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 지금은?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 지금은?

한일월드컵 20주년, Be the Red's

히딩크호

2001년 1월 1일, 2002 한일 월드컵을 약 1년 반 남긴 시점에 대한축구협회는 외국인 감독 선임을 공식 발표합니다. 1991년과 1996년 두 차례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 IOC 주최의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을 4강으로 이끈 히딩크 감독을 선임한 것이죠.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좌절되었던 16강 토너먼트 라운드 진출을 달성하고 개최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프랑스 월드컵 이후에도 세계 최강을 앞다투는 스페인 축구 리그 명문 팀 레알 마드리드 CF 등에서 감독을 맡으며 커리어를 쌓아왔습니다. 훗날 히딩크 감독은 자서전에 '대한축구협회가 제안할 당시에는 수락이 내키지 않았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나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본인이 가볍게 남긴 조언에 국내 프로 리그 팀 합숙 일정을 합의하는 등 축구협회의 노력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결국 히딩크 감독은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수락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4강 진출을 이끈 히딩크 감독.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4강 진출을 이끈 히딩크 감독.

히딩크 감독은 부임 직후 선수들의 체력, 정신력, 조직력 강화에 알맞은 훈련을 도입했습니다. 대표팀은 고된 훈련과 크고 작은 대회의 경기를 소화하며 다가오는 월드컵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 부임 후 약 5개월이 지난 2001년 5월 30일, 대표팀은 피파가 주최하는 다른 대륙 간 컵 대회인 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리그에서 강팀 프랑스에 무득점 5골 차로 패배합니다. 2개월 뒤인 8월에도 체코에 0:5로 패배, 일부 부정적인 여론마저 생깁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강팀을 상대로 패배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며 흔들리지 않고 월드컵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직전, 대표팀은 다시 만난 프랑스와의 친선 경기에서 1년 전 설욕을 갚기라도 하는 듯 달라진 경기를 선보였습니다. 박지성 선수와 설기현 선수가 득점하며 전반전을 2:1로 리드했습니다. 2:3으로 역전패한 경기였으나 결과와는 다르게 국내외 언론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히딩크호는 월드컵 조별리그에 나서며 아름다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전례 없던 성적을 쓰며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4강 신화'의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대한민국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민국 명예국민, 서울특별시 명예시민 등 다양한 훈장을 수여하며 각별히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히딩크 #히딩크호 #2002월드컵 #한일월드컵 #4강신화 #오대영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히딩크 감독은 선수와 감독을 모두 지낸 고향 네덜란드 프로팀 PSV 에인트호번의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월드컵을 함께 한 박지성 선수와 이영표 선수를 영입, 4시즌 동안 리그 우승 3회, 준우승 1회를 기록하며 명장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갑니다. 2006년 탈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잠시 위기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러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유로 2008 대회 4강 진출, 첼시 FC의 감독으로 2009년 FA컵 우승컵을 거머쥐는 등 여러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을 이끌었습니다. 2021년에는 지도자로서의 은퇴를 공식화했습니다.
2002 월드컵 20주년 기념 레전드 올스타전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 ⓒ뉴시스, 2022년 6월
2002 월드컵 20주년 기념 레전드 올스타전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 중인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 ⓒ뉴시스, 2022년 6월

2022년 5월 28일,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4강 20주년을 맞아 개최한 '2022 KFA 풋봇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했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표정과 미소로 반가운 인사를 전한 히딩크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20년 전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란다는 응원도 잊지 않았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응원처럼 2002년 전설을 만든 짜릿한 순간들이 2022년 다시 한 번 반복되길 바랍니다.
#히딩크내한 #히딩크방한 #월드컵20주년 #대한축구협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한 박항서 감독. 월드컵 직후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에 부임, 3위로 동메달을 따냅니다. 이후 10년이 넘도록 경남FC, 전남드래곤즈, 상주상무 등 K리그 다수의 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죠. 2017년에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박항서 감독의 지휘 아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U-23 대표팀 포함)은 2018년과 2019년 AFC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4강, AFF 스즈키컵 우승, AFC 아시안컵 8강 등 베트남 축구 역사에 수많은 대기록을 남겼습니다. 피파 랭킹 100위 권 진출의 목표까지 달성한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받으며 수차례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 ⓒ뉴스1, 2020년 1월
박항서 베트남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 ⓒ뉴스1, 2020년 1월

국내 팬들도 박항서 감독의 우수한 성적과 득점 세레머니가 2002년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킨다고 '쌀딩크'라는 애칭을 선물했죠. 하지만 언제나 이별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박항서 감독은 2022년 10월, 이번 계약을 끝으로 베트남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항서 #베트남국가대표팀 #베트남축구 #쌀딩크

‘산소탱크’, 박지성

박지성 선수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21살의 어린 나이에도 전 경기 선발 출장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득점한 장면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꼽힙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박지성 선수는 히딩크 감독의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했습니다. 이후 2005년까지 총 3개 시즌에 네덜란드 리그, 유럽 최고 프로리그 팀이 맞붙는 챔피언스리그에서 활약합니다.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한 박지성 선수는 2005년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됐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 박지성 선수 ⓒ뉴스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 박지성 선수 ⓒ뉴스1

당시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는 최고 수준의 리그, 최상위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명문 구단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 선수 이적이 유니폼 판매 수익과 마케팅을 위한 것이라며 평가절하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 선수는 데뷔 시즌 34회의 리그 경기 중 23경기를 선발로 출전하는 등 성적으로 소문을 일단락합니다.

부상으로 생긴 공백을 제외하면 박지성 선수는 7시즌 동안 팀의 리그 우승 4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를 함께했습니다. 박지성 선수는 수비와 공격이 모두 빛나는 선수로 팀 내 공격수들을 지원하며 팀의 질주에 기여했습니다.
#박지성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맨유 #프리미어리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작별 후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PSV 에인토호번 임대로 활약한 박지성 선수는 2014년 무릎 부상 악화로 공식 은퇴합니다. 국가대표팀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캡틴의 퇴장, 박지성 선수가 경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국내외 팬과 축구 관계자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박지성 선수는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 대한민국 축구황금기의 주축이라는 타이틀을 넘어서서 세계의 전설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합니다. 비유럽권 선수 최초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7번째 앰버서더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박지성 선수는 국제축구평의회 자문위원,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에 이어 최근에는 K리그 팀인 전북현대의 테크니컬 디렉터로 역할하며 국내외 축구 관련 다양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2022 카타르월드컵 박지성 해설위원. ⓒ뉴스1
2022 카타르월드컵 박지성 해설위원. ⓒ뉴스1

때때로 방송에서 반가운 얼굴을 볼 수도 있습니다. 2018년에는 러시아 월드컵 해설 위원으로, 2022년 9월에는 2002년 4강 신화를 함께 한 안정환 선수가 출연하는 스포츠 예능에 게스트로 얼굴을 비추는 등 축구 해설자, 예능 게스트로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해설위원으로 국내 축구 팬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전달할 예정입니다.

#2022카타르월드컵 #월드컵해설 #박지성해설 #맨유앰버서더

‘매직 드리블’, 이영표

'헛다리 짚기 드리블 돌파'하면 생각나는 대표 선수 이영표. 이영표 선수는 200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측면을 든든하게 책임졌습니다. 당시 유럽 최고 측면 공격수들의 침투를 막아냈죠. 조별리그 포르투갈 전과 16강 이탈리아 전에서는 박지성 선수, 안정환 선수의 득점을 도왔습니다. 이영표 선수의 도움은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토트넘 홋스퍼 FC 시절 이영표 선수.
토트넘 홋스퍼 FC 시절 이영표 선수.

박지성 선수와 함께 히딩크 감독의 러브콜로 PSV 에인토호번으로 이적한 이영표 선수는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2005년에는 지금 손흥민 선수가 활약하는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하며 대한민국 2호 프리미어리거가 됩니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활약하며 토트넘에서 입지를 다진 이영표 선수는 아쉽게도 2007년 팀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이 경질되며 리그 경기 출장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영표 선수는 독일 명문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 FC, 미국 프로 축구 밴쿠버 화이트캡스까지 다양한 팀에서 뛰었습니다. 서른 후반의 나이에도 대부분의 경기에 풀타임 출전했습니다. 2013년 현역 선수 은퇴를 선언한 마지막 경기에서도 90분을 소화한 후 교체했습니다. 현지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그라운드 위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영표 #토트넘 #토트넘홋스퍼 #손흥민 #도르트문트

현역에서 은퇴한 후 이영표 선수는 2014 브라질 월드컵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직설적인 표현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전문적인 해설, 날카로운 경기 분석 능력에 시청자들은 환호했습니다. 특히 이영표 해설 위원의 경기 흐름 및 승부에 대한 예측은 놀랍도록 잘 들어맞았습니다. 유로 2008,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승패를 연속으로 맞히면서 '점쟁이 문어'로 불리는 '파울'에 빗대어 '문어 영표'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영표 강원FC 신임 대표이사. ⓒ뉴시스
이영표 강원FC 신임 대표이사. ⓒ뉴시스

이영표 선수는 아시안 게임, 아시안컵, 올림픽 등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다양한 A매치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직설적인 표현으로 선수에 실언한 적이 있음에 책임을 느낀다며 해설 위원 하차의 뜻을 전합니다. 해설 위원에서 물러난 이영표 선수는 유소년 육성 환경 개선에 앞장서고자 지도자 라이선스 취득에 도전했습니다. 몇 차례 특별 경기에서 몇 차례 해설을 맡으며 해설 위원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안기기도 했습니다.

이영표 선수는 2017년 풋웨어 브랜드를 론칭하며 기회를 나누는 일을 하고자 한다는 메시지를 담기도 했습니다. 2020년에는 강원FC 대표이사로 내정되며 근황을 알렸습니다.
#이영표해설 #문어영표 #월드컵문어 #강원FC

‘판타지스타’, 안정환

한일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역전 결승골은 세계 축구 팬들을 놀라게 한 '이변'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의 가장 짜릿한 승리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당시 골든골과 반지 세레모니를 선보인 안정환 선수는 탄탄한 개인기와 능숙한 양발 컨트롤, 득점력까지 갖춘 대한민국의 '판타지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안정환 선수는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유럽 리그 팀인 이탈리아의 AC 페루자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은 '안정환 선수가 소속팀에서 확실한 주전 선수로 활약하고 있지는 못한다'라며, 유럽파 선수라도 대표팀 최종 명단에 무조건 포함하지는 않겠다고 선언했죠. 안정환 선수는 피나는 노력으로 모진 훈련을 이겨냈습니다. 그리고 튀니지와의 평가전에서 우수한 경기력으로 자격을 증명합니다. 훗날 히딩크 감독은 당시 안정환 선수의 재능을 알고 있었지만,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냉담한 태도로 임해야 했음을 밝혔습니다. 이에 안정환 선수도 존경하는 마음을 표시하며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터트렸던 안정환 선수. (대한축구협회 제공) ⓒ뉴스1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터트렸던 안정환 선수. (대한축구협회 제공) ⓒ뉴스1

2002년 전 국민을 열광하게 한 골든골 직후, 안정환 선수의 소속팀 AC 페루자의 구단주는 보복성 방출 발언으로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안정환 선수 개인 차량 등에 무차별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등 비상식적인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혼돈 속에서 안정환 선수는 프리미어리그 팀으로의 이적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블랙번 로버스 FC와 개인 협상 마무리 단계까지 진행되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AC 페루자-부산 아이콘스 구단 간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는 등 복잡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안정환 선수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입성은 좌절되고 맙니다. 이후 일본, 프랑스, 독일 리그에서 활약하던 안정환 선수는 국내에 복귀해 2시즌을 소화합니다. 중국 슈퍼 리그 다롄 스더에 이적, 2011년까지 선수로 활동하다가 2012년 현역 은퇴를 결정했습니다.
#안정환 #페루자 #블랙번 #월드컵16강 #이탈리아전 #반지세레모니 #골든골

안정환 선수는 해설 위원과 예능인으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처음 선보인 안정환 선수의 해설은 현장감 있는 해설과 재치 있는 입담을 자랑하며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2018년 러시아 올림픽, 2020 도쿄 올림픽 등 주요 국제 대회 해설 경력을 갖춘 안정환 선수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도 해설 위원으로 참여합니다. 안정환 선수만의 전문적인 시각과 신선한 분석으로 경기마다 새로운 재미를 더할 예정입니다.

2022 카타르월드컵 해설위원 안정환(왼쪽). ⓒ뉴시스
2022 카타르월드컵 해설위원 안정환(왼쪽). ⓒ뉴시스

안정환 선수는 프로 리그 감독 수행이 가능한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했습니다. 스포츠 관련 프로그램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방송에 출연하고, 각종 축구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감독으로도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팬들은 홍명보호에 이어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 선수가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키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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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히딩크호의 주장 홍명보 선수는 뛰어난 수비력과 경기 조율 감각 그리고 리더쉽을 갖추었습니다.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위퍼로 꼽힙니다. 8강 스페인전에서도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로 득점에 성공하며 대한민국을 4강으로 이끌었죠.

홍명보 선수는 2002년 월드컵 이후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국가대표 은퇴를 발표합니다. 월드컵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선수의 은퇴 소식에 팬들은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여러 번의 복귀 제의가 있었으나 실력을 키워나가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양보하겠다는 홍명보 선수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대한축구협회 제공) ©뉴스1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대한축구협회 제공) ©뉴스1

국가대표팀에서는 은퇴했지만, 월드컵 이후 미국 MLS의 LA 갤럭시로 이적한 홍명보 선수는 전성기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활약했습니다. 30대 중반, 축구선수로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을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에 현지 팬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04년,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현역 선수 은퇴를 결심합니다.
#홍명보 #리베로 #스위퍼 #히딩크호주장

홍명보 선수는 2006년 국가대표팀 코치로 지도자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대표팀과 청소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으며 올림픽 동메달을 따는 등 지도력을 증명했습니다. 2013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했습니다. 홍명보호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월드컵 레전드로서 홍명보 선수에게 거는 기대도 있었지만, 준비 기간이 짧은 만큼 우려 또한 존재했습니다. 아타깝게도 홍명보호는 선발 기준 등에서 논란을 낳은 채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무 2패,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게 됩니다.

국가대표팀 감독 사퇴 후 홍명보 감독은 중국 슈퍼 리그 팀 항저우 뤼청 감독으로 다년간의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2020년 K리그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합니다. 팀을 재정비해 2021시즌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에는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 17년 만에 팀을 리그 우승팀에 올려놓습니다.

K리그 우승을 확정한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
K리그 우승을 확정한 울산 현대 홍명보 감독이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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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서 감독으로, 지도자가 된 4강 레전드들

경기 중 작전을 지시하는 성남 FC 김남일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경기 중 작전을 지시하는 성남 FC 김남일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뛰어난 대인 방어 능력으로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을 가진 김남일 선수는 2016년 현역 은퇴 이후 중국 슈퍼 리그 장쑤 쑤닝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국가대표팀 코치, 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거치며 코칭 경험을 쌓은 김남일 선수는 2020 시즌 성남 FC에서 첫 감독직을 수행합니다. 김남일 감독 체제에서 성남 FC는 비록 강등권에 머물렀지만, 꾸준히 1부 리그 잔류에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2022 시즌 정치권에서 의혹이 불거져 팀의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지속되자 끝내 자진 사임을 발표했습니다. 다음 행선지로 다양한 팀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2022년 10월 19일 기준, 계약 소식 등 근황은 아직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김남일 #진공청소기 #성남FC #김남일감독

김태영 전 천안시축구단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뉴시스
김태영 전 천안시축구단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뉴시스

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에서 코뼈 부상을 당했으나 남은 경기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 출전하는 투혼을 보여주며 활약한 김태영 선수는 2005년까지 총 11년간 전남 드래곤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이후 국가대표팀, 소속팀이던 전남 드래곤즈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2020년 3부 리그인 천안시 축구단 감독으로 데뷔, 2022년 8월까지 팀을 이끕니다. 2006년과 2016년에는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습을 보이기도 한 김태영 감독이기에 팬들은 다음 행보가 어떻게 될지 기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태영 #김태영부상 #부상투혼 #김태영마스크

설기현 경남FC 감독 '1부 승격 다짐' ⓒ창원=연합뉴스, 2022년 7월
설기현 경남FC 감독 '1부 승격 다짐' ⓒ창원=연합뉴스, 2022년 7월
박지성, 이영표 선수에 이어 대한민국의 3호 프리미어리거인 설기현 선수는 벨기에 리그에서 데뷔, 현 황희찬 선수의 소속팀이기도 한 울버햄튼을 거쳐 1부 리그 FC와 풀럼 FC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남겼습니다. 유럽 선수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체격 조건에 빠른 주력까지 갖추어 히딩크호에서도 꾸준히 활약한 설기현 선수는 이후 국내 리그로 복귀해서 선수 경력을 이어가다가 2015년 성균관대학교 감독으로 부임을 알리며 현역 은퇴를 발표합니다. 대학교 감독, 국가대표팀 코치 파견 등 지도자로 경험을 쌓은 설기현 선수는 2020시즌 경남 FC 감독에 공식 부임합니다. 설기현 감독 지휘 아래 경남 FC는 1부 리그 승격에 도전, 2022년 10월 19일 기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데 성공하여 승격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설기현 #풀럼 #레딩 #설바우도 #울버햄튼 #황희찬

2002 월드컵 본선에서는 조별리그 미국전 이후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으나 1998년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고 J 리그 소속팀에서도 핵심 자원으로 활약하던 최용수 선수는 현역 선수 은퇴 이전인 2006년부터 친정팀 FC 서울의 플레잉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수석코치로 승격, 감독대행 체제에서 활약하다 2011년, 공식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 FC 서울에게 우승컵을 안기며 선수 시절의 명성을 이어간 바 있습니다.
벤치 향하는 최용수 감독 ⓒ춘천=연합뉴스, 2022년 10월
벤치 향하는 최용수 감독 ⓒ춘천=연합뉴스, 2022년 10월

탁월한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존경을 받으며 팀을 이끌던 최용수 감독은 2016년 장쑤 쑤닝으로 잠시 자리를 옮겼으나 2018시즌 복귀해서 팀의 1부 잔류와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하는 등 팀의 레전드이자 명장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줍니다. 2020년 휴식기를 가지며 도쿄 올림픽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한 최용수 감독은 이영표 선수가 대표를 맡은 강원 FC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감독직에 부임,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용수 #FC서울 #독수리 #1998프랑스월드컵 #강원FC

뛰어난 패스와 슛 능력으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의 주전 공격수로 오랜 기간 활약한 황선홍 선수는 2002년 월드컵 이후,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국가대표 은퇴 경기를 치른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현역 선수를 은퇴합니다. 축구 인생의 후반전, 지도자로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황선홍 선수는 은퇴 직전 소속팀이던 K리그 전남 드래곤즈의 코치로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코치와 수석 코치에 이어 해외 유학을 통해 경험을 쌓은 황선홍 선수는 200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에 부임하며 국내 복귀를 알렸습니다. 2011년 부산 아이파크와 계약 종료 이후, 포항 스틸러스 감독에 부임, FA 컵 2연패와 리그 우승 등 화려한 기록을 연일 세우며 지도력을 입증합니다.
평가전을 지켜보는 황선홍 감독 ⓒ화성=연합뉴스, 2022년 9월
평가전을 지켜보는 황선홍 감독 ⓒ화성=연합뉴스, 2022년 9월

FC 서울 감독으로 3시즌을 보낸 황선홍 감독은 이후 부임 예정이던 옌볜 푸더가 해체되며 잠시 위기를 맞았으나, 대전 하나 시티즌 감독으로 1시즌을 보내고 2021년 U-23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합니다. 2022년 아시안컵에서 라이벌팀 일본에 패하며 탈락하긴 했으나 계약 기간 내에 여러 대회들이 남아있는 만큼, 황선홍 감독은 더 단단하게 준비할 것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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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데뷔’ 이영표, 차분하고 날카로운 해설로 ‘눈길’

‘해설 데뷔’ 이영표, 차분하고 날카로운 해설로 ‘눈길’

‘초롱이’ 이영표(37)의 해설위원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이영표는 30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알라모돔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평가전에서 해설위원으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경기에서는 한국이 멕시코에 0-4 패배를 당해 이번 북중미 평가전에서 1승1패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14일 공식 은퇴를 선언하고 선수로서의 여정을 마감했던 이영표는 지난 16일 KBS 축구해설위원 계약 체결 및 위촉장 전달식에 참석해 정식으로 해설위원이 됐다. 위촉식 당시 이영표는 “칭찬할 것과 비판할 것이 있다면 칭찬을 먼저 하겠다”며 “잘하고 있는 것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칭찬을 통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비롯해 더 많은 것을 얻도록 할 것이며, 선수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영표는 이 말을 지켰다. 전반 초반 멕시코의 공격 점유율이 높을 때 한국 선수들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기 보다는 간간히 나오는 공격 찬스와 슈팅에 대해 칭찬했다. 전반 15분에 나온 이근호의 슈팅에 대해서는 “공이 어디로 올지 예측하는 능력은 이근호가 최고다. 또한 공간을 잘 활용한다”며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잘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전반 26분 박종우의 코너킥에 이은 이명주의 헤딩 슈팅에 대해서는 “좋은 크로스와 좋은 슈팅이었다. 리듬이 잘 맞아나가고 있다”고 칭찬했다. 코스타리카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던 김신욱의 장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영표는 “김신욱은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몫을 해내는 선수다”라고 말했다. 칭찬하는 어조였지만 이영표는 차분한 톤을 유지했다. 그는 쉽게 흥분하거나 들뜨지 않았다. 첫 해설답지 않은 노련함이 느껴졌다. 한국이 골을 넣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우리 진영 사이드에서 상대에게 1대1 상황을 허용하면 협력수비를 해야 한다”고 밝힌 이영표는 “상대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수비하기 위해서는 상대 선수들을 밀고 나와서 골대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골 찬스를 위해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움직임이 공간을 만드는 지름길이다”라고 덧붙였다. 전반에 멕시코가 두 골을 넣고 이날 경기를 맡은 심판들이 한국에 불리한 판정을 내리자 이영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주변 여건이 좋지 않지만 이 경기를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며 “이것이 평가전을 치르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반을 마치고 하프타임에는 자신이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비춰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영표는 “선수들이 오늘 첫 해설이니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며 “긴장했다기보다는 해설을 하는 방법을 아직 잘 몰라서 헷갈리는 것 같다”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후반 들어 한국의 공격이 쉽게 풀리지 않자 이날 함께 중계석에 앉은 이광용 아나운서는 “그라운드에 나가 뛰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영표는 “지금 몸이 만들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지만, 몸 상태가 좋다면 뛰고 싶은 생각이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한국이 후반 막판 멕시코에 연속골을 허용하자 이영표는 “얼마든지 경기에서 질 수 있다. 얼마든지 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들이 국가대표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투지가 보이지 않는 선수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웠다. 선수들을 칭찬할 때는 칭찬하되 바람직하지 못한 플레이가 나왔을 때는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비록 한국은 멕시코에 패했지만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했던 선배로서, 형으로서 아우들의 경기를 중계한 이영표의 첫 해설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email protected]이세영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월드컵 영웅에서 강원 대표로'…행정가 이영표의 도전

'월드컵 영웅에서 강원 대표로'…행정가 이영표의 도전

[서울=뉴시스] 안경남 기자 =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이영표(43)가 프로축구 강원FC의 최고 책임자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강원 구단은 22일 강원도체육회관 대회의실에서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개최하고 '월드컵 영웅' 이영표를 강원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 신임 대표는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배우고 느끼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바탕으로 강원도민분들이 기대하는 대로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강원FC 팬들에게 자랑거리가 되고 싶다. 어떤 팀과 경기를 하든지 팬들이 경기장을 올 때 승점 3점을 기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취임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내년 1월4일 강원 클럽하우스를 방문해 김병수 감독 및 선수단과 만나 상견례를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강원도 홍천 출신인 이 대표는 안양공고와 건국대를 거쳐 2000년 안양 LG(현 FC서울)에 입단하며 K리그에 데뷔했다. 국가대표로는 1999년 6월12일 코리아컵 멕시코전을 통해 태극마크를 달았고 2002 한일월드컵을 시작으로 2006년 독일월드컵,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까지 총 세 차례 월드컵을 경험했다. 이 대표는 A매치 127경기를 뛰며 5골을 기록했다. 출전 횟수는 홍명보(136경기), 이운재(131경기), 차범근(130경기)에 이어 역대 네 번째로 많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당시 사령탑이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받으며 크게 주목을 받았다. 수비수임에도 등번호 10번을 달고 월드컵 무대를 누볐다. 포르투갈과 조별리그 마지막 3차전에서 박지성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고,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엔 안정환의 골든골을 도왔다. 한일월드컵 성공 이후 박지성과 함께 히딩크 감독의 러브콜을 받은 이 대표는 네덜란드 명문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며 유럽 진출에도 성공했다. 이 대표는 아인트호벤에서 2004~200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르며 성공 가도를 달렸고, 200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입성했다. 축구종가 EPL에서도 꾸준히 활약한 이 대표는 이후 도르트문트(독일), 알힐랄(사우디아라비아), 밴쿠버 화이트캡스(캐나다) 등에서 뛰다 2013년 10월 축구화를 벗었다. 은퇴 후 축구행정가를 목표로 한 이영표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 소셜벤처 '삭스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K리그1 강원의 새로운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행정가의 꿈을 이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은퇴’ 안정환 “블랙번 계약서, 아직 갖고 있다”

‘은퇴’ 안정환 “블랙번 계약서, 아직 갖고 있다”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종이 한 장이었는데” 31일 오전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 안정환은 14년 동안의 축구인생을 정리하며 그간 털어놓지 못했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먼저 안정환은 성공 뒤에 가려졌던 학창시절 어려웠던 날들에 대해 “그 시절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강한 마음을 줬고 안정환이라는 이름을 알 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다” 며 “당시는 힘들었지만 생각하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계기였던 것 같다”고 잠시 그 시절을 회상했다. 이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꼽아달란 말에 “김주성 선배가 생각난다. 중학교시절 볼보이로 처음 프로축구를 관람하러 갔을 때 김주성 선배에게 사인을 받으러 갔다. 하지만 김주성 선배는 사인을 거부한 채 그냥 가셨다”며 “그때 충격을 받았다. TV에서만 보던 우상이었는데, 나는 프로선수가 되면 사인해주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었다”고 웃어보였다. 지난 1998년 부산 대우로 입단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한 안정환은 고종수, 이동국과 함께 ‘트로이카’라 불리며 K리그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동국만이 현역으로 남아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이에 안정환은 “제가 보여주지 못한 모습까지 보여줬으면 좋겠다. 동국이도 힘든 순간이 있었을 텐데 좋은 활약을 펼쳐줘 고맙다”며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전했다. 특히 안정환은 블랙번 이적 불발에 대해 “당시 사인까지 다 마치고 비행기 티켓까지 챙긴 상황이었는데 입단이 불발돼 많이 힘들었다. 갔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며 “지금도 계약서를 갖고 있다. 가끔 책상을 정리하다 발견할 때면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종이 한 장이었는데’라고 생각한다”고 웃어보였다. 마지막으로 안정환은 “발자취를 남긴 것은 없고, 좋은 일과 나쁜일, 이슈를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팬들에게 축구에 대한 관심을 많이 끌 수 있었던 것 같다. 팀이 없어 혼자 6개월 동안 연습도 해봤고, 발자취보단 우여곡절을 많이 남긴 것 같다”며 14년 동안의 축구 인생을 정리했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email protected]임무배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 ‘테리우스’ 안정환 “14년 축구인생, 행복한 시간이었다”   ▶ 한국남자핸드볼, 아시아선수권대회 3연승 '준결승 진출'   ▶ 日 언론, "이대호, WBC에서 대결했던 이치로와 대면"   ▶ 'KBL 올스타전' 드림팀, 매직팀 꺾고 승리..MVP 문태영   ▶ 한국 男핸드볼, 아시아선수권 2연승 '이란 꺾고 조 1위'

'반지의 제왕' 안정환, 결국 현역 은퇴

'반지의 제왕' 안정환, 결국 현역 은퇴

‘반지의 제왕’ 안정환(36)이 결국 현역에서 은퇴한다. 27일 안정환의 에이전트사인 모로스포츠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주역인 안정환이 선수생활 은퇴를 결정, 오는 31일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리치 칼튼 호텔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올해 중국 슈퍼리그 다롄스더에서 복귀한 안정환은 선수생활을 지속하는 것과 은퇴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지만 현 시점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모로스포츠는 “한국 K리그 축구팬들에게 안정환이 경기장에서 다시 뛰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게 생각한다”고 덧붙이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앞서 지난 1998년 부산 대우에 입단해 K리그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안정환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등극했고, 특히 이탈리아와의 16강전서 골든골을 터트리며 한국대표팀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주역이다. /파이낸셜뉴스 스타엔 [email protected]박명준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관련기사   ▶ 나달, 페더러 꺾고 호주오픈 결승 '통산 11번째 우승 도전'   ▶ 이상호, UAE 사르자FC로 임대 이적   ▶ '안젤코-서재덕 맹활약' KEPCO, LIG에 3-0 완승   ▶ 경남, 사이프러스 전훈 출국 "수비조직력에 중점 둘 것"   ▶ 서재응, 4천만원 삭감된 2억9천만원에 재계약

안정환 "벌써 20년, 이탈리아인들은 더 이상 날 미워하지 않길"

안정환 "벌써 20년, 이탈리아인들은 더 이상 날 미워하지 않길"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골든골을 넣었던 안정환(46)이 이탈리아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탈리아 인들은)더 이상 날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탈리아 '가제타 델로 스포츠'는 18일(현지시간) 안정환과의 단독 인터뷰를 게재했다. 안정환은 매체를 통해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전 골든골 이후 페루자에서 쫓겨났던 사연 등을 전했다. 안정환은 2002년 6월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16강전에서 1-1로 팽팽하던 연장 후반 12분 극적인 헤딩 골든골로 한국의 8강 진출을 견인했다. 전반 페널티킥(벌칙차기) 실축으로 마음고생이 컸던 안정환은 골든골로 모든 것을 만회했다. 강호 이탈리아를 꺾은 한국은 다음 단계에 올랐고 스페인과의 8강에서도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며 4강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안정환은 당시 논란이 됐던 모레노 주심의 판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모레노 주심은 연장에서 프란체스코 토티에게 경고 누적 퇴장을 줬다. 안정환은 "항상 심판의 결정을 존중했다"며 "때로는 힘들더라도 모든 것을 받아 들였다. 판정은 비디오판독(VAR) 없이는 항상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할 만한 자격이 있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했다. 안정환은 "우린 (이탈리아에)승리할 자격이 있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친선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냈고 거스 히딩크 감독도 훌륭하게 해냈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선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전 골로 안정환은 한국에서 최고의 스타가 됐지만 황당하게도 소속팀인 페루자에서 방출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안정환은 2000년부터 페루자에서 뛰고 있었다. 당시 루치아노 가우치 페루자 회장은 "이탈리아 축구를 망친 누군가에게 급여를 지불할 수 없다. 안정환은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모독했다"고 맹비난하며 그를 방출했다. 안정환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며 "가우치 회장이 급여를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포했고, 내 득점으로 이탈리아 축구를 망쳤다고 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정환은 페루자를 나온 뒤 일본 시미즈 S-펄스로 이적했고 이후 요코하마 마리노스(일본), FC메스(프랑스), 뒤스부르크(독일), 수원 삼성(한국) 등을 거쳐 2011년 다롄 스더에서 은퇴했다. 안정환은 "모든 이탈리아인들에게 말하고 싶다"면서 "제발 더 이상 날 미워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난 한국 선수로 조국을 위해 싸웠고 누구에게도 상처룰 주고 싶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탈리아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고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을 기록해서 팬들의 신뢰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