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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성찰 없이 정치 올인하는 사회

오키나와로 수학여행을 갔던 도시샤국제고의 한 학생이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먼 길을 떠났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계열학교 학생이라 남다른 비통함이 밀려왔다.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지는 헤노코 앞바다를 평화학습의 일환으로 찾았다가 선박 전복 사고로 희생된 것이다. 안전관리 부실이라는 지적과 함께 첨예한 정치적 현장에 왜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갔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일본 문부과학성은 이번 사례가 교육기본법 제14조가 규정한 정치적 중립성 원칙에 저촉된다며 시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행 체제 아래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 인정된 첫 사례다. 그러나 국가가 개별 교육 내용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교육현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사고 이후 일부 보수·우익 단체들은 "단순한 안전사고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편향된 교육이 낳은 사고"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학교 주변에는 극우단체의 가두선전 차량까지 등장해 격렬한 구호를 뱉어낸다. 친구의 빈자리를 가슴에 안고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에게 저 확성기의 고함은 애도의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또 다른 폭력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희생자를 추모하고, 미처 아물지 못한 학생들의 상처를 보듬는 일임에도 말이다. 한편 스타벅스코리아는 5·18 민주화운동을 연상시키는 판촉행사로 뭇매를 맞는 중이다. 5·18은 한국 현대사의 큰 비극이자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설마 일부러야 그랬겠느냐는 선의의 해석도 가능하지만, 사회적 감수성과의 괴리가 너무 심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룹 회장의 공식 사과와 책임자 문책이 이루어졌지만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경영진의 역사 인식이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저질 장사치" "민주주의를 조롱한 행위"와 같은 원색적인 질타도 이어졌다. 지방선거와 맞물려서인지 꾸짖음을 넘어 정치공세의 소재로 활용하는 모습마저 엿보였다. 확성기를 울리는 일본의 극우세력과 한 방향만의 여론몰이에 몰두하는 한국 진보세력. 이념의 색깔도, 내세우는 명분도 정반대이지만 비극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한쪽은 학생의 죽음을, 다른 한쪽은 현대사의 참담한 기억을 이념이 다른 상대방을 공격하는 재료로 삼고 있다. 방향만 다를 뿐 수단과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비극을 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만 그 과정이 정치적 책임 공방이나 진영 간 대결로 흐르는 순간, 애도와 성찰은 설 자리를 잃는다. 누군가의 죽음과 사회적 상처를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구로 소비할 때 본질은 사라지고 선동만 남는다. 기업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이윤 추구에만 몰두할 때 우리는 흔히 '장사치'라는 표현으로 그 행태를 폄하한다. 정치권도 예외일 수는 없다. 비극과 상처를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장사다. 비극 앞에서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잠시 입을 다물 줄 아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기고] "산지 규제, 이젠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패러다임 전환할 때"

우리나라의 산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가 주목하는 녹화 성공 신화를 이뤄냈다. 그러나 외형적인 울창함 뒤에 가려진 산지 이용 체계는 30여 년 전의 '보호와 보전' 중심의 과거 패러다임에 여전히 갇혀 있다. 수십 개의 법률로 얽힌 촘촘한 산지 규제는 오늘날 기후 위기 대응과 산림 경제 활성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됐다. 이제는 산지를 묶어두는 통제에서 벗어나, 보전과 이용이 조화를 이루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규제 패러다임을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할 때다. 현재 글로벌 산림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산림의 경제·환경·사회문화적 기능과 가치가 최대한 발휘되도록 하는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SFM)'이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 SDGs), UN 산림관리전략(2017-2030), UN 생물다양성협약 2050 비전 및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UN 생태계 복원 10대 원칙(2021-2030) 등 국제사회는 이미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의 균형을 명시하고 있다. 선진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 등도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목재 생산과 산림 휴양 등 경제적 이용을 자율적으로 보장하는 유연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행 산지관리법은 산지를 '보전산지(공익용 산지·임업용 산지)'와 '준보전산지'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문제는 산림경영의 핵심 공간이어야 할 '임업용 산지'가 '보전산지'의 하위 개념으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정당하게 자원을 활용해야 할 산주와 임업인의 자율적인 경영권이 심각하게 제한받고 있다. 이는 명백히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하는 구조다. 임업 직불제가 도입됐지만 농업 직불제에 비해 지원 여건이 턱없이 열악하고, 내년부터 시행될 산림보호구역 내 '산림공익가치보전지불제' 역시 구체적인 세부 사항에 산주의 의견이 철저히 수렴되지 않는다면 현장의 불만을 해소하기 어렵다. 임업진흥구역, 경제림단지, 선도산림경영단지 등 정작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 임업용 산지마저 규제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  따라서 현행 산지이용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법률에서 '허용하는 행위'만 나열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현행 '포지티브(Positive)' 규제 방식을, '제한하는 사항'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환경성과 재난 안전성(산사태, 산불 등)이라는 필수적인 최소 기준만 엄격히 평가하고, 그 외의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풀어주어야 산림의 미래 가치가 살아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차원의 전면적인 개편을 제안한다. 첫째, 산지 구분 체계의 과감한 재편이다. 기존의 '보전산지'라는 포괄적이고 경직된 대분류를 폐지해야 한다. 대신 산지를 '공익용 산지, 임업용 산지, 준보전 산지'의 3대 체계로 대등하게 독립·개편해야 한다. 각 법률에서 규제하는 환경보전 및 공익적 목적의 산지는 '공익용 산지'로 지정해 국가가 철저하고 강력하게 보전하되, 보호 의무를 다하는 산주에게는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둘째, 임업용 산지의 자율경영권 보장과 소득 증진이다. '임업용 산지'는 보전의 굴레에서 벗어나 산주와 임업인이 지속 가능한 자율 경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임업인의 적극적인 산림경영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소득과 권익을 증진하고, 궁극적으로 이들의 삶의 질을 높여 산촌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관련 법률 체계의 통합적 정비다. 산지관리법뿐만 아니라 산림자원법, 국토계획법, 환경영향평가법 등 산지를 겹겹이 규제하고 있는 관련 법률 체계를 네거티브 패러다임에 맞춰 유기적으로 동시 개정해야 한다. 법률 간의 상충을 제거하지 않으면 현장의 규제 개혁 체감도는 제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산림은 가두어 둘 때보다, 올바르게 가꾸고 이용할 때 그 가치가 극대화된다. 환경보전과 산림 재난 안전이라는 공익적 가치는 더욱 철저하게 사수하되, 그 외의 영역에서는 산주와 임업인의 자율성을 믿고 규제를 풀어주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30년이 지난 낡은 규제의 틀을 깨고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낼 때, 비로소 대한민국 산림은 기후 위기 극복의 열쇠이자 풍요로운 경제 자산으로 거듭날 것이다. 정부와 입법부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럼] 日 정부, 무기수출 창구 되나

2026년 4월 21일은 일본의 역사를 바꾼 날로 기록될 것이다. 살상무기를 수출할 수 없었던 일본이 해외로 무기수출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1면 톱으로 이 사실을 게재하면서 일본의 무기수출이 역사적인 대전환 국면에 서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군수산업이 향후 큰돈을 버는 산업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2026년도 내에 개정하는 안보문서에 무기수출에 관한 새로운 행정조직을 출범시키려는 목표를 정하고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국가가 창구가 되게 할 계획이다. 1967년 4월 당시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중의원에서 평화국가 일본은 무기수출을 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했다. 해당되는 국가들은 공산권 국가들, 유엔 결의에 의해 무기수출이 금지된 국가, 국제분쟁 당사국 또는 그러한 우려가 있는 국가들이라고 했다. 그랬던 금지가 2014년 아베 신조 총리가 무기수출 금지 3원칙을 폐기하고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발표해 사실상 무기수출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무기수출 범위를 전방위적으로 실행하려 했는데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아베의 후계자라 자처했던 다카이치 사나에가 총리가 되면서 본격적인 무기수출의 길이 열리고 있다. 그것이 이번에 군함 11척을 호주에 수출하게 된 것이고, 동남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일본 무기가 팔려 나가게 된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으로 대표되는 군수산업은 전자기술, 미사일 기술, 잠수함과 군함 건조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무기산업의 역사가 바뀔 것이다. 문제는 무기 수출의 길을 만들어 준 아베 총리에게 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으로 재판을 받을 정도의 극우 인물이고, 특별히 외손자인 아베 총리에게 지적 유산과 경험을 전수해 준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무기수출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 중국 정부는 일본이 신군국주의로 간다고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1940년대 초 일본 군국주의는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공습했고 태평양전쟁이 벌어졌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항복을 했다. 전쟁이 종결되면서 일본도 스스로의 제어장치가 없었던 군국주의를 말살시키고 민주주의의 실현, 재벌과 군벌이 만나 전쟁이 가능했던 것을 바로잡기 위해 재벌을 해체하고 군사력 자체를 모조리 무너뜨렸다. 물론 더글러스 맥아더의 군정정치가 만들어 낸 일본의 변화이기도 했지만 일본 국민도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스스로 평화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59년이 지난 2026년 드디어 스스로의 족쇄를 풀고 무기 수출을 공식화한 것이다. 일본이 군사대국이었던 역사는 한국을 식민지배하고, 중국을 침략한 불행으로 기록되어 있어 과거사를 지우고 군사대국으로 또다시 향하는 일본을 경계하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 언론들도 일본이 군사강국이 되는 것을 지지하고 있고, 보통의 일반 국민들도 수용하고 있는 점이다. 심지어는 일본 방위산업이 향후 큰돈을 벌어들일 것이라고 여론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은 한미동맹 강화와 자주국방산업을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김경민 한양대 명예교수

[fn광장] 美가 이란에서 보여준 군사전략 혁신

금년 2월 28일 시작된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이 정밀폭격 약 한달, 압박협상 약 두달의 기간을 거쳐 이제 협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미국이 지상군을 파견하여 이란의 무조건적 항복을 받아낸 통상적 형태의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최종적인 결말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세간에 떠도는 '이란이 버텨서 이겼다'는 해석은 터무니없는 해석일 뿐 이란이 예전의 이란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군사작전이 이란에서 전개되었지만 이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동의 특수성보다는 전쟁과 국제정치 시각의 분석이 중요하다. 이 시각에서 보면 이란의 방공망·군사력·무기생산시설이 원격정밀타격으로 무력화되었고, 이란의 주 재원인 석유 수출까지 막혀 있으며, 주요 지도자는 정밀타격으로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란 정부가 미국의 압박을 버텨낼 것이라는 상상은 이란에 과도한 감정이입이 되어 있는 상상이다. 게다가 이란의 뒷배가 되어왔던 세계 2위 강대국 중국도 미국에 대항하여 전혀 개입을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에서 미국의 전력 소모를 기다린다는 주장도 있지만, 중국이 지금 기습적으로 대만해협에서 전쟁을 도모한다는 무리한 가정을 하지 않는 한 이란에서의 미국 전력 전개는 미국 패권 몰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에서도 결정적일 때 원군이 되어주지 못하는 중국에 대한 친중 국가들의 신뢰가 깎이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미국이 중동에서 그리는 그림은 최종 단계까지 여러 차례 약속과 검증을 반복하면서 그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이란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폭격이라는 '채찍' 카드를 살려두고, 이란에 도움이 되는 소위 경제적 '당근'은 최종 단계에서야 풀 것으로 전망된다. 첫 번째 단계는 이란으로 하여금 핵무기 프로그램 전체를 포기하고 호르무즈해협의 자유항행 보장을 받아내는 것이다. 핵무기 프로그램 포기는 미국과 제3자가 직접 이란에 들어가 기존 농축된 우라늄과 핵개발시설을 제거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이며, 자유항행 보장은 일정 기간 이란의 행태를 지켜보며 검증한 후 점차 정상화 단계를 밟을 것 같다. 두 번째, 이란 정부의 경제적 재원이 될 석유 수출 및 제재 해제와 관련하여 미국은 상당 수준의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석유 수출로 인한 수입금을 미국 재무부의 에스크로 계좌로 받아 관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똑같은 방식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란 정부의 예산 집행 관련 투명성을 높이는 조치는 반드시 포함될 것이다. 석유 수출이 재개되고 경제제재가 풀린 후 확보된 재원으로 이란 정부가 다시 테러 지원과 핵무기 개발을 한다거나 과도한 군사력 확장을 시도한다면 미국이 여태까지 쏟아부은 모든 노력이 헛되게 되는 것이다. 이란 정부는 주권적 사안인 이 문제에 대해서 강력하게 저항하겠지만 이란 정부의 행태 변화를 끌어내는 데 있어서 미국은 이 예산 집행을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볼 것이다. 만약 그 과정에서 경제개발 세력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난다면 예산주권 이양은 빨라질 수 있다. 세 번째 단계는 기존 아브라함협정을 확대하여 중동을 다자협력 체제로 재편하는 최종 단계라 하겠다. 아브라함협정은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이 수교한 협정이며 그 이후 모로코와 수단이 참여하였다. 지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 아브라함협정을 확대하여 이란을 포함, 미수교국의 수교를 독려하여 중동 평화에 새로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단계적 조치들이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중동평화의 핵심 고리인 이란이 변화한다면 중동의 다자협력 체제는 예상 외로 빨리 진전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질서를 재설계하는 패권국으로서 이번 이란 군사작전을 통하여 매우 중요한 군사력 사용의 혁신적 모델과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인공지능(AI)을 포함한 최첨단 군사 생태계를 구축하여 지상군 전개 없이 인구 9200만 규모의 군사강국 이란의 방공망과 군사력을 무력화하고, 정권교체가 아닌 압박에 의한 정권의 행태 변화를 강제하는 혁신적 모델이다. 이 모델이 트럼프 행정부가 말하는 '힘을 통한 평화'의 핵심 수단이 될 것인데, 이렇게 선례가 만들어지면 다음부터는 굳이 실제 군사력 사용을 하지 않아도 정권의 행태 변화나 억지력 측면에서 매우 유용한 압박 카드가 될 것이다. 현재 이 수준의 군사력을 사용·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패권국 미국이 유일하다.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포럼] AI 시대, 1인 창업 혁명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확산은 창업 생태계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스타트업 창업은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수의 인력이 필요했다. 초기 투자자들 역시 팀 규모와 조직 구성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몇 명이 창업했는가'보다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생성형 AI는 창업 초기 비용을 급격히 낮추고 있다. 서비스 기획, 개발, 콘텐츠 제작, 고객 응대, 데이터 분석 영역이 AI 기반 도구로 대체되면서 1인 창업가도 빠르게 최소기능제품(MVP)을 만들고 시장 반응을 검증할 수 있게 됐다. 바이브코딩 환경의 확산은 비개발자에게도 서비스 구현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과거 수천만원 규모의 외주 개발이 필요했던 영역들이 이제는 AI를 통해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초기 자본이 부족한 예비창업자들에게 매우 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최근 여러 대학원 강의 현장에서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과거 학생들이 사업계획서 작성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AI를 활용해 실제 서비스를 구현하고 고객 반응을 실험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현업 경험이 있는 대학원생들은 특정 산업에 대한 문제 정의 능력이 뛰어나 AI와 결합될 경우 강력한 경쟁력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아이디어 단계에서 멈췄던 창업 시도들이 이제는 실제 MVP 제작과 시장 테스트까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다만 AI 시대의 1인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한 AI 활용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도메인 날리지'(특정 분야 전문지식)다. AI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능력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이다. 결국 특정 산업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AI를 활용할 때 훨씬 강한 사업 모델이 나온다. 실제로 변호사는 AI 기반 법률 SaaS를 만들고, 의사는 의료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실험하며, 제조업 경력자는 공정 자동화 솔루션을 구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현장의 문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다. AI는 실행 속도를 높여주지만, 어떤 방향으로 실행해야 하는지는 결국 산업 경험과 전문성이 결정한다. 액셀러레이터 업계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공동창업자 구성과 조직 안정성을 중심으로 평가했다면 이제는 산업 전문성과 AI 활용역량, 그리고 시장검증 속도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씨엔티테크 역시 '모두의 창업'을 포함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AI 기반 1인 창업가 발굴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특정 산업 경력을 가진 30~40대 현업 전문가들의 1인 창업 도전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물론 모든 1인 창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AI로 실행 속도는 빨라졌지만 경쟁 역시 훨씬 치열해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문제 정의 능력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AI는 창업의 진입장벽을 역사상 가장 빠르게 낮추고 있으며, 앞으로의 창업 생태계는 AI를 활용하는 초소형 고효율 팀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제는 AI효율창업 시대다. 전화성 초기투자액셀러레이터 협회장

[fn광장] 이재명 정부 남은 4년의 경제 과제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일 출범 1주년을 앞두고 열린 국무회의에서 "임기 2년차부터는 지금까지의 정책성과를 바탕으로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더 크게 만들고, 더 속도를 높이고, 더 폭을 넓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물론 이 대통령은 지난 1년간의 긍정적인 정책성과를 앞으로 남은 4년간 더 키워 보다 많은 국민에게 보다 빠르게 전달할 것을 당부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앞으로 4년 인공지능(AI) 대전환-성장잠재력-양극화에 걸쳐 총체적으로 전략적 전환점을 직면하는 한국 경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제시한 성장과 속도 중심의 경제정책 기조가 타당한지는 우려되는 바가 크다. 이재명 정부의 지난 1년간 경제정책 성과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단연 경제성장률의 대반전과 기록적인 주가 상승이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이재명 정부 집권 전 4분기(2024년 2·4분기∼2025년 1·4분기) 평균 1.38%에서 집권 후 4분기(2025년 2·4분기∼2026년 1·4분기) 평균 2.05%로 대폭 높아졌다. 한편 코스피 지수는 작년 5월 30일 대비 금년 6월 10일 기준 286% 상승했다. 물론 이러한 경제성장률과 주가 상승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주도했으며, 이재명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증시제도 개혁도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거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작년 5월 2.8%에서 금년 5월 2.9%로 높아졌으며, 특히 20대 고용률은 작년 5월 61.7%에서 금년 5월 59.4%로 악화되었다. 한편 가계소득 증가율은 작년 1·4분기 4.5%에서 금년 1·4분기 2.4%로 저하되었으며, 특히 적자가구 비율은 26.1%에서 27.4%로 높아졌다.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2024년 5월에서 2025년 5월 사이 1.9% 상승했던 반면 2025년 5월에서 2026년 5월 사이에는 3.1%로 높아졌다. 특히 환율은 2025년 5월 30일 대비 2026년 6월 12일 현재 10.5% 상승했다. 한편 한국부동산원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5년 5월 마지막 주 대비 2026년 6월 첫째 주간에 11.3% 상승하여 그 전 1년간 상승률 6.4%를 크게 추월했으며,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지난 1년간 7.3% 상승하여 그 이전 1년간 상승률 3.0%보다 대폭 상승했다. 이재명 정부의 지난 1년 경제성과를 정리하면 경제성장률 급반등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오르고 고용과 소득은 악화되어 총체적으로 민생은 악화되었으며, 경제 전반의 양극화와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따라서 향후 4년 이재명 정부는 다음 과제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재명 정부의 가장 핵심 성장동력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인 만큼 이 동력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최근까지 논의들을 정리해 보면 예상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구조적으로 강하며, 이에 따라 최소 2028년 중반까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전망을 전제하더라도 이재명 정부의 종반부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끝난 이후의 후유증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반도체 주도의 장기 주가 상승국면을 2029년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더욱 불확실성이 높고, 그만큼 정부는 부담을 안고 있다. 둘째, 이재명 정부의 향후 4년은 AI 대전환 기간과 중첩된다는 점에서 AI 대전환이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대도약의 기회와 기존의 경제가 안고 있는 양극화와 불균형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위험을 함께 안고 있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이 기회와 위험 간 정책의 균형을 확보하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초과세수 사용방안에서 정책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난 2월 하순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직접 다주택자 주택보유 문제에 초점을 두고 "부동산 투기 공화국에서 탈출"을 핵심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 착공물량은 2만7000호로 지난 10년 평균 4만호의 67% 수준에 불과하며, 입주물량은 2026년 2만7000호에서 2027년 1만7000호로 지난 10년 평균 물량의 절반 이하라는 점에서 입주절벽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전세대란 발생 위험을 높게 보고 있으며, 전세의 월세화가 바람직한 대안인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향후 4년간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이 주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 경제가 AI 대전환-성장잠재력-양극화에 걸치는 총체적 전략적 전환점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단기적으로 "더 크게 만들고, 더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발전 기틀을 마련하는 정책기조 확립에 최우선을 둘 필요가 있다.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차관칼럼] 관세 행정의 4가지 중심축

"관세청이 이런 일까지 하는 줄 몰랐습니다." 취임 이후 현장과 소통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흔히 관세청을 세금을 걷는 기관으로 생각하지만 오늘날 관세행정의 역할은 훨씬 넓다. 관세가 국가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물품과 사람, 자금의 흐름을 관리하는 관세청의 책임도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지난 1년간 관세청은 국민 안전과 민생 안정을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최우선 과제는 마약 밀반입 차단이었다. 관세청은 지난 1년간 역대 최대 규모인 3233㎏의 마약을 적발했다. 국제우편에 최초 도입한 '마약 검사 2차 저지선' 제도는 시행 20일 만에 1㎏ 상당의 신종 마약을 적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공항만의 1차 검사에 더해 내륙 우편집중국까지 촘촘한 감시망을 구축한 결과다. 중동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망 안정과 민생 지원에도 힘을 기울였다. 원유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특례를 신설, 북미산 원유 등 약 5000만배럴의 추가 수입 여건을 마련했다. 민생물가 안정을 위해 통관 현장을 집중 점검하고 할당관세 제도를 악용한 불법행위를 적발했다. 아울러 영세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을 덜기 위해 1조원 넘는 세정 지원도 실시했다. 이러한 성과를 발판으로 관세청은 앞으로 관세행정의 중심축을 '경제안보'와 '민생 안정'에 두고 혁신을 이어가고자 한다. 첫째, 국경 감시·단속체계를 전면 재설계한다. 국제우편은 물론 여행자와 특송화물까지 모든 반입 경로에 복수 판독과 다중검사체계를 적용해 촘촘한 마약 차단망을 구축할 것이다. 이를 위해 17일 주요 공항만에 '마약특별검사팀'을 발족했다. 둘째, 공정하고 엄정한 경제질서 확립에 힘을 쏟고자 한다. 국가 핵심기술 해외 유출을 차단하는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신종 외환범죄 대응을 위해 '가상자산 거래 정보분석 전담팀'을 신설할 계획이다. 할당관세 제도를 악용한 불공정 행위에는 무관용 원칙을 견지하고, 교역·외환 질서를 훼손하는 악성 체납자에 대한 제재도 더욱 촘촘히 마련할 것이다. 셋째, 수출기업의 활력을 든든히 뒷받침하고자 한다. 평택세관의 '첨단산업 원스톱 관세 지원팀'을 중심으로 첨단전략산업 지원방안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전자상거래 수출 활성화 기반도 넓혀 나갈 것이다. 아울러 저가 외국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 제조기업 보호대책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 대전환을 계기로 관세행정 혁신의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 국경 위험요소를 AI로 정밀 선별하고, 물품·기업·자금 흐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탈세와 우회수출을 근절해 나갈 것이다. 단순 반복 업무는 AI가 맡고 인력은 핵심 업무에 집중, 24시간 중단 없는 관세행정 서비스를 구현해 나갈 예정이다. 관세청은 튼튼한 성벽이 돼 불법 위해물품은 막아내고 민생경제는 든든히 지켜낼 것이다. 일상에서 국민이 안전을 체감하고 기업이 맘 편히 성장할 수 있도록 관세행정의 혁신을 결과로 증명해 나가겠다. 오롯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행동하는 관세청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드린다.이종욱 관세청장

[기고] LNG 저장시설은 국가 안보 자산이다

이란 사태와 같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우리는 에너지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에너지는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산업을 움직이고 전력을 유지하며 국민의 일상을 지탱하는 국가의 기반이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에서 에너지 안보는 곧 산업 안보이자 경제 안보다. 국제 분쟁이나 해상 운송 차질이 발생하면 그 충격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발전과 도시가스, 산업용 연료 공급으로 연쇄 파급되어 국가 경쟁력 자체를 흔든다. 에너지를 시장의 단기 변수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점에서 LNG는 한국 에너지 시스템의 현실을 떠받치는 핵심 축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탄소중립이 시대적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나, 전환기에는 전력계통의 안정성과 산업 수요를 감당할 가교가 반드시 필요하다. LNG는 전력과 열 수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급격한 수급 변동에도 신속히 대처할 수 있어, 원전, 재생에너지와 함께 전원구성의 안정성을 보완하는 단순한 대체 연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관건은 도입 물량이 아니라, 그것을 언제든 안정적으로 공급할 저장과 송출 체계를 갖췄는가에 있다. 바로 여기서 LNG 인프라의 가치가 분명해진다. 저장시설은 단순 저장의 기능을 넘어, 수입한 LNG를 국내 수요 패턴에 맞게 조절하고 동절기 피크나 예기치 못한 수입 차질에 대응하며 전력계통과 도시가스 공급의 연속성을 떠받치는 전략 인프라다. 에너지 안보는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위기에 비로소 그 가치가 확인된다. 따라서 LNG 인프라는 평균적 상황이 아니라 비상 상황을 견딜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 최근 불거진 저장시설 등 LNG 인프라 과대 규모 논란도 이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계절별 수요 편차가 큰 한국에서 평균 가동률만으로 설비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혹한기 최대수요와 돌발적 수입 차질, 설비 고장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일정한 예비 능력은 비효율이 아니라 안정 공급의 필수 조건이다. 설비가 평소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이 그 설비가 불필요하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저장시설의 가치는 평상시 숫자가 아니라 위기 대응력과 공급망 회복탄력성까지 놓고 판단해야 한다. 인프라가 부족했을 때의 사회적 비용은 과잉 논란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결국 LNG 저장시설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위기 시 생존 역량의 문제다. 설비를 유지하는 비용은 분명 부담이지만, 그것은 공급 중단이라는 더 큰 비용을 막는 보험료다. 에너지 정책은 유행에 흔들려서는 안 되며, 장기적 관점에서 수급 안정과 산업 경쟁력, 에너지 전환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LNG 저장 인프라의 무게는 더해진다. 에너지 안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를 지속하는 데서 시작된다. LNG 저장시설은 그 준비의 최전선에서 위기 속에서도 국민 생활과 산업을 지켜내는 국가의 안전판이다.김진수 한양대학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기고] 공공생리대, 모두의 건강권 위한 첫걸음

오는 7월부터 '모두의 생리대'라는 이름의 공공생리대 지원 시범사업이 12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작된다. 이번 시범사업은 올초 대통령이 제기한 생리대 가격 부담과 품질 좋은 생리대 지원의 필요성과도 맞닿아 있다. 생리대는 장기간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필수품이지만, 그동안 가격 부담과 품질에 대한 우려는 개인이 감당해야 할 사항으로 여겨져 왔다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생리대가 없어 수업이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외출 중 난처한 상황을 겪거나, 비용이 부담스러워 필요한 만큼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일상에서 종종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생리를 하는 이들의 건강권, 학습권, 노동권, 사회참여권과 연결되는 문제다. 공공생리대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생리용품은 기본적인 위생과 건강,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필수 물품이다. 생리용품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거나 품질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할 경우, 일상의 불편을 넘어 위생과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생리용품 구입 비용은 생리를 하는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부담이다. 이를 개인의 몫으로만 두지 않고 사회가 함께 줄여가는 것은 성평등 정책의 중요한 과제이다. 셋째, 생리용품 접근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청소년, 저소득층, 장애인, 노숙인, 이주민 등은 필요한 순간 생리용품을 바로 확보하는 데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공공생리대 지원은 취약계층을 포함해 생리를 하는 모든 사람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보편적 건강정책이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국민의 건강권 제고와 생리대 가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생리대 설치 자체보다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생리대가 어디에 비치되어 있는지, 얼마나 쉽게 찾고 사용할 수 있는지, 제품의 품질은 적절한지, 재고 보충과 위생 관리는 안정적으로 이뤄지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도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지급기의 설치 높이, 음성 안내, 이동 동선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또 모니터링을 통해 실제 이용자의 접근 및 현장에서 느끼는 다양한 경험을 반영하고, 현장 담당자의 관리 부담과 개선 의견 등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공공생리대 지원은 얼핏 소소한 사업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행정복지센터, 공공도서관, 역사 등 생활 공간에서 필요한 순간 누구나 부담없이 생리대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이는 건강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성평등 정책이다. 이번 시범사업이 더 많은 지역과 다양한 시설로 확대되어, 누구나 안심하고 생리대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고] 기업이 뿌린 사회공헌의 씨앗

전기 사용량 데이터로 고독사를 막고 저출생 극복을 위해 난임 직원에게 치료비를 지원하며, 화염 속을 뛰어드는 소방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들. 지난 7주간 파이낸셜뉴스에서 담아낸 기업 사회공헌의 현장이다. 단순 기부나 일회성 봉사를 넘어, 기업의 핵심 기술과 역량으로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이 흐름은 우리 사회가 기업 사회공헌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선언하는 데에서 나아가, 사회공헌을 기업 가치와 직결된 핵심 경영 전략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환경·사회적 활동 등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국제재무보고기준(IFRS) 재단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전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ESG 공시 표준을 발표했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춰 상장 기업을 중심으로 공시 의무화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ESG 공시가 이제 사실상 '제2의 재무제표'로 자리 잡는 것이다. 투자자와 소비자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사회공헌은 이제 기업의 평판과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으며 기업 경영의 새로운 기준으로 떠올랐다. "좋은 일을 하기는 했는데, 얼마나 사회를 좋게 만들었나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평가는 주로 투입 중심이었다. 얼마를 기부했는지, 몇명이 봉사활동에 참여했는지가 주된 지표였다. 기업 사회공헌을 통해 실제로 수혜자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정부 지출이 필요한 공공 예산을 얼마나 절감해 주었는지는 제대로 측정되지 못했다. 일부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기업이 창출해 낸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해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데이터 수집의 어려움과 전문성 확보라는 과제 앞에서 일선 단체들은 아직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성과로 드러날 때 비로소 인정이 따라오고, 인정이 따라올 때 발전이 시작된다. 성과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하면 선한 의지로 시작한 사회공헌 활동이라도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 딜레마를 풀기 위해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사회공헌의 성과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보다 민간이 스스로 측정하고 입증할 수 있도록 기반과 역량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이 자율적으로 측정하고 입증할 때 훨씬 신뢰성이 높아지며, 창의성과 혁신성도 북돋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창출된 성과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과제다. 성과가 세제·포상 등 인센티브와 연결될 때 기업은 더 전략적으로 사회공헌을 설계하게 되고, 민관협력은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다. 기업이 사회공헌의 성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그 평가가 실질적인 보상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파이낸셜뉴스의 7주에 걸친 기획기사가 보여준 것처럼, 기업의 사회공헌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묵묵히 작동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기업의 선의가 성과로 증명되고, 그 성과가 다시 사회를 변화시키는 선순환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겠다. 기업과 사회, 정부가 함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포럼] 월성원전 계속 운전하려면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가 4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NDC 달성을 위해 무탄소 에너지 확대를 천명했지만, 전력 현장의 실상은 시급하기 짝이 없다. 당장 2026년 11월 월성 2호기를 시작으로 3·4호기가 차례로 운영을 정지한다. 총 2.1GW 규모의 이 원전들이 제때 전력망에 복귀하지 못한다면 연간 약 160억kwh의 청정에너지가 증발한다. 이는 24시간 상시 전력공급원으로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도 어렵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600만t 이상의 온실가스가 추가 배출되어 2030 NDC 달성은 사실상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에너지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월성 2·3·4호기의 계속운전이 필수다. 그러나 현행 규제제도의 모순은 월성 원전 계속운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30 NDC 달성을 위해 법제도 개선과 관련 부처의 총력 대응이 시급하다. 우선 국회와 정부는 계속운전을 가로막는 두 가지 법적 걸림돌을 시급히 제거해야 한다. 첫째, 원자력안전법상의 인허가 기산점과 기간의 개정이다. 우리나라는 계속운전 허가 기간을 10년으로 묶어두고 있으며, 그마저도 과거의 '설계수명 만료일'부터 소급하여 계산한다. 월성 원전은 계속운전을 위해 수천억원을 들여 압력관을 교체해야 한다. 인허가 심사와 자재 조달, 시공에 수년이 소요되어 막상 재가동을 하더라도 정작 운전할 수 있는 기간은 6~7년에 불과하다. 6~7년 운전으로는 투자 대비 경제성이 나오기 힘들다. 미국처럼 계속운전 승인 후 '새 면허 발효일'부터 기간을 기산하거나 일본처럼 '정지 기간을 수명에서 제외'하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또한 계속운전 허가 기간을 20년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사업자가 투자를 감행할 수 있다. 둘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내 독소조항의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 특별법 제36조 제6항은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의 용량을 원전의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양'으로 제한하고 있다. 월성 원전은 이미 1992년부터 부지 내 임시저장을 아무런 안전 문제 없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으로 인해 계속운전 허가를 받더라도 추가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저장시설을 지을 수 없다. 이 조항을 방치하면 월성 원전은 계속운전에 들어가도 2037년경 저장공간 포화로 가동을 할 수 없는 모순에 직면한다. 국회는 계속운전 등 여건 변화 시 저장용량을 유연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수력원자력은 선제적인 투자와 공급망 관리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핵심 부품의 적기 조달을 위한 '패스트 트랙' 공급망을 구축하고, 선행 정비계획을 수립하여 물리적 공사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탄소중립 컨트롤타워로서 적기 계속운전을 위한 전방위적 정책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심사인력을 집중 배치하고 절차를 효율화하여 심사 장기화로 인한 가동공백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전향적인 법제도 혁신으로 응답하지 않는다면 대규모 전력공급 공백과 함께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약속도 지키기 어려워진다. 정동욱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

[fn광장] 지금이 금융 혁신의 골든타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금융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은행은 건전성을 중시하게 되었고, 자본비율과 리스크 관리도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던 나라가 이제는 안정적인 금융시스템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분명 값진 성취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외면해왔다. 그렇게 건전해진 금융이 과연 우리 경제를 더 생산적이고 더 포용적으로 만들었을까. 산업화 시기의 금융은 국가 성장전략의 도구였다. 국민의 저축을 모아 제조업과 수출산업에 공급했고, 그것이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IMF 이후에는 방향이 달라졌다. 금융은 안정성과 건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기 시작했다. 위기를 겪은 뒤였기에 당연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금융이 점점 더 위험을 회피하는 구조로 굳어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자금은 미래 성장성이 높은 혁신기업보다 담보가 확실한 부동산과 가계대출로 몰렸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은 표준화가 쉽고, 손실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로 보면 결과는 달랐다. 혁신기업과 스타트업에는 충분한 자금이 흐르지 못했고, 한국 경제는 부동산 중심의 구조에 갇히게 되었다. 금융은 더 안전해졌지만 더 생산적이지는 못했다. 동시에 금융의 문턱 밖에 놓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청년 창업자, 외국인 노동자들은 전통적인 신용평가 체계 안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금융은 건전해졌지만 충분히 포용적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새롭게 금융 대전환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1990년대까지의 산업화 금융 시대, 외환위기 이후의 안정화 금융 시대를 거쳐 이제 인공지능(AI) 기반 혁신금융의 시대로 금융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 금융은 결국 정보를 판단하는 산업이다. 돈을 빌려줄지, 투자할지, 위험을 감수할지 결정하는 일이 모두 정보 분석의 문제다. 과거에는 사람이 제한된 데이터만 보고 판단했다. 이제는 AI가 수천 개 변수와 비정형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한다. 거래패턴과 현금흐름, 공급망 정보, 소비패턴까지 종합적으로 읽어낸다. 이 변화는 생산적 금융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 금융은 과거의 재무제표와 담보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과거 데이터가 부족하다. AI는 스타트업의 고객 유지율, 온라인 거래 흐름, 공급망 안정성 같은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 가능성을 더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다. 자본이 과거 실적만 좋은 기업이 아니라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이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동시에 AI는 포용적 금융도 가능하게 만든다. 정규직 급여 이력이 부족하더라도 현금흐름의 안정성을 분석할 수 있고, 금융거래 기록이 짧더라도 소비 패턴과 생활 데이터를 통해 신용을 평가할 수 있다. 과거 금융 시스템이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포용성과 생산성은 원래 충돌하는 목표처럼 여겨졌지만 AI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 더 많은 사람과 기업을 더 정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금융은 동시에 더 생산적이고 더 포용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기회가 있다고 미래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금융회사 스스로 변해야 한다. AI 전담부서를 만드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영업과 리스크, 마케팅과 IT 사이의 벽을 허물고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 실패를 최소화하는 문화만으로는 안 된다. 작은 실험을 빠르게 반복하며 학습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앞으로 금융회사의 경쟁력은 점포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AI를 얼마나 조직 깊숙이 내재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의 역할 역시 너무도 중요하다. 지금의 금융규제는 여전히 사전 허가와 세부 규정 중심이다. 하지만 AI 시대의 혁신은 실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모든 것을 미리 허락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소비자 보호와 책임성 같은 큰 원칙만 제시하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샌드박스도 단순한 예외 허용이 아니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학습 체계가 되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조건은 충분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성과 실행력이다. AI 시대를 단순한 기술 변화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금융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역사적 기회로 만들 것인가. 답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10년 만에 뒤바뀐 이혼소송의 룰 — 위자료, 증거, 변호사 시장까지 다 바뀌었다[부장판사 출신 김태형 변호사의 '알쏭달쏭 이혼]

[파이낸셜뉴스]  최근 몇 년 사이 이혼 소송의 양상은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필자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그리고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다시 수원가정법원에서 근무하며 약 10년의 간극을 두고 이혼 재판을 직접 다루었다. 여기에 현재 변호사로서의 실무 경험까지 더해보면 이혼 소송이 과거와는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 주요 변화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위자료, '보상'에서 '제재'로 첫 번째 변화는 위자료 액수의 상승이다. 과거 실무에서는 부정행위가 인정되는 경우 배우자에 대한 위자료는 약 3,000만 원, 상간자에 대한 위자료는 약 1,500만 원이 일종의 공식처럼 작용되었다. 법원 실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위자료의 기능을 단순한 정신적 손해배상을 넘어 '불법행위에 대한 억지 및 예방 수단'으로 보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언론이 주목하는 고액 위자료 판결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여러 하급심도 전반적으로 위자료를 높게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가 갖는 의미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혼 사유의 중심, 부정행위 두 번째 변화는 이혼 사유의 구조적 변화다. 과거에는 이혼 사유로 폭력, 중독, 경제적 문제, 원가족과의 갈등 등 다양한 사유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부정행위는 그중 하나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사건들을 보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상당수 사건에서 부정행위는 다른 이혼 사유들과 결합 되어 언제나 핵심 이혼 사유로 등장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부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없었는데 외도 때문에 이혼 소송이 촉발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젊은 부부들의 이혼 사유로는 부정행위가 압도적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SNS의 발달, 정조의무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그리고 간통죄 폐지 등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과거와 달리 부정행위를 발견했을 때 '참고 살기' 보다 '즉시 이혼'으로 이어지는 선택이 증가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증거는 더 중요해졌지만, 증거 확보는 더 어려워졌다 세 번째 변화는 증거 확보 환경의 변화다. 과거에는 통화내역, 문자 메시지 수발신 내역, 카톡 내역, 카드 사용 내역, 기지국 위치 등 객관적 증거 자료를 법원을 통해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당사자가 증거 확보를 위해 무리한 방법을 동원할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비밀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관련 증거 신청에 대한 법원의 채택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통신사나 플랫폼 사업자 역시 영장이 없으면 내밀한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부정행위를 입증하기 위한 합법적 증거 확보는 더욱 어려워졌고, 일부에서는 도청이나 위치추적, 흥신소 의뢰와 같은 위험한 방법에 의존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이혼 소송 당사자가 재판 과정에서 형사적 리스크까지 부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과열되는 '이혼 전문' 시장 마지막 변화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급증이다. 과거에는 이혼 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의 풀이 제한적이었고, 실무 스타일도 비교적 균질했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변호사 수가 증가하면서 이혼 소송 시장에 진입하는 변호사 인원도 급격히 늘어났다. 이혼 사건은 다른 전문 분야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데다가 부동산 가격 상승 등 재산분할 규모의 확대에 따라 수임료도 상승하는 경향이 있어 더욱 많은 변호사가 몰리고 있다. 또한 이혼이 더 이상 숨겨야 할 일이 아닌 '선택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이혼 자체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크게 증가하였다. 최근 방송과 여러 콘텐츠에서 이혼을 다루는 방식 역시 이러한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시장은 확대되었지만 동시에 경쟁은 치열해졌고, 전문성의 편차 역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변화의 본질 이 네 가지 흐름을 종합하여 보면, 최근 이혼 소송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이혼사유가 부정행위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위자료는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증거 확보는 더욱 어려워졌고, 법률 시장은 과열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실무 변화만이 아니라 가족과 혼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혼 소송은 더욱 정교한 소송전략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김태형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l 김태형 변호사는 가사∙상속 분야 전문가이다. 2007년 법관 임용후 2024년 수원가정법원 부장판사를 끝으로 17년간의 법관생활을 끝내고 법무법인 바른에 합류했다. 김태형 변호사는 법관시절 2012년부터 총 8년간 가사∙상속 및 소년심판 업무를 담당했다. 특히 법관 퇴직 전 5년(2019~2024)간 수원가정법원에서 가사소년전문법관으로 수많은 가사∙상속 관련 케이스를 처리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했다. 베스트셀러인 "부장판사가 알려주는 상속, 이혼, 소년심판 그리고 법원"(박영사, 2023)의 저자이기도 하다.

[포럼] 우주데이터센터에 거는 기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래학자로 평가받았던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3의 물결'은 정보화 시대가 가져다줄 미래를 다양한 측면에서 예측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시대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류 문명을 3개의 물결로 나누고 농업, 산업, 정보화 혁명으로 구분하였다. 제3의 물결에서는 인간의 두뇌에 저장되어 있던 사회적 기억이 컴퓨터의 등장으로 기억량이 증대되고 연결이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문명건설 작업이 다양한 국면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또한 소형화가 진행되면서 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장소에서 지적 정보가 가득찬 환경으로 변모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제3의 물결'이 발표된 1980년은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와 모바일 컴퓨팅의 혁명을 이끌었던 정보기술(IT)산업의 선구자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대학을 중퇴하고 컴퓨터 관련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토플러가 예언한 정보화 시대는 이제 단순한 '정보의 생성과 처리'의 차원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식혁명이 산업은 물론 일상 전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규모 정보의 저장·관리·배포를 위한 핵심 IT인프라가 집결된 데이터센터는 지식 정보화 시대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하게는 개인의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들이 구름(Cloud)을 타고 저장되는 것은 물론 챗GPT에 요청한 문의사항의 답변을 계산해 주는 거대언어모델 기반의 AI 기능까지 어딘가에 위치한 데이터센터에서 처리된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 수요에 부응하여 데이터센터 부지를 확보, 건설하려는 노력도 전 세계 관련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보통 대형 축구장 크기의 수십, 수백배 이상의 부지를 확보하여야 하는 데다 웬만한 도시 규모의 전력소모와 열처리를 위한 수자원 확보가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AI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현재 건설계획된 809개 데이터센터의 대부분이 가뭄 피해를 겪고 있는 지역에 건설되고 있으며, 급증하는 데이터센터가 생태계를 더 심각한 물 부족 상태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최근 발표되었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로 유타주에 건설이 승인된 '스트라토스' AI 데이터센터는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일반 서버보다 전력소비가 훨씬 높아 단일 시설이 원자력발전소 1기(1GW)와 맞먹는 전력을 소모하기도 한다. 정보화 시대의 심장인 데이터센터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력과 물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이자 AI산업 성장의 핵심병목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데이터 기반경제와 뉴스페이스를 견인하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가 작년 말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우주 데이터센터 설립비전을 제시한 것은 이러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AI 시대가 요구하는 전력 및 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를 떠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에 성공한 스페이스X의 우주데이터센터 구축 발표로 아르테미스 달탐사보다 더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주광혁 연세대 인공위성시스템학과 교수

[포럼] 李정부의 '메가특구' 성공하려면

6·3 지방선거가 끝나고 민선 9기 지방정부가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 선출된 자치단체장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업은 쇠퇴일로에 있는 지역경제와 골목상권을 살리는 일이다. 국내외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여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일자리를 늘리고, 종사자들의 정주 환경을 개선하여 지역에서 생활과 소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지방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는 어떻게 기업의 투자를 끌어낼 것인가이다. 기업으로서는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고, 인력을 구하기 쉬운 수도권을 떠나 지방에 연구센터나 생산공장을 두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기업의 지방 투자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새로 선출된 광역단체장들이 관심을 기울여 추진해야 할 것이 메가특구이다. 이재명 정부가 국가균형 성장을 위해 새롭게 설계한 이 제도는 인접 시도에 걸쳐 있는 여러 개의 산업과 혁신 거점을 하나의 대규모 특구로 지정하고, 획기적인 투자 유인책을 마련했다. 먼저 특구에 최고 수준의 규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세 가지 방식의 규제 특례를 제공한다. 첫째, 메뉴판 식 규제 특례로, 기업과 지방정부가 필요로 하는 규제 완화를 미리 준비된 형태로 제공하여 투자 기업이 쉽게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둘째, 수요응답형 규제유예는 메뉴판에 없는 규제 중 기업이 원하는 규제 완화를 빠른 심의를 통해 허용하는 제도이다. 셋째, 기존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개선하여 기업들이 신기술과 서비스를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빠르게 실증할 수 있도록 한다. 특구에 투자하는 기업에는 이러한 규제 완화와 더불어 재정, 금융, 세제, 인재, 인프라 측면의 지원이 패키지로 제공되어 투자 매력도를 높인다. 재정에서는 성장엔진 특별보조금을 신설하여 메가특구의 신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현 정부가 새롭게 조성한 국민성장펀드와 지역성장펀드는 특구 내 기업의 대규모 설비투자와 스타트업의 창업과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다. 세제 혜택도 기존의 지방 이전 기업에 주어지는 법인세 감면에 더해 투자, 고용 및 연구개발(R&D)에 비례하여 확대할 예정이다.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특구 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여 공급하고, 산업단지를 비롯한 거점 지역의 주거, 교육, 의료 인프라를 개선하여 정주 인구를 늘릴 계획이다. 특구 제도가 이번 정부에서 처음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1973년 대덕연구단지로 시작한 연구개발 특구가 전국 19곳에 지정되어 있으며, 신기술의 실증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한 규제자유 특구도 전국에 40곳 이상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지방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한 기회발전 특구도 55곳이나 지정되어 있다. 이렇게 각종 특구가 이미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메가특구제도를 새롭게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 특구의 지원책이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는 데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새롭게 추진되는 메가특구가 지방경제의 신성장 엔진이 되기 위해서는 국내외 기업에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표된 통합지원 패키지가 충실히 이행되어야 한다. 이병헌 광운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