정책과 북쪽으로 눈을 돌린 신북방정책을 펼쳤다. 주변 4강 외교를 벗어나 외교적 다변화라는 화두를 실천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 뒤를 이은 윤석열 정부는 인도태평양 정책을 앞세웠다. 이재명 정부는 강대국 경쟁에 강대국 일방주의, 글로벌 및 지역질서의 혼란이라는 복합적 위기를 항해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한국의 위상,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한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 지형은 향후 글로벌 질서, 지역의 미래와 질서를 어떻게 형성해갈지에 대한 한국의 구체적 비전과 전략을 그 어느 때보다 필요로 한다. 이런 시대적 요구에 답할 수 있는 이재명 정부의 지역외교전략이 긴요하다는 것은 필자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기고] 베트남 농산물 판매의 역설

베트남내 여러 농업협동조합은 미국·일본·유럽 등 기준이 까다로운 선진국 시장에 다양한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선진국 수출 기준을 충족한 이러한 농산물이 베트남 내수시장에서는 판매가 부진하다. 람동성에서 용과를 생산하는 호아레 농업협동조합은 생산된 용과가 베트남 유기농 기준(VietGAP)을 충족해 생산량의 80% 이상을 중국, 유럽, 일본 등으로 수출하고 있지만, 베트남 국내 시장에서 판매되는 용과는 수출용만큼 인기가 높지 않다. 즉, 생산한 농산물이 세계 여러 시장의 수출 기준을 충족한다면 국내 소비도 더 수월해야 하나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가격인데, 가격은 베트남 소비자의 구매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동탑성 호아록 모래망고 협동조합에 따르면, 호아록 모래망고의 가격은 일반적으로 kg당 약 7만₫으로, 태국·인도·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망고보다 ㎏당 약 2만동 비싸다. 베트남 소비자들은 구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비싼 가격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즉, 여러 농업협동조합들이 수출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투자를 확대함에 따라 상승된 생산 비용으로 인해 판매 가격이 높아지면서 국내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역설은 수출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들이 베트남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은 껍질이 검게 변한 잘 익은 바나나를 선호하는데, 이는 잘 익은 바나나가 더 달콤하고 향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 소비자들은 껍질이 단단한 덜 익은 바나나를 더 선호하는데, 이는 덜 익은 바나나가 건강에 좋은 영양소가 더 많이 함유되어 있고 신선하고 안전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출용 자몽과 오렌지는 신선해야 하지만, 베트남 소비자들은 약간 시든 자몽과 오렌지를 선호한다. 셋번째 이유는 수출은 주로 기술 표준 충족에 초점을 맞추면 되지만, 국내 판매는 소비자의 인식과 구매 습관이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해외 고객들은 원산지·균일성· 포장 규격 등 일반적으로 명확한 기준 체계에 따라 농산물을 구매한다. 즉, 그들은 단순히 농산물을 사는 것이 아니라 품질 시스템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 소비자들은 해당 농산물이 선진국의 수출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포장이 매력적이지 않거나 브랜드 인지도가 약하거나 차별성이 부족하다면 선택하지 않는다. 또한, 다양한 농산물이 전통시장·온라인·슈퍼마켓 등 다양한 유통채널을 통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다른 대안을 쉽게 찾을 수 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산물이 풍작을 이루고 품질은 전혀 떨어지지 않음에도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 베트남 농업협동조합은 농산물 생산 뿐만 아니라 브랜딩·유통체계 강화 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품질은 단순히 필요조건일 뿐이고, 이제는 소비자가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포럼] 수익률 낮은 아파트 월세 시장

최근 아파트 시장을 두고 '월세나 전월세 전환율이 크게 올랐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뉴스만 보면 월세 시장이 임대인 우위로 급격히 재편되고, 월세 투자 수익률도 좋아진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이 두 용어를 동일 선상에서 해석하면 오류가 발생한다. 전월세 전환율과 월세 투자 수익률은 서로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전월세 전환율의 출발점은 전환가격이다.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보증금 1원당 얼마의 월세를 받을지 결정하는 비율이다. 이 지표의 용도는 명확하다. 임차인에게는 전세와 월세 중 어느 쪽이 주거비 측면에서 유리한지 따지는 기준이 되고, 임대인에게는 '보증금 대신 월세를 얼마로 책정할지' 알려주는 가이드라인이 된다. 기준금리와 비교해 현재 월세가 적정한지를 가늠하는 잣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투자자 관점의 월세 투자 수익률은 전혀 다른 질문에서 시작한다. 투자금액 대비 세전 임대수익의 비율인 명목 수익률을 기준으로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가게를 차릴 때 초기 투자자금 대비 예상 매출과 총수익률을 따져보는 것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 투입한 자본이 외견상 얼마의 수익을 창출하는지 그 '체급'을 먼저 비교하는 원리다. 문제는 이 두 개념이 시장에서 자주 혼용된다는 점이다. '전월세 전환율이 4~5%대이니 월세 수익률도 그만큼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대표적이다. 현실은 딴판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은 4.7%, 수도권은 5.1%, 전국은 5.3%를 기록했다. 그러나 실제 아파트 월세 수익률은 이 수치에 턱없이 못 미친다. 서울의 경우 적게는 2%대, 많아야 3%대를 넘는 곳을 찾기 힘들다. 이들은 계산의 출발점부터 다르다. 전환율은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기준으로 따지지만, 투자 수익률은 집을 살 때 들어간 매입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매매가가 지나치게 높게 형성된 아파트 시장에서는 월세가 아무리 올라도 매매가격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실제로 KB부동산에 따르면 올 들어 5월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5.47%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월세지수는 3.63% 오르는 데 그쳤다. 전세(3.49%)보다는 높지만 매매가 상승률보다는 확연히 낮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월세 시장은 기묘한 모순에 빠져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월세 부담이 눈에 띄게 커졌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이지 않은 자산이다. 아직 전세제도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급등한 매매가격 탓에 초기 투자금 장벽이 너무 높아진 게 핵심 요인이다. 아파트는 월세라는 현금흐름보다는 자본이득으로 보상을 받는 부동산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 수치가 아니라 어떤 기준 위에서 도출되었는지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일이다. 전월세 전환율의 상승은 주거비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일 뿐 아파트 월세 투자의 수익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다. 이 두 개념을 명확히 분리하지 않으면 월세 시장의 착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월세를 받아 노후 생계비를 마련하려는 고령 은퇴자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전면 월세 시대가 도래하면 월세 투자 수익률은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점이 오기까지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fn광장] 국민연금 기금운용 성과, 개혁 마무리

2025년 국민연금 개혁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을 43%로 조정함으로써 적립기금 소진 예상연도를 2064년으로 늦추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개혁 직후부터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5차 재정계산위원회가 정책 목표로 제시한 2093년까지의 기금 유지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3년의 기금운용 성과와 향후 수익률 전망을 함께 놓고 보면, 그 평가는 달라진다. 기금운용 성과가 제도 개혁의 공백을 메우며 연금개혁을 사실상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기금은 최근 3년 괄목할 만한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2025년 한 해에만 수익률 18.82%의 역대 최고 성과를 달성했고, 2026년에도 코스피 급등과 해외자산 호조에 힘입어 적립기금은 1800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성과 배경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주가가 글로벌 인공지능(AI)·로봇 혁명의 흐름을 타고 큰 폭으로 상승한 것과 정부의 금융시장 선진화 정책이 주효했다. 해외주식 비중 확대와 원화 약세에 따른 환차익도 기여했다. 기금운용 성과는 연금재정 전망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추산한 바로는, 최근 성과를 기반으로 향후 연 5.5%의 수익률이 계속된다면 기금 소진 예상연도는 2095년으로 늦추어져 5차 재정계산위원회가 목표로 삼았던 2093년까지의 기금 유지가 달성된다. 2025년 제도 개혁만으로는 부족했던 30년의 간극을 기금운용 성과가 채워주는 구조다. 기금운용의 성과로 연금개혁이 완성되는 것이다. 가입자와 수급자의 추가 고통 없이 기금운용 수익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발군의 사례가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성과 의미는 생각보다 깊다. AI·로봇 혁명이 불러온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소수의 대기업 주주에게만 막대한 이익을 집중시킨다는 비판을 낳고 했다. 일부에서는 초과이익의 사회적 공유를 별도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그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대주주로서 이들 기업이 창출한 가치 상승을 기금수익으로 흡수하고, 이를 전 국민이 가입한 연금의 재정 안정으로 환원하고 있다. 기업의 성장 과실이 자본시장을 통해 공적연금 재정으로 흘러드는 이 구조야말로 별도의 세금이나 규제 없이 작동하는 가장 효율적인 이익공유 모델이다. 국민연금이 대형 성장주를 보유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공유의 실현 수단이 되고 있다. 다만 이 성과를 기금운용 성과만으로 귀속시켜서는 안 된다. 2025년 연금개혁으로 보험료율이 인상되면서 기금에 유입되는 재원의 규모 자체가 커졌다. 더 많은 보험료가 투입되었기 때문에 같은 수익률로도 더 큰 절대 수익금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개혁이 없었다면 기금 규모는 작았을 것이고, 운용 성과의 파급력도 반감되었을 것이다. 적립방식 연금제도에서 연금개혁과 기금운용은 상승적 관계이며, 어느 하나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성과에 안주하기에는 구조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평가이익의 상당 부분이 미실현 상태이고, 국내주식 비중이 이미 계획치를 초과하여 30% 내외에 달한 점은 새로운 긴장 요인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계획으로 담기 어려운 높은 주식성과로 리밸런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전대미문의 폭발적 주식시장 성장으로 자본시장의 구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기금운용계획이 만들어져야 한다. 특정 시점의 평가이익을 구조적 개선으로 해석하는 낙관론적 편향을 경계해야 하고, 하방 시나리오와 스트레스 테스트를 병행하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구조적으로 아직 확장기에 있는 국민연금에서의 국내주식 비중 조정은 기계적인 매도가 아닌 신규 유입 재원의 해외자산 배분을 통한 자연스러운 희석 방식으로 접근해야 시장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더욱 바람직하게는 기금운용 평균 수익률이 장기적으로 6.5%를 상회할 수 있도록 하여 급여지출이 본격화될 때 발생 가능한 멜팅다운(melting down·기금 잠식)을 막는 것이다. 최근 3년간 국민연금의 빛나는 성과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연금개혁이 기반을 다지고, 기금운용이 그 위에서 성과를 만들어낸 결과다. 이제 과제는 이 성과를 일시적 호황으로 소모하지 않고, 적립기금 소진 방지라는 궁극적 목표를 향한 지속적 역량 강화로 이어가는 것이다.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fn광장] ESG 환상 접고 사업 본질 집중해야

도덕론과 종말론이 결합하면 무소불위가 된다. 세계의 종말에 대비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대의명분으로 절대적 권위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각종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교리의 기본적 구조에서 도덕적 당위론과 종말적 구원론이 교차하는 이유이다. 사회경제적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에너지 고갈, 식량위기, 물 부족 등이 단골 메뉴로 변주된다. 또한 이러한 사안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결합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생겨나고 기업경영에도 파급되었다. 1968년 서유럽 지식인들을 주축으로 국제 전문가그룹인 로마클럽이 발족하였다. 1972년 출간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는 인구 증가, 공업생산, 식량생산, 환경오염, 자원고갈의 5가지 분야에 대해 1900년부터 1970년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2100년까지 추이를 예측했다. 핵심은 세계인구가 증가하고 자원소비가 계속되면 현대문명은 한계에 도달한다는 경고였다. 특히 석유와 천연가스의 고갈시기를 20~30년 후인 2000년대로 전망하였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러한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셰일가스와 심해유전을 비롯해 확인된 에너지 매장량은 오히려 대폭 증가하였다. 이러한 오류와는 무관하게 로마클럽이 제시한 유한한 자원과 무한한 성장의 충돌이라는 거대담론은 자원고갈과 문명종말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대 기업분야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경영이 부각되었다. 21세기 기업 도덕론인 ESG는 기후변화, 자원절약, 환경보호, 다양성 확보, 사회갈등 해소 등 각종 사안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였고 금융업계는 일부 투자와 대출에 ESG 요소를 반영하였다. ESG는 정치권, 언론과 학계, 전문가 집단 및 시민단체가 기업에 각자의 입장에 따른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한 효과적 명분이 되었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대주주·경영진의 도덕적 흠결을 가리는 전술적 도구로서 ESG가 호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일종의 메가트렌드인 ESG는 미국에서부터 거품이 빠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고 국제기후금융계획도 폐지하였으며 화석에너지 관련규제도 대대적으로 철폐하고 있다. 미국 주요 산업에 대한 부담 감소라는 경제적 측면과 함께 탄소배출과 기후변화의 상관성 등에 대한 실질적 근거도 불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도 화석연료 사용과 기후변화의 상관성에 대한 과학적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또한 ESG를 주도하던 유럽의 경제적 쇠퇴도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특히 친환경 저탄소 관련기술을 선도하여 차세대 산업경쟁력으로 발전시키려던 유럽연합(EU)의 미래산업 구상이 차질을 빚으면서 자동차, 화학 등 주요 산업들이 난관에 봉착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21세기 초반 전기차(EV)는 온실가스 배출감소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대의명분에 배터리 기술발전이 결합되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증폭되었다. 각국 정부도 보조금 지급, 충전인프라 확충 등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독일의 벤츠, BMW, 미국의 GM, 포드 등은 2030년대 100% EV 전환을 선언하였다. 일본의 닛산은 EV 선구자였고, 혼다도 적극적으로 투자하였다. 반면 도요타는 급격한 EV 의무화 정책에 부정적 입장으로 하이브리드-EV 병행전략을 표방하였고, 전 세계 ESG 투자자와 환경단체로부터 변화를 거부하는 시대착오적 기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기존 자동차 기업 중에서 최대 승리자는 도요타이다. 현재 도요타는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글로벌 자동차 시장 1위를 질주하는 반면 여타 회사들의 EV 투자는 회수 불가능한 매몰비용으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혼다는 EV사업 정리에 따른 90억달러 손실로 1957년 상장 이후 69년 만에 적자로 전환하였다. 기존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미래전략산업으로 추진했던 EV시장의 주도권마저 신규 참가자인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에 넘어갔다. 현시점 우리나라 기업의 입장에서 ESG의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다. ESG 흐름을 각자의 입장에서 적절히 수용하면 된다. 다만 ESG의 트렌드에 경도되어 현실과 사업전략이 유리되는 경우는 경계해야 한다. 정치사회적 트렌드에 과잉반응하여 추진하는 사업의 실패는 오롯이 기업의 손실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ESG 거품은 소위 본진인 미국부터 급속하게 빠지고 있다. ESG의 도덕론적 한계를 통찰하고 사업의 본질인 고객과 시장에 천착해야 한다. 김경준 전 딜로이트컨설팅 부회장

[포럼] 과학기술 외교력이 국가 경쟁력

지난달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11회 유엔 과학기술혁신(STI) 포럼'이 열렸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주관 포럼은 2030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해 과학기술의 역할을 논의하는 국제 무대다. 올해도 전문가 500여명이 기후위기, 빈곤, 청년창업, 기술격차 등 복합과제를 논의했다. 필자는 유엔 과학기술 전문가그룹 위원으로 '물 시스템 전환' 세션과 '청년창업 지원' 특별세션에 패널로 참여했다. 물 부족 문제 논의 중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물 소비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빅테크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냉각수 사용으로 일부 지역의 식수 공급까지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기후와 빈곤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AI 인프라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진 장면은 상징적이다. 과학기술이 산업과 연구 영역에 머물지 않고 국제질서와 외교·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확장됐음을 보여준다. 과학과 외교가 맞물려 움직인 역사는 오래됐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핵무기 개발 후 핵 비확산 논의의 문제의식과 근거를 제공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백신이 외교 수단이 됐다. 2021년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스푸트니크V 백신 비용을 지불하고 억류된 자국민을 돌려받았다. 백신이 적성국과의 협상에서 외교 카드로 활용된 사례다. 오늘날 과학기술은 외교를 보조하는 수단을 넘어 국제질서를 움직이는 권력이 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링크는 전장 통신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고, TSMC의 반도체 생산 역량은 미중 전략경쟁의 핵심 변수로 거론된다. 유전체 데이터는 안보자산으로 분류되고,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국가 간 연구협력까지 흔들고 있다. 첨단기술은 이제 경제와 안보, 외교를 동시에 움직이는 전략자산이다. 이런 시대에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앞서려면 기술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국제 의제를 선점하고,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연구 성과를 세계의 규범과 표준으로 연결하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과학기술 외교력이다. 2023년 서울에서는 노벨상 수상자들과 청소년들이 대화하는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가 열렸다. 필자는 조직위원장으로 참여하며 스웨덴 등 여러 나라가 수십년간 구축한 글로벌 과학 네트워크의 힘을 실감했다.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27명 배출 배경에도 연구 투자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연결해 온 시간의 축적이 있다. 우리에게도 그런 축적이 필요하다. 그 연결의 시간을 한국도 이제 본격적으로 쌓아가야 한다. 우리 연구자들이 국제 회의장을 더 자주 찾아야 하고, 한국 과학기술의 성과가 세계의 언어로 더 폭넓게 오가야 한다. 과학기술외교는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꾸준히 나타나야 한다. 기술패권 시대의 경쟁은 더 많은 기술을 개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기술의 규칙과 표준을 누가 만들고, 어떤 가치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의 경쟁으로 이어진다. 과학기술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라면 과학기술 외교력은 곧 국가 경쟁력이다. 문애리 한국여성과학기술인 육성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