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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칼럼] 공공조달 개혁의 성공 조건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강한 중력장 속에서 시간이 지구와 다르게 흐르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이 항상 똑같이 흐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쉽게 보여준 장면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시간도 때로는 상대적인 것 같다. 지금 세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바뀌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등장한 이후 변화의 속도는 우리 예상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기업의 생존전략과 정부의 작동방식도 원점에서부터 바뀌고 있다. 변화의 시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위기가 될 수도 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속도와 실행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변화와 같은 속도로 달려야 한다는 레드 퀸(Red Queen) 효과를 가슴에 새겨야 할 시기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공공조달도 전통적 역할에 머물 수는 없다. 종전에는 공공조달이 정부가 국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때 필요한 물품, 서비스, 시설물을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조달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지금은 국가정책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수단이 돼야 한다. 연간 225조원에 달하는 공공구매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지난 1년 조달청이 추진해 온 공공조달 개혁도 바로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조달청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혁신제품을 발굴하고, 이들 제품이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구매해 왔다. 평균적으로 조달청이 처음 시범구매한 금액의 6배 규모의 판매실적을 보였으며, 당초 시범구매 금액의 28배 규모 수출에 성공한 사례도 나타났다. 또한 유망한 AI 제품과 서비스가 공공조달시장에 쉽게 진입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췄다. 납품실적 요건을 폐지하고, 평가와 서류를 면제할 뿐만 아니라 가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구매절차를 간소화해서 공공기관들이 더 많은 AI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지방 주도 균형성장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올해 경기와 전북을 시작으로 지방정부가 지역 특성과 수요에 맞게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조달 자율화의 첫걸음을 뗐다. 비수도권 기업이 좀 더 많이 수주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다. 비수도권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업·인구감소지역에 소재한 기업 등에 가점을 부여하고, 실질적으로 비수도권 기업 간에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게 된다. 공공조달의 기본은 다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의 과정과 결과가 공정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계약을 이행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이들이 무분별하게 입찰에 참여해서 낙찰받고, 실제 계약 이행은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조달청은 낙찰예정자를 대상으로 실지조사를 해서 부적격자를 낙찰에서 배제하고 있다. 상반기 시범조사를 거쳐 하반기에는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국민주권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추진해 온 공공조달 개혁을 되짚어보니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조달청이 개혁을 추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시간의 상대성'이다. 국민의 시계와 조달청의 시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공공조달 개혁의 성공은 결국 조달청이 국민의 시계에 맞춰 일할 때 가능할 것이다. 백승보 조달청장

[fn광장] '월드모델'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인공지능(AI)이 로봇의 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월드모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월드모델은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학습해 세상의 구조와 인과관계를 담는 피지컬 AI의 생각의 그릇이다. 월드모델 이야기는 백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물 행동심리학자인 에드워드 톨먼의 1930년 논문에서는 미로를 경험한 쥐가 목표가 생겼을 때 더 빠르게 배운다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환경에 대한 모델을 학습에 활용한다는 '인지 지도' 가설을 세웠고, 이후 의사결정과 학습의 뇌과학 연구의 뿌리가 되었다. 제어공학에서는 1970년대부터 모델 예측 제어라는 기술을 통해 시간지연 제어 시스템의 성능을 높여 왔는데 이를 작은 월드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AI연구소를 설립한 마빈 민스키는 1986년 '마음의 사회'라는 책에서 뇌가 외부 세계를 점진적으로 이해해 나가는 계층적 월드모델 개념을 제안했다. 곳곳에서 싹을 틔운 월드모델은 반도체라는 밭에서 덩치를 키우고, 피지컬 AI라는 제철을 만났다. 돌아오는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수확하게 될까. 첫째, AI의 인지·추론·전략 수립 능력이 향상된다. 월드모델을 가진 로봇은 다양한 관점을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동하기 전에 미래를 시뮬레이션하여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짐을 들고 경사로를 내려가기 전에 굴러떨어지는 상상을 하여 무게중심을 조정하고, 유리문이 잘 깨진다는 것을 알기에 천천히 움직이며, 바둑에서는 '이런 수를 둔다면 상대방이 어떻게 대응할까' 상상하여 행동하기 전에 최적의 전략을 세운다. 시장의 역학관계를 담은 월드모델을 가진 AI는 다음 분기의 시장 변화를 상상하며 사업 방향을 피버팅(전환)한다. 둘째, AI가 스스로 데이터를 모아 학습하며 진화한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가진 모든 데이터를 모으고 정제하여 AI를 학습시키고 월드모델을 구축했다면, 이제는 그 월드모델을 탑재한 로봇이 실제 세계에서 스스로 데이터를 모아 인간에게 제공하거나 자기 자신을 파인튜닝(미세조정)하는 세상이 열린다. 실험 분야, 특히 신소재나 반도체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 기대된다. 인간이 AI에게 제공한 월드모델을 이용해 새로운 발견을 하고, 확장된 월드모델을 인간에게 돌려주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스스로 진화하는 월드모델의 선순환 속에서는 AI가 창의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이러한 AI의 월드모델은 우리 머릿속 월드모델과 비슷할까? 같은 경험을 했다고 같은 생각을 하지 않듯, 다르다. AI는 파운데이션 모델로 불리는 통합형 월드모델을 추구하는 반면, 뇌의 월드모델은 적어도 네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직관이다. 물리적 세상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기에 정확하진 않지만 본능적이고 순간적인 판단에 필요하다. 그다음은 의사결정 모델이다. 이 역시 세상의 구조를 직접 활용하진 않지만 세상과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결과를 예측하는 간접적인 월드모델이다. 뇌의 피질하 영역 속에서 우리의 움직임과 습관을 만들어낸다, 셋째는 예측인지 모델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해마 시스템 속 격자세포와 장소세포는 현재 상황뿐만 아니라 나와 세상의 상호작용을 통한 결과 예측에도 관여한다. 기억을 재생하지 않는 의사결정 모델보다는 느리지만 기억세포가 주변 환경의 구조를 표상하므로 작지만 정교한 월드모델로 볼 수 있다. 넷째는 전두엽의 인지 모델이다. 이 뇌 영역은 외부 세상의 구조를 명시적으로 담고 있고, 사건 전개의 상상에 직접 관여한다. 할 일이 많아 가장 느리지만 가장 정교하다. 뇌는 매 순간 이 모든 것들을 버무려 피상적이지만 빠르고, 때로는 느리지만 정교한 월드모델을 만들어 낸다. 종합해보면 AI의 월드모델은 뇌와 다르다. 지금 인간이 가장 빠르게 퇴보하는 길은 AI가 던져주는 지식의 조각들로 자신의 월드모델을 채우는 것이다. AI가 하사하는 영상과 젠슨 황의 내한공연에 도파민 터지고, 바이브 코딩과 하네스 엔지니어링 결과물을 공유하고, AI로 만든 자료를 발표하는 자신에게 취해본 적이 있는가. 오늘 AI 음주를 위해 지불한 '토큰'은 내일 사라질 내 월드모델의 '몸값'이다. 휴먼 월드모델이라는 주식이 있다면 지금이 공매도 타이밍이다. AI 월드모델에 대한 열정과 인간 가치 상실이라는 냉정함이 교차한다. 바보 같지만, 미래의 내 머릿속에는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 능력을 가진 월드모델조차 남아있지 않을 테니, 기분만큼은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안해본다. 이상완 KAIST 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장

찜통 더위에도 가마꾼이 된 동네 사람들… 축제로 깨어난 마츠리 [전경수의 요지경 日本]

'마츠리'라고 하면 가무가 동원된 방식의 축제라고 생각하는데, 결단코 아니다. 팡파레와 행진으로 시작하는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멕시코나 페루의 피에스타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곳에서 먼저 살았던 분들의 돌아가신 영혼을 맞이하여 위로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접신용의 술을 마시고 숙취한 상태로 춤을 추는 모습들이 어울린다. 일본에서 마츠리는 '祭り'라고 쓴다. 오래된 동네의 연중행사표를 보면, 일년 내내 마츠리와 관련된 행사들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다. 삼계만령 사상으로 표현되는 애니미즘 최강의 사회가 일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만령을 위한 공양이 마츠리로 행제될 수밖에 없다. 마츠리의 나라 일본… 지역 연례행사 그 이상의 의미 일본 최초로 마츠리를 연구한 민속지는 자그마치 1500쪽이 넘는 '하나마츠리'(花祭, 1930년)이며, 그 저자는 아이치현의 동부인 미카와(三河)를 고향으로 한 하야카와 코우타로다. 천룡천 계곡의 산골 동네에서 정월 초에 며칠간씩 이어지는 마츠리의 절정은 7~8명의 가면 쓴 청년들이 물이 끓고 있는 가마솥 주변을 돌면서 춤을 추는 '유바야시'(湯ばやし) 과정이고, 마지막에는 마츠리에 참여한 관객들에게 복을 나눠주는 상징행위로서 끓는 물을 흩뿌리는 겨울 마츠리다. 커다란 도끼를 들고 춤을 추는 적색 가면의 '사카키오니'가 어린이들의 등을 살포시 밟아주는 '헨베'(反閉)는 역병귀신을 쫓아내고 무병 장수하라는 주술로서,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는 체험이다. 일본 사회변동의 역동성은 마츠리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에, 마츠리가 도시인류학이란 관점으로 일본을 연구하는 안성맞춤인 주제라는 인식도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요코하마 롯카쿠바시의 동네에도 '초나이카이'(町內會)의 공지판에 봄부터 스기야마신사(杉山神社)의 '나고시오하라이'(夏越大祓)의 안내문이 나붙었다. 마츠리로 여름 더위를 잘 넘기자는 뜻이다. 혈연의 조상 제사에만 몰입하는 세계관의 한국인들은 죽었다 깨도 공감하지 못하는(이해는 하겠지만) 부분이 지연 관계의 일본사회다. 한국인들에게 혈연의 의미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일본인들에게는 지연 관계의 인생살이가 핵심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의 의미가 이토록 중요할까. 땅으로 연결된 인생살이의 의미가 피로 연결된 인생살이만큼 중요하다는 논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코하마의 츠루미구에 있는 스기야마신사에서 개최된 마츠리에는 13대의 '미코시'(神輿)가 무도 행렬을 이었고, 늦은 오후의 약속된 시간에 스기야마신사 앞에 정렬해 신관이 주제하는 제사 과정에 참여한다. 이후, 모두가 함께 접신하는 술판이 이어진다.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착종되어 있는 삶의 장소로서 이웃관계와 이웃들의 연결인 공동체가, 지역을 창조한 신에 의해서 매년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의 제사가 마츠리다. 신이 정좌한 자리에, 신의 허락에 의해서 사람들이 주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신앙이다. 신과 주민들은 '우지카미'(氏神)와 '우지코'(氏子)의 관계다. 마츠리에 참여하면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신사의 조직도 오야붕과 코붕 관계를 유지한다. 카나가와현 일대에 자리잡은 스기야마신사의 분원에 해당되는 나마무기 지역의 메이신신사(明神神社)에서는 본사의 '레이타이사이'(例大祭)에 참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별도의 날을 받아서 '쟈모가모마츠리'(蛇も蚊も祭)를 한다. 마츠리의 구성과 내용 그리고 진행방식이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소학교의 운동장을 빌려서 진행하는 마츠리에는 네 개의 구역으로부터 각각의 팀들이 창포와 짚을 엮어 만든 초록색 머리를 한 뱀 모습의 긴 줄을 매고, 편싸움을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동일한 츠루미구에 속해 있지만, 마츠리상으로는 별도의 삶의 공간이 존재한다. 일본의 도시발전사와 궤를 함께하는 마츠리의 분포와 구성이 복잡한 실타래처럼 엉켜 있고, 과거 해변의 매립지대가 도시로 변한 곳에 이주해온 사람들의 정착 과정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쟈모가모마츠리는 도시형성 이전의 토박이들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마츠리임에 대해서 레이타이사이는 도시 확장과 '혼죠도리잇쵸메'(本町通一町目) 자치회처럼 외국인 거주자들의 참가에 의한 글로벌 현상의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다. 사람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마츠리의 일본사' 과정이 잘 드러난다. 종교민속학자 나카야마 타로가 편찬한 '일본민속학사전'(1940년)에는, 나가노에 총본사가 있는 스와대사(諏訪大社)의 '온바시라마츠리'(御柱祭)의 중요한 과정은 온바시라 4본의 신성한 기둥을 세워서 사방 경계를 한다고 썼다. 그 스와대사의 요코스카 분원의 온바시라마츠리는 총본사로부터 신성화된 절차를 밟은 온바시라 2본을 분양받아서 가지고 오는데, 이 과정이 '사토히키'(里曳き)다. 요코스카의 '우지코'(氏子)들이 신사의 신관인 '구지'(宮司)의 지휘하에 기중기를 동원하여 신사의 경내에 세우는 '타테온바시라'(建御柱) 행사가 마츠리의 절정을 이룬다. 지역의 정치가들이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마츠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한 당연한 물주의 역할을 한다. 천년 역사, 교토의 기온마츠리… 삿포로 요사코이도 이색적 마츠리를 구성하는 다양한 행사들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서는 촘촘하게 연결된 여러 단계의 부문별로 담당자들이 배정되어 있고, 수개월 전부터 담당자들은 준비 모임을 거듭한다. 그 과정이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시집간 딸들도 자녀들을 데리고 돌아와서 미코시를 함께 메고 춤을 추는 주민 참여의 행사가 마츠리인 일본에서는 이미 마츠리경제의 생산성에 관한 연구도 적지 않게 진행되어 있다. 후덥지근하기로 이름난 교토의 여름을 달구는 기온마츠리는 그 역사적 깊이와 함께 이미 세계적인 명물이 되었고, 새로운 형태의 마츠리로 자리잡은 코우치와 삿포로의 요사코이도 그 경제적 효과는 이미 증명되었다. 관 주도 동원 형식의 축제로 가수의 출연 교섭에 안간힘을 쓰면서 애꿎은 공무원들만 닦달하는 한국의 지방정부들이 제대로 한 수를 배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것은 결코 흉내를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email protected] 정순민 기자

[기고] 에너지주의, 절약 넘어 효율의 시대로

최근 미국과 이란간 휴전 논의가 진행되고는 있다. 하지만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우리나라의 원유 수급 안정화에는 상당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이번 고유가 위기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불안정한 중동 정세로 인한 유가의 급등 속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체감했고, 인공지능 기술의 급변 속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의 효율화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4% 안팎에 이르는 우리 현실에서는 '아끼고 줄이는' 에너지 절약이 절실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에너지에 관한 인식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특정한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절약 실천을 권고하는 소통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의 새로운 소통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과거 고유가와 공급망 위기 속에서 늘 국민과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어려움을 극복해 왔다. 모두가 에너지 절약을 위한 실천 방법을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불필요한 조명 끄기에서부터 냉난방 적정 온도 유지 등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위기 때만 하는 절약을 넘어 평소에 각 개인이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에너지 사용의 효율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에너지에 주목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실천을 통해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는 방식의 소통이 필요하다. 무조건 아끼고 줄이는 절약을 넘어, 필요한 에너지는 쓰되 더 똑똑하게 에너지를 소비하는 실천이 더욱 절실하다. 지난 2년간 진행했던 '온도주의' 캠페인에서 강조했듯 각 개인의 에너지 사용 출발점은 온도를 의식하는 것이었다. 여름철 실내 온도 26도를 기준으로 맞추고, 쿨 맵시로 체감온도를 낮추는 실천, '문열고 냉방' 자제 등은 기본이다. 하지만 절약 그 이상의 효율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시간대별 사용에 주목해야 한다. 태양광 발전이 줄어드는 오후 5시부터 8시 사이 전력피크 시간대 전기소비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탁기와 청소기처럼 시간 조정이 가능한 기기 사용은 전력수요가 낮은 주말로 옮기는 것만으로도 전력망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올해 새롭게 추진되는 에너지 대전환 인식 개선 캠페인의 메시지는 '에너지 주의 시대, 에너지를 보다'이다. 첫째는 에너지를 의식하자는 것이다. 보이지 않던 에너지에 주목하고 각 개인이 에너지 안보의 주체라는 소명 의식을 갖고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번째는 에너지 사용을 보다 더 개선하자는 것이다. '에너지를 보다' 뒤에 괄호( )를 넣어 보자. 에너지를 보다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노하우)와 같이 각자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올여름, 에너지 절약을 넘어 에너지 효율이라는 과제를 마주하며 우리 스스로 빈 괄호를 채워 나가는 작은 실천에 동참해 보았으면 한다.이종혁 광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포럼] 과정의 디자인, 길 위에서 길을 묻다

얼마 전 지하철역 앞을 걷다가 오랜만에 그 말을 들었다. "도를 아십니까?" 예전 같으면 웃으며 지나쳤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도(道)는 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길을 찾기도 하고 잃기도 하며, 때로는 돌아가고 멈추기도 한다. 인생은 목적지보다 그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요즘 세상은 유난히 빠르고 시끄럽다. 주식과 인공지능, 새로운 기술이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람들을 흔든다.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지름길은 유혹이 되고, 과정은 종종 생략된다. 그러나 인생에 정말 지름길이 있을까. 6·3 대선 이후의 정치 풍경도 비슷해 보인다. 승패는 갈렸지만 갈등은 여전하다. 서로 다른 길을 말하지만 정작 길의 방향보다 결과와 속도에 더 몰두하는 듯하다. 개인도 사회도 과정이 흔들리면 결국 길 위에서 길을 잃게 된다. 철학의 본래 뜻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다.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놓치지 않는 태도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질문보다 답을,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은 디자인을 결과물로 이해한다. 하지만 좋은 디자인은 완성의 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문하고, 관찰하고, 실패하고, 다시 수정하는 시간 속에서 탄생한다. 결국 디자인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나는 오랫동안 도시와 공간, 색채와 디자인을 연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도시도 사람도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질적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는 완공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기억을 품고 시간을 축적하며 자신의 의미를 만들어간다. 오늘의 DDP는 건물이 아니라 경험과 문화가 자라는 플랫폼이 되었다. 도시의 공간 또한 하나의 가능태로 바라보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가능태와 완성태의 존재로 설명했다. 도토리 안에는 이미 거대한 참나무가 들어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기 안에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가능성을 품고 살아간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답을 내놓는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지 삶의 목적까지 대신 정해주지는 못한다. 그 질문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자기 기획력일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목적지보다 중요한 것은 춤추며 가는 길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목적지만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좋은 삶은 가장 빠른 길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장 정직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실패와 시행착오조차 우리가 샤랑해야 할 길의 일부다. 되돌아보니 그렇다. 도토리가 하루아침에 참나무가 될 수 없듯 사람도 삶도 공간도 시간을 품으며 성장한다. 오늘, 내 안의 작은 도토리를 떠올려 보자. 그것을 정성껏 키워 한 그루의 참나무로 만드는 일, 그리고 그 나무들이 모여 더 건강한 숲이 되어 누군가의 쉼과 숨결이 되어주는 일, 그 과정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빛나게 하지 않을까. 김현선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fn광장] 탈모약 건보 적용, 정책인가 정치인가

요새 가장 주목받는 세대는 단연 2030세대라고 할 수 있다.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문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으로 항의하는 세대가 바로 2030세대이고, 과거와 달리 지금의 2030세대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들은 주목받고 있다. 이 세대의 보수 성향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수 진영의 오세훈 시장이 다시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를 2030세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수 성향이 강한 이들 젊은 세대가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하는 세대별 투표율을 확인해야 하겠지만,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선관위 상황을 보면 언제 해당 통계를 볼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의 출구조사 결과 등을 참고하면, 이번 선거에서 이들의 역할을 무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금 이들 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다름 아닌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여부 때문이다. 보건복지부가 20대부터 34세까지의 청년들이 탈모약을 복용할 경우 건강보험이 약값의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아직은 공론화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런 언급 자체가 정부에서 나왔다는 점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탈모약의 건강보험 적용을 언급하면서 "탈모는 생존에 관한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탈모 때문에 취업도 어렵고 연애도 힘들기 때문에 결국 생존 문제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고통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고민을 건강보험 적용으로 일정 수준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상당한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외모 때문에 취업과 연애가 힘든 사람이 있다면 성형수술도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또 모발이식수술도 건강보험이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탈모로 고통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탈모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유사한 고통'을 느끼는 이들이 다수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유독 탈모로 고민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20대 이상 34세까지의 젊은이들만을 대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고려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점은, 탈모와 같은 외모와 관련된 고통은 그 정도가 주관적·심리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이는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는 그 정도로 심각하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탈모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존' 문제는 심리적·주관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객관적·의학적으로 생존 문제는 증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존 문제는 과학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간접적으로 생존과 관련된 사안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난청 환자의 경우 소리를 잘 듣지 못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특히 어린이 난청 환자의 경우 그럴 확률이 높을 수 있다. 인공와우 삽입 수술을 받은 어린이 난청 환자의 경우 5년에서 7년에 한 번씩 인공와우를 교체해 주어야 하는데 한 번 수술비용이 100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단 한 번의 수술비만 지원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탈모를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지는 않지만, 인공와우 수술은 횟수와 상관없이 지원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집을 팔지 않고서는 치료비를 부담할 수 없는 희귀병 환자가 다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들이야말로 생존이 달린 문제인데, 이런 희귀병 환자들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은 뒤로한 채 탈모로 고생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건강보험을 적용한다는 것은 논리적 타당성을 얻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정부 주장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측도 생기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그런 주장을 믿고 싶지 않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의도를 가진 것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젊은이들은 '위선'과 '불공정'에 분개하여 보수 성향을 띠게 된 것인데, 이런 젊은이들에게 탈모 지원을 내세운다고 해서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공론화 단계이니 정부는 일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탈모 건강보험 적용 문제를 다시 신중히 검토하기 바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포럼] 성찰 없이 정치 올인하는 사회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갔던 도시샤국제고의 한 학생이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먼 길을 떠났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계열학교 학생이라 남다른 비통함이 밀려왔다.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지는 헤노코 앞바다를 평화학습의 일환으로 찾았다가 선박 전복 사고로 희생된 것이다. 안전관리 부실이라는 지적과 함께 첨예한 정치적 현장에 왜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갔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은 이번 사례가 교육기본법 제14조가 규정한 정치적 중립성 원칙에 저촉된다며 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행 체제 아래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 인정된 첫 사례다. 그러나 국가가 개별 교육 내용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교육현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사고 이후 일부 보수·우익 단체들은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이 낳은 사고"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교 주변에는 극우단체의 가두선전 차량까지 등장해 격렬한 구호를 뱉어낸다. 친구의 빈자리를 가슴에 안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에게 저 확성기의 고함은 애도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또 다른 폭력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희생자를 추모하고, 미처 아물지 못한 학생들의 상처를 보듬는 일임에도 말이다. 한편 스타벅스코리아는 5·18 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키는 판촉행사로 뭇매를 맞는 중이다. 5·18은 한국 현대사의 큰 비극이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설마 일부러야 그랬겠느냐는 선의의 해석도 가능하지만, 사회적 감수성과의 괴리가 너무 심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룹 회장의 공식 사과와 책임자 문책이 이루어졌지만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경영진의 역사 인식이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저질 장사치" "민주주의를 조롱한 행위"와 같은 원색적인 질타도 이어졌다. 지방선거와 맞물려서인지 꾸짖음을 넘어 정치공세의 소재로 활용하는 모습마저 엿보였다. 확성기를 울리는 일본의 극우세력과 한 방향만의 여론몰이에 몰두하는 한국 진보세력. 이념의 색깔도, 내세우는 명분도 정반대이지만 비극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한쪽은 학생의 죽음을, 다른 한쪽은 현대사의 참담한 기억을 이념이 다른 상대방을 공격하는 재료로 삼고 있다. 방향만 다를 뿐 수단과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비극을 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그 과정이 정치적 책임 공방이나 진영 간 대결로 흐르는 순간, 애도와 성찰은 설 자리를 잃는다. 누군가의 죽음과 사회적 상처를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소비할 때 본질은 사라지고 선동만 남는다. 기업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이윤 추구에만 몰두할 때 우리는 흔히 '장사치'라는 표현으로 그 행태를 폄하한다. 정치권도 예외일 수는 없다. 비극과 상처를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장사다. 비극 앞에서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잠시 입을 다물 줄 아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기고] "산지 규제, 이젠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패러다임 전환할 때"

우리나라의 산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주목하는 녹화 성공 신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외형적인 울창함 뒤에 가려진 산지 이용 체계는 30여 년 전의 '보호와 보전' 중심의 과거 패러다임에 여전히 갇혀 있다. 수십 개의 법률로 얽힌 촘촘한 산지 규제는 오늘날 기후 위기 대응과 산림 경제 활성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됐다. 이제는 산지를 묶어두는 통제에서 벗어나, 보전과 이용이 조화를 이루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규제 패러다임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할 때다. 현재 글로벌 산림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산림의 경제·환경·사회문화적 기능과 가치가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는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SFM)'이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 UN 산림관리전략(2017-2030), UN 생물다양성협약 2050 비전 및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UN 생태계 복원 10대 원칙(2021-2030) 등 국제사회는 이미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의 균형을 명시하고 있다. 선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등도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목재 생산과 산림 휴양 등 경제적 이용을 자율적으로 보장하는 유연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행 산지관리법은 산지를 '보전산지(공익용 산지·임업용 산지)'와 '준보전산지'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문제는 산림경영의 핵심 공간이어야 할 '임업용 산지'가 '보전산지'의 하위 개념으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정당하게 자원을 활용해야 할 산주와 임업인의 자율적인 경영권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 이는 명백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구조다. 임업 직불제가 도입됐지만 농업 직불제에 비해 지원 여건이 턱없이 열악하고, 내년부터 시행될 산림보호구역 내 '산림공익가치보전지불제' 역시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 산주의 의견이 철저히 수렴되지 않는다면 현장의 불만을 해소하기 어렵다. 임업진흥구역, 경제림단지, 선도산림경영단지 등 정작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임업용 산지마저 규제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따라서 현행 산지이용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법률에서 '허용하는 행위'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현행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방식을, '제한하는 사항'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환경성과 재난 안전성(산사태, 산불 등)이라는 필수적인 최소 기준만 엄격히 평가하고, 그 외의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풀어주어야 산림의 미래 가치가 살아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차원의 전면적인 개편을 제안한다. 첫째, 산지 구분 체계의 과감한 재편이다. 기존의 '보전산지'라는 포괄적이고 경직된 대분류를 폐지해야 한다. 대신 산지를 '공익용 산지, 임업용 산지, 준보전 산지'의 3대 체계로 대등하게 독립·개편해야 한다. 각 법률에서 규제하는 환경보전 및 공익적 목적의 산지는 '공익용 산지'로 지정해 국가가 철저하고 강력하게 보전하되, 보호 의무를 다하는 산주에게는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둘째, 임업용 산지의 자율경영권 보장과 소득 증진이다. '임업용 산지'는 보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산주와 임업인이 지속 가능한 자율 경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임업인의 적극적인 산림경영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소득과 권익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이들의 삶의 질을 높여 산촌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관련 법률 체계의 통합적 정비다. 산지관리법뿐만 아니라 산림자원법, 국토계획법, 환경영향평가법 등 산지를 겹겹이 규제하고 있는 관련 법률 체계를 네거티브 패러다임에 맞춰 유기적으로 동시 개정해야 한다. 법률 간의 상충을 제거하지 않으면 현장의 규제 개혁 체감도는 제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산림은 가두어 둘 때보다, 올바르게 가꾸고 이용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환경보전과 산림 재난 안전이라는 공익적 가치는 더욱 철저하게 사수하되, 그 외의 영역에서는 산주와 임업인의 자율성을 믿고 규제를 풀어주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30년이 지난 낡은 규제의 틀을 깨고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낼 때, 비로소 대한민국 산림은 기후 위기 극복의 열쇠이자 풍요로운 경제 자산으로 거듭날 것이다. 정부와 입법부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럼] 日 정부, 무기수출 창구 되나

2026년 4월 21일은 일본의 역사를 바꾼 날로 기록될 것이다. 살상무기를 수출할 수 없었던 일본이 해외로 무기수출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면 톱으로 이 사실을 게재하면서 일본의 무기수출이 역사적인 대전환 국면에 서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군수산업이 향후 큰돈을 버는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2026년도 내에 개정하는 안보문서에 무기수출에 관한 새로운 행정조직을 출범시키려는 목표를 정하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국가가 창구가 되게 할 계획이다. 1967년 4월 당시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중의원에서 평화국가 일본은 무기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다. 해당되는 국가들은 공산권 국가들, 유엔 결의에 의해 무기수출이 금지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또는 그러한 우려가 있는 국가들이라고 했다. 그랬던 금지가 2014년 아베 신조 총리가 무기수출 금지 3원칙을 폐기하고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발표해 사실상 무기수출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무기수출 범위를 전방위적으로 실행하려 했는데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아베의 후계자라 자처했던 다카이치 사나에가 총리가 되면서 본격적인 무기수출의 길이 열리고 있다. 그것이 이번에 군함 11척을 호주에 수출하게 된 것이고, 동남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일본 무기가 팔려 나가게 된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으로 대표되는 군수산업은 전자기술, 미사일 기술, 잠수함과 군함 건조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무기산업의 역사가 바뀔 것이다. 문제는 무기 수출의 길을 만들어 준 아베 총리에게 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을 정도의 극우 인물이고, 특별히 외손자인 아베 총리에게 지적 유산과 경험을 전수해 준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무기수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 중국 정부는 일본이 신군국주의로 간다고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1940년대 초 일본 군국주의는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공습했고 태평양전쟁이 벌어졌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항복을 했다. 전쟁이 종결되면서 일본도 스스로의 제어장치가 없었던 군국주의를 말살시키고 민주주의의 실현, 재벌과 군벌이 만나 전쟁이 가능했던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재벌을 해체하고 군사력 자체를 모조리 무너뜨렸다. 물론 더글러스 맥아더의 군정정치가 만들어 낸 일본의 변화이기도 했지만 일본 국민도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스스로 평화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59년이 지난 2026년 드디어 스스로의 족쇄를 풀고 무기 수출을 공식화한 것이다. 일본이 군사대국이었던 역사는 한국을 식민지배하고, 중국을 침략한 불행으로 기록되어 있어 과거사를 지우고 군사대국으로 또다시 향하는 일본을 경계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 언론들도 일본이 군사강국이 되는 것을 지지하고 있고, 보통의 일반 국민들도 수용하고 있는 점이다. 심지어는 일본 방위산업이 향후 큰돈을 벌어들일 것이라고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은 한미동맹 강화와 자주국방산업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fn광장] 美가 이란에서 보여준 군사전략 혁신

금년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이 정밀폭격 약 한달, 압박협상 약 두달의 기간을 거쳐 이제 협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파견하여 이란의 무조건적 항복을 받아낸 통상적 형태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최종적인 결말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세간에 떠도는 '이란이 버텨서 이겼다'는 해석은 터무니없는 해석일 뿐 이란이 예전의 이란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군사작전이 이란에서 전개되었지만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동의 특수성보다는 전쟁과 국제정치 시각의 분석이 중요하다. 이 시각에서 보면 이란의 방공망·군사력·무기생산시설이 원격정밀타격으로 무력화되었고, 이란의 주 재원인 석유 수출까지 막혀 있으며, 주요 지도자는 정밀타격으로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란 정부가 미국의 압박을 버텨낼 것이라는 상상은 이란에 과도한 감정이입이 되어 있는 상상이다. 게다가 이란의 뒷배가 되어왔던 세계 2위 강대국 중국도 미국에 대항하여 전혀 개입을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에서 미국의 전력 소모를 기다린다는 주장도 있지만, 중국이 지금 기습적으로 대만해협에서 전쟁을 도모한다는 무리한 가정을 하지 않는 한 이란에서의 미국 전력 전개는 미국 패권 몰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에서도 결정적일 때 원군이 되어주지 못하는 중국에 대한 친중 국가들의 신뢰가 깎이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이 중동에서 그리는 그림은 최종 단계까지 여러 차례 약속과 검증을 반복하면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이란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폭격이라는 '채찍' 카드를 살려두고, 이란에 도움이 되는 소위 경제적 '당근'은 최종 단계에서야 풀 것으로 전망된다. 첫 번째 단계는 이란으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 전체를 포기하고 호르무즈해협의 자유항행 보장을 받아내는 것이다.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는 미국과 제3자가 직접 이란에 들어가 기존 농축된 우라늄과 핵개발시설을 제거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이며, 자유항행 보장은 일정 기간 이란의 행태를 지켜보며 검증한 후 점차 정상화 단계를 밟을 것 같다. 두 번째, 이란 정부의 경제적 재원이 될 석유 수출 및 제재 해제와 관련하여 미국은 상당 수준의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수출로 인한 수입금을 미국 재무부의 에스크로 계좌로 받아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똑같은 방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란 정부의 예산 집행 관련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석유 수출이 재개되고 경제제재가 풀린 후 확보된 재원으로 이란 정부가 다시 테러 지원과 핵무기 개발을 한다거나 과도한 군사력 확장을 시도한다면 미국이 여태까지 쏟아부은 모든 노력이 헛되게 되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주권적 사안인 이 문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하겠지만 이란 정부의 행태 변화를 끌어내는 데 있어서 미국은 이 예산 집행을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볼 것이다. 만약 그 과정에서 경제개발 세력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난다면 예산주권 이양은 빨라질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기존 아브라함협정을 확대하여 중동을 다자협력 체제로 재편하는 최종 단계라 하겠다. 아브라함협정은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수교한 협정이며 그 이후 모로코와 수단이 참여하였다. 지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아브라함협정을 확대하여 이란을 포함, 미수교국의 수교를 독려하여 중동 평화에 새로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단계적 조치들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중동평화의 핵심 고리인 이란이 변화한다면 중동의 다자협력 체제는 예상 외로 빨리 진전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질서를 재설계하는 패권국으로서 이번 이란 군사작전을 통하여 매우 중요한 군사력 사용의 혁신적 모델과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최첨단 군사 생태계를 구축하여 지상군 전개 없이 인구 9200만 규모의 군사강국 이란의 방공망과 군사력을 무력화하고, 정권교체가 아닌 압박에 의한 정권의 행태 변화를 강제하는 혁신적 모델이다. 이 모델이 트럼프 행정부가 말하는 '힘을 통한 평화'의 핵심 수단이 될 것인데, 이렇게 선례가 만들어지면 다음부터는 굳이 실제 군사력 사용을 하지 않아도 정권의 행태 변화나 억지력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압박 카드가 될 것이다. 현재 이 수준의 군사력을 사용·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패권국 미국이 유일하다.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포럼] AI 시대, 1인 창업 혁명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창업 생태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스타트업 창업은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수의 인력이 필요했다. 초기 투자자들 역시 팀 규모와 조직 구성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몇 명이 창업했는가'보다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생성형 AI는 창업 초기 비용을 급격히 낮추고 있다. 서비스 기획, 개발, 콘텐츠 제작, 고객 응대, 데이터 분석 영역이 AI 기반 도구로 대체되면서 1인 창업가도 빠르게 최소기능제품(MVP)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검증할 수 있게 됐다. 바이브코딩 환경의 확산은 비개발자에게도 서비스 구현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과거 수천만원 규모의 외주 개발이 필요했던 영역들이 이제는 AI를 통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초기 자본이 부족한 예비창업자들에게 매우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최근 여러 대학원 강의 현장에서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과거 학생들이 사업계획서 작성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AI를 활용해 실제 서비스를 구현하고 고객 반응을 실험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현업 경험이 있는 대학원생들은 특정 산업에 대한 문제 정의 능력이 뛰어나 AI와 결합될 경우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멈췄던 창업 시도들이 이제는 실제 MVP 제작과 시장 테스트까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다만 AI 시대의 1인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한 AI 활용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도메인 날리지'(특정 분야 전문지식)다. AI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능력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결국 특정 산업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AI를 활용할 때 훨씬 강한 사업 모델이 나온다. 실제로 변호사는 AI 기반 법률 SaaS를 만들고, 의사는 의료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실험하며, 제조업 경력자는 공정 자동화 솔루션을 구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다. AI는 실행 속도를 높여주지만, 어떤 방향으로 실행해야 하는지는 결국 산업 경험과 전문성이 결정한다. 액셀러레이터 업계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공동창업자 구성과 조직 안정성을 중심으로 평가했다면 이제는 산업 전문성과 AI 활용역량, 그리고 시장검증 속도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씨엔티테크 역시 '모두의 창업'을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AI 기반 1인 창업가 발굴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특정 산업 경력을 가진 30~40대 현업 전문가들의 1인 창업 도전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모든 1인 창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AI로 실행 속도는 빨라졌지만 경쟁 역시 훨씬 치열해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문제 정의 능력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AI는 창업의 진입장벽을 역사상 가장 빠르게 낮추고 있으며, 앞으로의 창업 생태계는 AI를 활용하는 초소형 고효율 팀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제는 AI효율창업 시대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 협회장

[fn광장] 이재명 정부 남은 4년의 경제 과제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일 출범 1주년을 앞두고 열린 국무회의에서 "임기 2년차부터는 지금까지의 정책성과를 바탕으로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더 크게 만들고, 더 속도를 높이고, 더 폭을 넓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물론 이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긍정적인 정책성과를 앞으로 남은 4년간 더 키워 보다 많은 국민에게 보다 빠르게 전달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앞으로 4년 인공지능(AI) 대전환-성장잠재력-양극화에 걸쳐 총체적으로 전략적 전환점을 직면하는 한국 경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제시한 성장과 속도 중심의 경제정책 기조가 타당한지는 우려되는 바가 크다. 이재명 정부의 지난 1년간 경제정책 성과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단연 경제성장률의 대반전과 기록적인 주가 상승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이재명 정부 집권 전 4분기(2024년 2·4분기∼2025년 1·4분기) 평균 1.38%에서 집권 후 4분기(2025년 2·4분기∼2026년 1·4분기) 평균 2.05%로 대폭 높아졌다. 한편 코스피 지수는 작년 5월 30일 대비 금년 6월 10일 기준 286% 상승했다. 물론 이러한 경제성장률과 주가 상승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주도했으며, 이재명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증시제도 개혁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거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작년 5월 2.8%에서 금년 5월 2.9%로 높아졌으며, 특히 20대 고용률은 작년 5월 61.7%에서 금년 5월 59.4%로 악화되었다. 한편 가계소득 증가율은 작년 1·4분기 4.5%에서 금년 1·4분기 2.4%로 저하되었으며, 특히 적자가구 비율은 26.1%에서 27.4%로 높아졌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24년 5월에서 2025년 5월 사이 1.9% 상승했던 반면 2025년 5월에서 2026년 5월 사이에는 3.1%로 높아졌다. 특히 환율은 2025년 5월 30일 대비 2026년 6월 12일 현재 10.5% 상승했다. 한편 한국부동산원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5년 5월 마지막 주 대비 2026년 6월 첫째 주간에 11.3% 상승하여 그 전 1년간 상승률 6.4%를 크게 추월했으며,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지난 1년간 7.3% 상승하여 그 이전 1년간 상승률 3.0%보다 대폭 상승했다. 이재명 정부의 지난 1년 경제성과를 정리하면 경제성장률 급반등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오르고 고용과 소득은 악화되어 총체적으로 민생은 악화되었으며, 경제 전반의 양극화와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따라서 향후 4년 이재명 정부는 다음 과제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재명 정부의 가장 핵심 성장동력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인 만큼 이 동력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까지 논의들을 정리해 보면 예상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구조적으로 강하며, 이에 따라 최소 2028년 중반까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전망을 전제하더라도 이재명 정부의 종반부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난 이후의 후유증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반도체 주도의 장기 주가 상승국면을 2029년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더욱 불확실성이 높고, 그만큼 정부는 부담을 안고 있다. 둘째, 이재명 정부의 향후 4년은 AI 대전환 기간과 중첩된다는 점에서 AI 대전환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대도약의 기회와 기존의 경제가 안고 있는 양극화와 불균형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위험을 함께 안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이 기회와 위험 간 정책의 균형을 확보하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초과세수 사용방안에서 정책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난 2월 하순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다주택자 주택보유 문제에 초점을 두고 "부동산 투기 공화국에서 탈출"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 착공물량은 2만7000호로 지난 10년 평균 4만호의 67% 수준에 불과하며, 입주물량은 2026년 2만7000호에서 2027년 1만7000호로 지난 10년 평균 물량의 절반 이하라는 점에서 입주절벽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전세대란 발생 위험을 높게 보고 있으며, 전세의 월세화가 바람직한 대안인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향후 4년간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 경제가 AI 대전환-성장잠재력-양극화에 걸치는 총체적 전략적 전환점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적으로 "더 크게 만들고, 더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 기틀을 마련하는 정책기조 확립에 최우선을 둘 필요가 있다.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차관칼럼] 관세 행정의 4가지 중심축

"관세청이 이런 일까지 하는 줄 몰랐습니다." 취임 이후 현장과 소통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흔히 관세청을 세금을 걷는 기관으로 생각하지만 오늘날 관세행정의 역할은 훨씬 넓다. 관세가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물품과 사람, 자금의 흐름을 관리하는 관세청의 책임도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지난 1년간 관세청은 국민 안전과 민생 안정을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최우선 과제는 마약 밀반입 차단이었다. 관세청은 지난 1년간 역대 최대 규모인 3233㎏의 마약을 적발했다. 국제우편에 최초 도입한 '마약 검사 2차 저지선' 제도는 시행 20일 만에 1㎏ 상당의 신종 마약을 적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공항만의 1차 검사에 더해 내륙 우편집중국까지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한 결과다. 중동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망 안정과 민생 지원에도 힘을 기울였다.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특례를 신설, 북미산 원유 등 약 5000만배럴의 추가 수입 여건을 마련했다. 민생물가 안정을 위해 통관 현장을 집중 점검하고 할당관세 제도를 악용한 불법행위를 적발했다. 아울러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을 덜기 위해 1조원 넘는 세정 지원도 실시했다. 이러한 성과를 발판으로 관세청은 앞으로 관세행정의 중심축을 '경제안보'와 '민생 안정'에 두고 혁신을 이어가고자 한다. 첫째, 국경 감시·단속체계를 전면 재설계한다. 국제우편은 물론 여행자와 특송화물까지 모든 반입 경로에 복수 판독과 다중검사체계를 적용해 촘촘한 마약 차단망을 구축할 것이다. 이를 위해 17일 주요 공항만에 '마약특별검사팀'을 발족했다. 둘째, 공정하고 엄정한 경제질서 확립에 힘을 쏟고자 한다. 국가 핵심기술 해외 유출을 차단하는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신종 외환범죄 대응을 위해 '가상자산 거래 정보분석 전담팀'을 신설할 계획이다. 할당관세 제도를 악용한 불공정 행위에는 무관용 원칙을 견지하고, 교역·외환 질서를 훼손하는 악성 체납자에 대한 제재도 더욱 촘촘히 마련할 것이다. 셋째, 수출기업의 활력을 든든히 뒷받침하고자 한다. 평택세관의 '첨단산업 원스톱 관세 지원팀'을 중심으로 첨단전략산업 지원방안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자상거래 수출 활성화 기반도 넓혀 나갈 것이다. 아울러 저가 외국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제조기업 보호대책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 대전환을 계기로 관세행정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 국경 위험요소를 AI로 정밀 선별하고, 물품·기업·자금 흐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탈세와 우회수출을 근절해 나갈 것이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가 맡고 인력은 핵심 업무에 집중, 24시간 중단 없는 관세행정 서비스를 구현해 나갈 예정이다. 관세청은 튼튼한 성벽이 돼 불법 위해물품은 막아내고 민생경제는 든든히 지켜낼 것이다. 일상에서 국민이 안전을 체감하고 기업이 맘 편히 성장할 수 있도록 관세행정의 혁신을 결과로 증명해 나가겠다. 오롯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행동하는 관세청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드린다.이종욱 관세청장

[기고] LNG 저장시설은 국가 안보 자산이다

이란 사태와 같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에너지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에너지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산업을 움직이고 전력을 유지하며 국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국가의 기반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에서 에너지 안보는 곧 산업 안보이자 경제 안보다. 국제 분쟁이나 해상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그 충격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발전과 도시가스, 산업용 연료 공급으로 연쇄 파급되어 국가 경쟁력 자체를 흔든다. 에너지를 시장의 단기 변수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LNG는 한국 에너지 시스템의 현실을 떠받치는 핵심 축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이 시대적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나, 전환기에는 전력계통의 안정성과 산업 수요를 감당할 가교가 반드시 필요하다. LNG는 전력과 열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급격한 수급 변동에도 신속히 대처할 수 있어, 원전, 재생에너지와 함께 전원구성의 안정성을 보완하는 단순한 대체 연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관건은 도입 물량이 아니라, 그것을 언제든 안정적으로 공급할 저장과 송출 체계를 갖췄는가에 있다. 바로 여기서 LNG 인프라의 가치가 분명해진다. 저장시설은 단순 저장의 기능을 넘어, 수입한 LNG를 국내 수요 패턴에 맞게 조절하고 동절기 피크나 예기치 못한 수입 차질에 대응하며 전력계통과 도시가스 공급의 연속성을 떠받치는 전략 인프라다. 에너지 안보는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위기에 비로소 그 가치가 확인된다. 따라서 LNG 인프라는 평균적 상황이 아니라 비상 상황을 견딜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최근 불거진 저장시설 등 LNG 인프라 과대 규모 논란도 이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계절별 수요 편차가 큰 한국에서 평균 가동률만으로 설비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혹한기 최대수요와 돌발적 수입 차질, 설비 고장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일정한 예비 능력은 비효율이 아니라 안정 공급의 필수 조건이다. 설비가 평소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이 그 설비가 불필요하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저장시설의 가치는 평상시 숫자가 아니라 위기 대응력과 공급망 회복탄력성까지 놓고 판단해야 한다. 인프라가 부족했을 때의 사회적 비용은 과잉 논란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결국 LNG 저장시설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 시 생존 역량의 문제다. 설비를 유지하는 비용은 분명 부담이지만, 그것은 공급 중단이라는 더 큰 비용을 막는 보험료다. 에너지 정책은 유행에 흔들려서는 안 되며, 장기적 관점에서 수급 안정과 산업 경쟁력, 에너지 전환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LNG 저장 인프라의 무게는 더해진다. 에너지 안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를 지속하는 데서 시작된다. LNG 저장시설은 그 준비의 최전선에서 위기 속에서도 국민 생활과 산업을 지켜내는 국가의 안전판이다.김진수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기고] 공공생리대, 모두의 건강권 위한 첫걸음

오는 7월부터 '모두의 생리대'라는 이름의 공공생리대 지원 시범사업이 12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된다. 이번 시범사업은 올초 대통령이 제기한 생리대 가격 부담과 품질 좋은 생리대 지원의 필요성과도 맞닿아 있다. 생리대는 장기간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이지만, 그동안 가격 부담과 품질에 대한 우려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사항으로 여겨져 왔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생리대가 없어 수업이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외출 중 난처한 상황을 겪거나, 비용이 부담스러워 필요한 만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상에서 종종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생리를 하는 이들의 건강권, 학습권, 노동권, 사회참여권과 연결되는 문제다. 공공생리대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생리용품은 기본적인 위생과 건강,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필수 물품이다. 생리용품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거나 품질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할 경우, 일상의 불편을 넘어 위생과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생리용품 구입 비용은 생리를 하는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부담이다. 이를 개인의 몫으로만 두지 않고 사회가 함께 줄여가는 것은 성평등 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생리용품 접근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청소년, 저소득층, 장애인, 노숙인, 이주민 등은 필요한 순간 생리용품을 바로 확보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공공생리대 지원은 취약계층을 포함해 생리를 하는 모든 사람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보편적 건강정책이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 제고와 생리대 가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생리대 설치 자체보다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생리대가 어디에 비치되어 있는지, 얼마나 쉽게 찾고 사용할 수 있는지, 제품의 품질은 적절한지, 재고 보충과 위생 관리는 안정적으로 이뤄지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지급기의 설치 높이, 음성 안내, 이동 동선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 모니터링을 통해 실제 이용자의 접근 및 현장에서 느끼는 다양한 경험을 반영하고, 현장 담당자의 관리 부담과 개선 의견 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공공생리대 지원은 얼핏 소소한 사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행정복지센터, 공공도서관, 역사 등 생활 공간에서 필요한 순간 누구나 부담없이 생리대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는 건강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성평등 정책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더 많은 지역과 다양한 시설로 확대되어, 누구나 안심하고 생리대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